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제6화 : 핏빛 탈출
--- 구르르릉, 쾅, 쾅! 산업용 대형 세탁기가 유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축축한 지하 세탁실의 사방을 가득 메웠다.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매캐한 염소계 표백제 냄새와 노파의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듯한 한약재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설아는 녹슨 커터칼 날을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칼끝이 향한 곳은 신혜숙 여사의 앙상하게 마른 오른쪽 허벅지 안쪽이었다. 오랜 세월 가혹한 감금 생활로 인해 튼 살과 검버섯이 가득한 살갗 위에, 단단하게 굳은 섬유조직처럼 튀어나온 미세한 돌기가 보였다. 15년 전, 홍명숙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기 직전 신 여사가 스스로 살을 찢고 밀어 넣었다는 2조 4천억 원의 열쇠. 마이크로 칩이 묻힌 자리였다. "뭘 망설여? 서둘러. 간호사 년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신 여사가 이가 빠진 잇새로 짓씹듯 말했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세탁실 싱크대 모서리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노파의 마른 손등에 푸른 힘줄이 뱀처럼 솟아올랐다. 설아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그녀의 망막 위로 차가운 푸른빛의 AI 서지컬 가이드 라인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스캔 완료: 대상의 대퇴동맥 위치 확인]` `[안전 절개 경로 설정: 대퇴동맥 우측 2.5cm 외곽, 깊이 4mm]` `[칩 손상 가능성: 0.01% - 절개 가동]` 머릿속의 사기적인 연산 시스템이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메스 자국을 제시했다. 설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의 주저는 사치였다. 서걱. 날카롭고 녹슨 칼날이 신 여사의 살가죽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붉고 걸쭉한 피가 순식간에 터져 나와 설아의 하얀 손가락과 바닥의 오물 더미 위로 울컥 쏟아졌다. 신 여사의 입에서 으극, 하는 짧고 단단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노파의 몸이 가시박힌 채찍을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들썩였지만, 설아는 칼을 쥔 손귀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피가 고인 상처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미끈거리는 살점과 지방층 사이를 헤집자, 손끝에 딱딱하고 이질적인 사각형의 결정체가 걸렸다. 실리콘과 특수 티타늄으로 코팅된 초소형 마이크로 칩이었다. 설아는 주저 없이 그것을 끄집어냈다. 툭, 하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핏방울이 잔뜩 묻은 칩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생체 인증 마이크로 칩 획득 완료]` `[UBS 비밀 금고 번호 '9981-Alpha'와 동기화 중…… 100% 성공]` `[자산 통제권 획득: 유동 자산 2조 4,000억 원 활성화]` 머릿속의 시스템창이 황금빛으로 미친 듯이 점멸하며 설아의 전두엽에 승리의 종소리를 울렸다. 전 시댁 가문이 목숨보다 아끼는 한성 바이오를 수백 번은 사고도 남을 거대한 자금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 여사는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가사도우미용 걸레로 대충 틀어막으며, 기괴할 정도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제 저 개 같은 홍명숙 년의 목을 딸 칼을 쥔 게야. 자, 서둘러라. 지금부터 정확히 3분 동안 본관과 지하를 연결하는 경비 교대가 시작된다. 그 3분이 네가 살아서 이 도살장을 나갈 유일한 기회야." 신 여사가 세탁실 구석, 거대한 배수관 뒤에 숨겨진 좁고 어두운 사각형 구멍을 가리켰다. 공조 배관 환기구였다. 건물 전체의 더러운 공기와 먼지를 외부로 배출하는 통로였지만, 성인 여성 한 명이 겨우 끼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고 험악한 구조였다. "가라, 은설아. 가서 귀신이 되어 돌아와라. 내 원한까지 얹어서, 그자들의 가죽을 벗겨내라!" "반드시…… 살아 계십시오. 제가 평창동 대저택의 안방 침대를 당신의 요람으로 만들어 드릴 테니." 