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곽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제왕그룹과 왕대관의 회사 사이의 합작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까?”곽연철이 대답했다.“같이 하는 프로젝트 중에 큰 건 없고, 작은 것들만 좀 있습니다. 줄 수 있는 것들만 줍니다.”합작하는 대상은 성연에게 특별하다.그래서 왕대관 회사와의 합작을 곽연철이 직접 주시하고 있었다.성연이 가끔 상황을 물어보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도록.곽연철 자신이 주시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도 있고.진미선과 왕대관은 모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다.합작을 하려면 기준을 잘 세워야 한다. 너무 많이 주어서는 안 되고, 당연히 성연의 친엄마인 진미선에게 너무 적게 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그래서 합작 프로젝트는 모두 곽연철이 직접 확인한 후에 왕대관 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다.성연이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앞으로는 줄 필요 없습니다. 지금부터 왕대관 회사와의 모든 합작을 끊으세요.”성연을 무정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진미선이 너무 한 것이다.조금 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을 팔아 치우려던 진미선을 생각하면 성연은 또 다시 구역질이 올라왔다.‘세상에 어떻게 이런 엄마가 다 있어?’‘나한테 하나 주고 하나를 가져가야 한단 말이야?’성연은 때때로 자신이 가진 게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동시에 가진 게 너무 적었다.혈육의 정에 있어서는 언제나 너무 빈곤했다. 다행히 성연은 정신이 강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만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곽연철이 즉시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자신의 보스 송성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냉정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꽤 여린 사람이었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왕대관의 회사와 합작을 진행하게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듣던 곽연철은 이미 짐작했다. 분명히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생겼다고.왕대관의 회사는 정말이지 눈치가 없어서 성연의 신분을 아직 모른다.저들에게 주었던 기회가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성연을 보며 무진은 성연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렸다.그래서 무진이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오늘 나가서 무슨 일 있었어? 기분이 안 좋아?”성연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진미선을 만날 때면 성연은 몰래 나갔다. 자신의 가정사로 무진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무진이 대신해 자신의 가정사들을 해결해 줄 의무가 없었다.그리고 무진에게는 머리 아픈 일들이 충분했다. 자신까지 무진을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이런 일을 알게 되면 무진도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성연이 잠시 멈칫하고 거꾸로 물었다.“회사 쪽은 어때요?”성연은 둘째, 셋째 일가가 강씨 집안에서 나간 기사들을 계속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종적도 보지 못했다.앞서 보도된 소식들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무진이 막은 게 분명했다.성연은 아직도 무진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어쨌든 이제 막 회복되고 있는 찰나에 일이 터져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다니, 성연은 무진의 몸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무진은 성연에게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 성연에게 말해 주었다.“이제 둘째, 셋째 일가 쪽 사람들은 강씨 집안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게 됐어. WS그룹 주식은 한차례 매수 조정을 거쳐 지금은 내가 확실하게 손에 넣었어. 그러나 일부분을 L-W사에 넘길 생각이야. 필경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합작하고 있으니 우리 쪽에서도 성의를 좀 표시해야 해.”이번 L-W사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무진이 승기를 잡고 좀 더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무진은 당연히 L-W사에 고마워하고 있었다.게다가 L-W사의 대표 임병태는 무척 시원하고 솔직한 한 사람이었다. 지분을 좀 넘긴다 하더라도 괜찮을 터.성연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은 생각이에요.”어차피 무진이 마지막으로 지분을 넘긴 것은 자신뿐이었다.성연은 누구보다 안전했다.무진을 해치는 어떤 일도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어쩌면 어떤 부분에서는
