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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作者: 중신장지

제1화

作者: 중신장지
“죄송합니다, 이해리 씨.”

전화기 너머 보험사 고객센터 직원이 차갑게 말했다.

“조회 결과 차주인인 정도원 씨는 기혼이 맞지만, 저희 쪽에 등록된 배우자가 고객님이 아닙니다.”

서경 그룹으로 향하는 길에 이해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도원이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아 그녀는 보험사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차가 정도원의 명의로 되어 있지만 두 사람은 부부이니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도원 씨가 차를 인수할 때 배우자와 함께 오셔서 혼인 관계 증명서 원본도 제출하셨어요. 아내분 성함은 윤유나 씨였습니다.”

이해리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이해리와 정도원은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냈고 두 집안은 대대로 친분을 쌓았다. 해성에서는 정도원이 이해리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토록 차분하고 냉정하던 남자는 단 하루도 이해리와 떨어져 지내기를 아쉬워했다.

3년 전, 이해리가 해외로 유학을 떠났을 때, 정도원은 웅장한 기세로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가 워렌에 있는 3년 동안, 정도원은 그녀를 편하게 돌보기 위해 다국적 사업을 시작했다. 16000킬로미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넘나들며 그녀를 만났었지.

이해리가 폐가 안 좋아서 거의 죽을 뻔했던 해,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도 정도원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 곁을 지키며 반지를 끼워주었다.

“네가 만약 잘못되면 나도 함께 따라갈 거야. 우리 다음 생에도 부부로 지내.”

정도원 때문에 그녀는 지도교수의 연구실 잔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귀국했다.

기쁜 마음으로 정도원을 찾아가 서프라이즈를 해주려 했는데 대표이사실 문을 연 순간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의 허리에 걸터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청순한 얼굴을 살짝 들고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대표님, 이해리 씨 돌아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정도원은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 커다란 체구로 여자를 감싸 안고서 냉랭한 얼굴에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유나야, 넌 단지 해리의 대역일 뿐이야. 네 신분 잊으면 안 되지.”

그는 손을 들어 여자의 앙증맞은 턱을 잡고 쓴웃음을 지었다.

“외모가 조금 닮았다고 감히 해리랑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해리의 손에는 정도원에게 주려던 선물이 들려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선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인기척 소리에 사무실 안의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정도원이 사색이 된 채 여자를 홱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여자가 바로 윤유나였다.

두 사람이 불륜 현장을 잡힌 후, 정도원은 즉시 윤유나를 해고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해리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다.

늘 고고하던 해성의 재벌가 꽃미남 정도원이 이해리 앞에선 한없이 자세를 낮추고 제발 기회를 달라고 비굴하게 애원했다.

그녀가 눈여겨본 프로젝트라면 고민 없이 바로 포기했고, 그녀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집 아래에서 비까지 흠뻑 맞으며 일주일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해리야, 날 용서해 달라는 게 아니야. 최소한 설명할 기회라도 줘야지! 유나는 단지 네 대역일 뿐이야. 네가 해외에 있는 동안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맹세컨대 유나는 그저 곁에 두었을 뿐 그 이상 어떤 관계도 없어!”

“네가 본 그날은 술에 취했기도 하고 걔가 일부러 유혹하는 바람에 순간 통제력을 잃고 그만... 유나는 이미 해고했어. 앞으로 더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제발 돌아와 줘, 해리야. 내가 이렇게 빌게.”

그때의 이해리는 이 남자와의 감정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하길 바랐던지라 한사코 파혼하려 했다.

그러다 그 사건이 터졌다.

그녀는 경쟁사에 납치되어 인질이 되었고 납치범들은 그녀를 폐기된 공장에 묶어놓고 불을 질렀다.

정도원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에게 떨어지려는 철근을 막아주다가 중상을 입고 무려 반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한 덕분에 마침내 응어리가 풀리고 정도원이 퇴원한 후, 흔쾌히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곤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2년 동안, 정도원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고 어떠한 스캔들도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통금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정시에 귀가했으며 출장 중에도 이해리와 자주 영상통화를 했다.

협력사 직원들이 정 대표님은 아내에게 꼼짝 못 한다고 농담할 때면 그는 단 한 번도 반박한 적 없고 되레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가정적인 남자야말로 참된 남자죠.”

이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이해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뭐가 진짜 정도원의 모습일까?

이해리의 눈가에 짙은 조소가 떠올랐다. 가소롭기도 하지.

정도원의 아내로 2년을 살았는데 이제야 혼인신고서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되었다니!

이해리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맞은편 운전기사의 욕설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금방 도착했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자 어느덧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휴대폰에는 정도원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찍혀 있었다.