설아는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칩을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고, 망설임 없이 환기구 안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뒷전에서 신 여사가 세탁실 철문을 안에서 빗장으로 걸어 잠그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배수 보일러 터지는 소리를 가장해 간수들의 시선을 끌려는 노파의 마지막 원조였다. --- 쿵, 쿠구궁! 환기구 내부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먼지와 곰팡이가 코를 찔렀고, 기어갈 때마다 날카로운 아연도금 철판의 이음새가 설아의 어깨와 등 가죽을 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다. 서걱,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걸치고 있던 환자복이 찢겨 나가고 생살이 찢어지는 생생한 통증이 밀려왔다. `[경고: 협소 공간 이동으로 인한 전신 다발성 자상 발생]` `[현재 이동 속도: 초속 0.4m - 경비 교대 종료까지 1분 40초]` "더 빨리…… 더 빨리 움직여야 해."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손바닥과 무릎이 철판에 쓸려 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흥건하게 묻어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좁은 관을 타고 전해지는 외부의 소음이 그녀의 AI 귀에 감지되었다. "어라? 지하 세탁실 문이 왜 잠겨 있어? 야! 신혜숙! 문 열어!" 간호사들과 사설 경비원들이 철문을 걷어찬 소리가 울렸다. 추적은 시작되었다. 걸리면 끝장이다. 1회차의 비참한 죽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독약에 절여져 뇌세포가 녹아가던 그 끔찍한 방이 떠올랐다.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아!' 설아는 뒤집히는 손톱의 고통을 무시한 채, 손가락 끝을 철판 틈새에 박아 넣으며 몸을 앞으로 던졌다. 손톱이 뒤로 꺾이며 생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지만 심장은 오히려 차갑게 식어 내렸다. 마침내, 저 멀리 관 끝에서 미세한 하얀빛과 함께 살을 가르는 듯한 혹독한 한기가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환기구의 최종 배출구였다. --- 쾅-! 설아는 온몸으로 배출구의 낡은 철망을 들이받았다. 날카로운 가시철망이 그녀의 뺨과 이마를 길게 찢으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설아의 신형은 그대로 가평 그린 요양병원 외곽의 가파른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쿠르르릉, 쿵! 거친 눈밭과 날카로운 바위 위를 수십 바퀴 구른 끝에야 설아의 몸이 멈춰 섰다. "하윽…… 흑!" 폐부 깊숙이 밀려드는 공기는 영하 15도의 살인적인 한기였다. 눈보라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가평의 설산.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칼바람이 찢어진 옷가지 사이의 생살을 난도질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피는 눈밭 위에 닿자마자 서늘하게 얼어붙어 붉은 결정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 솟아 있는 가평 그린 요양병원의 서치라이트가 격렬하게 춤을 추며 눈밭을 서칭하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산천을 울렸다. "저기 핏자국이 있다! 저년 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잡아!" 강태식 팀장의 걸걸한 고함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플래시 불빛들이 절벽 위에서 설아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 속에서, 설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이 찢어지고 손톱이 뒤집힌 만신창이의 몰골. 그러나 허리를 꼿꼿이 편 설아의 입술 사이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광기 어린 여왕의 웃음소리가 백색의 눈보라 속에 흩어졌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여신이 부여한 AI 시스템의 최종 연산이 완료되며 밤하늘을 황금빛 궤적으로 수놓고 있었다. `[탈출 성공 확률: 100% 진입]` `[스위스 UBS 은행 자산 전액 인출 프로세스 가동]` `[신분 세탁 프로젝트 개시: 거물 자산가 '에바 은(Eva Eun)'의 탄생]` 설아는 얼어붙은 핏방울을 뱉어내며, 플래시 불빛이 가득한 요양병원을 향해 매서운 안광을 던졌다. "강민우. 