저녁에 북성남고의 교장이 성연에게 전화를 했다.성연이 바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특별히 로비를 하러 온 것이다.“송성연 학생, 이제 곧 졸업인데, 졸업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지는 않나? 남은 기간 다시 학교에 나오는 건 어떤가? 학우들이 모두 성연 학생을 보고 싶어해. 네가 학교에 남아 주기를 바라고.”성연은 북성남고 학생들에게 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저들은 그저 주견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회주의자들 같았다.성연은 그 점에 대해 이미 깊이 체험한 바 있었다. 그것도 여러 차례나.한 마디로 북성남고는 자신의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 못 된다는 말씀.성연은 교장의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역시 안 되겠어요. 지난번 일로 이미 학교에 폐를 많이 끼쳤어요. 저는 그냥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게 낫겠어요.”대학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다 또 모두 성인들이다 보니 고등학교보다 성연이 활동하기 훨씬 편리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연은 고교 졸업을 건너 뛰고 바로 대학에 편입할 계획.성연의 말에 교장이 계속해서 권유했다.“폐는 무슨, 아니야, 절대 폐 끼치지 않았어!”지난 번에 성연이 학교를 그만 두고 바로 대학 진학을 하겠다고 하자, 교장은 흔쾌히 승낙했었다.그런데 왜 또 교장은 갑자기 이렇게 태도를 바꾼 걸까?사실 지난번 학교 게시판 사건으로 온 북성이 떠들썩했었다.북성의 상류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교장은 원래 성연이 학교에 남아 있게 되면 학생들 사이에 좋지 않은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또 학생들이 한창 학업 성과를 내야하는 기간이었기에 당연히 송성연이라는 부정적 요소를 배제시키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그런데 그 후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북성시 부유층 집안에서 하나같이 자신들의 자녀를 북성남고에 보내려 난리가 난 것.마치 북성남고에 들어와야 상류사회 자제들을 사귈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된 듯하다.송성연의 행적은 가히 판타스틱하다고 할 정도였다.어떤 사람들은 하루 아침
강일헌과 강진성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야 했다.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한 뒤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야물지 못하고 미숙한 두 사람의 모습에 실망한 강명기는 꽤나 속이 탔다.“내 어제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오늘 아침에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일찍 자 두라고? 그런데? 너희 둘 다 내 말을 어떻게 들은 거야?”강진성이 하품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아버지, 무슨 일인지 말씀 안 하셨잖아요. 여태까지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이 없는 걸요.”간이 작은 강일헌은 작은 아버지 강명기의 말에 감히 대꾸도 못했다. 그저 옆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면서 강명기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뻔뻔스럽게 말대꾸하는 자기 아들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지경인 강명기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오늘 아침 너희 둘이 미스터 제이슨을 맞이하러 나가거라. 만약 이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라!”미스터 제이슨 얘기가 나오자, 강진성은 그제야 사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흠칫 흠칫 연이어 몸을 떨어대더니 정신을 차린 강진성이 강명기에게 항의했다. “아버지, 그 말씀을 왜 어제 안 하셨어요?”미스터 제이슨은 지금 자신들이 강무진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이번 일은 절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 미스터 제이슨과 무조건 관계를 잘 맺어 두어야 하는 것이다.강명기가 기가 차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급한 일인 걸 이제야 알겠어? 뭐 해? 얼른 서둘러 나가지 않고.”말을 끝낸 강명기는 뒷짐을 진 채 화원으로 향했다.운전기사를 미리 대기시켜 놓았으니, 두 사람은 바로 차를 타고 나가면 된다.다소 움츠러든 모습을 수습한 강일헌과 강진성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손님을 맞이하러 공항으로 나갔다.강명기가 시간 계산을 딱 맞았다. 강일헌과 강진성이 공항에 도착한지 5분도 채 안 되어 미스터 제이슨이 탑승한 비행기가 북성 공항에 도착했다.잠시 후, 미스터 제이슨은 아름다운 미녀를 동반하고 게이트를 빠져나왔다.여성은 성숙미가
