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나와서 문을 열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무진은 할 수 없이 서재에 가서 하룻밤 지낼 수밖에 없었다.성연의 성질은 정말 종잡을 수 없게 했다.그날 밤, WS그룹은 또 다시 공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맹렬했다.WS그룹 전산팀의 방화벽이 차례대로 함락되자, 세계 유수의 대학들을 졸업한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지경이 되었다. 사태를 지켜보며 곧 짐보따리를 싸서 나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회사에서 지키고 있던 손건호가 즉시 무진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했다.“대표님, 회사가 또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쪽이 거의 무너질 것 같습니다.”무진의 휴대폰은 회사 전산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었다.공격을 당했을 때, 무진의 휴대폰으로도 메시지가 떴다.다만 처음에는 공격이 미약해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WS그룹 전산시스템에는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서류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매일 수많은 이들이 그룹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돈 되는 것들을 빼내 가려 아우성이었다.그 중에는 경쟁 기업도 있었다.물론 WS그룹의 전산팀도 영 맹탕은 아니어서 웬만한 해커들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오늘 밤 공격한 해커는 예전의 바로 그 고수인 것 같았다.공격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지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문 채 지시를 내렸다.“동영상을 켜.”동영상 화면을 켜자 바로 손건호 쪽과 영상으로 연결되었다.그리고 해커와의 싸움에 뛰어들었다.그러나 상대방의 해킹 기술이 어찌나 뛰어난 지 마치 한 줄기 바람 같아 잡을 수가 없었다.손건호와 전산팀 전체 직원들이 숨막히는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았다.“이 정도면 그쪽 세계에서도 거물급 인물이야. 요즘 해커계에서 이런 인물이 나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설마 내가 뒤처진 거야?”“아휴, 이런 고수들은 깊이 숨어서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
피곤해진 성연은 바로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이튿날 깨어나니 무진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침실에서 자지 않았는데도 무진은 원기 왕성해 보였다.그에 반해 성연은 밤을 꼬박 새운 듯 온몸이 노곤했다.어젯밤에 해킹하다 지쳐서인지 숨도 쉬기 힘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도 눈을 감은 채 겨우 아침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교실에 도착하면 원래 정신이 좀 돌아올 줄 알았다.그러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는지 오전 수업을 듣는 내도록 잠이 덜 깬 상태였다.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성연은 이미 수업 듣는 것 같은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그냥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성연은 오전 내내 잠만 잤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 수업을 마칠 시간이었다.완전 개운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켰다.오전 내내 잠을 보충한 성연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느릿느릿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오후에는 체육 수업이 있었다. 오전 내내 책상 앞에서 풀려난 학생들은 점심 시간이 되자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어다녔다.체육 선생님은 키가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데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꽤나 엄해 보였다.체육선생님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수업이 끝난 것 못 봤어? 체육위원은? 집합할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너희들 자신을 돌아봐라. 모두 어떤 꼴인지? 체육 수업이지만 단체 규율을 지켜야지!”매우 우렁찬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반장이 서둘러 열을 정리했다.모두들 체육 선생님 앞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체육 선생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우선 운동장을 세 바퀴 돈다. 그리고 체육위원은 몇 사람에게 농구공과 배구공을 가져오라고 해.”학생들은 불평하지 않았고, 체육위원은 모두를 데리고 달리기를 했다.이번 시간에 체육 선생님은 남학생은 농구, 여학생은 배구를 하게 했다.처음에는 선생님이 경기 규칙을 알려주고 시범도 보여 주었지만, 뒤에는 기본적으로 자유 활동이었다.체육시간을 성연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아침 내내 잤더니 몸이 잔뜩
성연은 대충 얼버무리려는 태도를 한눈에 알아챘다.눈을 가늘게 뜬 성연의 눈빛이 날카로웠다.“너희 집에서는 이렇게 사과하라고 가르치니?”성연의 명성을 줄곧 들어왔던 여시화는 성연을 한 번 만나고 싶었다.자신의 눈에는 시골뜨기에 불과할 뿐이다.성연을 당해내지 못하는 저들이 바로 바보 멍충이인 것이다.당연하다는 듯한 여시화의 태도는 자못 도도했다.“나는 늘 이렇게 사과해 왔어요.”성연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여시화의 눈이 의기양양해하는 빛으로 반짝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시골뜨기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빨리 수긍하는 거겠지.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성연이 손에 들고 있던 배구공을 바로 여시화의 얼굴 쪽으로 던졌다.동공이 수축되고 온몸이 굳은 여시화는 멍하니 제 자리에 선 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배구망만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성연은 아주 적절하게 힘 조절을 했다. 배구공은 여시화의 얼굴 옆을 스쳐 갔다. 다른 쪽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이 동작은 여고생 하나 겁주기에 충분했다.놀란 여시화는 바보처럼 멍하니 있었다.그런 여시화의 모습에 자신의 경고가 먹힌 것을 보며 성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미안해요, 나도 고의가 아니었어요.”말을 마친 성연이 공을 주워 몸을 돌려서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려 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시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너, 거기 서.”이런 촌뜨기에게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창피해.’그러나 그 순간, 만약 성연이 진짜로 때렸다면 자신의 얼굴은 아마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다.성연이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그러나 아무 말없이 눈썹만 치켜세웠다. 그 뜻은 매우 분명했다.‘또 용건이 남았니?’성연은 여시화의 목적이 무척 뚜렸하다고 생각했다.공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분명히 고의로 자신을 괴롭힌 게 분명했다.여시화가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성연 또한 예상했다.그