홍명숙. 최유라."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서리보다 더 차가웠다. "기다려라. 너희들이 완성한 이 은설아라는 이름의 악귀가…… 너희 가문의 모든 피를 마시러 갈 테니까." 설아는 뒤를 돌아 영하 15도의 칠흑 같은 눈보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인간 은설아는 이 설산에서 완벽하게 얼어 죽었다. 그리고 그 눈밭을 밟고 걸어 나가는 것은, 2조 4천억 원의 파멸을 쥔 잔혹한 여왕 '에바 은'이었다. 복수의 진짜 서막이, 핏빛 설산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제67화 : 제국의 거두와 핏빛 사냥개서진태 금융위원장의 파멸과 함께 대한민국 금융 최상층부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무너져 내린 당일 해질녘.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거실을 가득 채운 창밖의 하늘은, 먹구름을 찢고 내리쬐는 핏빛 저녁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전면 통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붉은 태양빛은 거실의 이태리제 대리석 바닥 위에 기괴하리만치 무거운 음영을 매달고 있었다. 실내에는 2,200볼트 변전기 폭주의 잔향이 완전히 사라진 대신, 초고층 전용 가습기에서 피어오르는 젖은 장미 향과 차갑게 식은 프랑스산 샴페인의 묵직한 알코올 향이 뒤섞여 끈적하고 매혹적인 공기를 형성하고 있었다.은설아는 붉은색 실크 로브만을 가볍게 걸친 채,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순백색 대리석 소파 위에 우아하게 누워 있었다.얇은 실크 로브의 허리끈이 느슨하게 풀려진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백옥 같은 목덜미와 가녀린 어깨선, 그리고 허벅지 라인은 붉은 저녁 노을빛을 받아 숨 막힐 듯한 에로티시즘과 악귀 특유의 치명적인 위엄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설아의 하얗고 차가운 손가락 끝에는, 스위스 튜리히 민간 은행과 에바 홀딩스 감사팀이 실시간으로 동기화한 최종 자산 통합서가 투명한 홀그램으로 띄워져 있었다.[에바 홀딩스 최종 보유 자산 : 6조 4,000억 원 확정]대한민국 10대 재벌 가문의 지분을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천문학적인 검은 자본의 성채.시댁의 학대와 가평 그린 요양병원 독방의 매캐한 소독제 냄새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갔던 1회차의 불쌍한 며느리는, 이제 세상을 자신의 손가락 하나로 주무르는 최악의 포식이자 악귀로서 왕좌에 당당히 군림하고 있었다."설아 씨……."거실 대리석 바닥 위, 설아의 매끄러운 다리 사이에는 대성 인베스트먼트 대표 백현재가 무릎을 꿇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제66화 : 금융 단두대와 최상층부의 파멸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거실을 휘감은 새벽의 냉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예리하게 뼈를 찔러왔다.전면 통유리창 너머로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광화문과 여의도의 빌딩 숲은 짙은 잿빛 안개장막에 갇힌 채,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의 비석들처럼 음산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실내의 공기는 밤새 가동된 기계식 강제 환기 장치로 인해 성북동 청운재의 파편이나 전합 폭주로 타버린 서늘한 오존 냄새를 지워냈지만, 초고층 전용 가습기가 뿜어내는 습한 장미 향과 차갑게 식어버린 샴페인의 알코올 잔향이 뒤섞여 끈적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은설아는 거실 상석의 순백색 대리석 의자에 우아하게 군림하듯 앉아 있었다.순백의 샤넬 트위드 원피스 자락이 대리석 바닥 위로 눈부시게 늘어져 있었고, 조명의 붉은 음영을 받은 그녀의 백옥 같은 허벅지와 쇄골 라인은 치명적이면서도 잔혹한 포식자의 위엄을 내뿜었다. 가죽 장갑을 낀 설아의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 끝에는 스위스 자산 관리 시스템과 에바 홀딩스 본사 감사팀이 실시간으로 동기화한 금융 결재선이 투명하게 번뜩이고 있었다.스륵. 스륵.설아의 시선이 차가운 강화 유리 화면을 따라 미끄러질 때마다,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망의 거대한 자본 줄기가 그녀의 손끝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편되었다. 정재계의 그림자 대부였던 진성호 일파가 숨겨두었던 2조 원대 불법 사모펀드 자산이 에바 홀딩스로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알리는 연산 결과가 그녀의 망막 위로 투명하게 떠올랐다.[에바 홀딩스 국내외 통합 자산 : 6조 4,000억 원 집계 완료]대한민국 재계 서열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도 남을 전무후무한 검은 자본의 성채.시댁 가문의 학대와 정신병원 감금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던 1회차의 가련한 며느리는, 이제 세상을 자신의 입맛대로
