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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내려온다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9 23:16:43

아침에 육가 대문 앞에 말이 넷 섰다.

문지기가 빗자루를 든 채로 뒤로 물러섰고, 관복을 입은 사람 둘이 붉은 보에 싼 것을 받쳐 들고 내렸다.

총관이 중문에서 뛰어나오다 섬돌 앞에서 한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보를 받아 든 손에 식은땀이 나서 두 번 고쳐 쥐었다.

"아이고. 소인이 이 댁에서 스물세 해를 살았습니다.

이런 것은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조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이조에서 오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이게 대체 어디서 오는 겁니까."

관원이 말 대신 매듭을 풀었다.

* * *

육정이 관복을 입고 나와 두 손으로 문서를 받아 폈다.

펴고 나서 첫 줄에서 한참 있었다.

"…봉(封)이라 되어 있소."

"예. 봉작이옵니다."

"봉작이라 하면 그 말이 법전에 없고, 없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며, 전례가 없으면 예를 물을 데가 없소.

나는 이것을 어느 방에 두고 어느 쪽으로 절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소."

관원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소하가 뒤에서 참으려다 못 참고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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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12화 두 번째

    태후 처소에 창이 넷 다 닫혀 있었고 문 앞에 발을 두 겹 쳤다.방 가운데 놓인 화로에 숯을 새로 얹었는지 위에 것만 붉었다.서리가 궁첩을 펴서 상 위에 올리고 무릎을 물렸다.펼친 데가 지난달에 적은 장이었고, 아래에서 셋째 줄에 이름 석 자가 있었다.그 옆 칸이 비어 있었다."앉거라.""예."한경이 자리 끝에 앉았다.앉으면서 화로 쪽을 한 번 봤다."숯을 아래부터 놓으셔야 오래가요.위에 것만 붉고 밑에 것은 아직 안 붙었거든요."태후가 호갑을 낀 손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저 아이가 오늘 아침부터 저 칸 하나를 두고 세 번을 다녀갔다.네 이름 옆에 적을 말이 없다는구나.""예. 예. 소인이 아뢰옵기는, 궁첩은 이름 옆에 소속을 적사옵니다.태의원 의녀는 칙첩이 붙는 자리라, 칙첩 없이 그 칸을 채우면 아래에서 도로 옵니다.""위엣 줄들을 읽어 보아라."서리가 붓대를 놓고 손끝으로 줄을 짚어 가며 읽었다."어선방 궁녀. 상침국 궁녀. 완의국. 상공국. 상복국. 태의원 의녀.""거기서 멎었지.""…예. 거기서 옆이 비었사옵니다.아니, 비운 것이 아니옵고 적을 것이 없어서 비었사옵니다."* * *"그 칸에 태의원이라고만 적으면 되잖아요.""그건 안 된다.""…""적어 놓으면 그 말이 네가 된다.태의원이라 적힌 사람은 태의원이 지키고 태의원이 버린다.나는 아직 너를 그 방에 넣을 생각이 없어."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마마.""말해 보아라.""저 위엣 줄 사람들은요, 옆 칸에 적힌 데가 저를 지키는지 아닌지 아나요?""모르지. 모르는 편이 낫고."태후가 궁첩을 제 앞으로 반 치 끌었다.끄는 데 호갑 낀 손가락이 종이 전을 두 번에 걸어 잡았다."넉 달 전에 태의원에 들어온 줄이 있다더구나.한 손을 못 쓰면 못 든다는 것.""…예.""내가 낸 것이 아니다.나도 어제 처음 읽었다.등록을 스무 해 본 사람이 내 앞에 셋인데 셋 다 모른다더라.셋 다 모르는 줄이 어떻게 등록에 앉느냐.""…""나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11화 대신 적는다