주위의 학우들이 입방아를 찧어대며 성연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듣고 있던 성연은 그저 냉소만 나왔다.여시화는 연기도 훌륭했다. 머리도 좀 있는 편인지 여론을 이용해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알았다.성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여시화의 공연을 지켜보았다.진우진도 소리를 듣고 왔다. 상황을 보던 그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무슨 일이야?”진우진을 본 여시화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돈 들일 필요도 없겠다 눈물을 마구 흘렸다.눈시울이 붉어져 무척이나 가련해 보이는 모습으로 여시화가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저기서 배구를 하고 있었는데, 공이 날아갔어. 송성연 학우를 건드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과했어. 그런데 사과를 받아 주기는커녕 일부러 배구공으로 날 쳤어. 난 그저 실수였는데, 이러는 건 너무 지나치잖아.”여시화는 고의로 주객을 전도시켰다. 분명히 그녀의 태도가 잘못되어서 한 마디 한 건데, 지금 마치 성연이 지나치게 행동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입을 꽉 다물고 눈썹을 치켜세운 성연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여시화가 또 어떻게 나오는지 볼 생각이었다.여시화를 보고 있다가 성연이 보이자 진우진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결국 진우진은 성연을 위한 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송성연 학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냐?”성연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연이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여시화는 설마 진우진이 송성연을 편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말도 못하고 주먹만 꽉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던 여시화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진우진을 바라보았다.이때 여시화의 곁에 선 다른 아이들이 서로 나서서 말했다.“진우진, 너 송성연에게 속지 마라. 우리 모두 여기서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시화가 말한 대로 송성연 일부러 그런 거야.”“그래, 모두 옆에서 봤어. 송성연의 행동을 모두 다 눈으로 봤단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말을 한 후, 성연은 바로 배구공으로 여시화의 배를 때렸다.공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곧장 여시화의 복부에 꽂혔다.성연은 손목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공을 내려치긴 했지만 사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겁지 않았다.이렇게 한 까닭은 겁을 먹은 여시화가 좀 수그러들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자신도 당할 수만은 없었으니까.손바닥의 먼지를 턴 성연이 말했다.“봤지? 이게 고의야.”여시화 얼굴은 경악 그 자체였다.모두가 자신을 두둔하는 상황에서 송성연은 어떻게 감히 저럴 수 있지?여시화는 배에 약간의 진동만 느꼈을 뿐 별로 아프지 않았다.하지만 송성연이 이렇게 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할 수는 없었다.성연이 얼마나 못된 행동을 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송성연의 이런 행실을 본 후에도 진우진이 그녀를 편들 수 있을까?여시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몸이 더 빨리 반응했다. 바로 허리를 구부리며 배를 가린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아, 아파, 배가 아파.”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 하나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성연을 비난했다.“송성연, 어쨌든 모두 한 곳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인데 어쩜 이럴 수 있니?” “학우를 괴롭히기나 하고, 네 눈에는 도대체 학칙이 들어오기나 하니? 시화의 공은 너를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고, 또 너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태도니?” “맞아, 너 너무하다. 어떻게 사람을 때리니? 만약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고?”모든 아이들이 분노의 눈길로 성연을 보고 있었다. 이전에 성연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는데, 오늘 직접 보니 성연이 소문보다 더 제멋대로 굴며 날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돈 있고 배경 있어도 저러면 안되지.] [교양이 전혀 없어. 정말 역겹다.]저들의 눈빛과 하는 말을 성연은 청구서 받듯이 그대로 다 받았다.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아이들의 말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이때 아이들 속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서한기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여시화의 몸을 꼼꼼하게 검사하기 시작했다.검사가 끝난 후 서한기가 말했다.“별일 없는 것 같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이 상처 다 나아 있었을 텐데 말이야.”조금 전 쫓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본 서한기는 자기 보스가 문제를 일으킨 줄 알았다.하지만 보스는 항상 본분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러니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검사를 하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정말 속셈도 많아.’순간 깜짝 놀란 여시화가 서한기에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여시화는 서한기가 이처럼 빨리 알아차리지는 못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서한기는 여시화가 여전히 연기하는 걸 지켜보았다.