제65화 : 그림자의 하이에나와 핏빛 사냥터 성북동 깊은 골목,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단풍나무 숲 너머로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한옥 저택 '청운재'. 천년 가옥의 고풍스러운 외관과 달리,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비밀 엘리베이터 너머에는 최첨단 군사급 암호화 서버와 100인치 초고화질 스크린 수십 대가 사방을 채운 밀실이 숨겨져 있었다. 실내에는 밤새 피워둔 최고급 침향의 묵직한 연기와 갓 갈아낸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한 향, 그리고 은밀하게 타들어 가는 고급 여시가의 매쾌한 오존 냄새가 뒤섞여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재계와 정계의 뒤편에서 막강한 차명 자본을 주무르며 '그림자 대부'라 불리는 H-클럽 회장 진성호(67세)는, 무거운 이태리제 가죽 의자에 깊숙이 묻혀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설 용병들과 금융 공작 팀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그 옆에는 그의 외동딸이자 글로벌 사모펀드 H-파이낸스의 대표인 진수진(31세)이 타이트한 순백의 스커트 슈트 차림으로 차가운 실크 장갑을 매만지며 서 있었다. "차승재 비서실장에 이어 차기 총리 후보 최종석까지 단 하루 만에 구속되어 남부구치소 독방으로 처박혔다." 진성호 회장이 짙은 시가 연기를 허공으로 내뿜으며 잔인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권도현 검사, 허장윤 판사, 뱅가드 카르텔의 마이클 장, 그리고 차승재까지…… 그 멍청한 놈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던 권력에 도취되어 배후에 도사린 자본의 진짜 포식자를 보지 못했지. 하지만 수진아, 우리 H-클럽에게 있어 이번 사태는 신이 내린 최고의 기회다." "예, 아버님." 진수진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 상의 데이터를 가리켰다. "에바 홀딩스의 대표 '에바 은
제64화 : 종막의 제단과 악귀의 성배얼음보다 더 차갑고 참혹한 액체 질소의 한기가 지하 격리 구역의 납 차폐벽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영하 50도 이하로 급강하한 실내 온도 탓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번졌고, 허공에는 가동이 정지된 공기 정화 장치의 오존 냄새와 타버린 실리콘 전선의 매캐한 잔향이 얼어붙은 서리 입자와 섞여 기괴하게 부서져 내렸다.그 잔혹한 사형 집행장 한가운데에서 은설아는 순백의 샤넬 트위드 원피스 자락을 부드럽게 흩날리며 꼿꼿이 서 있었다.초고압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린 백현재는 핏빛 넥타이가 풀어진 채 패널 앞에 굳어 있었고, 그의 거친 숨결은 하얀 성에가 가득 낀 강화 유리 표면에 닿아 핏빛 호흡의 결정체로 결빙되고 있었다. 캡슐 내부에서 온몸의 세포가 비명 지르며 영원한 얼음덩어리로 매장당한 전남편 강민우의 얼굴은, 마지막 순간에 지어 보였던 흉포한 공포의 형태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완벽하게…… 끝났습니다, 설아 씨."백현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설아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동자는 대성그룹의 서출로서 평생을 품어왔던 그 오만한 자의식과 투자자로서의 냉철함이 완전히 거세된 채, 오직 눈앞의 여인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과 거대한 애증의 정욕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1회차 인생 당시 대성의 이익을 위해 설아가 가평 그린 요양병원 402호 독방에 갇혀 고문당하는 것을 묵인했던 죄악. 그 잔인한 트라우마는 이제 백현재를 은설아의 발밑에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쇠사슬이자 목줄이 되어 있었다.설아는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뻗어 강민우의 사체가 봉인된 캡슐 표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차가운 유리 벽면을 타고 서리가 스륵 깎여 나가는 서늘한 소리가 격리실 안을 무겁게 채웠다."참 허무하네, 현재 씨. 내 1회차 인생을 그토록 참혹하게 짓밟고, 나를 생매장했던
