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는 그 몇 명의 뱀파이어들은 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맞추며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전달해야 하지? 누구에게 먼저 보고해야 안전하지? 저 미친 새끼가 눈치채면... 우린 끝장이야.’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숨을 고르고, 자신들이 보기에 미친 행동과 말을 하는 뱀파이어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척해야만 했다.
표정 하나, 시선 하나 잘못 움직여도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 소멸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오늘 입고 온 옷. 평소와 다른 소재, 어딘가 묘하게 무거웠던 그 옷에 초소형 마이크와 초정밀 카메라가 섬유 속 깊숙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지율의 지시로, 해일의 손으로, 은재의 기술로 만들어진 감시장치였다.
그리고 지금, 그 어둡고 좁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화, 모든 표정, 모든 숨소리까지—
전부, 지율이 가지고 있는 건물 중 인간 헌터들 뿐만 아니라 심판자들과 은재처럼 인간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뱀파이어들을 위한 지하 감시실에서 지율, 해일, 그리고 은재를 포함한 인간 헌터들이 모여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모니터 여러 대에 골목의 뱀파이어 무리들이 각도별로 잡혀 있었고, 마이크는 형님의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를 그대로 스피커로 내보내고 있었다.
‘신생 뱀파이어들 관리 잘해라. 말 안 듣고 날뛰는 것들은 소멸시켜도 좋아.’
그 말이 끝나자, 감시실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고 은재가 이를 악물었다.
“....미친. 저놈, 진짜 사고칠 생각이구나.”
해일은 팔짱을 끼고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 틈... 예전부터 수상했어. 신생 수 늘어나는 속도도 이상했고.”
지율은 화면 속 뱀파이어 무리들이 하나 둘 흩어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고르더니, 옆에 앉아 있던 은재와 해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은재야.”
지율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거 원본 자료 헌터들에게 넘겨. 암호화해서.”
은재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응. 형, 이거 3중 보완 암호 걸어서 넘길게. 걱정하지마.”
지율은 이어 해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일형. 폐하께 이 자료 보여드리고 그대로 보고해. 추가 설명 필요하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게.”
해일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바로 올라갈게.”
그리고 지율은 감시실 안에 모여 있던 인간 헌터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약간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지율은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여기 계시는 헌터님들... 여러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이 자료 대통령님께 전달 부탁드리고...
그리고 이런 뱀파이어들이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헌터들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사장님.”
한 헌터가 먼저 말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저런 범죄자 같은 새끼들은 계속 나옵니다. 뱀파이어건 인간이건... 문제는 항상 터지는거죠.”
다른 헌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대통령님께 바로 보고 드리고,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율은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대통령님께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은재와 해일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지율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헌터들과 대화하던 그는 해일에게로 향했다.
“해일형. 스파이로 있는 뱀파이어들, 위험하지 않게 뒤로 빼. 상황 정리될 때까지 내가 운영하는 쉼터로 숨겨두도록 하고.”
해일이 즉시 대답했다.
“이미 준비해놨어. 위치 노출도 안 되게 이동시킬게.”
지율은 마지막으로 은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은재야. 정말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거 못 잡았어.”
은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형네 가게랑 사람들 지키는 건 당연하지.”
지율은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더했다.
“당분간 혈청 커피는 무료야.”
은재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아싸~!!! 형!! 진짜 사랑해!!”
은재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두 팔을 흔들며 좋아했고, 지율은 그 과한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인간 헌터들은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으... 저 둘은 가끔 보면 진짜...”
“보지 말자. 못 볼꼴이다...”
“은재씨는 가끔 보면 캐릭터를 못 잡겠어. 일할 때랑 평소랑 너무 다른데?”
서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은재가 없었다면 이번 반란 세력의 움직임을 이렇게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
그 사실 하나로 방금의 역겨운(?) 장면쯤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지율은 헌터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여러분, 오늘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지율은 진지하게 말했다.
