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화덕 앞에서 오어멈이 부지깽이로 잿불을 헤집었다.마른 솔가지를 한 줌 넣자 불이 확 붙어 얼굴이 한 번 밝아졌다가 도로 어두워졌다."어멈. 내일 아침 것을 지금부터 해요?""어유. 밥이 아니라 물입니다.손님이 오면 물부터 찾지요."오어멈이 솥을 걸려고 일어서면서 허리를 두 번에 폈다."물은 내일 새벽에 끓여도 돼요.""끓여 놓고 식힌 물이라야 손님이 안 데입니다.새벽에 끓이면 뜨거워서 못 마시지요."한경이 화덕 앞에 쭈그려 앉아 불을 봤다.오어멈이 그 옆에 국자를 놓았다가 도로 시렁에 걸었다.* * *광 문 앞 멍석에 노영감이 앉아 무릎에 나무토막을 놓고 칼로 깎고 있었다.등을 켜지 않아서 손이 보이는 대로만 움직였다."영감. 어제 것보다 넓네요.""글쎄요. 금 사이가 좁으면 소인 눈에 겹쳐 보입니다.넓으면 덜 겹치지요.""그럼 처음부터 넓게 깎지 그랬어요.""처음에는 이만큼 적을 줄 몰랐지요."노영감이 깎아 낸 자리를 엄지로 문질러 보고 나서 한 번 더 칼을 댔다.소하가 대문 쪽에서 뛰어 들어오다가 섬돌에서 등을 놓쳤다.등이 굴러가면서 불이 꺼졌다."부인! 밖에 열둘이요. 아니 열셋인가.""소하야. 등.""아 맞다. 여기 있어요. 안 깨졌어요.""열셋이면 아까보다 늘었네요.""늘었어요! 아까는 여덟이었는데요, 그중에 그저께 왔던 아저씨가 또 왔어요.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서 있다 가요.아무한테도 말을 안 걸고요.""밥은 먹었대?""…그건 안 물어봤는데요.""가서 물어보고 와."소하가 도로 뛰어나가다가 제 발에 제가 걸려 비틀거렸고, 그러고 나서 저 혼자 깔깔거렸다.* * *행랑 앞 툇마루에 등이 둘 켜져 있었고 류가가 그 사이에 앉아 있었다.앞에 종이가 두 벌이었는데 글씨가 서로 달랐다."두 벌이네요.""한 벌은 소인 것이고 한 벌은 아닙니다.석 달 치를 마저 옮겨 적는 중입니다.낱장으로 두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뒤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게 되어서요."류가가
아침에 대문이 열리자마자 어공서 서리가 들어왔다.문서 하나를 두 손으로 들고 왔고, 대문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 뒤로 따라 들어오려다 문지기한테 막혔다.총관이 중문에서 문서를 받았다.받아서 펴 들고 처음 두 줄을 읽더니 도로 접었다."…소인은 육석이 아닙니다.""이 댁 총관 아니시오?""아이고. 총관은 맞습니다.소인 이름은 돌이입니다."서리가 문서를 도로 받아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예. 예. 관에 이름을 올리자면 성이 있어야 하고, 성이 없으면 사는 집 성을 씁니다.돌이라 하셨으니 돌 석 자를 썼지요. 여기, 육석."부엌 문지방에서 오어멈이 절구를 안은 채 나와 있었다."돌이 맞네. 나보다 두 살 아래야."총관이 오어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도로 문서를 봤다."어공서에 광이 다시 서는데 물목을 아는 사람을 하나 부릅니다.내일 아침에 서문으로 드시면 됩니다.""…내일 아침이요.""예. 늦으면 그 자리에 딴 이름이 올라갑니다."* * *한경이 마루 끝으로 나와 섰다."거기 광이 몇 칸이래요.""…열두 칸이라 들었습니다.아니, 열넷인가.""여기 광은 열 칸인데 문이 셋이에요.열둘이면 문이 넷은 되거든요.""…예.""문 넷이면 혼자 못 잠가요.가서 사람부터 하나 달라고 하세요."총관이 문서를 접었다가 폈다가 했다.