제63화 : 포식자의 왕좌와 마지막 단두대차승재 청와대 비서실장의 파멸이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든 지 사흘이 지난 아침, 서울 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거실은 기이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었다.어젯밤까지 한반도를 짓누르던 거센 장대비는 비로소 멎었으나, 통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여의도 금융가와 광화문 일대는 잿빛 안개에 가려 음산한 서늘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실내에는 2,200볼트의 전류 폭주로 타버린 초고압 변전기에서 번진 오존 냄새가 완벽하게 세척되지 않은 채 은은한 가습기의 장미 향과 뒤섞여 기묘한 불쾌감을 자아냈다."에바 홀딩스의 국내 자산 귀속 절차가 법적으로 100% 완료되었습니다."백현재는 무릎을 꿇은 채, 억센 손가락으로 가죽 소파의 모서리를 움켜쥐며 서늘한 목소리로 보고했다.그의 검은색 와이셔츠는 단추가 깃 끝까지 채워져 있었지만,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등 뒤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대성그룹의 서출 출신 천재 투자자로서 품었던 오만한 야망과 자의식은, 어젯밤 국가 최상층부의 무력 집단인 '블랙 실드'마저 단 10분 만에 도살장으로 밀어 넣은 은설아의 잔혹한 권능 앞에 완벽하게 부서져 내렸다. 그는 이제 자신이 지켜야 할 연약한 희생자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속이고 자본을 사냥하는 최악의 악귀 앞에 종속된 사냥개에 불과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차승재 실장이 숨겨두었던 청와대 비자금 1조 2,000억 원은 전액 국채 지분으로 강제 환수되어 에바 홀딩스의 자산으로 안착했습니다. 이로써 설아 씨…… 당신이 쥔 자본은 총 4조 4,000억 원에 달합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0위권 대기업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성채입니다."백현재의 목소리는 공포와, 그 공포보다 훨씬 더 짙은 애증의 정욕으로 떨리고 있었다. 1회차 인생 당시, 대성의 이익을 위해 은설아가 가평 그린 요양병원
제62화 : 핏빛 관저와 검은 성채청와대 지하 비상 서희실, 일명 ‘상황 1구역’이라 불리는 비밀 벙커의 공기는 비릿한 은회색 오존 냄새와 피워물린 최고급 여시가 연기로 얼룩져 있었다.지하 30미터 암반층 속에 구축된 이 밀실의 전면 모니터에는, 방금 전 인사청문회장에서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 최종석이 바짓단에 오줌을 지린 채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에게 끌려 나가는 참혹한 실시간 화면이 멈춰 있었다.탁자 상석에 앉은 대통령 비서실장 차승재(58세)는 손에 쥐고 있던 수정 글라스 잔을 세차게 바닥에 내던졌다.콰창-!수만 원짜리 양주와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고급 이태리제 양털 카펫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최종석이 그 늙은 영감탱이가 전 국민 앞에서 바지를 적시며 끌려나가?! 5,000억 원 국민연금 우회 투자선이 통째로 잘려 나갔단 말이다!"차승재의 두 눈에 핏발이 서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그는 대한민국 국가 통치 권력의 그늘에 서서 지난 10년간 대통령 임기 후 비자금 1조 2,000억 원을 조성해 온 정권 최상층부의 진짜 악마였다. 권도현 검사, 허장윤 판사, 백건우, 마이클 장, 그리고 최종석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차려놓은 권력의 밥상 위에서 단물을 빨아먹던 하수인들이 단 며칠 만에 연쇄적으로 도륙당하자, 차승재는 비로소 정체불명의 거대 자본 '에바 홀딩스'의 배후에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했다."실장님, 국방부 안보지원사령부와 국정원 특수공작국에서 긴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검은 양복을 입은 비서관이 사색이 된 얼굴로 멸균 패드를 내밀었다."최종석의 계좌와 뱅가드 카르텔의 파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된 전산 궤적이 있습니다. 에바 홀딩스의 대표 '에바 은'—본명 은설아. 그년은 단순한 재벌가 가짜 상속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