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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중신장지
다음 날, 이해리가 잠에서 깼을 때 정도원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균형 잡힌 완벽한 몸매였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해리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정도원은 그녀를 위해 요리를 배웠다. 서경 그룹이 위태롭던 그 시절, 정도원의 사업 경쟁자들이 그녀를 노리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녀가 먹는 음식에 독을 탔었다.

결국, 이해리는 사흘 밤낮을 혼수상태로 지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정도원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돼서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이해리가 깨어나니 덩치 큰 체구의 남자는 마침내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품에 와락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정도원은 깜짝 놀랄 속도로 요리를 배워서 그녀의 모든 식사를 도맡아 했다.

조미료조차 구분하지 못하던 황태자께서 한 달도 채 안 돼 미슐랭 주방장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별안간 휴대폰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도원의 전화였다.

딱히 몸을 움직일 생각도 없었는데 정도원이 어느새 주방에서 나와 앞치마도 풀지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스쳤다.

한편 이해리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세수하러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때 정도원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옷걸이에 걸린 정장 재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자 남자는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아침은 너 혼자 먹어야겠어, 해리야.”

이해리가 답했다.

“그래, 일이 중요하지.”

정도원은 진짜 급했는지 그녀의 말투에 스며든 냉랭함과 삭막함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평소 이해리한테서 전혀 들어볼 수 없는 말투였건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떠나가는 정도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식탁 위의 음식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이어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에 하신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더 말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서툰 내국어로 그녀에게 물었다.

“해리,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전에도 여러 번 연락했는데 결혼도 했으니 가정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이해리의 눈가에 조소가 스쳤다.

결혼?

이 결혼은 애초에 유명무실한 짓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가 홀로 타지에서 외롭게 공부하던 시절, 기댈 곳이 되어주었던 지도교수님이었다. 얼마 전 그녀에게 연락해 최근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녀가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때의 이해리는 정도원을 생각해서 계속 거절했지만, 이제는 이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결혼의 실체를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 이해리는 시청에 연락해 여권 신청 예약을 잡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그날 저녁, 이해리는 어머니의 유품을 찾기 위해 한진 호텔의 개인 경매장으로 갔다.

어머니는 그녀가 8살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 가문에서 어머니의 혼수를 하나둘씩 정리해 팔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이해리는 잊혀진 어머니의 혼수를 찾아 헤맸다.

긴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손에 돌아온 옛 물건들은 손에 꼽을 만큼 보잘것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경매장에 어머니의 유품 중 하나인 침향 염주 팔찌가 출품작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팔찌는 어머니가 예전에 샤베트 여행을 갔을 때 가져오신 것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오늘 경매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 팔찌를 손에 넣어야 한다.

이해리는 자리에 앉았다. 아직 경매가 정식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그녀는 눈앞의 출품 목록을 체크했다. 이때 문득 정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로얄 블루 보석 세트까지 맞춰줬잖아.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또 저 다정한 말투, 이해리는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옆에서 윤유나가 애교를 부리며 그의 팔짱을 꼈다.

“도원 씨 안목 너무 별로예요. 생일 선물인 만큼 내가 직접 고를래요!”

이해리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켜보았다. 정도원이 손님들 사이를 지나가다가 대뜸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남자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는 거의 조건반사로 윤유나가 끼고 있던 팔을 빼냈다.

“해리야.”

곧이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전화해도 안 받더니 서프라이즈라도 해주고 싶었던 거야?”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지만, 남자의 눈가에 은근한 당황스러움이 엿보였다.

다만 이해리는 굳이 까발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휴대폰 무음 설정해놔서 못 들었어.”

정도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오늘 기온이 떨어진다고 미리 말해줬는데 또 멋 부리려고 옷을 얇게 입고 나왔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나 속상해서 죽으라고?”

그는 말하면서 웨이터에게 담요를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그녀를 위해 덮어주었다.

한편 이해리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이 남자를 신경 쓰지 않고 뒤에서 안색이 일그러진 윤유나만 힐긋 올려다보았다.

윤유나는 입술을 깨물고 잔뜩 화난 표정으로 정도원 옆에 앉았다.

정도원이 낮은 목소리로 이해리에게 설명했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유나도 공헌 많이 했거든. 마침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프로젝트 보너스 겸 선물 하나 해주려고.”

말을 마친 정도원이 불안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해리 너 혹시 화난 건 아니지?”

윤유나도 곧이어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해리 씨, 불편하시다면 저 먼저 가볼게요. 괜히 두 분 방해한 것 같네요.”

이해리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차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우린 부부인데 이까짓 일은 당연히 신경 쓸 거 없죠.”

경매가 곧 시작되었다.

정도원은 정말로 윤유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리에게만 집중했다. 출품 목록을 확인하며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값을 불렀다.

“자기야, 이게 특히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는 웃으면서 이해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애틋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였다.

“네가 착용하면 엄청 예쁠 거야.”

이해리는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로 구석에 있는 윤유나를 보았다. 그녀는 소리 없이 정도원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두 남녀가 시선이 엇갈리는 순간, 끈적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해리는 이 상황이 마냥 우스울 따름이었다.

정도원 이 인간은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고 ‘행복’에 겨워서 나름 두 여자를 공평하게 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중이었다. 한쪽은 명분을 차지했고 다른 한쪽은 당당하게 사랑받고 있으니 얼마나 공평한 대우인가!

다만 이해리가 원하는 건 결코 이따위 양다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사랑만이 전부인 건 아니다. 정도원은 단지 긴 여정 속의 작은 실수일 뿐, 남자 보는 눈이 없음을 인정하고 남은 인생은 실수를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자, 다음으로 경매될 상품은 오롯이 자연의 숨결만을 머금은 키난 침향 염주 팔찌입니다. 보시다시피 재질과 결이 얼마나 고운지, 향은 또 얼마나 깊고 짙은지 알 수 있습니다. 시작가는 1억 원입니다. 단 호가는 최소 1천만 원 단위로 받겠습니다.”

경매사의 열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이해리가 오늘 밤 목표로 삼은 물건이 등장했다.

스크린 속 숫자는 끊임없이 움직였고 호가도 줄을 이었다. 이때 경매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17번 여성분 1억2천! 9번 남성분 1억5천! 또 더 부르실 분 없나요?”

첫 번째 호가 경쟁이 지나가자 이해리가 패를 들었다.

“3억 할게요.”

가격을 단숨에 두 배로 올린 것이다!

이 가격은 이미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팔찌 상태가 좋긴 해도 이번 경매회의 대미를 장식할 출품작은 아니었다. 이해리가 호가하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아무도 더 이상 값을 부르지 않았다.

“좋습니다! 11번 여성분 3억 원! 3억 한 번, 3억 두 번!”

경매사가 손에 든 망치를 힘껏 내리치려던 찰나,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3억 천만이요.”

윤유나가 정도원 옆에 바싹 붙어 앉아 한 손으로 패를 들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다 가격을 입력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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