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대공자님은 그 전설을 어떻게 아는데요?”
아티니스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세이런에게 물었다.
“아버지에게 들었어. 아버지가 황실에 갈 때마다 그 전설에 대해 조사하시거든.”
그제야 아티니스는 왜 대공이 자리를 비웠는지 이해했다.
“그럼 황족도 이 전설에 대해 아나요? 마법에 대해서?”
“맞아. 이 정보는 황제가 아주 꽁꽁 숨기고 있는 기밀이거든.”
“네? 그럼 대공님은 어떻게 그런 기밀을 아시는 거예요?”
“예전에 황제가 귀족들에게 정보를 흘려 마법사를 찾으려 했었대,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초차하지 않아. 그래서 아버지는 몰래 알아보시고 있어.”
“그럼 위험하잖아요.”
“괜찮아. 황제라도 포르투릭스 대공가를 함부로 건드릴 순 없어.”
하지만 아티니스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근데 황제가 마법사를 찾는 거랑 저희랑 무슨 상관인데요?”
세이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마법사라고 지목된 자들이 황실에 끌려간 뒤… 다시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어.”
세이런은 말끝을 잇지 않았지만, 아티니스도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온몸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수도에는 절대 보내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어째서 황제는 마법사를 찾는 거지? 그럼 나는….’
아티니스는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인을 하자는 건가요? 저를 대공가의 보호를 받고, 대공자님은 숨 쉬기 편하고?”
“맞아.”
세이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티니스는 이건 대공자가 이득이 없어 보이는 결혼 같았다.
그저 숨 쉬기 편하게서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생각해 볼 시간을 주세요.”
“알았어. 하지만 다시 삼 년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여기 있는 동안, 대답을 듣고 싶어.”
“정말 막무가내인 거 알아요?”
“내 구애라고 생각해 줘.”
그의 대답은 미소와 함께 날아왔다.
밤이 깊어갈 무렵, 세이런은 아티니스가 머무는 방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편히 자.”
“네. 대공자님도요.”
“세이런이라고 불러줘.”
“....”
“아니면 미리 남편이라—”
“세, 세이런님!”
아티니스는 그가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황급히 세이런의 이름을 불렀다.
편하게 부르라는 말에도 끝까지 ‘님’을 붙이며 선을 긋는 그녀였다.
“근데 대공… 아니 세이런님은 절 왜 자꾸 ‘영애, 영애’ 부르세요.”
“허락해 주면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 그럼, 지금 허락해 주는 건가?”
살짝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묻는 그의 얼굴에, 아티니스는 묘하게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저 얼굴이 문제야. 저 얼굴이…’
아티니스는 짧게 튕기듯 말했다.
“... 마음대로 하세요.”
그 말에 세이런은 그녀의 주홍빛 머리카락을 손끝에 살며시 감아쥐고, 살며시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내일 봐, 아티니스.”
그의 행동에 아티니스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당황한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세이런은 잠시 그녀 앞에 서서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을 거두었다.
그녀와 있을 때만 드러나는 부드러운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차갑고 고요한 눈빛이 그의 눈을 덮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
낯선 천장, 낯선 공기라 그런지 아티니스는 침대에 누운 채 몇 번이나 뒤척였다.
리리라도 옆에 있으면 잠을 편히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서자, 거대한 대공작 저택은 마치 미로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보았던 사용인들의 모습도 이 시간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괜히 나왔나…? 그래도 리리를 찾으면 좀 마음이 놓일 텐데….’
달빛이 창문 너머로 은은히 흘러들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문 하나 앞에서 멈췄다.
희미한, 끊어질 듯한 신음소리.
누군가가 억누른 듯한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였다.
주변엔 도와줄 사람이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티니스는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그러나 희뿌연 달빛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며, 침대에 쓰러진 한 남자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세이런이었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식은땀이 얼굴을 따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낮에 본 그의 장난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아티니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가서자, 세이런은 힘겹게 눈을 뜨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쉿… 괜찮...아....… 하아… 하아… 문....”
그가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걸 눈치챈 아티니스는 얼른 문을 닫고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왜 갑자기 아픈 거예요? 아까까진 괜찮았… 혹시 낮에 그 오러라는 걸 써서 그런 거예요?”
세이런은 대답 대신 고통에 잠긴 표정에 희미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그의 숨결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어떡하지… 내가 뭘… 뭘 해줄 수 있지...?’
