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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Author: 코코넛 서고
그 여인이 고개를 들자 서인경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야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강렬한 익숙함이 밀려왔다.

열다섯 째 황자 연무성이 붓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남장한 장수를 붙잡고 서인경 앞으로 데려왔다.

“누님, 이분은 제 어머니입니다. 비록 얼굴은 달라졌지만 제겐 여전히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이제 더는 숙귀비가 아닌, 그저 제 어머니, 서은숙입니다.”

서은숙.

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이름.

한때는 황제의 여인이었고 후궁의 귀비였던 사람. 그리고 황자의 생모였던 사람이었다.

아들의 입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서은숙의 가슴이 요동쳤다.

그녀는 서인경을 바라보았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

눈가가 서서히 젖어들었다.

“인경아…”

익숙한 목소리.

서인경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눈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고모…?”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마주한 혈육.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고모, 어떻게 여기 계세요? 언제 돌아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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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93화

    연기준에게 전생의 일을 말해야 할까.서인경은 잠시 망설였다.환생이라니, 너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하지만 일불락 같은 기이한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환생이라고 해서 불가능할 이유가 있을까?생각에 잠긴 채, 그녀는 정신을 나누어 약왕곡에서 약상자를 꺼내 들었다.고개를 숙인 채, 연기준의 상처를 하나하나 손보았다.“우린 이미 서로 등을 돌릴 사이를 훨씬 지난 것 같은데요. 꼬막이도 이제 곧 돌인데 제가 제 부군을 걱정하는 이유를 굳이 물어야 합니까? 좀 쓸데없는 질문 아닌가요?”연기준의 가슴이 잔잔히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낮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는 평소 좀처럼 웃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터지는 웃음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지나치게 눈부셨다.서인경은 약을 준비하다 말고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아마도 전생에 좋은 일을 참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복을 받은 게 아닐까.연기준은 그런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신경 쓰는 이 순간이, 꽤나 마음에 드는 듯했다.곰곰이 떠올려보면 막북에서 돌아온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변해왔다.수차례 생사를 넘나들고 헤어짐과 재회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로의 운명을 나누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연기준 역시, 오래전의 그 꿈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전생의 마지막이 어떤 비극이었는지, 그 기억은 단 한순간도 그를 놓아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연기준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서인경 역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는 끝내 결정을 내렸다.말하자. 서로 속마음을 숨기기만 하는 이야기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길이라면 그녀는 더 이상 참고 삼킬 생각이 없었다.연기준의 상처는 대부분 겉으로 난 것들이었다.약을 바르고, 붕대를 정성스럽게 감았다. 모든 처치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마침 그의 시선과 맞닿았다.연기준은 줄곧, 뜨겁게 그녀를

  • 시간을 거슬러   제1192화

    연기준의 말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그 진심 어린 어조에 임선우의 가슴에도 잔잔한 울림이 번져 갔다.그는 손끝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며 임 가에 대대로 내려온 사명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참지 못한 듯 눈가가 붉어졌다.“제가 이곳에 온 일은 그 누구에게도 알린 적이 없습니다. 헌데 백 년 전의 진국에 임 가라는 가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니… 증조부께서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틀림없이 웃으며 눈을 감으실 것입니다.”임선우는 손등으로 눈가를 가볍게 훔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전에는 온화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늘 경계와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폐하께서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으십시오. 아는 건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그의 말투와 태도는 한층 진중해졌다.그러자 연기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어르신께서는 화족의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인경과 임선우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서인경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연기준이 왜 임선우가 화족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반면, 임선우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연기준이 무엇을 눈치챈 걸까?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스친 한 줄기 동요는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서인경과 연기준은 짧게 시선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임선우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이를 악물었다.“모릅니다. 일불락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면서, 아직도 화족을 못 찾았단 말입니까?”그는 시선을 서인경에게 돌렸다.“이제 보니, 당신이 수령이라 해도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모양이군요.”서인경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담담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어르신 말씀대로입니다. 더 힘쓰겠습니다.”그 태도는 연기준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겸손했다.임선우는 순간 멍해졌다.그저 경호 운송을 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어

