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안녕, 나의 열 번째 심장: Chapter 1 - Chapter 10

20 Chapters

1-1화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달리, 아티니스 세레스니타의 표정은 흐린 하늘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말없이 긴 숨을 내쉬며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아티… 정말 혼자 가야겠니? 엄마가 같이 가 준다니까….”아티니스 뒤를 따라 나온 릴리스 백작부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던 글라디 백작도 걱정 어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도무지 딸을 혼자밖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3년전부터 외출은 허락해 주셨지만... 역시 매번 이러신다니까.’아티니스는 걱정이 가득한 부모님을 안심시키듯,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금방 다녀올게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미 큰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갔다간,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썼다는 걸 들키고 말 거야… 사고 친 건 나니까, 내가 직접 수습해야 해.’어째서인지 그녀의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마법을 왜 반드시 숨겨야 하는지를 말해 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만에 하나,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겨우 얻어낸 외출은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아니, 저택 밖은커녕 방 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불안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티니스는 그것을 꾹 눌러 삼켰다.그리고 그녀의 하녀, 리리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며칠 동안 이어진 긴 여정 내내, 마차의 흔들림보다 더 거칠게 그녀의 생각이 요동쳤다. 창 밖의 풍경은 쉼 없이 바뀌었지만, 아티니스의 머릿속은 한 자리에 머무른 채 같은 질문만 되풀이했다. ‘대체 어떻게 내가 세레스니타 백작가 영애인 건 알았지? 설마... 내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걸 이미 누군가에게 말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데 왜 하필...청혼서야?’맞은편에 앉아 있던 리리가 한참 동안 창밖을 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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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둘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아티니스는 다시 넘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그 소년을 내려다보았고, 소년은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ㅁ… 뭘 봐.”정적을 깨는 차가운 말투였다. 그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나마 그에게서 느꼈던 환상이 살짝 깨지는 듯했지만 그의 얼굴은 쉽게 그 환상을 깨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 또한 그랬다. “옷 다 젖어 버렸네….”“응? 어….”아티니스가 말을 잇기 전에 소년은 젖은 옷을 털며 분수대에서 나왔다.‘나한테 말하는 줄 알았네….’그가 살짝 뒤돌아보다가 아티니스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아티니스도 그를 따라 물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화려하기만 하고 불편하던 드레스가 물을 잔뜩 머금은 채 무겁게 축 늘어졌다.‘윽… 너무 무겁고 불편해… 엄마, 아빠가 수도에선 절대 마법 쓰지 말랬는데….’백작가 저택 밖에서 마법 사용을 엄하게 금지하던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상태로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 흠….’시선을 다시 소년에게로 돌려보니, 뒤돌아 젖은 옷을 탈탈 터는 소년의 귀가 빨개져 있는 게 보였다. ‘귀가 빨갛네… 옷이 젖어서 추운가 보다.’자신의 잘못도 있었기에 아티니스는 잠시 고민했다. “흠... 있잖아, 비밀을 지켜준다고 약속하면, 이 누나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아티니스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왜 반말이야? 누가 누나라는 거야?”여전히 귀가 붉어진 채 내뱉는 소년의 말에 아티니스는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눈앞의 그 소년은 확실히 아티니스보다 키도 작고 어려 보였다. “너도 반말하잖아. 그리고 누가 봐도 내가 누나로 보이는 걸.”아티니스는 태연한 척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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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청혼서라는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면식 없는 대공가에서 결혼을 제안하다니. 게다가 시골 영지에 틀어박혀 살아온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낸 건지 아티니스는 의아했다. “설마… 예전에 황실 파티에서 우리 아티를 본 건 아닐까요?”백작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골 영지 영애인 제게 누가 관심을 보였겠어요… 저도 관심 없었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아티의 아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였단다. 세상을 밝혀주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주홍색 머리카락에, 릴리스를 쏙 빼닮은 아메랄드를 담고 있는 두 눈동자. 그 무도회에서 모두 다 충분히 반하고도 남았지.”글라디 백작은 딸을 자랑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전 아빠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그래, 그래. 당연히 아빠랑 평생 같이 살아야지.”아티니스와 백작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에휴…또 시작이네.”똑 닮은 두 사람이 평생 함께하겠다고 또다시 다짐하며 꼭 껴안는 모습을 보며, 백작부인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아니, 이러다가 당신 정말 아티랑 손잡고 100년을 함께 살지도 모르겠어요.”