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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중신장지
“미안해 해리야,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낯선 남자에게 질투하면 안 되는 건데... 다 내 잘못이야.”

정도원은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나랑 유나는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얘한테 고마워서 데려왔을 뿐이야. 용서해주라, 해리야.”

그 모습을 본 윤유나가 가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래요, 해리 씨. 행여나 저랑 대표님 사이를 오해할까 봐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저 괜찮은 생일 선물 하나 갖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 집안 형편은 해리 씨랑 비교가 안 돼요. 해리 씨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뭐든지 쉽게 가질 수 있고 또 정 대표님처럼 좋은 남자랑 결혼까지 했잖아요. 저 같은 사람은 선물 하나 고를 자격조차 없는 건가요?”

“그저 선물?”

이해리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

“윤유나 씨, 내가 거슬리는 건 유나 씨가 말하는 그 선물이 아니에요. 서경 그룹 직원으로서 유나 씨는 지금 엄연히 선을 넘었어요!”

두 여자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정도원은 본능적으로 윤유나 앞에 나서며 다정하게 말했다.

“해리야, 정 그렇게 거슬린다면 경매 끝나고 유나를 지사로 보낼게. 하지만 오늘은 내 면을 봐서라도 이 염주 팔찌를 유나한테 양보해. 돌아가거든 네가 원하는 거 뭐든지 다 사줄게.”

윤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눈가에는 이미 눈물 몇 방울이 고여 있었다. 그녀는 애원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해리 씨... 저 진짜 이 팔찌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해리 씨는 이미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왜 기어코 이런 거로 저랑 다투려 해요? 설마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건가요?”

“윤유나 씨가 뭔데 내가 마음에 들어야 하죠?”

이해리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이건 원래 내 것이었어요. 왜 유나 씨한테 양보해야 하는 건지 설명 좀 해볼래요?”

그녀는 안내 직원이 내민 팔찌를 선뜻 받아들고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제 파악 좀 해요, 윤유나 씨!”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정도원은 마침내 인내심이 고갈되고 얼굴에 띈 온화한 미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해리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어? 내 체면은 뭐가 돼? 고작 팔찌 하나 때문에 일을 이렇게 키워? 네 마음속에 난 이 팔찌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거야?”

남자는 더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예전에 그녀에게 청혼하며 강제로 팔린 그녀 어머니의 모든 유품을 찾아주겠다고 맹세한 일은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였다.

이해리는 그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정도원은 고개를 돌리고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적당히 해라, 이해리. 요새 너무 오냐오냐했더니 애가 점점 제멋대로 구네?”

이해리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정도원! 오늘 일은 부디 후회하지나 마.”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윤유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정도원의 뺨에 난 붉은 자국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 대표님, 괜찮으세요? 해리 씨 너무 해요 진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표님을 때릴 수 있어요?”

정도원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갈 지경이었지만 시선은 멀어져가는 여자한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자기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이 누구 덕분인지 싹 다 잊은 거야!”

윤유나는 그의 표정 변화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 팔찌는...”

정도원이 붉게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며 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 카드에 10억 들어있으니 원하는 거 있으면 알아서 사.”

217호 룸.

이해리가 문을 두드렸다. 낙찰받은 사람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가는 웨이터를 붙잡고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방금 저 룸에 계셨던 남성분은 어디로 가셨나요?”

“마지막 상품을 낙찰받으실 때 이미 떠나셨습니다.”

이해리의 눈가에 순간 실망감이 스쳤다. 그녀는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혹시 뭐 하는 분인지는 아세요?”

웨이터가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는 회원님들의 개인 정보를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해리는 방금 자신이 실례를 범한 걸 깨닫고 옆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경매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한 시간이 지났다.

이해리는 곧게 위층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자신과 정도원 명의의 자산을 조회했다.

금액 데이터를 정리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장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랑 도원 씨 자산 분할 서류를 정리해서 보내드렸으니 내일까지 자산 분할 절차를 처리해 주세요.”

