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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Author: 중신장지

제1화

Author: 중신장지
“죄송합니다, 이해리 씨.”

전화기 너머 보험사 고객센터 직원이 차갑게 말했다.

“조회 결과 차주인인 정도원 씨는 기혼이 맞지만, 저희 쪽에 등록된 배우자가 고객님이 아닙니다.”

서경 그룹으로 향하는 길에 이해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도원이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아 그녀는 보험사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차가 정도원의 명의로 되어 있지만 두 사람은 부부이니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도원 씨가 차를 인수할 때 배우자와 함께 오셔서 혼인 관계 증명서 원본도 제출하셨어요. 아내분 성함은 윤유나 씨였습니다.”

이해리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이해리와 정도원은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냈고 두 집안은 대대로 친분을 쌓았다. 해성에서는 정도원이 이해리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토록 차분하고 냉정하던 남자는 단 하루도 이해리와 떨어져 지내기를 아쉬워했다.

3년 전, 이해리가 해외로 유학을 떠났을 때, 정도원은 웅장한 기세로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가 워렌에 있는 3년 동안, 정도원은 그녀를 편하게 돌보기 위해 다국적 사업을 시작했다. 16000킬로미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넘나들며 그녀를 만났었지.

이해리가 폐가 안 좋아서 거의 죽을 뻔했던 해,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도 정도원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 곁을 지키며 반지를 끼워주었다.

“네가 만약 잘못되면 나도 함께 따라갈 거야. 우리 다음 생에도 부부로 지내.”

정도원 때문에 그녀는 지도교수의 연구실 잔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귀국했다.

기쁜 마음으로 정도원을 찾아가 서프라이즈를 해주려 했는데 대표이사실 문을 연 순간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의 허리에 걸터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청순한 얼굴을 살짝 들고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대표님, 이해리 씨 돌아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정도원은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 커다란 체구로 여자를 감싸 안고서 냉랭한 얼굴에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유나야, 넌 단지 해리의 대역일 뿐이야. 네 신분 잊으면 안 되지.”

그는 손을 들어 여자의 앙증맞은 턱을 잡고 쓴웃음을 지었다.

“외모가 조금 닮았다고 감히 해리랑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해리의 손에는 정도원에게 주려던 선물이 들려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선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인기척 소리에 사무실 안의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정도원이 사색이 된 채 여자를 홱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여자가 바로 윤유나였다.

두 사람이 불륜 현장을 잡힌 후, 정도원은 즉시 윤유나를 해고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해리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다.

늘 고고하던 해성의 재벌가 꽃미남 정도원이 이해리 앞에선 한없이 자세를 낮추고 제발 기회를 달라고 비굴하게 애원했다.

그녀가 눈여겨본 프로젝트라면 고민 없이 바로 포기했고, 그녀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집 아래에서 비까지 흠뻑 맞으며 일주일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해리야, 날 용서해 달라는 게 아니야. 최소한 설명할 기회라도 줘야지! 유나는 단지 네 대역일 뿐이야. 네가 해외에 있는 동안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맹세컨대 유나는 그저 곁에 두었을 뿐 그 이상 어떤 관계도 없어!”

“네가 본 그날은 술에 취했기도 하고 걔가 일부러 유혹하는 바람에 순간 통제력을 잃고 그만... 유나는 이미 해고했어. 앞으로 더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제발 돌아와 줘, 해리야. 내가 이렇게 빌게.”

그때의 이해리는 이 남자와의 감정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하길 바랐던지라 한사코 파혼하려 했다.

그러다 그 사건이 터졌다.

그녀는 경쟁사에 납치되어 인질이 되었고 납치범들은 그녀를 폐기된 공장에 묶어놓고 불을 질렀다.