  • 시간을 거슬러   제1191화

    임선우는 잠시 미묘하게 눈을 떴다가, 곧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제 속셈을 의심하는 겁니까?”서인경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침묵으로 받아들인 셈이었다.일불락이라는 이름이 지닌 유혹은 그만큼 컸다.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임선우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백돌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바둑판 위에 흩뿌렸다.찰칵. 막 중반에 접어들던 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흑과 백이 뒤섞여, 어지럽게 얽혔다. 그는 태연히 찻잔을 들어 올려 단숨에 반 잔을 들이켰다.막 입에 머금은 순간, 눈빛이 번쩍 빛났다.“이거, 좋은 차군요. 정말 귀한 차입니다. 저는 차를 좋아해서, 예전에 온 천하를 돌아다니며 좋은 차를 찾았는데 이런 맛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이건 틀림없이 일불락에서 나온 물건이겠지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모두 일불락을 차지하려 드는지. 이런 맛이라면 저조차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마지막 말은, 묘하게 여운을 남겼다.서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어쩌면 바깥의 그들과 같은 목적을 품고 있으면서도 더 깊이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방금 보여준 실력을 떠올리자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설마 또 하나의 적이 나타난 건 아닐까.서인경이 다시 한번 그의 의도를 떠보려는 순간, 갑자기 손목이 붙잡혔다. 고개를 내리니 연기준의 넓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덮고 있었다.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 부드러운 살결을 거칠게 스쳤다.그의 목소리가 낮게 귀에 닿았다.“어르신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따로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그저 차잎일 뿐입니다. 일불락에서는 흔한 물건이지요. 좋은 것은 나누는 법, 장차 세상 모든 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맛볼 수 있게 될 겁니다.”그 말에 임선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다만 미리 말해두겠습니다. 훗날 이 차가 세상에 풀리는 날

  • 시간을 거슬러   제1190화

    “세월이 참 빠르군요. 어느새 십오 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서 가는 충의로 이름난 가문이라, 누구나 우러러볼 만하다고 말입니다. 다만 서 가는 임 가처럼 물러날 운을 타고나지 못했으니 결국 그 끝은 더 비참해질지도 모른다고 하셨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인경의 가슴이 조용히 저려 왔다.겉에서 보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서 가는 끝내 그 길을 향해 걸어갔다.이제 와 곱씹어 보니, 할아버지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직을 내려놓고 물러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군권을 놓지 않았고 연기준과의 화친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으며 서가군을 온전히 서인경의 방패로 남겨두었다.아마도 서인경의 정체가 드러나는 그날을 대비해, 그녀의 뒤에 설 힘을 남겨두려 했던 것일 터였다.결국, 서 가가 임 가처럼 온전히 물러나지 못한 것은 모두 서인경 때문이었다.그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가라앉았다.연기준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흑돌 하나를 집어 서인경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바둑판 위 한 자리에 돌을 내려놓게 했다.그 손길에 이끌리듯, 서인경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로 돌아왔다.연기준이 입을 열었다.“임 가는 은거한 뒤로, 더 이상 조정에 나선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어르신께서는 그때 어찌하여 막북에 계셨던 겁니까?”“경호 운송 때문입니다.”임선우는 짧게 답했다.“증조부께서 조정을 떠난 뒤에도, 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표국을 하나 열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줘서,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해에 마침 능지국으로 보내야 할 물건이 있었고, 그 길에 국경에서 서 노장군 일가와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연기준의 시선이 임선우의 옷차림으로 옮겨갔다.겉으로는 단순한 검은 옷이었지만 그 직물의 질감은 분명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근근이 입에 풀칠’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 시간을 거슬러   제1189화

    봉한설은 바람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당신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이 사람은 제가 맡을 겁니다.”서인경은 두 사람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맹경운에게 당부했다.“번거롭겠지만, 네가 사람을 붙여 지켜봐 주거라. 저 사람은 꾀가 많으니 한설이가 다치지 않게 지켜주거라. 살리고 죽이는 건, 그 아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면 된다.”그 여자는 이미 연강호에게서 쓸모를 다한 몸이었다. 그가 그녀를 구하러 올 리도 없었고, 서인경에게도 더 이상 이용할 가치는 남아 있지 않았다.맹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뒷수습을 하러 나갔다.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는 촌장 일가 세 식구가 묵묵히 치우고 있었다.연기준은 내내 말이 없던 임선우를 바라보았다.이 사람. 그야말로, 연기준이 진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인물이었다.그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위로 올라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임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기준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서인경은 일층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높은 계산대 위에 올라가 있는 꼬막이를 발견했다. 방금 전 그 처절한 싸움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듯했다. 꼬막이는 바닥 가득한 피를 보고도 전혀 겁내지 않았다. 손에는 작은 바가지 하나를 들고 바닥에 물을 뿌리며 신이 나 있었다. 이따금씩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지시까지 했다.“저쪽! 저쪽을 더 깨끗이 쓸어버리세요!”“거기! 거기도!”“저 기둥도 더러워요!”계산대 앞에서는 대장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가리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재미있어 보이기까지 했다.서인경은 먼저 서재로 가기로 했다. 임선우와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아들의 피에 대해 묻기로 마음먹었다.*서재 안.서인경은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연기준은 이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임선우와 마주 앉아 작은 평상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두