서한기가 코웃음 치며 자못 꽤나 딱딱하게 말했다.“방금 내가 눌렀던 부위 몇 군데가 공에 맞았던 데 맞아? 분명히 아니잖아? 공의 작용점은 이 범위 내야. 또 네 배는 벌겋게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아파?”자신의 연기가 들통나자 여시화가 얼굴을 붉혔다.서한기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이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여시화에게 향했다.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여시화는 얼굴이 더 화끈거리는 듯했다.평생토록 이렇게 창피한 적은 없었다. ‘모두 송성연 때문에 망했어. 모두 쟤 때문이야!’아까 여시화를 거들어 주던 아이가 그녀의 표정을 본 뒤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시화의 뒤에서 따지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진짜 시화가 일부러 그런 척한 거야? 아니, 왜 그런 건데? 설마?] [맞아, 아무 이유도 없이 시화는 송성연을 왜 모함한 거야? 둘 사이에 무슨 원한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평소에 그렇게 착해 보이던 시화가 이런 애라고? 송성연 뒤에 대단한 후원자가 있다더라. 교장도 그녀에게 관여하지 않는데 보건교사 한 명 매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뭐.] [하긴, 전에 보건교사와 송성연이 연애한다는 소문도 있었잖아? 이런 상황에
여시화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새파랗게 질렸다. 서한기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그럼 뻔한 거 아냐? 여시화가 거짓말하고 있다잖아?] [자기 직업으로 농담을 할 사람은 없을 거야.]서한기가 다시 물었다.“너, 나와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 받을 용기는 있기나 하니?”여시화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만약 정말 간다면, 그녀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겠는가?그녀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만약 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정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다.송성연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을 뿐인데, 사태가 이 지경까지 발전하게 될 줄이야. 여시화는 일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결국 일개 여고생에 불과한 여시화는 그리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두말 세말 하더니 곧 본 모습을 드러냈다.모두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여시화의 이런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제 발 저린 모습이 아니가. 설마 진짜 송성연을 모함한 거란 말인가?다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시화를 바라보며 그녀의 해명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이때 한 여자아이가 사람들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아이는 평소 겁이 많고 말을 좀 더듬었다.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드물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온 여학생이 성연을 위해 증언했다.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니 긴장하고 불편한 마음에 말을 더듬으면서도 또박또박 증언했다.“방금, 여시화가 못되게 굴었어. 먼저, 먼저 송성연을 공으로 쳤어. 그리고…… 사과하는 태도 때문……. 성연이가 그래서 여시화에게 그런 거야.”갑자기 밝혀진 진실에 여시화는 한 대 호되게 얻어맞은 듯했다.이제 와 다시 여시화를 보니 한 떨기 수련화를 연출한 것에 불과했는데, 그동안 모두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군중 속에서 여시화에 대한 비난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평소 내가 보기에 여시화 괜찮은 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조금
성연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좀 늦은 시간에 동아리 방에 가서 연습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진우진과 거리를 두었다.진우진은 몇 번이나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성연의 태도에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성연은 대본을 들고 동아리 회장을 찾았다.“회장, 이 대본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성연이 부르자, 회장이 엉덩이를 실룩이며 걸어왔다.“왜요? 대본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성연이 바로 말했다.“필요 없는 애매한 부분은 삭제해도 되잖아요? 손만 잡는 걸로 해요. 다른 스킨십은 안 할 거니까.”무진의 어두운 표정을 떠올린 성연은 모모 씨가 잔뜩 흐린 얼굴로 다가와서 자신을 붙잡지 않도록 규칙을 좀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원래 제기하려고 했던 의견이긴 했으나 여시화의 일이 추진 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여시화는 진우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진우진과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경고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욕심 부리다 밑천도 못 건지고 도리어 자신이 손해를 본 셈이니.비록 성연이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진우진과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엔 아무것도 없으니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연의 말을 들은 회장이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것들을 삭제하면 볼 만한 게 뭐 있다고?”요즘 고등학생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들먹이며 회장이 끝까지 설득하려 했다.요즘 애들은 이런 몽롱하고 애매한 느낌을 좋아한다.자신의 사심이기도 하지만 이 시나리오의 포텐 지점이었다.그녀는 이미 수없이 상상했었다. 진우진과 송성연을 대상으로 해서. 얼마나 아름다운 화면인가.성연이 없애라고 해서 없애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게 된다.극 전체가 별로야. 전부 이 장면에 기대고 있는데 말이지.성연은 회장이 이 극본을 위해 많은 힘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준비를 하고 왔다.회장에게 말했다.“극본이 완성되면 관중들의 감정을 더 끌어올릴 수 있어. 봐, 여기를 좀 더 늘리면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