    서문 안쪽 담 밑에 흙이 얼어서 발이 안 들어갔다.한경이 두루마리를 편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말아 놓았던 것이라 손을 놓으면 도로 말려서, 아래쪽을 신코로 눌러 놓고 위쪽을 두 손으로 잡았다.손끝이 식어서 종이가 손에 안 붙었다.문지기가 쪽문에서 두 걸음 물러나 창을 고쳐 잡았다."…아까 그것 말입니다.봉이 없어서 소인이 펴 봤습니다.""펴 보셨어요?""폈다가 도로 말았습니다.다음에는 봉을 해서 보내시라 이르십시오.봉이 없으면 소인이 봐야 하고, 보고 나면 소인도 적힙니다.""…예."소하가 쪽문 쪽으로 두 걸음 갔다가 도로 왔다."아! 저 알아요, 저.아까 나리께서 손을 이렇게 하셨거든요. 이렇게요.이게 그, 잘 지내시라는 거 아니에요?""어. 그건 나도 몰라.""아 그리고요, 제가 아까 문지기 어른한테 강 나리 오시면 알려 달라고 아뢰었더니, 그런 건 아뢰는 게 아니고 여쭙는 거라 하시던데요.그럼 저는 누구한테 여쭙고 누구한테 아뢰어요?"문지기가 창을 고쳐 잡다가 웃음을 터뜨렸고, 터뜨리고 나서 얼른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어른들은 다 아시나 봐요."두루마리 끝에 봉함을 떼어 낸 풀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떼어 낸 데는 종이 결이 일어나 보풀이 서 있었다.안에 열두 줄이 적혀 있었다.곳간에서 안 나온 약재 셋이 어느 날 어느 등록에서 빠졌는지 날짜만 있었고, 사람 이름은 한 자도 없었다.글씨가 누워 있었다.* * *태의원 서쪽 방에 자리가 셋 펴져 있었고 그중 둘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화로를 가운데 놓고 벼루를 그 전에 올려 두었는데, 먹이 얼어서 갈리지 않아 녹기를 기다리는 참이었다.늙은 서리가 벼루를 불 쪽으로 반 치 더 밀었다.벼루 바닥에서 딱 소리가 났다."어이쿠.""벼루를 불에 바로 올리면 갈라져요.물을 반쯤 붓고 그릇째 데우시면 돼요.""…예. 예. 그리하겠습니다."한경이 자리 끝에 앉았다."등록방에서 어제 본 장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요.""어느 장이시겠습니까.""넉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10화 문 하나

    궁 서문 쪽문이 사람 하나 지날 만큼 열려 있었다.문지기 둘이 그 앞에 서 있었고, 문지방 아래로 문 그림자가 안쪽 흙에 금을 하나 그어 놓았다.한경이 그 금 안쪽에 섰다.문 밖은 마른 흙길이고 길 건너에 나무가 셋 있었는데, 잎이 다 떨어져서 가지 사이로 성벽 아랫도리가 보였다.문 밖에 강목이 서 있었다.관복이었고, 왼팔을 몸에 붙이고 오른손에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나리.""예. 예."문지기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반 걸음 들어와 문 밖과 안을 번갈아 봤다."소신이 오늘 아침에 태의원 패를 도로 냈습니다.새 패는 문서고에서 나오는데 아직 안 나왔습니다.패가 없으면 이 문을 못 듭니다.""저도 아직이에요."관복 왼쪽 소매가 팔목에서 두 번 접혀 있었다.접은 자리가 눌려 자국이 났는데 오른쪽 소매는 안 접혀 있었다.한경이 제 흰 명주 겹적삼 소매를 손등 위로 내렸다.강목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숙이고 나서 두루마리를 오른손에서 왼팔로 옮겨 안았다.한 번에 안 되어서 두 번에 나눠 안았다.* * *"소신이 여쭐 것이 있어 왔습니다.""…""…아닙니다. 여쭐 것이 아니라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강목이 두루마리를 문지기에게 내밀었다."석 달 치입니다.열이레부터 그제까지고요.곳간 출납을 옮겨 적었습니다.옮겨 적은 것이라 아래에 인이 없습니다.인이 없는 종이는 문서가 아니고, 문서가 아니면 문지기가 들여보내도 적히지 않습니다."문지기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받아서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 한경에게 내밀었다."소신이 볼 수 있는 데까지만 적었습니다."소하가 회랑 쪽에서 뛰어왔다.문지기 옆을 지나 쪽문 앞까지 가서 목을 뺐다."나리! 나리 손 어떠세요!요새 비 왔잖아요!"문지기 둘이 다 소하를 봤다.소하가 그 눈을 보고 두 걸음 물러섰다가, 물러선 자리에서 또 소리를 냈다."비 오면 굳는다면서요!"강목의 귀가 붉었다."…예. 예. 소인은 성합니다."문지기 하나가 웃음을 참다가 못 참았다.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09화 넉 달 전