걱정하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아티니스에게, 그가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자주 있는 일이니까… 곧 괜찮아져….”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티니스는 더욱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토록 고통스러우면서도, 마치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황녀는 황제를 바라보며 굳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었지만, 태어난 뒤로 단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사람이었다.그렇기에 반가움보다 낯섦이 먼저였다.황녀는 얼른 세이런 등 뒤로 몸을 숨겼다.황제의 시선이 세이런에게서 머물렀다가 천천히 황녀의 얼굴로 옮겨 왔다.‘마법.’그 단어가 황제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울렸다. 수년간 집착하듯 파고들었던 전설. 마법사의 심장. 그것이 지금 저 황녀라는 아이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쳤다.황제는 표정을 바꾸지 않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두 사람을 지나쳐 꽃이 담긴 화분으로 걸어갔다.그리고는 발로 그것을 짓밟았다.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놀란 아티니스는 헉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세이런은 그런 그녀를 자신의 뒤에 더 숨겨 주었다.황제는 뒤돌아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방금 전에 한 것을
대공 뒤에는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자세가 반듯했다. 그 소년은 조용히 서서 황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자, 세이런. 인사드리거라. 황녀님이시다.”소년이 한 발 앞으로 나와 깊이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십니까, 황녀님. 세이런 포르투릭스입니다.”목소리는 아직 변성기 전의 것이었지만, 인사는 정중했다. 아이는 소년을 위아래로 살펴보다가 대공을 올려다보았다.“대공의 아들이에요?”“그렇습니다. 제 아들입니다.”대공이 답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앞으로는 제가 자주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서요. 황녀님께서 외로우실까 봐 세이런을 대신 보내려 합니다. 앞으로는 이 아이가 황녀님을 지켜드릴 겁니다.”황녀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대공이
[아홉 번째 심장 - 아티니스 (네루실리아)]제국에는 오십이 넘은 황제가 있었다.황후와 여러 후궁이 있었지만 황태자도, 황자도, 황녀도 없었다. 황실의 원로들은 매일같이 입을 모았다. 양자라도 들여야 한다고, 이대로 황통이 끊겨서는 안 된다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포르투릭스 대공이 자주 오르내렸다. 황실과 인연이 깊고, 신망이 두터우며, 무엇보다 제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핏줄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후궁을 들이기로 결심했다.문제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황제의 냉혹함과 잔인함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황후도, 후궁들도 그저 아이를 낳을 도구로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황실 안팎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요즘 들어 황제가 오래된 전설에 집착하며 제정을 낭비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딜 가느냐.”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다급하지도, 놀라지도 않은 목소리였다.아티는 손을 짚은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다리가 떨렸다.“누, 누구세요?”“네가 마법을 부린다는 그 마녀냐.”그 말에 아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마녀 아니에요.”“마녀든 뭐든 상관없다.”남자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아티는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뒤에는 나무가 있었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그 마법을 쓴다면.”남자는 후드를 벗었다.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금빛 머리카락이 어두운 숲속에서도 유난히 도드라졌고,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붉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들었어?”“숲속에 사는 마녀 말이야.”“다이엔 동생을 살렸다는 그 여자.”“이번에는 사람들을 공격했다더군.”“공격?”“사람들이 돌을 던지니까 갑자기 거센 바람을 일으켰대. 돌이 전부 튕겨 나가고, 사람들까지 날아갈 뻔했다잖아.”후드를 쓴 사내는 말없이 술잔을 들어올렸다.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그의 눈빛은 후드 아래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역시 나쁜 마녀였어.”“오늘은 돌을 막았지만, 내일은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잖아.”“저런 힘을 가진 존재를 살려 두면
그 후로 몇 달이 흘렀다.다이엔의 동생은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걷지도 못하던 아이는 마당을 뛰어다니며 크게 웃었고,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그 모습을 처음 본 날 다이엔은 말없이 한동안 동생을 바라보다가 눈가가 붉어졌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누나!”아이는 다이엔에게 달려가 힘껏 안겼다.“정말 다 나았어요!”다이엔은 떨리는 손으로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곧 아티를 향해 돌아섰다.“고마워요. 덕분에 제 동생이 살았어요.”아티는 고개를 저었다.“제가 살린 게 아니에요. 다이엔의 노력과 기도로 살린 거예요.”다이엔의 동생이 아티에게 달려와 안겼다.“누나 고마워요!”혈색이 돌아온 아이를 보며 아티도 환하게 웃었다.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달리, 아티니스 세레스니타의 표정은 흐린 하늘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말없이 긴 숨을 내쉬며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아티… 정말 혼자 가야겠니? 엄마가 같이 가 준다니까….”아티니스 뒤를 따라 나온 릴리스 백작부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던 글라디 백작도 걱정 어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도무지 딸을 혼자밖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3년전부터 외출은 허락해 주셨
“안 되겠어요. 사람을 부를게요. 집사든 누구든….”아티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도움을 청하러 가려 하자, 세이런이 힘겹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아니야… 소용없어… 그들이 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조금만... 쉬면 괜... 찮아.”그 말에 아티니스는 잠시 멈칫했다.‘그럼, 정말… 혼자서 이렇게 견디는 거야?’아티니스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세이런의 차가운 손끝에 닿았다.그리고 아티니스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이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발 이 사람의 고통을… 병을
“…아가씨, 그럼 약혼만 하는 건 어때요? 약혼은 결혼보다 깨기도 쉽고, 꼭 같이 지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형식적인 관계로만 유지할 수도 있고요.”리리의 말을 듣는 순간, 아티니스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리리를 와락 끌어안았다.“리리, 넌 정말 천재야! 좋아, 그럼 따로 지내는 약혼을 전제로 제안해 볼게.”아티니스는 일이 생각보다 잘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가지 못했다.저녁 식사 자리.아티니스는 수프를 뜨던 숟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어
그저 '특별하다'라는 막연한 대답에 아티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분명 끝까지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를 숨긴 채, 그녀에게서 의도적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제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도 세이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며칠만 대공작에 머물다 가. 영애의 편지가 오늘 아침에야 도착해서 손님 맞이 준비가 미흡했거든. 아버지도 오늘 도착할 줄 모르고 황실에 계셔.”“제가 여기 더 머무를 이유는 없어요. 전 돌아갈 거예요. 부모님도 걱정하실 테고—”그때, 아티니스는 문득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