정도원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에게 떨어지려는 철근을 막아주다가 중상을 입고 무려 반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한 덕분에 마침내 응어리가 풀리고 정도원이 퇴원한 후, 흔쾌히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곤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2년 동안, 정도원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고 어떠한 스캔들도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통금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정시에 귀가했으며 출장 중에도 이해리와 자주 영상통화를 했다.

협력사 직원들이 정 대표님은 아내에게 꼼짝 못 한다고 농담할 때면 그는 단 한 번도 반박한 적 없고 되레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가정적인 남자야말로 참된 남자죠.”

이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이해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뭐가 진짜 정도원의 모습일까?

이해리의 눈가에 짙은 조소가 떠올랐다. 가소롭기도 하지.

정도원의 아내로 2년을 살았는데 이제야 혼인신고서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되었다니!

이해리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맞은편 운전기사의 욕설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금방 도착했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자 어느덧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휴대폰에는 정도원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찍혀 있었다.

그녀가 안 받으니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현장 신호가 차단되는 바람에 전화를 못 받았어. 무슨 일 있어?]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좀 늦게 들어갈 거야. 여자 한 명도 없는 자리라고 확인했으니 걱정 마.]

[나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사랑해.]

이해리는 문자를 내려다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야유가 차올랐다.

정도원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온몸에서 풍기는 짙은 술 냄새가 은은하게 밴 향수 냄새를 가렸다.

“자기야...”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다가와 이불 너머로 이해리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이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도원이 완전히 잠든 후에야 조용히 몸을 일으켜 그의 지문으로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휴대폰은 역시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매우 깨끗했다. 연락처 목록에는 친구들 외에 전부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고 그녀는 [우리 자기님]으로 저장하고 맨 위에 고정된 상태였다.

이것 참... 그녀의 지난 결혼생활처럼 완벽할 정도로 깨끗했다.

이해리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했고 곧장 정도원의 카톡 부계정에 올랐다.

그녀가 로그인하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는데 프로필 사진은 귀여운 분홍색 아기 고양이였고 이름은 [애기]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도원 씨, 오늘 밤 너무 고마웠어요. 도원 씨 아니었으면 나 진짜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안 가요.]

[사실 난 도원 씨를 만난 게 가장 행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해는 안 할게요. 가끔 날 보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이해리는 채팅 기록을 위로 스크롤 했다. 이미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역겨운 멘트들이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나니 숨이 턱턱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들은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윤유나는 매일 아침 정도원에게 모닝 인사를 보냈고 정도원의 답장은 처음에 무시하던 데서부터 가끔 한두 마디 대답하고 그 뒤론 유창한 대화가 이어졌다.

싸늘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이해리는 휴대폰을 꽉 잡고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이 위로 스크롤 했다.

[도원 씨, 미안해요. 술을 좀 마셨더니 이성을 잃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으니 걱정 마세요.]

[해리 씨 생일 파티가 중요하니 옆에 꼭 있어 주세요. 난 정말 괜찮아요.]

이해리는 눈을 질끈 감고 그날을 떠올렸다.

정도원이 한 달 넘게 공들여 계획한 그녀의 생일 파티인데 정작 당일에는 계속 딴생각에 잠겨 있었고 케이크를 자르다가 손을 다칠 뻔하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거라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한 뒤 그녀를 품에 꼭 껴안고 소원을 빌게 했다.

이 채팅 기록을 보고 나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날 윤유나가 손목을 그어 병원에 실려 갔던 것이다.

가슴이 저렸다. 말로 이루 설명할 수도 없이 저렸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던 그 몇 초 동안 정도원 이 인간은 병원에 있을 윤유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자신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을까?

이해리는 이미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깊이 잠든 정도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네 살 때 정도원을 알게 되었고 이후 20년 동안 이 남자가 준 사랑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그토록 신성하게 느꼈던 사랑은 마트 시식 코너의 값싼 시식품과 같아서 누구든 와서 한 조각씩 떠갈 수 있었다.

이해리는 더 이상 이런 사랑 따위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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