    등록방 문지방은 낮았다.태의원에서 제일 낮은 문지방이었고, 그래서 상자를 지고 드나드는 데 걸리는 것이 없었다.방에 화로가 없었다.상자 사이로 든 볕이 먼지를 세워 놓았다.방 안에 상자가 벽을 따라 세 줄로 쌓여 있었다.늙은 서리가 셋째 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래 칸을 뒤지고 있었다."셋째 칸이라 하셨다고요.""예. 어제 마당에서 상궁고고가 그러시던데요.""그, 그러셨습니까."늙은 서리가 무릎걸음으로 반 자 옆으로 갔다.갔다가 도로 왔다."그, 셋째 칸은 넉 달째 아무도 안 열었습니다.여기는 넣기만 하고 안 꺼내는 데라서요."늙은 서리가 상자를 끌어냈다.끌어내다가 위에 얹혀 있던 것을 같이 끌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뚜껑이 열리고 종이를 마루에 쏟았다."아이고. 아이고, 이거를.""어. 제가 주울게요.""놔두십시오. 놔두시고요.이건 순서가 있어서 소인이 놔야 합니다.소인 말고는 아무도 이 순서를 모릅니다.그게 이 방의 하나뿐인 좋은 점입니다."늙은 서리가 종이를 한 장씩 집어 무릎에 쌓았다.다 쌓고 나서 일어서는데 허리를 두 번에 폈다."상자는 아래 칸부터 채우세요.위에 얹으면 꺼낼 때마다 위엣것이 먼저 떨어지거든요.그리고 셋째 줄은 벽에서 한 자 떼시고요.벽에 붙여 놓으면 겨울에 벽 쪽 종이부터 상해요.상한 건 어른이 순서를 아셔도 못 읽어요."늙은 서리가 한경을 봤다."…한 자를 떼면 이 방에 상자가 두 줄밖에 안 들어갑니다.""그럼 한 줄은 버리셔야죠.""버리는 자리가 여기 아닙니다.여기는 넣기만 하는 데라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늙은 서리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웃다가 기침을 하고, 기침을 하고 나서 무릎을 손바닥으로 짚고 도로 앉았다.* * *상자 안에 두꺼운 등록이 하나 들어 있었다.늙은 서리가 그것을 상 위에 놓고 뒤에서부터 넘겼다."태의원에 사람 들이는 줄은 여기 다 있습니다.스물넉 줄에 하나씩 적습니다.한 장에 스물넉 줄, 그게 여기 법입니다."한경이 상 앞에 앉았다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08화 왼손