  • 시간을 거슬러   제1188화

    연강호가 사라지자, 남아 있던 이들은 임선우가 서인경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곧바로 기세가 꺾였다.설령 서인경을 붙잡는다 해도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산에 들어가는 일은 이제 불가능할 테니까.백 년 전 선조들처럼 함정에 빠져, 그곳에 남아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슬그머니 빠져나가려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러나 문턱에 다다르기도 전에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맹경운이 길을 막아섰다.바닥을 가득 메운 시체들, 공기 속에 짙게 밴 피비린내. 생사를 수없이 겪어온 맹경운조차 이곳에서 방금 어떤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끌어내거라! 신원을 철저히 조사해서, 뒤에 있는 세력의 우두머리에게 전하거라. 직접 와서 데려가라고! 데려가지 않는다면 전부 산에 던져 개 먹이로 만들어 버리거라!”연기준의 명이 떨어지자, 맹경운은 즉시 병사들을 지휘해 움직였다.반항하려던 자도 있었지만 연기준의 장창이 번쩍이며 그 팔을 꿰뚫었다.순식간에 피가 쏟아졌고 비명이 객잔 안을 가득 채웠다.연기준은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시체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방금 전에는 수가 많다고 조금은 우세를 점했겠지. 아직도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직접 나서 보거라. 내가 친히 저승길로 보내주지.”하얀 옷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자신의 피인지, 남의 피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그러나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한때, 시체 더미 속을 헤치고 살아남은 상왕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조금 전, 부인과 아이를 지키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설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설산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서인경도 붙잡지 못했다. 그런데 연강호마저 달아났다.일불락의 전설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정말로 전해지는 보물이 존재하는지, 이제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맹경운에게

  • 시간을 거슬러   제375화

    진가이의 눈빛에는 질투와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예정임은 비웃듯 웃으며 그녀를 끌어다 허벅지 위에 앉히고 허리를 감아 안았다.“질투하는 것이냐?”진가이는 두어 번 몸부림쳤으나 오히려 더 세차게 끌어안기자 이내 체념하듯 저항을 멈췄다.“팔황자께서 좋아하는 여인을 본받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분명 토라진 말투였다. 예정임은 즐겁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었다.“걱정 말거라. 너야말로 본황자가 영영 끊을 수 없는 작은 요괴니까.”그렇게 속삭이며 그녀를 안은 채 침상으로 향했다. 몸을 눌러 덮치려는 순간

  • 시간을 거슬러   제381화

    나침반이 손에 들어오자 설산을 벗어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서회윤의 가슴속엔 여전히 노부인이 떠나기 전 남긴 말이 맴돌았다. 살아 돌아와 경성으로 향할 수 있을지는 모두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앞으로 반드시 또 한차례의 혈투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단 가는 요 며칠 사이 온통 뒤집힌 듯했다. 첩실 연인인 하율이 매질을 당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단효산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아예 그녀를 정식으로 저택 안에 들여 측부인으로 세웠다. 그 행보는 곧장 서풍교의 얼굴에 대놓고 뺨을 날리는 것이었다.본디

  • 시간을 거슬러   제388화

    서인경은 품속에서 작은 자기병을 꺼내 들었다.“태의께 전하여 곧장 고모께 드리세요. 서둘러야 합니다.”연기준은 출처도 묻지 않고 병을 받아 곧장 멀찍이 있던 맹경운에게 내던졌다.“복 태의에게 가져가거라.”맹경운은 한마디 군소리도 없이 병을 움켜쥔 채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서인경은 끝내 편전에 들어서지 못했다. 열다섯 째 황자가 문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의 두 눈가는 호두처럼 부어올랐으나 고집스럽게 눈물을 떨구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어머니께서는 이미 잠드셨습니다. 태의께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셨으니 내일이면

  • 시간을 거슬러   제412화

    예정임이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대황자비께서는 총명한 분이니 굳이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 예정임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마땅히 남이 원하는 것도 돌려줄 줄 아는 사람이지요.”단여월의 얼굴에 감추어둔 조심스러움이 단번에 드러났다.“황자께서는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정말 제게 보답하겠다는 말씀입니까?”예정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야 당연하지요. 다만 대황자비께서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여주시느냐에 따라 다르지요.”그는 늘 단여월을 대황자비라 불러주었고 그 부름에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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