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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Author: popona

1화. 마지막 숨

Author: popon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20:21:26

1화. 마지막 숨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췌장암 4기. 의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통보했지만, 순정의 귀에는 그 말이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등 뒤에서부터 명치까지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몰려왔고, 그때마다 순정은 이불깃을 움켜쥐고 소리 없이 신음을 삼켰다.

진통제로도 가라앉지 않는 밤이 늘어갈수록, 순정은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병실 창밖으로 노을이 질 때마다 순정은 생각했다.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평생 남편과 시댁 눈밥을 먹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남들처럼 병실에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줄 자식도 없었다.

서른 해가 넘도록 한 지붕 아래 살을 맞대고 산 남편은, 정작 순정이 이렇게 죽어가는 마지막 몇 달 동안 병실에 코빼기도 잘 비치지 않았다.

젊을 적부터 그랬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돈을 벌어온 적이 손에 꼽았다.

결혼하고 몇 년은 그럭저럭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더니, 치킨집을 한다고 순정의 적금을 몽땅 털어 넣었다.

반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다음엔 중고차 매매를 한다고 또 대출을 끌어다 썼고, 그다음엔 지인의 꾐에 넘어가 이름도 알 수 없는 투자에 손을 댔다가 통째로 날려 먹었다.

그때마다 남은 빚은 고스란히 순정의 몫이었다. 순정의 이름으로, 순정의 신용으로, 순정의 앞으로.

지붕에서 비가 새도, 명절 제사상을 차려야 해도 그의 손은 늘 비어 있었다.

설거지 한번, 걸레질 한번 제 손으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순정이 새벽 일찍 파출부 일을 나가고, 밤늦게 부업으로 마늘을 까면서도, 남편은 안방에 드러누워 텔레비전 채널이나 돌리고 있었다.

순정이 몸살로 앓아누운 날에도, 밥은 어디 있냐고 묻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건,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차렸던 반찬가게였다.

남편이 벌려놓은 빚을 갚느라 시작한 억척스러운 장사였지만, 순정의 손맛은 동네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새벽마다 손수 무친 콩나물무침과 며칠씩 정성으로 삭힌 갓김치, 뭉근하게 고아낸 장조림을 사러 오는 단골들이 하나둘 늘었다.

"이 집 반찬은 손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문 열기도 전에 줄을 서는 날도 있었다.

순정은 그 시절이 유일하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게 번 돈도 결국 남편의 빚 갚는 데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갔지만, 적어도 순정의 손끝에서 나온 음식이 사람들 밥상 위에서 맛있다는 칭찬을 받는 것만큼은 순정만의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삼십 년이었다. 옷 한 벌 마음 편히 사 입은 적이 없었다.

백화점 쇼윈도 앞을 지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좋아하던 딸기가 제철에 나와도, 순정은 늘 상처 난 못난이 과일을 골라 담았다.

친구들이 계모임에서 온천 여행을 간다고 할 때도, 순정은 남편이 또 어디서 빚을 냈을까 봐 마음을 졸이며 집에 남았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그 흔한 욕심 한 번 제대로 부려본 적이 없었다.

남들 다 가는 미용실에서 파마 한 번 하는 것도 순정에게는 큰맘 먹어야 하는 사치였다.

숨이 가빠졌다. 순정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지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후회가 밀려왔다. 사업 밑천 대달라는 남편의 말에 그때 왜 도장을 찍어줬을까.

왜 한 번도 매몰차게 등을 돌리지 못했을까. 내 몸이 아픈 걸 알면서도 왜 병원 가는 걸 자꾸 미뤘을까.

병원비 아깝다고, 남편 사업 밑천으로 다 들어갈 돈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몇 년을 버틴 게 화근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내 몸을 돌봤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나 자신을 위해 살았더라면.

좋아하던 노래 하나 마음 편히 흥얼거려 본 적 있었던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해본 적 있었던가.

순정은 눈을 감은 채 그런 사소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 어느 질문에도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서러웠다.

언젠가 마트 진열대에서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던 캐시미어 목도리가 떠올랐다.

결국 사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또 어디서 카드 값을 밀렸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 동창들이 벚꽃놀이를 가자고 불러냈을 때도 순정은 부업거리를 핑계로 나가지 못했다.

그저 창문 너머로 흩날리는 꽃잎을 잠깐 올려다본 게 전부였다.

순정의 인생에서 '나를 위해서'라는 문장은 단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었다.

항암 치료를 받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때도, 구역질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도, 순정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없었다.

병실 침대 머리맡의 휴대전화는 며칠째 조용했다. 남편에게서도, 그 흔한 안부 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순정은 그 정적이 야속하다 못해 서글펐다. 이렇게 혼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순정은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리고 소리 죽여 울었다.

간호사가 다녀가고, 링거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 병실을 채웠다.

순정은 마지막 힘을 짜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억울했다. 아프다고 이렇게 억울한 게 아니었다.

평생을 남을 위해서만 쓴 것이, 정작 나 자신은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순정은 문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억울한 마음으로 죽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일까.

아니, 어쩌면 다들 이렇게 억울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눈을 감는 건 아닐까.

"……다시 산다면."

순정의 입술이 힘없이 달싹였다.

"다시 산다면, 나는……"

그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순정의 의식은 새하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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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흙빛 얼굴의 총각순정은 마당을 쓸다 말고 대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네, 여기 맞아요. 들어와요."대문을 열자, 청년이 비틀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순정은 순간 숨을 삼켰다.며칠은 못 잔 듯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그늘 아래로도 이목구비는 감출 수 없을 만큼 또렷했다.짙은 눈썹 아래 서늘하게 깊은 눈매, 날렵하게 뻗은 콧대, 핏기 없이 창백한데도 도드라지는 붉은 입술선.큰 키에 어깨는 넓은데 몸은 야위어서, 셔츠 안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날 지경이었다.헝클어진 검은 머리칼 몇 가닥이 이마에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있는데도, 그마저 화보처럼 보였다.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등에 짊어진 백팩 하나가 그의 마른 몸을 더 위태로워 보이게 했다.순정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아니, 이렇게 잘생긴 총각이 왜 이 몰골로 돌아다니나.굶어 죽기 직전인 얼굴로 저렇게 이목구비가 반듯할 일인가.콧대는 조각한 듯 곧게 뻗었고, 옅게 마른 입술 색조차 묘하게 시선을 붙드는 구석이 있었다.저러다 며칠만 더 안 먹으면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낯빛인데, 얼굴만은 화보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전생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 몰라도, 지금 순정의 눈에는 저 얼굴이 아니라 저 낯빛이 먼저 들어왔다."강이현이라고 합니다. 근처에 조용한 하숙집 있다고 해서……"이현은 입술을 바짝 말리며 마당을 둘러보았다.본가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작은 작업실 골목을 기웃거릴 때도, 세상은 온통 그를 재촉하는 사람들뿐이었다.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 본가의 눈치를 보며 은근히 거리를 두는 친척들.사흘 동안 맹물로 배를 채우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시야가 노랗게 번지고 있었다.순정은 그런 이현의 기운을 단번에 알아채고 혀를 쯧쯧 찼다.오십 년 평생 별의별 사람을 다 겪어본 순정의 눈에 저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완벽한 영양실조이자 제 몸을 방치한 자의 몰골이었다."거기,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구경한 게 언제야? 빵이나 라면 같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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