소지연의 명성은 두 사람이 WS그룹에 있을 때부터 진즉 들어 알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문제였다. ‘소지연이라면 분명 강무진의 유능한 수하일 텐데, 어떻게 미스터 제이슨과 함께 있는 거지?’한 차례의 흥분이 지나간 다음, 두 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의심이 가득 들어찼다.고혹적인 분위기의 소지연은 일거수일투족 여성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지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두 분, 의심스러우실 줄 알아요. 하지만 나는 당분간만 당신들과 손잡을 뿐입니다. 내 목표는 송성연 하나니까요. 나는 그 여자가 몹시 싫어요.”강무진과 오래된 관계인 소지연이 강무진을 배신할 일은 절대 없다.그러나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부득이 미스터 제이슨과 내기를 하게 되었다.동시에 미스터 제이슨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조건으로 제시하자, 소지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북성으로 돌아왔다.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강무진의 약혼녀가 될 수 있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다.과연 강무진의 곁에 설 자격이 있는지도 포함해서.소지연은 강무진을 도울 능력이 있는 자신만이 강무진과 나란히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름도 모를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난 것. 그러니 소지연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자신이 그 긴 시간 동안 때를 기다린 것은 결코 다른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누가 됐든, 내가 돌아왔으니 얌전히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을 걸!’소지연의 말을 들은 강일헌과 강진성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여자들끼리의 전쟁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바로 질투.소지연의 목적은 강무진이 분명했다.강진성은 속으로 좀 떨떠름했다. ‘이런 대단한 미인이 어째서 강무진 같은 병신 xx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아, 아깝네.’강일헌이 얼른 소지연의 말에 반응하며 맞장구를 쳤다.“소지연 씨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손을 잡기로 한 이상 친구와 마찬가지죠. 북성에 머무시는 동안 성심껏 소지연 씨를
공항 근처의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미스터 제이슨과 헤어진 소지연은 곧장 WS그룹으로 달려갔다.건물 꼭대기 층 대표 이사실로 가서 무진을 찾았다.소지연을 본 무진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이렇게 빨리? 왜 미리 말 안 했어? 그럼 공항에 마중 나가라고 지시했을 텐데.”소지연은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무진 오빠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귀찮게 해요?”무진도 소지연을 따라 픽 웃었다.몇 마디 인사말을 가볍게 나눈 두 사람은 바로 업무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다.소지연은 무진에게 해외 지사의 실적에 대해 보고했다.소지연의 관리에 따라 해외 지사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매 중요한 단계마다 소지연의 관리 능력이 빛을 발휘하였다.무진은 유능한 수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상관이었다. 무진이 소지연을 칭찬하며 말했다.“잘했어. 너에게 지사를 맡기는 게 탁월한 선택이었군.”애초에 소지연의 과감한 추진력과 시장의 흐름에 민감한 감각이 마음에 들었었다.지금의 이런 실적은 무진의 예상을 이미 초월한 것이다.무진의 칭찬에 소지연이 겸손하게 대답했다.“오빠가 잘 키워준 거죠. 무진 오빠가 아니었으면 제가 무슨 능력으로 이렇게 잘할 수 있었겠어요?”지극히 겸손한 말이었다. 만약 소지연에게 능력이 없었다면 무진이 그처럼 중요한 직책을 그녀에게 맡기지도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원래부터 뛰어난 인재였던 소지연은 무진의 조련에 힘입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소지연은 무진이 눈치 채지 않도록 슬쩍 무진의 옆모습을 응시했다.바라보는 두 눈에 짙은 애정이 담긴 빛이 스쳐갔다.금세 다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온 소지연.가방에서 고급 포장지에 둘러싸인 고가의 시계를 꺼냈다.명품 시계 브랜드의 한정판인지라 시장에 몇 나오지 않은 것이어서 소지연 또한 구하기 위해 꽤나 애를 썼었다.“이 시계, 해외에서 어렵게 구한 거예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오빠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선물로 준비했어요.” 소