그녀가 안 받으니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현장 신호가 차단되는 바람에 전화를 못 받았어. 무슨 일 있어?]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좀 늦게 들어갈 거야. 여자 한 명도 없는 자리라고 확인했으니 걱정 마.]

[나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사랑해.]

이해리는 문자를 내려다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야유가 차올랐다.

정도원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온몸에서 풍기는 짙은 술 냄새가 은은하게 밴 향수 냄새를 가렸다.

“자기야...”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다가와 이불 너머로 이해리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이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도원이 완전히 잠든 후에야 조용히 몸을 일으켜 그의 지문으로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휴대폰은 역시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매우 깨끗했다. 연락처 목록에는 친구들 외에 전부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고 그녀는 [우리 자기님]으로 저장하고 맨 위에 고정된 상태였다.

이것 참... 그녀의 지난 결혼생활처럼 완벽할 정도로 깨끗했다.

이해리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했고 곧장 정도원의 카톡 부계정에 올랐다.

그녀가 로그인하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는데 프로필 사진은 귀여운 분홍색 아기 고양이였고 이름은 [애기]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도원 씨, 오늘 밤 너무 고마웠어요. 도원 씨 아니었으면 나 진짜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안 가요.]

[사실 난 도원 씨를 만난 게 가장 행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해는 안 할게요. 가끔 날 보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이해리는 채팅 기록을 위로 스크롤 했다. 이미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역겨운 멘트들이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나니 숨이 턱턱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들은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윤유나는 매일 아침 정도원에게 모닝 인사를 보냈고 정도원의 답장은 처음에 무시하던 데서부터 가끔 한두 마디 대답하고 그 뒤론 유창한 대화가 이어졌다.

싸늘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이해리는 휴대폰을 꽉 잡고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이 위로 스크롤 했다.

[도원 씨, 미안해요. 술을 좀 마셨더니 이성을 잃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으니 걱정 마세요.]

[해리 씨 생일 파티가 중요하니 옆에 꼭 있어 주세요. 난 정말 괜찮아요.]

이해리는 눈을 질끈 감고 그날을 떠올렸다.

정도원이 한 달 넘게 공들여 계획한 그녀의 생일 파티인데 정작 당일에는 계속 딴생각에 잠겨 있었고 케이크를 자르다가 손을 다칠 뻔하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거라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한 뒤 그녀를 품에 꼭 껴안고 소원을 빌게 했다.

이 채팅 기록을 보고 나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날 윤유나가 손목을 그어 병원에 실려 갔던 것이다.

가슴이 저렸다. 말로 이루 설명할 수도 없이 저렸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던 그 몇 초 동안 정도원 이 인간은 병원에 있을 윤유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자신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을까?

이해리는 이미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깊이 잠든 정도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네 살 때 정도원을 알게 되었고 이후 20년 동안 이 남자가 준 사랑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그토록 신성하게 느꼈던 사랑은 마트 시식 코너의 값싼 시식품과 같아서 누구든 와서 한 조각씩 떠갈 수 있었다.

이해리는 더 이상 이런 사랑 따위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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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9화

    정도원은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윤유나에게 거짓 대답을 건넸다.“그래. 약속할게. 지금 하는 일만 끝나면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새로 시작하자.”그 말을 들은 윤유나는 그제야 웃으며 정도원의 품에 안겼다.“네. 고마워요.”정도원은 윤유나를 안고 천천히 그녀의 등을 토닥였지만 머릿속에는 앞으로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지만 가득했다.다음 날부터 정도원은 몰래 실험실 주변을 맴돌며 이해리와 우연히 마주칠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그러나 첫날부터 주세훈에게 들키고 말았다.주세훈은 며칠 전 장비를 사러 갔을 때 마주친 그 남자가 실험실 주변을 수상하게 서성이는 걸 발견했다.퇴근을 준비하던 주세훈은 이해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그날 장비 사러 갔다가 만났던 그 남자 말인데, 며칠 계속 실험실 근처에 있어요.”이해리는 지금 하는 연구와 관련 업무에 집중하느라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이해리가 고개를 들었다.“확실히 그날 그 사람이야?”정도원이라면 실험실 주변에 나타난 목적이 좋을 리 없었다.주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절대 잘못 볼 리 없어요.”사실 이해리와 조금이라도 특별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 남자라면 주세훈은 절대 얼굴을 잊지 않았다.이해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정도원이 실험실 주변을 맴도는 이유가 대체 뭘까?’한참 뒤 이해리가 말했다.“경비 쪽에 말 좀 전해 줘. 순찰을 최대한 강화해 달라고. 실험실에서 또 무슨 사고가 나는 건 절대 안 돼.”주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문득 돌아보며 물었다.“정말 그 사람이랑 특별한 관계는 없는 거죠?”이해리는 고개를 저었다.“없어. 내가 말한 대로 해 줘.”주세훈은 문가에서 실망한 눈빛으로 이해리를 바라봤지만, 이해리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그가 떠난 뒤 이해리가 다시 일하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정지안이었다. 왜 아직 퇴근하지 않았냐고 묻는 전화였다.이해리는 대충 몇 마디 둘러대다가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8화