“루비 아워에 오시면... 커피 한 잔씩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헌터들의 표정이 즉각 바뀌었다.
“커피 무료요?!”
“오... 사장님, 역시 다르시네.”
“그럼, 대통령님 만나러 가기 전에 루비 아워 들러도 되죠?”
“아침에 카페인이 필요했는데, 사장님 진짜 감사 합니다.”
“제가 김매니저에게 전화해서 말해 둘테니 원하는 음료 한 잔씩 주문하시면 됩니다.”
순식간에 감시실 분위기가 말랑해졌고 몇몇 헌터는 이미 루비 아워 메뉴를 검색하고 있었다.
해일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다 작게 코웃음을 쳤다.
“휴... 커피 하나에 이렇게 들썩거리는 인간들 보면 참 귀엽다니까.”
은재가 맞장구쳤다.
“형, 이렇게 말하지만 형도 카페 배달비 아까워서 항상 내가 시킨 거 같이 먹잖아.”
해일이 뜨끔한 듯 흠칫했다. 지율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툭툭 소리를 내며 웃었다.
감시실 안은 단 몇 분 사이 긴장과 중압감이 가시고 잠깐이나마 평화와 유머가 스며들었다.
인간 헌터들은 모니터와 장비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증거 자료를 금속 상자에 넣어 단단히 잠갔다. 그들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이제부터 실전이다”*라는 결의로 빛나고 있었다.
그 사이 지율은 휴대폰을 꺼내 김매니저에게 연락했다.
“김매니저, 오늘 헌터님들이 카페 들르실 거예요. 음료는 전부 무료로 제공해 주세요.”
김매니저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긴장이 섞여 있었다.
“네!?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준비 잘 해둘게요!”
전화를 끊은 지율은 감시실을 나서기 전 혈청 커피 스틱 몇 개를 꺼내 은재에게 건넸다.
“은재야, 오늘 오후 동안은 이걸로 버티고, 밤에 회사 출근하면 해일이 통해서 커피 회사로 배달 보내줄게.”
은재는 두 손으로 스틱을 꼭 끌어안고는 웃음이 터질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형~!! 진짜 고마워!”
지율은 머리를 가볍게 툭 쳐주고 정리가 되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해일은 왕과 고위 관료들과의 영상 회의에서 오늘 모든 사건을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정리를 끝내던 인간 헌터 한 명이 마치 중요한 일을 떠올린 듯 은재를 불렀다.
“아, 참! 은재씨!”
은재가 뒤돌아보며 “네?” 하고 대답하자 헌터는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은재에게 건넸다.
“이번 주말에... 인간 범죄자 중 살인자만 모인 교도소에서 5명 정도 처형 예정입니다.”
은재는 표정을 굳히고 전달 받은 서류를 넘겨보았다. 처형 당할 범죄자 목록이었다.
“이번 사형 집행관 순서는 은재씨입니다.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사형 집행을 앞둔 범죄자 목록을 살피는 은재는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했다. 밤의 세상에 발을 들인 뱀파이어이지만, 피의 본능을 즐기지도 않았고 힘으로 군림하려는 욕망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드물게 사냥 본능이 유독 강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은재는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그가 미치지 않고, 폭주하지 않고, 조용한 일상 속에서 인간들과 섞여 살기 위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였다.
인간 헌터들을 도와 합법적인 사냥을 하는 것. 살인자·강간범·묻지마 범죄 등 인간 사회에서도 ‘사형’ 판결이 내려진 자들을 피로 삼고, 사형 집행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 역할만이 은재를 잔혹함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안전하고 규칙적인 방법이었다.
은재는 헌터들의 요청에 더 이상 장난도, 애교도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러면... 정확한 날짜랑 시간, 장소는 저한테 문자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한 체념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 헌터들은 조용히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을 뿐 은재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지율에게 “형~ 사랑한다!”라며 애교를 부리던 그 가벼운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은재는 국가기관과 뱀파이어 사회가 함께 인정하는 정식 사형 집행관이었고, 그 누구보다 무게감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존재였다.
