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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중신장지
이해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호가했다.

“3억4천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윤유나도 값을 불렀다.

“3억5천이요.”

공교롭게도 그녀의 매번 호가는 최저 호가 단위인 천만 원씩 이해리의 가격에 덧붙여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해리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해리 씨는 액세서리가 많잖아요. 이 팔찌 저한테 양보하면 안 돼요? 진짜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저는 해리 씨처럼 좋은 집안에 태어나 원하는 모든 걸 쉽게 얻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돼요. 더 이상 값을 올리면 저도 정말 돈이 없어요.”

이해리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입꼬리만 씩 올렸다.

“정 대표가 돈 대주는 거 아니었나요?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죠?”

윤유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도 힘들게 돈 버시잖아요. 아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아끼려고 그러는 거죠.”

그야말로 배려가 넘치는 예의였다.

몇 번의 호가 경쟁 끝에 팔찌 가격은 어느덧 4억 원에 달했다. 이해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제 막 입을 열려는데 정도원이 덥석 가로챘다.

“자기야, 이 팔찌 그냥 유나한테 양보하는 게 어때?”

그 순간 이해리는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차갑게 식어갔다.

“방금 뭐라고 했어?”

정도원은 난감한 듯 한숨을 쉬고 그녀의 손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기야, 나 이미 유나한테 선물 하나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마침 이 팔찌가 마음에 든다잖아. 그냥 네가 양보해 줘. 게다가 너한테 액세서리 몇 개나 낙찰시켜줬잖아. 아직도 부족해?”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한 말투, 이 남자는 마치 농담을 던지듯 가볍게 툭 내뱉었다.

이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형언할 수 없는 쓰라림이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심장을 옥죄여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윤유나의 집안 배경으로는 4억은커녕 이곳에 들어올 자격도 없다.

그녀가 지금 여기에 앉아서 이해리와 호가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정도원 덕분이다.

결국, 정도원이 눈감아 주었기에 윤유나가 이토록 버젓이 머리 위로 기어오른 것이다.

이해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기어이 빼앗겠다면?”

그녀는 다시 패를 들었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6억 하겠습니다.”

장내는 순간 정적에 빠졌고 경매사도 상황파악이 된 듯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11번 여성분 6억 원! 더 호가할 분 계십니까?”

윤유나는 눈가가 붉어지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정도원에게 도움을 청하듯 올려다보며 또다시 천만 원을 더 올렸다.

“6억천만 할게요.”

이해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다시 호가하려는데 지배인이 허둥지둥 다가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죄송해요. 방금 해리 씨 계좌를 확인했는데 동결 상태에요. 혹시 다른 계좌는 없으세요?”

짤막한 한 마디였지만 귓가에 벼락이라도 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해리는 손발이 다 차갑게 식어갔다.

역시 정도원!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계좌는 정도원과 공동명의인지라 본인 외에는 정도원만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인즉슨 정도원이 그녀의 카드를 동결시킨 것이다.

윤유나의 눈가에 득의양양함이 스쳤다.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해리 씨,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이미 많은 걸 가졌잖아요. 저한테 하나쯤 양보해주시면 안 되나요?”

무대 위 경매는 계속되었고, 화면 속 가격은 윤유나가 마지막으로 외친 6억천만 원에 멈춰 있었다.

윤유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애교 조로 외쳤다.

“빨리 낙찰 선언해 주세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층 룸 앞에 홀연히 스탠드가 켜졌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에 장내가 순식간에 들끓었다.

“지금 설마 최고 낙찰가를 지른 거야?”

지켜보던 경매사의 안색도 변했다. 이 업계에 십수 년을 종사하면서 이런 식의 최고 낙찰가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경매사가 재빨리 큰 소리로 외쳤다.

“여섯 번째 출품작은 217호 룸의 남성분께서 최고 낙찰가를 부르셨습니다!”

해성에서 2층 룸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부를 축적했거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인물이다.

이해리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올려다보았지만, 커튼 뒤 희미한 인영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의 기세만으로도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경매사가 망치를 내리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217호 룸 회원님께서 여섯 번째 출품작을 낙찰받으셨습니다. 이로써 본 경매장의 블랙 골드 회원으로 레벨이 업그레이드되셨습니다.”

경매회에서 블랙 골드 회원 등급에 도달한 사람은 해성 전체에서도 세 명을 넘지 못하는데 저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뭘까?

이해리는 꽉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어머니의 유품이 윤유나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그 사람의 손에서 팔찌를 되찾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어머니의 물건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이제 막 일어나서 217호 룸의 남자와 협상하러 가려던 그때, 방금 들어갔던 안내 직원이 염주 팔찌를 들고 다시 걸어 나왔다.

“뭐지? 설마 217호 룸에서 번복하려는 거야?”

“경매회에서 번복이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가져온 돈이 부족해서 지불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뭐랬어. 경매회에서 최고 낙찰가를 지르는 사람을 본 적 없다니까.”

뭇사람들이 추측하는 사이, 안내 직원이 이해리 앞으로 다가와 미소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해리 고객님, 217호 룸의 남성분께서 이 염주 팔찌를 고객님께 선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고객님이 본심을 거스르지 않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바라신다고 합니다.”

장내가 다시 술렁거렸다. 손님들은 모두 이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러움, 의구심, 그리고 경악이 뒤섞인 눈빛들까지...

“저분 정 대표님 부인 아니야? 저분하고 위층 남성분이 무슨 관계지?”

“정 대표님 라인 한번 타보려고 저러는 거겠지.”

“내가 볼 땐 아니야. 경매회에 좋은 물건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 염주 팔찌를 낙찰받아 정 대표님 부인에게 선물했겠어? 두 사람 관계가 심상치 않아.”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말들이 정도원의 귓가에 박혔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고 따지듯 묻는 이 남자.

“해리야, 너 217호 룸이랑 무슨 사이야?”

이해리는 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몰라 나도.”

“그럴 리가!”

정도원이 흥분하며 벌떡 일어서더니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여리고 하얀 피부에 금세 붉은 자국이 생겼다.

이해리는 차오르는 고통에 숨을 깊게 들이쉬며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정도원, 너 미쳤어? 오늘 이 소란을 벌여놓고 아직도 성에 안 차?”

하지만 정도원은 그녀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듯 핏발이 선 두 눈으로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기세였다.

“그 남자랑 대체 무슨 관계냐고? 우리가 결혼해서 지금까지 네게 모든 걸 맞췄고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줬는데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는 이미 이해리와 위층 남자가 부적절한 관계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신분을 모를 리가 없다.

해성에서 정도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언제나 당당하게 이루어졌으니까.

이해리는 입꼬리를 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이 더러우니까 다들 더럽게 보이지?”

너무나 직설적인 공격에 정도원은 순간 멍해졌다. 그의 눈가에 찰나의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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