    그 사건 이후 정도원은 윤유나와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여전히 헤어지지 않고 한집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웠다.윤유나 역시 두 사람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어느덧 이해리의 행보를 파악하고 있던 윤유나는, 정도원이 집에 돌아오자 오늘 이해리와 마주쳤을 것이라 직감했다.그녀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왜 그렇게 물어요? 오늘 설마 그 여자라도 만났어요?”정도원이 가까이 다가왔다.“오늘 만나긴 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으니까.”그는 짜증을 억누르며 윤유나의 손을 잡았다.“난 그냥 요즘 이해리가 뭘 하는지 알고 싶은 거야. 우리한테 불리한 일을 하려 한다면 미리 대비해야 하잖아.”그제야 윤유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도원 씨, 당신은 해리 씨를 너무 얕봤어요.”“얼마 전 그렇게 많은 실시간 검색어가 터지고 온갖 공격을 받아도 안 무너졌던 사람이에요. 이제 이해리 씨는 점점 더 잘될 거예요.”정도원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가 그토록 여론을 조작했고, 국내외에서 그 실험실을 비난하고 있잖아?”윤유나는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던 태블릿을 집어 정도원에게 보여 줬다.“요 며칠 계속 밖에서 일하느라 몰랐나 본데 정부 측에서 이미 해리 씨가 실험실을 국내로 옮기는 걸 걸 허락했어요.”정도원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그는 태블릿을 낚아채듯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그제야 이해리가 정말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는 걸 알았다.그런데 윤유나는 눈치도 없이 계속 말했다.“정부 측의 지원을 받는 이상 앞으로 승승장구할 거예요. 원래도 에드워드를 따라 연구하던 사람이었고 에드워드도 지금 국내에 있어요. 그 사람도 인재고 실험실 전체를 국내로 옮겨온 셈이니 이해리 씨는 이제 정부 쪽과 제대로 연결된 셈이죠.”윤유나의 말을 들을수록 정도원은 손에 든 태블릿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의 처지와 대비되는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7화

    “난 이만 갈게.”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해리는 바로 떠나지 않고 근처에서 함께 온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그녀가 아직 주변에 있다는 걸 아는 정도원은 아까보다 더 과장되게 행동했다.거래처와 얘기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거만한 기세를 내비쳤다.이해리는 가끔 그쪽을 흘끔거리며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처음에는 정도원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옆에 있던 주세훈이 문득 뭔가를 알아차리고 이해리에게 물었다.“선배, 저 사람이랑 아는 사이예요?”사실 주세훈은 진작 이해리와 정도원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이해리에게 호감을 품기 시작했을 때 몰래 그녀에 관한 걸 알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과거에 결혼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 전남편이 바로 저 남자였다.이해리가 고개를 돌렸다.“뭐?”“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선배랑 저 사람 사이가 좀 달라 보여서요.”이해리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사이도 아니야. 난 정지안 씨만 관계가 있고 다른 사람 일엔 관심 없어.”주세훈은 그 기회에 이해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 질투가 확 차올랐다.이해리에 관한 비밀이라도 하나 더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 이해리의 마음속은 온통 정지안을 향한 애정뿐이었다.‘젠장, 두 사람의 관계가 벌써 그렇게 깊어진 거야?’주세훈이 생각에 빠져 있을때 이해리가 다시 말했다.“이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저쪽 장비 보이지? 가서 애들하고 같이 좀 골라 줘.”실험실을 너무 급하게 국내로 옮긴 탓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 많았고 귀국 후 새로 사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게다가 지금은 새로 열릴 연구 단지까지 준비 중이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이해리는 말을 마치며 정도원 쪽을 한번 담담히 바라봤다.정도원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앞으로 뭘 할지 이미 계획이라도 세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이해리는 시선을 거두고 주세훈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6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자 이해리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그녀는 연구원들과 함께 사무기기를 구입하러 나섰는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바로 정도원이었다.이해리는 이미 관련 부처와 입주 및 협력 문제를 협의한 뒤라 정도원이 예전에 벌인 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그런데 여기서 그를 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이해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필요한 물건을 보라고 한 뒤 혼자 정도원 쪽으로 걸어갔다.정부와 협력 계약까지 마친 마당에 인제 와서 정도원 일 따위는 신경 쓸 이유가 없었지만, 막상 그를 눈앞에서 보니 무의식중에 발걸음이 멈췄다. 이해리는 연구원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정도원 쪽으로 걸어갔다.정도원은 이해리가 온 줄도 모르고 업체 관계자들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지난번 협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건 압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믿어 주세요. 저도 아직 회사가 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있어요. 여러분이 원하는 조건도 충분히 맞출 수 있으니...”정도원이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부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이해리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멍해졌다.저렇게 굽실거리는 정도원을 보자 아주 오래전 두 사람이 아직 사귀기 전이 떠올랐다.그때 정도원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기세등등했지만 유독 이해리 앞에서만은 비위를 맞추며 사랑을 구하는 사람처럼 굴곤 했다.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달라진 뒤 이해리는 문득 눈앞의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정확히는 이제야 깨달은 셈이었다.정도원은 이익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예전의 이해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한참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 정도원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엉켰다.이해리는 자신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정 대표, 이제야 정신 차리고 제대로 일하기 시작한 거야?”“이해리, 네가 여긴 왜 왔어?”이해리를 보는 순간 정도원은 과민하게 반응했다.조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5화