한 헌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대단한 뱀파이어네.”
다른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런 뱀파이어가 우리 편이라 다행이지. 만약 적이었다면... 우린 이미 끝났을 거야.”
그 말에 주변 헌터들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은재가 저 역할을 맡아주는 것 자체가 인간 사회의 안전망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은재가 사냥 본능을 억제하며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은 다름 아닌 그의 본업, IT 개발이었다.
컴퓨터 화면 속 코드, 문제 해결에 몰입할 때의 집중력, 새로운 기능을 만드는 창의력.
그 모든 것이 은재의 사냥 본능을 누르고 폭주를 막아주는 진정제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초대형 IT 기업의 핵심 개발자였고, 그가 없다면 그 회사가 지금 같은 “대한민국 최고 매출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은 업계에서는 이미 전설처럼 퍼져 있었다.
그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괴물 같은 처리 속도의 천재’라 불렸지만— 정작 그 별명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건지. 왜 코드를 짜는 동안에는 밤새도록 단 한 번의 피로도 느끼지 않는지. 그리고 왜 미친 듯한 집중력이 가끔 지나치게 폭발적인지. 그 이유를 가장 잘 아는 건 지금 이 감시실에 있는 인간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은재가 가진 이 두 얼굴을. 하나는, 밤새 코드를 갈아엎고 복잡한 시스템을 단숨에 재구축해버리는 말도 안 되는 천재 개발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냥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 범죄자를 합법적으로 처형하는 정식 뱀파이어 집행관. 헌터들은 그 모든 면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은재를 더욱 존경했다.
안녕하세요. 《야근 뱀파이어 : 밤의 연인, 낮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는 초록 개미입니다.7월부터 지금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 생활과 집필을 병행하며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 고민 끝에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하고 잠시 휴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이에 《야근 뱀파이어 : 밤의 연인, 낮의 비밀》은 약 2개월간 휴재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돌아보려 합니다. 또한 앞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마지막까지 어떻게 이어가야 작품을 더 좋은 모습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 차분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이 작품은 제가 지난해부터 오랜 시간 고민하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여러 번 수정하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풀어온 만큼 제게도 무척이나 애정이 깊은 작품입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품었던 마음과 앞으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그래서 단순히 연재를 이어가기 위해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보다는, 잠시 멈춰 작품을 제대로 돌아보고 남은 이야기를 더 충실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약 2개월 동안 충분히 재충전하고 이야기를 정리한 뒤 반드시 연재를 재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던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야근 뱀파이어 : 밤의 연인, 낮의 비밀》을 꼭 완결하
회의 끝에 이지우의 처분이 결정되자 이현명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은 없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이현명은 그렇게 말한 뒤 회의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선황이 떠난 후 현목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고, 그곳에는 비서와 백도진이 함께 자리했다.현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이지우, 그녀의 소멸은 결정되었으니 공식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군.”현목의 말에 비서와 백도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모든 뱀파이어들에게도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백도진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현목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그렇습니다, 폐하.”비서 역시 곧바로 의견을 보탰다.“이번 판결 자리에는 뱀파이어 기자들과 방송국 관계자들도 함께 참석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현목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음.... 맞는 말이야.”현목은 백도진과 비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렇다면 백도진, 자네는 판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게.”“네. 폐하.”현목은 이번에는 비서를 바라보았다.“자네는 기자들과 방송국 관계자들을 섭외하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게.”“알겠습니다, 폐하.”“그럼, 각자 자리로 돌아가게.”현목의 말이 떨어지자 비서와 백도진은 각자의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정중히
이현명과의 통화를 마친 현목은 자신의 앞에 긴장한 듯 서 있는 백도진을 바라보았다.자신의 사위이자 뱀파이어 죄수들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백도진이었다.“선황 폐하께서 내일 궁에 들리신다고 하셨다.”현목의 무뚝뚝한 말투는 백도진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뻣뻣하게 굳은 목을 겨우 움직인 백도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네. 알겠습니다, 폐하.”뱀파이어들의 황제이자 자신의 장인어른.두 가지 위치가 겹쳐지자 백도진은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현목은 그런 백도진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자아가 사라진 이지우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백도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현목 역시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백도진은 마치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잔뜩 긴장해 있었다.