장 변호사는 그녀가 보낸 서류를 곧바로 받고는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리 씨. 지금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이해리는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면서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원이가 중혼을 범했을 경우 저랑 도원의 자산은 어떻게 분배되나요?”

“통상적으로 중혼자가 중혼 행위로 얻은 재산에 대해서는 비중혼자가 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장 변호사가 사실대로 답했다.

정도원은 현재 재산의 절반이 이해리가 그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투자했던 것이었다.

눈빛이 짙어진 그녀는 즉시 정도원과 윤유나의 혼인신고서도 함께 보냈다.

“장 변호사님, 번거로우시겠지만 법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저에게 속한 재산 절반을 되찾아 주세요.”

전화를 끊은 이해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신의 피로가 몰려와 천천히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정도원은 분명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 뜻대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하기 전까지 그녀는 한 치라도 이상한 낌새를 들켜서는 안 된다.

그때 정도원이 서재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그는 손에 든 재킷을 책상 위에 던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해리를 덥석 잡아 일으켰다.

“네가 순간적으로 제멋대로 행동한 것 때문에 난 업계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녀. 알기나 해?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이러는 거야?”

이해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선은 평온하게 정도원에게 머물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에 정도원은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다. 억눌렸던 분노가 끝내 터져 나오려는 듯 그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결혼한 뒤로 내가 너한테 미안한 짓 한 적 있어? 매일 퇴근하면 정시에 집에 돌아왔고, 사업상 모든 접대 자리도 미리 너한테 보고했어. 심지어 여자가 있는 자리에는 가지도 않았고! 이 정도까지 했으면 됐잖아! 왜 만족이 없어?”

이 모든 일을 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 남자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바로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감수한 희생이었다.

이해리는 하마터면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그녀는 더 이상 정도원을 보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즉시 서재를 떠났다.

한편 그녀의 뒤에서 정도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해리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

이해리의 심장은 마치 부서진 얼음 조각이 박힌 것처럼 날카롭고 쓰라린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머리가 윙윙거리고 한순간 정도원의 그 한마디만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결국, 그의 눈에는 자신이 한 모든 것이 양심에 거리낌 없는 행동이었다니.

다음 날, 이해리가 잠에서 깼을 때, 정도원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식탁 위에는 그가 만들어 놓은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는데 그녀가 늘 먹던 맛 그대로였다.

이해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말로 이루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어젯밤 그들은 서로 안 좋게 헤어졌지만, 정도원은 오늘 아침 여전히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남자가 그녀를 수년간 속여왔다.

어떻게든 정도원과의 관계를 끝내야만 한다.

이해리는 그 음식들을 건드리지 않고 곧장 회사로 향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정도원의 사업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기에 수중에 있는 많은 장부가 이미 시효가 지나버렸다. 그녀는 최신 재무제표를 받아야 했다.

비서가 이해리를 보더니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사모님! 대표님 뵈러 오셨어요?”

“아니요.”

이해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재무팀장 오라고 하세요.”

그녀가 가진 지분은 정도원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덕분에 회사 안팎의 크고 작은 모든 사안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이해리는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을 힐끗 보았다.

아마도 정도원에게 연락하는 거겠지.

이해리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재무팀 사무실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꽂이에 꽂힌 잡지들을 대충 뒤적거렸다. 절반 이상이 유행하는 연예 잡지였고 심지어 소설과 만화도 섞여 있었다.

이해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많은 세부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분홍색 체크 무늬 테이블 매트가 깔려 있었고 귀여운 인형들이 어지럽게 놓였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플 인형이었는데 옷에 알파벳 Z와 Y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해리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어서 뒤에 있던 사무실 문이 열리고 윤유나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미안해요, 해리 씨.”

그녀는 밀크티 한 잔을 들고 이해리에게 사과했다.

“갑자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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