“그럼 나야 좋지.”부인의 말에 오히려 좋다는 백작을 보며 백작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티, 정말 그날 뭐 이상한 일은 없었니?"“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아티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때 그 꼬마가 대공자는… 아니겠지?’그때, 아빠의 손에 들려 있던 편지 뒷부분이 아티니스의 눈에 들어왔다. 작은 글씨로 쓰인 문구였다. “아빠, 그 편지… 제가 잠깐만 봐도 될까요?”“음? 그래, 여기.”아티니스는 편지를 받아 뒷면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엄마, 아빠. 제가 직접 포르투릭스 공작가에 가서 얘기를 나눠볼게요.”“뭐라고?”“무슨 일이니, 아티?”백작과 백작부인은 놀라 물었다.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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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생각지도 못한 큰 키에 아티니스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했다. 그의 가슴팍 너머로 올라간 시선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짙은 자주빛 눈동자였다.‘여전히 잘생겼네… 잘생… 기면 안 되는데. 거절해야돼!’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아티니스는 순간 목적을 까먹을 뻔했다.당황한 그녀는 뒷걸음치며 거리를 두었다.“청, 청혼서가 마음에 들긴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말을 하려다 목소리가 꼬이고, 톤도 이상해졌다.“대공자의 청혼서를 협박이라니. 너무한걸.”당황한 그녀와 달리,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되물었다. “그런데 반말하던 예전과 달리, 왜 격식을 차리지?”그의 말에 아티니스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대공자님이란 걸 알게 된 이상, 예의는 갖춰야죠.”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단 앉자. 그리고 영애의 하녀는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그 말에 아티니스는 리리를 힐끔 바라보았다.리리는 그녀의 마법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지만, 지금 대공자에게 들켰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 아티니스는 리리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리리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응접실에는 오롯이 두 사람만이 남았다.‘으… 둘만 있으려니까 더 어색해! 하지만 이건 꼭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해…!’공기까지 말라버린 듯한 긴장 속에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가문 이름도 모른 채, ‘아티’란 애칭 하나로 영애를 찾았어.”“… 그걸 3년씩이나 찾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포기할 줄도 알아야죠.”아티니스가 단호히 반박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찾는 데 삼년이 걸린 게 아니야. 이렇게 직접 만나기까지가 삼 년 걸린 거지. 초대장도 여러 번 보냈지만, 매번 거절 아니면 무응답이었으니까. 그래서 방법을 바꿔 본 거야.”아티니스는 초대장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초대장…? 설마 엄마, 아빠가 내게 보여주지도 않고 거절하신 건가?’세레스니타 백작부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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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왜 이렇게까지 하시죠?”아티니스의 목소리에는 불편함과 억눌린 분노가 섞여 있었다.세이런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그 이유를 알아. 그리고 도와줄 수 있어.”“그 말도... 병약하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죠?”아티니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오늘 거절하러 온 거예요. 그리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한 말… 끝까지 지켜주세요. 전 그걸 확인하러 온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렸다.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될 것 같았고, 엮여서는 안 될 일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그런데—“윽….”등 뒤로 낮고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돌아보니 세이런이 가슴을 움켜쥔 채, 고르지 못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그만하세요. 그런 연기쯤은 속지 않아요.”그러나 그는 점점 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를 악문 채 고통을 견디는 듯,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연기가… 아닌 거야?'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괜찮아요?!”아티니스는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훅!“꺄앗!”손목이 붙잡히는 순간,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그의 품으로 끌려들었다. 중심을 잃은 아티니스는 마치 안기듯 세이런의 가슴에 닿았다.그의 숨결이 이마에 스치듯 닿았다.“아, 영애.”세이런이 낮고 깊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우리 둘만 있다고 이렇게 덮치면 곤란한데.”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는 뻔뻔하게 말했다.그러나 아주 잠깐, 장난스런 미소 같은 것이 그의 입가에 스쳤다가 사라졌다.“누, 누, 누가 덮쳤다는 거예요?! 대공자님이 잡아당긴 거잖아요!”당황한 아티니스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황급히 몸을 빼려 했지만, 세이런은 붙잡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름도 알려줬는데, 아직도 대공자님이야?”“놓아 주세요.”“거절 시. 비밀 유지 취소. 그리고 날 덮친 영애로 소문나겠지.”“이—!!!”