조금만 더 건드리면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현목은 그런 백도진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자네..... 내가 무서운가?”“.....”백도진은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 거리고 있었고 그 질문을 듣고 있던 뒤쪽의 비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정말 몰라서 그러십니까?’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었지만, 황제의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백도진과 비서는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 모른 척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살짝 시선을 내리깐 백도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하지만 곧 자신의 앞에 앉아 묵직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장인이자 황제인 현목을 바라보았다.결국 솔직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ldquo
화려한 궁이 아닌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긴 이현명은 생각보다 길어진 여행 탓에 이제야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제대로 둘러보게 되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기본적인 가구들만 배치되어 있는 탓인지 집 안은 넓은 만큼이나 공허한 느낌이 강했다.이현명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집이 넓군.”자신의 집을 처음 본 소감치고는 지극히 심플한 한마디에 지율은 결국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기본적인 가구만 배치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지율은 빈 공간을 둘러보며 말했다.“앞으로 선황 폐하께서 취향에 맞게 하나씩 꾸미시면 됩니다.”“그런가?”이현명은 다시 한번 집 안을 둘러보았다.넓은 거실과 비어 있는 공간들은 궁과 비교하면 소박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흠.....”이현명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그렇다면 천천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면 되겠군.”“네.”지율은 미소를 지었다.“선황 폐하께서 직접 꾸미신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집이 될 것 같습니다.”이현명은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그래.....”“그럼 저는 이만 루비 아워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지율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 뒤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몇 걸음 옮기던 지율이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신경 써줘서 고맙네.”
오랜 시간 이어진 회의 끝에 마침내 완벽한 프로포즈를 위한 준비가 모두 마무리되었다.그리고 기다리던 날.루비 아워에서 진행된 해일의 프로포즈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해일의 진심 어린 고백과 준비된 순간들을 마주한 이솔이....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이다.정작 프로포즈를 준비한 해일을 비롯해 지율과 하윤, 은재까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이솔 씨, 괜찮아요?”해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솔의 눈가를 살폈다.“너무 갑작스러웠나?”해일이 조심스럽게 이솔을 다독이자, 이솔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해일을 올려다보았다.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해일 씨, 저..... 정말 감동했어요.”이솔은 다시 한번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언제 다 준비한 거예요?”해일은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몰래 준비하느라 꽤 오래 걸렸지.”“정말.....”이솔은 감동한 듯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해일은 그런 이솔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솔 씨.”“네.”“나랑.... 오래도록 함께해 줄래요?”이번에는 이솔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해일은 이솔의 허락을 듣는 순간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마침내 이솔과 이어질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그토록 바
은재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하윤에게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그동안 은재는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하윤에게 다가갔다.처음에는 그런 은재의 행동에 당황하던 하윤도 조금씩 긴장을 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은재와 함께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한편 해일은 이솔에게 완벽한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반지를 고르는 것부터 프로포즈 장소를 꾸미는 일까지 하나하나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지율과 하윤, 은재의 도움을 받았다.특히 은재는 해일의 프로포즈 준비를 돕기 위해 루비 아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리고 하윤 역시 자연스럽게 그 곁에서 함께 준비를 도왔다.은재는 하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하윤은 좀처럼 자신의 곁을 온전히 내어주지 않았다.'하... 어렵네......'은재는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분명 자신이 먼저 다가가면 하윤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자신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자 하윤은 오히려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은재는 점점 더 안달이 났다.“이유가 뭐지....?”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은재가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일이 다가왔다.“무슨 고민이야?”“하윤씨가 자꾸 나를 피하고 있어서.”은재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하자 해일은 잠시 하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경험자로서 조언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