사무실을 나가던 소지연이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무진 오빠 곧 결혼할 거라면서요? 나 아직 예비 신부 얼굴도 못 봤어요.”정말 성연이 궁금하기라도 한 듯이 소지연의 두 눈에는 짙은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사실은 얼마나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는 지는 그녀 자신만 알고 있을 뿐이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 나중에 두 사람 소개시켜 줄게.”무진은 소지연과 성연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의 성격은 어떤 면에서 아주 닮았다.자신과 소지연이 가까운 관계인만큼 두 사람을 한 번 만나게 할 때이기도 했다.소지연은 활짝 웃으며 마치 옆집 여동생이 오빠와 새언니를 동경하는 듯한 모습을 가장했다.사실 무진에게 있어서 소지연은 확실히 옆집 여동생 같은 존재가 맞았다.소지연은 정말 무진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었다.오래도록 함께해 온 두 집안의 관계는 그 만큼 예사롭지 않았다. 소지연은 대학 졸업 후에 무진의 회사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업무들을 익혀나갔다.그리고 마침내 유럽 지사로 파견되어 실적을 쌓기 시작한 것.세상 물정도 모르던 여자아이가 이제 전략을 세울 줄도 아는 강한 여성으로 자랐다. 그만큼 소지연의 능력은 뛰어났다.“돌아가서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안부 전해 줘. 내일 식사 자리에 좋은 술 한 병 가져다 드리고 사죄 드리겠다는 말씀도 대신 전해 주고.” 강씨 집안과 소씨 집안은 대를 이어 친교를 맺어온 사이.예전에 무진의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소씨 집안 부모님과의 관계도 아주 좋았었다.무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겉으로는 두 집안의 교류가 뜸한 듯했으나 보이지 않는 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무진이 어려울 때면 소씨 집안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너무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한 것은 확실히 무진 자신의 잘못이었다.“무진 오빠가 찾아 뵈면 두 분 모두 기뻐하실 거예요. 예전에 오빠 집안 내 둘째, 셋째 일가와의 일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오
저녁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던 성연.한창 하고 있던 게임이 중간에 끊겼다. 짜증이 났지만 발신자 표시를 본 성연의 얼굴에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 떠올랐다.거기에 기대하지 못했던 기쁨도 다소 섞여 있었다.성연은 게임은 내팽개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휴대폰 너머에서 아주 매력적인 남자 음성이 들렸다. 성연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상대방이 말했다.“공항에 좀 늦었더니 두 세 시간 여유가 생겼어. 비행기를 바꿔 타고 북성으로 날아갈 거야. 이 틈에 얼굴이나 보자.”성연이 생각해도 확실히 서로 얼굴을 본 지 오래되었다.서로 바빠서 도무지 자리를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성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따가 내가 갈게. 나를 속이는 거 아니지?”도시 농담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이 사람의 성격으로 봐서 아마 자신을 속이는 건 아닐 것이다.“서로 얼굴 본 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 내가 너를 속일 이유가 뭐야?” 상대방의 말투에서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웃음기가 희미하게 묻어났다.성연이 주먹을 쥐고서 한 대 치는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넌 감히 나를 못 속여. 만약 감히 나를 속인다면 어디로 가든지 쫓아가서 단단히 혼구멍을 내 줄 거야.”성연의 말에 휴대폰 저편의 사람이 더 크게 웃었다. “아이고, 바라는 바네요.”흥 가볍게 콧방귀를 뀌는 성연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이로써 이 사람의 전화를 성연이 얼마나 반가워하는 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창가로 가서 바깥 하늘을 잠시 쳐다보았다. 아직 시간이 있는 줄 알았으나 이미 밤이 깊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시간이 두세 시간밖에 없다고 했다.그런데도 일부러 자신에게 전화를 한 것.누가 뭐라 하든, 성연은 꼭 가서 만나야 했다.그래서 성연도 승낙하려 했지만, 미처 성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대편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여기서 너 기다릴 테니, 나 바람 맞히지 마.”성연이 휴대폰을 향해 눈을 흘겼다.“내가 바람이나 맞히는 사람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