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란다.”
그 따뜻한 목소리는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듯했다.
“누구가는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고, 누구가는 싸우고 오해하면서 천천히 마음을 키워 가기도 하지. 사랑이 꼭 어떤 모양이어야 할 필요는 없단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느냐는 거란다.”
백작부인의 손끝에 머무른 체온이, 아티니스의 가슴 깊은 곳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네루실리아는 잠시 눈만 깜빡거리다가, 이내 그의 목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그 순간, 쿵, 쿵, 쿵, 쿵.처음 듣는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렸다.‘뭐지... 이 소리는... 이게 바로 벨루알이 말한 인간은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심장이 미쳐 날뛴다던 건가...?’네루실리아는 한 손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진지하게 생각했다.‘이 정도로 뛰니까,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거였구나. 역시 인간은 약하구나... 난 신이니까 죽지 않겠지만.’낯선 소리와 낯선 두근거림. 그 모든 것이 네루실리아에겐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라이엔은 점점 정신이 아찔해지고 있었다.네루실리아의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라이엔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그는 황급히 시선을
풍덩—! 이는 소리와 함께꼬르륵 물속으로 가라앉은 네루실리아는 그 남자가 사라지길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참았다.그러나 인간의 몸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읍—!”숨이 막히려던 순간, 그 청년이 호수 안으로 뛰어들어 네루실리아의 팔을 붙잡아 끌어올렸다.“푸하—!”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네루실리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연달아 기침을 터뜨렸다.“콜록, 콜록...!”“괜찮습니까?”남자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그제야 가까이서 본 남자의 얼굴은 눈부시게 하얀 피부, 부드러운 눈매에 자주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뒤로 넘겨진 젖은 머리카락이 푸른빛으로 빛나는 잘생긴 얼굴이었다.&l
인간들이 섬기는 수많은 신들 중 인간을 가장 사랑한 신이 있었다.자연의 창조자, 네루실리아.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신의 영역에서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지내던 신이었다.여성의 모습으로 길게 풀어내린 머리카락은 햇살이 호수에 비친 듯 은빛 속에 은은한 푸른빛이 스며 있었고, 눈동자는 깊은 숲을 닮은 듯 맑은 녹색으로 반짝였다.피부는 이슬처럼 투명하게 빛났고, 그녀의 미소는 햇살처럼 따뜻하여,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맑아졌다.그녀가 웃을 때면 피지 않았던 꽃잎들이 작은 바람에 흩날리듯 피어났고, 세상의 모든 소란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그 모습은 마치 계절과 빛, 바람, 물결이 모여 완성한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네루실리아님, 오늘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계십니까?”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흰 천이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외복을 입고, 흰 날개를 가진 한 천사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허리까지 오는
“그럼 이제—”세이런은 이미 등을 돌려 말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말은 하나뿐이니까, 넌 알아서 뛰어와.”“뭐?! 어떻게 황성까지 뛰어가냐!”세이런은 말 위에 올라타며, 고개만 살짝 돌렸다.“알아서 와.”“야, 같이 가!”“징그럽게, 어떻게 너랑 같이 말을 타.”“이 자식… 정말 황태자를 그렇게 대하는 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클라루스가 이를 갈며 투덜거렸다.“꾸물거리지마. 황제가 아티에게 무슨 짓을 하기 전에 가야 하니까.”하지만 그 투정은 당연히 세이런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그때 세
“... 아티에게서... 손 떼...!”세이런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진 숨결 사이로 터졌다. 자주빛 눈동자가 황제를 꿰뚫듯 노려보았다.그러나 황제는 아티니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녀는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황제는 감정을 알 수 없는, 깊고 느릿한 음성으로 흘러내리듯 말했다.“네놈들이 창조되기도 전부터 그녀 곁에는 내가 있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그 말에 세이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핏발 선 눈이 황제를 향해 번뜩이며, 검끝이 살짝 들렸다.그 순간, 황제의 검은 창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짧은 폭발음 같은 파열음이 바람을 타고 울렸다.“윽!”세이런은 본능적으로 검을 올려 그 창을 튕겨냈다.
두 사람의 검이 수십 차례 부딪히며 불꽃이 튀어 오르던 중, 세이런이 틈을 만들어 클라루스의 검을 비틀어 튕겨냈다.동시에 세이런의 검 끝이 클라루스의 목덜미를 스쳤고 핏방울이 흩날렸다.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세이런은 클라루스의 눈동자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정신 차려, 클라루스! 넌 황제랑 다르잖아.”세이런의 낮고 묵직했지만 분노보다는 걱정이 잠긴 목소리였다.“아티가 저렇게 쓰러진 걸 보면 분명 널 구하려고 했겠지. 아티가 해준 일을 헛되게 만들지 마.”그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쿵 하고 울렸고, 클라루스의 눈동자에 황금빛이 스쳤다.“아....”그의 눈앞에 마차 안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아티니스의 모습이 겹쳤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 윽....!”클라루스의 손끝이 떨렸다. 그러자 머릿속이 울리듯 쿵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