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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의 형과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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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6jay

제1화: 침대 위의 약혼자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4 07:35:48

결혼식을 정확히 석 달 앞둔 금요일 저녁이었다.

HJ호텔 전략기획실에서 결재 서류를 검토하던 서이현의 휴대폰에 발신자 표시 제한 문자가 도착했다.

[약혼자가 지금 누구와 있는지 알고 싶으면 태성호텔 3201호로 오세요.]

한 줄뿐인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현의 시선은 한동안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3201호는 태성호텔 최상층에 마련된 로열 스위트였다.

차현욱.

태성그룹 차남이자 이현과 6년 동안 정략 약혼을 이어온 남자였다.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니었다. 양가의 호텔·리조트 사업을 위한 약속이었고, 이현도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대신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믿었다.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모욕하지 않을 것. 약혼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을 것.

그 정도의 예의는 현욱에게도 있을 줄 알았다.

이현은 코트를 집어 들고 곧장 태성호텔로 향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현욱에게 전화를 걸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액정에 저장된 이름을 바라보다 그대로 화면을 껐다. 사실이 아니라면 직접 확인한 뒤 사과하면 됐다. 사실이라면, 전화 한 통으로 도망칠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32층 복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두꺼운 카펫이 구두 소리마저 삼켰다.

3201호 앞에 도착했을 때, 객실 문은 걸쇠에 걸린 채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안에서는 진한 매그놀리아 향과 익숙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욱 씨, 정말 석 달 뒤에 그 재미없는 여자랑 결혼하는 거예요?”

교태 섞인 목소리 뒤로 현욱의 나른한 대답이 이어졌다.

“서이현이랑 하는 건 사업상 결혼이야. 걔는 체면이 제일 중요해서 절대 파혼 못 해. 내가 밖에서 누굴 만나든 결국 모른 척할걸.”

“나 버리면 안 돼요.”

“그럴 일 없다니까.”

시트가 스치는 소리와 낮은 웃음이 문틈을 빠져나왔다.

이현은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손끝은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보다 먼저 밀려온 건, 지난 6년을 통째로 조롱당한 모욕감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밀어 열었다.

쾅!

침대 위에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셔츠를 벗은 현욱과 얇은 슬립 차림의 민채원이었다. 채원은 비명을 삼키며 시트를 끌어 올렸고, 현욱의 얼굴은 잠시 굳었다.

“서이현?”

이현은 침대 발치까지 걸어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계속해. 복도까지 다 들리던데, 내가 괜히 끊었네.”

현욱은 서둘러 바지를 주워 입었다. 당황은 잠깐이었다. 셔츠 단추를 채우는 얼굴 위로 익숙한 오만이 돌아왔다.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 그래도 굳이 이렇게 소란 피울 필요 있어?”

“소란?”

“우리 결혼이 사랑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결혼 전에 잠깐 만난 사람 가지고 파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잠깐 만난 사람이 침대에 있네.”

“말 가려서 해.”

현욱이 턱을 들었다.

“HJ 신규 리조트 대출 보증, 태성에서 서는 거 잊었어? 네 아버지가 이 결혼 깨지는 걸 두고 보실 것 같아?”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현은 늘 그래 왔듯 가문과 체면을 위해 참을 거라고.

그 순간, 남아 있던 미련이 깨끗하게 식었다.

이현은 왼손 약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 현욱의 발치에 던졌다. 플래티넘 링이 대리석 바닥을 튕기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네가 뭘 믿고 이러는지 이제 알겠어.”

“서이현.”

“하지만 틀렸어. 우리 파혼이야.”

“너 지금 제정신이야?”

“적어도 당신이랑 결혼할 생각은 없어.”

이현은 몸을 돌려 객실을 나왔다.

뒤에서 현욱이 이름을 불렀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홀 앞에는 옆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막 나온 듯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차콜 수트. 흐트러짐 없는 자세. 사람을 압도하는 고요한 시선.

차도겸.

태성홀딩스 부회장이자 현욱의 배다른 형. 현욱이 평생 넘지 못한 태성그룹의 실질적인 권력자였다.

뒤늦게 복도로 뛰쳐나온 현욱이 도겸을 발견하고 굳었다.

“혀, 형이 왜 여기…….”

도겸은 동생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이현만 보고 있었다.

놀라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이현의 다음 말을 기다리듯 잠자코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침착함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이현의 머릿속에 가장 위험하고 확실한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현욱이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선택.

그가 평생 두려워한 남자의 편에 서는 것.

이현은 도겸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복도에서 맞닿은 손바닥만 뜨거웠다.

현욱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뒤에서 터진 고함에도 이현은 손을 놓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옭아매던 두 집안의 이해관계와 6년이라는 시간이, 이 한 번의 선택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도겸의 시선이 맞잡힌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이현에게 돌아왔다.

“부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이현은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랑 결혼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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