    마당에 볕이 아직 안 들어와서 섬돌 위가 희끗했다.아침에 태의원 앞마당에 상궁이 하나 들어왔다.태후 처소에서 왔고, 소매 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폈다.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하던 것을 놓고 물러섰다.약탕관 옆에 앉았던 아이가 부채를 무릎에 내려놓았다.상궁이 입은 것은 짙은 남색 명주 겹치마에 옥색 겹적삼였고, 소맷부리 안으로 흰 동정이 한 겹 더 있었다.마당에 선 사람들 옷은 다 무명이었다.한경은 흰 명주 겹적삼을 입고 있었다.깃에도 소맷부리에도 선이 없어서 어느 집에서 지은 것인지가 안 나왔다."셋째 자리를 정하여 내리셨습니다.""예.""탁순이라 합니다.태의원 심약으로 여섯 해 되었고, 다음 달 초하루부터 의녀님 아래로 붙습니다."한경이 종이 쪽으로 눈을 내렸다가 도로 들었다."어. 또 있죠.""예. 한 손을 못 쓰는 자는 태의원에 들이지 않는다는 줄이 있습니다.그래서 말씀하신 사람은 못 옵니다."한경이 숨을 한 번 삼켰다.그 손으로 인은 여섯 해를 찍었는데.* * *"소인이 여쭙지 않은 것까지 아뢰라 하셨습니다.""…""약을 짓는 손이 하나면 저울을 못 잡습니다.저울을 못 잡으면 남이 잡아 주고, 남이 잡아 준 저울로 지은 약에 인은 그 사람 이름으로 찍힙니다.그 약을 먹고 사람이 잘못되면 불려 나오는 것은 인을 찍은 사람입니다.그 줄은 그 사람을 지키자고 있는 줄입니다.""저울은 제가 잡을게요.첩 싸는 것도 제가 하고요.그 사람은 보고 적기만 해도 돼요.그 손은 여섯 해 동안 남의 문서에 인을 찍은 손이라 저보다 눈이 밝거든요.저는 지은 걸 보고 아는데 그 사람은 짓기 전에 알아요.그리고 인은 그 사람 이름으로 안 찍고 제 이름으로 찍을게요.잘못되면 저를 부르세요.""…의녀님 이름은 아직 패에도 없습니다.""그러니까 딱 좋잖아요.없는 이름은 지울 것도 없고요.""저, 소인은 방금 것을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늙은 어의가 마루 쪽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규정에 그 자리가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207화 붙여 준 셋

    태의원 뒷방에 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 등이 놓여 있었다.저녁이라 창이 어둡고 방 안쪽 벽에 약장이 붙어 있었는데, 서랍 손잡이 스물 몇 개 가운데 셋만 놋빛이 닳아 있었다.여자 둘이 문지방 안쪽에 서 있다가 한경이 들어가자 두 손을 모았다."앉으세요."나이 든 쪽이 먼저 앉았다.앉을 때 한 손으로 무릎을 짚고 천천히 내려앉았다.젊은 쪽은 그 옆에 무릎을 붙이고 앉았다."소인은 약을 답니다.열두 해 달았습니다.손이 커서 첩을 못 싸니까 싸는 것은 저 아이가 합니다.""소인은 글을 조금 씁니다.받아 적는 것까지만 하고 지어 올리는 것은 못 합니다.""…""그리고 소인들은 태후 처소에서 왔습니다.열흘에 한 번 가서 아뢰고 옵니다.아뢰는 것은 의녀님이 하루에 무엇을 하셨는지입니다.이건 처음에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고맙네요. 안 말해 줬으면 열흘 뒤에 알았을 텐데."젊은 쪽의 낯이 붉어졌다.나이 든 쪽은 눈을 안 내렸다.열흘에 한 번이면 오늘 것은 아흐레 뒤에 가겠네."두 분은 뭐라고 부르면 돼요.""…태후 처소에서 부르던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큰 사람, 작은 사람입니다.""그건 이름이 아니잖아요.""예. 이름은 아닙니다."한경이 약장 앞으로 가서 서랍 하나를 열었다가 닫았다."약 다는 건 그대로 하시고, 첩 싸는 건 저녁으로 옮기세요.낮에는 손이 하루 종일 안 쉬어서 저녁에 싸면 열 첩 쌀 걸 열두 첩 싸요.그리고 열흘에 한 번 가서 아뢸 때, 제가 오늘 무엇을 물었는지까지 같이 적으세요.빼고 적으면 나중에 두 분이 곤란해져요."나이 든 쪽이 무릎에 얹었던 손을 고쳐 놓았다."…그리 적으면 소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저쪽에서 다 압니다.""알아야죠. 뭘 숨겼다고 하면 그때부터 적히는 건 두 분이거든요."* * *소하가 문 밖에서 종이를 들고 들어왔다."아니, 의녀님. 이거 아까 그 상궁고고가 주고 가셨는데요, 저더러 이걸 어디다 봉하라고 하셔서 소인이 봉했다고 했거든요.근데 봉하는 게 종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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