너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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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그저 '특별하다'라는 막연한 대답에 아티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분명 끝까지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를 숨긴 채, 그녀에게서 의도적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제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도 세이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며칠만 대공작에 머물다 가. 영애의 편지가 오늘 아침에야 도착해서 손님 맞이 준비가 미흡했거든. 아버지도 오늘 도착할 줄 모르고 황실에 계셔.”“제가 여기 더 머무를 이유는 없어요. 전 돌아갈 거예요. 부모님도 걱정하실 테고—”그때, 아티니스는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세이런이 언급한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숨기고 마법을 감추려 했던 이유.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아티니스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자, 세이런도 눈치를 챘는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며칠만 머물러 주면, 그 이유를 알려줄게.”아티니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 비겁한 거 알아요?”“구애라고 하지.”그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하아… 얼굴만 잘생기지 않았어도….”아티니스가 눈을 질끈 감고 작게 중얼이자, 세이런이 어느새 그녀의 어깨 가까이 다가와 장난스레 속삭였다. “다행히도 내 얼굴이 취향인가 보네.”“아, 아니거든요!”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온 말에 아티니스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계속 그에게 말려드는 느낌에 이미 지쳐 버린 느낌이었다.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손님방으로 안내해 줄게.”세이런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시녀를 불렀다.그의 부름에 다가온 단발머리 시녀는 정중한 태도로 아티니스와 리리를 손님방으로 안내했다.“조금 쉬고, 저녁 식사 때 다시 보자. 그때까지 결혼에 대해 생각해 주면 더 좋고.”“제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단호한 대답에도 세이런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지었다.아티니스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를 남긴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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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아가씨, 그럼 약혼만 하는 건 어때요? 약혼은 결혼보다 깨기도 쉽고, 꼭 같이 지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형식적인 관계로만 유지할 수도 있고요.”리리의 말을 듣는 순간, 아티니스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리리를 와락 끌어안았다.“리리, 넌 정말 천재야! 좋아, 그럼 따로 지내는 약혼을 전제로 제안해 볼게.”아티니스는 일이 생각보다 잘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가지 못했다.저녁 식사 자리.아티니스는 수프를 뜨던 숟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세이런의 단 한 문장 때문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아티니스는 최대한 웃는 얼굴로 되물었지만, 입꼬리는 부자연스럽게 떨렸고 시선은 흔들렸다.세이런은 태연하게 다시 대답해 주었다. “결혼이어야 하고, 대공작에서 지내는 조건이야.”분명 식사 전까지만 해도, 아티니스는 속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외치고 있었다.‘청혼서도 거절하고, 비밀도 지키고. 아주 좋아!’모든 게 깔끔하게 끝났다고 믿었는데.그런데 ‘결혼이여야 하고, 대공작에서 지내는 지내는 조건이야’ 라니! 그녀의 작은 희망이 산산조각났다. 아티니스는 숟가락을 든 채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그런 말... 없었잖아요.”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그녀의 눈동자는 당황함에 흔들렸다.“난 청혼서를 보냈고, 결혼하면 같이 사는 게 맞잖아. 그걸 조건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이상하지.”세이런은 정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평온하게 말했다.“그럼 청혼서를 거절하고, 비밀을 끝까지 지키는 선택지는요?”“이제는 안 돼. 영애도 내 비밀을 알아버렸잖아. 더더욱 그냥 보내줄 수 없어.”그 말을 듣는 순간 아티니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그건 당신이 보여준 거잖아요! 내가 보자고 한 게 아니라고요! 아… 잠깐, 나도 내 마음대로 보여주긴 했지…아아!’머릿속에서 혼자 끝없는 말싸움을 벌이느라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는 아티니스를 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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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대공자님은 그 전설을 어떻게 아는데요?”아티니스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세이런에게 물었다.“아버지에게 들었어. 아버지가 황실에 갈 때마다 그 전설에 대해 조사하시거든.”그제야 아티니스는 왜 대공이 자리를 비웠는지 이해했다.“그럼 황족도 이 전설에 대해 아나요? 마법에 대해서?”“맞아. 이 정보는 황제가 아주 꽁꽁 숨기고 있는 기밀이거든.”“네? 그럼 대공님은 어떻게 그런 기밀을 아시는 거예요?”“예전에 황제가 귀족들에게 정보를 흘려 마법사를 찾으려 했었대,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초차하지 않아. 그래서 아버지는 몰래 알아보시고 있어.”“그럼 위험하잖아요.”“괜찮아. 황제라도 포르투릭스 대공가를 함부로 건드릴 순 없어.”하지만 아티니스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근데 황제가 마법사를 찾는 거랑 저희랑 무슨 상관인데요?”세이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마법사라고 지목된 자들이 황실에 끌려간 뒤… 다시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어.”세이런은 말끝을 잇지 않았지만, 아티니스도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온몸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수도에는 절대 보내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어째서 황제는 마법사를 찾는 거지? 그럼 나는….’