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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Penulis: hikariky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5 10:07:55

표은우의 랩이 끝났다.

스튜디오에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비트가 꺼진 무대 위, 누구도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MC 넋업샨은 마이크를 쥔 손에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십수 년간 힙합 씬의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었지만, 이 묘한 공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금 건 단순한 ‘잘하는 랩’이 아니었다.

박자를 가지고 노는 유려한 플로우 위에, 가슴을 후벼 파는 미친 보컬이 얹혀 있었다.

‘끝나면 무조건 피처링부터 따낸다.’

넋업샨은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저 녀석은 진짜다.

하지만 오디션 진행자로서 당장 심사위원들과 얼어붙은 참가자들의 시선을 풀어야 했다.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와…… 정말 천재 맞네요. ‘얼굴’ 천재! 하하하!”

가벼운 농담으로 넘기려 했지만, 참가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인정하면 지는 것이기에 침묵할 뿐, 그들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비교 대상조차 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괴물,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이 나타났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나이대의 자존심은 인정하는 순간 곧 패배를 의미했으니까.

‘노래 좀 섞어서 부른 게 뭐 대수라고.’

‘그냥 얼굴 덕에 분위기 뜬 거잖아. 비주얼 빨이지, 저게 무슨 힙합이야?’

참가자들은 애써 은우의 무대를 깎아내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들이 뱉는 거친 랩이야말로 날것의 대중성이 있지만, 은우의 랩은 그저 예술병 걸린 소수나 만족시킬 취향 장사에 불과하다고 치부했다.

‘힙합은 기세야. 저런 말랑한 감성으로 어디까지 버티겠어?’

‘머니더쇼에서도 저런 어설픈 싱잉 래퍼들, 1:1 디스 배틀만 가면 멘탈 털려서 가사 절고 울면서 집에 갔잖아.’

결국 이 바닥의 우승자는 독특한 겉멋이 아니라 밑바닥부터 대중을 찢어놓을 수 있는 '진짜 래퍼'의 몫이었다.

특히 여긴 어설픈 아이돌 서바이벌이 아닌 날 선 랩 오디션이었다.

‘초반에 어그로 끌고 분량 뽑아먹기엔 딱 좋겠네.’

‘어차피 방송국 놈들도 얼굴마담으로 화제 몰이 좀 하다가 적당할 때 떨어뜨릴 게 뻔해.’

그렇게 은우를 자신들과는 결이 다른 ‘시한부 스타’로 규정지으며, 그들은 턱을 치켜들고 애써 비릿한 냉소를 머금었다.

“자, 이제 자기소개는 끝난 것 같고, 팀을 정하기 위한 사이퍼 미션을 해볼까요?”

참가자들은 미션이 발표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슬쩍 은우를 쳐다봤다.

자기소개 랩은 빡세게 준비할 수 있다.

연습할 시간이 차고 넘쳤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이퍼는 다르다.

랜덤으로 터져 나오는 비트 위에 준비된 가사를 즉각 얹어내야 한다.

프리스타일로 뱉어도 되지만, 대부분은 평소 써둔 벌스 중 비트와 맞아떨어지는 것을 골라 꺼내 쓴다.

즉, 평소의 작업량과 훈련도가 곧 실력이었다.

체인쏘는 5개의 벌스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이민태가 체인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체인쏘는 몇 개나 써둔 겨?”

“한 3개 정도? 넌?”

“난 몇 개 안 돼. 9개 정도.”

체인쏘는 기겁했다.

역시 근본 래퍼는 다른 건가?

5개를 준비하고도 본인은 3개라고 했으니, 적어도 이민태는 최소가 9개라는 뜻이었다.

“쟤는 몇 개나 써놨을까?”

민태가 턱짓으로 은우를 가리켰다.

그때 마침, 은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혹시 가사는 꼭 노트에 미리 써둔 자작 벌스만 써야 합니까?”

순진무구하다 못해 기본 룰조차 모르는 듯한 질문에 주변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그거야 당연하죠? 하하.”

“아하, 제가 룰을 잘 몰라서요.”

은우가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짓자, 카메라 뒤의 피디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았어! 완벽한 먹잇감 멘트다!’

반면 참가자들 사이에선 노골적인 멸시가 터져 나왔다.

“역시 아이돌이네. 남이 써준 가사만 외워 읊던 버릇 어디 가겠어?”

“랩 메이킹까지 전문가들이 다 떠먹여 주는 게 일상이니까 저런 멍청한 질문을 던지지.”

체인쏘는 그 비아냥을 듣고 주먹을 쥐었지만, 정작 질문을 던진 은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평온했다.

MC 넋업샨은 가볍게 상황을 수습하며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우선 예비 고1, 8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호명과 함께 예비 고1 8명이 원을 그리며 나란히 섰다.

은우는 팔짱을 낀 채 은은한 미소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2차 성징도 채 오지 않은 왜소한 체구에,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앳된 목소리들이었다.

‘귀엽네.’

학교에서 랩 좀 한다며 어깨를 으쓱거렸을 테지만, 아직은 풋풋한 취미반의 기운이 짙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비 고1 퇴장해 주시고요.”

넋업샨의 신호와 함께 첫 판이 순식간에 끝났다.

비트를 놓쳐 허둥대다 내려간 아이도 있었다.

준비한 4마디를 간신히 쥐어짜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참가자도 있었다.

학예회 같은 무대는 딱 거기까지였다.

“자, 다음은 고등학교 1학년 참가자 8명! 중앙으로 나와주세요!”

넋업샨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스튜디오의 공기가 확 바뀌었다.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고1 참가자들의 눈빛엔 장난기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어설픈 후드티 대신 날카롭게 각 잡힌 스트리트웨어,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 아래로 팽팽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취미로 랩을 끄적이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인생의 방향키를 이 바닥에 던지겠다고 결심한 녀석들.

‘여기서 밀리면 그냥 끝이다.’

그런 독기와 긴장감이 묘하게 뒤섞여, 원을 그리고 선 아이들의 주먹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치익-

스피커에서 거친 노이즈가 튀더니, 바닥을 낮게 긁는 육중한 트랩 비트가 터져 나왔다.

예비 고1 때와는 무게감부터 차원이 다른 비트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찰나의 침묵이 흐른 바로 그 순간, 한 여학생이 거침없이 마이크를 낚아채며 중앙으로 성큼 튀어나왔다.

‘음?’

은우의 시선이 그녀에게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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