    처음에는 정도원의 회사가 기사회생한 줄 알았다.하지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정지안은 이해리 옆으로 다가와 함께 휴대폰의 뉴스를 살펴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전부 다 쇼야.”“뭐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이해리가 궁금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정지안이 설명했다.“정도원네 회사는 이미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어. 지난번 주주총회 때도 자기 개인 자금까지 끌어다 주주들을 매수한 거잖아. 앞으로 회사 실적을 두 배로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말이야.”하지만 정도원에게는 애초에 그런 성과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었다.그는 늘 다른 사람의 기술과 방법을 가져다 썼고, 이해리와 결혼했을 때는 이해리 집안의 기반까지 이용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힘으로 해낸 게 거의 없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이렇게 큰 회사를 맡았으니 망가지는 건 시간 문제지.”이해리는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그랬네요.”“그럼 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정지안은 한 팔을 들어 이해리를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런 사람은 뭘 해도 오래 못 가. 너랑 결혼한 후 밖에서 바람피웠고, 회사 일도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했잖아.”그 말을 들은 이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광고가 워낙 많이 보여서 진짜 달라진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요.”“걱정하지 마. 거기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그제야 이해리는 마음을 놓았다.“이제 우리한테 위협이 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저 사람이 잘사는 꼴을 보면 아직도 속이 불편해지거든요.”정도원은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지른 인간이었기에, 윤유나와 함께 시궁창 속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길 바랐다.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말이다.바로 그때, 정부 측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해리는 자세를 고쳐 앉고 전화를 받았다. 이번 회의는 이해리의 연구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다루는 자리였다.이해리는 곧바로 준비해 회의에 나갈 채비를 했다.정부 측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64화

    이해리는 정지안의 몸이 반응하는 걸 느꼈지만 정지안은 오히려 그녀를 밀어냈다.순간 이해리의 속에서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발끈하며 정지안의 무릎에서 내려와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그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냉전 상태였다.한밤중 이해리는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문득 거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정지안이 옆에 없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대체 뭘 하는 걸까?’아직 말도 섞기 싫었지만 혹시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었다.이해리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지안이 뭘 하는지 확인하러 나갔다.거실에 도착하자 소파에 앉아 거울을 보며 혼자 약을 바르는 정지안이 눈에 들어왔다.게다가 등에 붙이고 있는 건 아주 커다란 파스였다.그 모습을 본 이해리는 잠깐 굳었다가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뭐 하는 거예요?”정지안은 이해리가 일어날 줄 몰랐는지 흠칫 놀랐다.그는 고개를 돌리며 조금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이해리는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바라봤다.“이게 별거 아닌 사람 모습이에요?”그러다 낮에 두 사람이 끌어안았을 때 정지안이 뭔가에 부딪혔던 장면이 떠올랐다.“혹시 낮에 수납장에 부딪힌 거예요?”그때 자신은 너무 기뻐서 정지안의 이상한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미 들킨 걸 안 정지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도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는데 하루 종일 등이 계속 아파서 확인해 봤어.”이해리가 뒤로 돌아가 살펴보니 커다란 파스로도 퍼렇게 멍든 부위를 전부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가구에 그렇게 세게 부딪혔으면 분명 많이 아팠을 텐데 당시 정지안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아파진 이해리는 결국 정지안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정지안을 병실에 두고 물을 사러 나갔던 이해리는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나던 중 우연히 대화를 들었다.“아까 들어온 그 남자 어디 회사 대표 아닌가? 얼굴이 낯익던데.”“정지안이지? 그런데 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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