아티니스는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인을 하자는 건가요? 저를 대공가의 보호를 받고, 대공자님은 숨 쉬기 편하고?”“맞아.”세이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티니스는 이건 대공자가 이득이 없어 보이는 결혼 같았다. 그저 숨 쉬기 편하게서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좀 더 생각해 볼 시간을 주세요.”“알았어. 하지만 다시 삼 년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여기 있는 동안, 대답을 듣고 싶어.”“정말 막무가내인 거 알아요?”“내 구애라고 생각해 줘.”그의 대답은 미소와 함께 날아왔다.밤이 깊어갈 무렵, 세이런은 아티니스가 머무는 방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편히 자.”“네. 대공자님도요.”“세이런이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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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안 되겠어요. 사람을 부를게요. 집사든 누구든….”아티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도움을 청하러 가려 하자, 세이런이 힘겹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아니야… 소용없어… 그들이 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조금만... 쉬면 괜... 찮아.”그 말에 아티니스는 잠시 멈칫했다.‘그럼, 정말… 혼자서 이렇게 견디는 거야?’아티니스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세이런의 차가운 손끝에 닿았다.그리고 아티니스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이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발 이 사람의 고통을… 병을 낫게 해 주세요….’그 순간, 심장 쪽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따스한 기운이 손끝으로 번져 나가며, 은은한 푸른빛이 그녀의 손을 감싸기 시작했다.그 빛은 부드럽고 고요하게, 마치 생명의 숨결처럼, 세이런의 손을 타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티니스 자신 또한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곧, 무언가에 막히듯 빛은 사그라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것을 막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런은 숨결이 한결 가벼워진 듯 천천히 눈을 떴다. 짧은 한숨이 가슴을 짓눌렀던 통증을 털어내듯 흘러나왔다.“... 아티니스…?”그가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아티니스는 안도한 얼굴로 작게 웃었다.“다행이다….”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동자가 흐려지고 몸이 휘청이며 그의 앞으로 쓰러졌다.“아티니스?!”그 순간— 세이런의 머릿속을 찢고 지나간 기억 하나. 분명 겪어 보지도 않은 장면인데도 마치 오래전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선명한 낯선 기억이었다. 붉은 피에 물든 옷을 입은 여인이 자신의 품속에서 숨이 멈춰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을 껴안은 채 울부짖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목이 찢어지듯 절규하는 외침이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심장이 찢어질 듯한 통증. 이건 현실이 아니지만 마치 겪어 본 현실 같았다.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기억 속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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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천천히 눈을 뜬 아티니스는 낯선 천장을 마주했다.“... 아…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리리와 눈이 마주쳤다. 퉁퉁 부은 눈으로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리리였다.“응…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정신을 잃었었어?”“아가씨, 지금 사흘 만에 깨어나신 거예요!”“뭐…?! 기억이 잘 안 나…”아티니스는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세이런이 고통스러워하던 모습, 그의 손을 붙잡았던 순간까지는 선명했다.그 이후는 마치 검은 커튼이 내려온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마지막 기회… 만나지 마라…’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자, 세이런이 의자에서 일어나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척 피곤해 보였다.그는 더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어정정한 자세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이만… 백작가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세이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아티니스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말했다. “청혼서는… 거절해도 좋아. 하지만 포르투릭스 가문에서 보호해 준다는 건 유효해.”그 말에 아티니스는 양손으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리리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고, 세이런 역시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그녀의 팔을 받쳐 주었다.“... 제가 필요하다면서요.”아티니스는 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세이런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 쓰러지면서까지 내 곁에 있을 필요 없어. 난… 몰랐어….”하지만 아티니스는 그의 고통을 직접 보았다. 그를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잠시만요. 저랑 얘기해요. 리리, 잠시만 자리를 비켜 줄래?”리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웠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 둘만 남자 아티니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 결혼… 할게요.”“안 해도 돼.”“대신, 계약 결혼을 하죠.”그 말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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