서재 쪽에서 육정이 갓 없이 걸어 나왔다."부인.""아침에 아셨어요?""…어제저녁에 알았소.알고 오늘 아침에 어공서에 물었는데, 물었더니 내가 물을 자리가 아니라 하고, 내가 물을 자리가 아니라는 말을 내 아래 서리가 하는데, 그 서리가 어제까지—""나리.""…내가 못 막소.""막으면 저 사람 이름이 도로 없어지고요."육정이 총관 앞으로 갔다."자네가 스물세 해를 이 집에서 살았으니 이 집 성을 쓰는 것이 마땅하고, 마땅한 것을 관이 정해 주었으니 내가 더할 말이 없소.다만 어디서든 막히거든 이 집 이름을 대시오."총관이 절을 하려고 무릎을 굽히다 말았다.무릎이 한 번에
태의원 서쪽 방 문이 열려 있었고, 상 위에 같은 글이 적힌 종이 석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강목이 가운데 장 끝을 눌러 잡고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늙은 어의가 문지방 안으로 반쯤 들어와 섰다."자네 그거 아직 안 냈지.""…예. 예. 아직입니다.""이리 줘 보게."늙은 어의가 종이를 받아 팔을 멀찍이 뻗어 들고 읽었다."달걀. 마늘. 콩. 파.""예.""비린 것과 매운 것을 어전에 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 열두 해일세.열두 해 동안 아무도 안 건드린 줄을 자네가 오늘 아침에 지우자는 것인데, 이걸 왜 자네가 하나.어선방에서 여쭙게 하면 될 일을.""어선방은 물목을 못 고칩니다.물목은 태의원에서 가려 올리고, 가려 올리는 자리에 소신이 앉아 있습니다.""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적히지.""예. 그래서 적습니다."늙은 어의가 종이를 상에 도로 놓았다.놓고 나서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내가 자네 나이에 이런 것을 안 적었네.안 적어서 이 나이까지 여기 앉아 있고.""…예. 예.""넣고 나면 자네한테 물으러 오는 사람이 생겨.올해가 아니면 내년에라도."강목이 대답 대신 인주 갑을 상 가운데로 끌어 놓았다.늙은 어의가 한참 서 있다가 나갔다.나가면서 문을 반만 닫았다.발소리가 회랑 끝까지 가고 나서도 강목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인주 갑 뚜껑이 한 번에 안 열려서 무릎에 대고 비틀었다.* * *강목이 인을 인주에 대고 두 번 굴렸다.성한 손으로는 종이가 밀리지 않게 눌러 잡아야 해서, 인은 왼손으로 쥐었다.손가락 다섯 중 둘이 반만 굽는 손이라 인 머리가 손바닥 안에서 한 번 돌았다.붉은 자국이 종이 아래쪽에 앉았는데, 테가 한쪽으로 기울어 글자 한 자를 밟고 있었다."나리."강목이 고개를 들었다.한경이 반쯤 닫힌 문 안쪽에 서 있었다."…부인. 오셨습니까.""인이 비뚤어졌는데요.""…비뚤어도 인은 인입니다.""저 아까 문 앞에서 다 들었거든요.다시 찍으면 되잖아요.""인주가 두 번 앉으면
광록시 마당 섬돌에서 어린 서리가 풀그릇을 들고 오다가 발을 헛디뎠다.그릇은 안 놓쳤는데 풀이 한 덩이 튀어 옆구리에 낀 종이 아래쪽을 적셨고, 뒤따라오던 늙은 서리가 그 종이를 낚아채 마루 끝에 폈다."이걸 이만큼 적셔 놓으면 붙이기 전에 먹이 다 번지지 않느냐.""소인이 다시 써 오겠습니다.""쓰기는 뭘 써. 다시 쓰려면 인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그 인을 어느 방에서 찍는지 너는 아느냐.""…아침에 여쭈러 갔더니, 그, 오늘부터 그 방 소관이 아니라 하셨습니다.""그러니까 모른다는 소리 아니냐."어린 서리가 풀솔을 그릇 전에 걸쳐 놓았다가 도로 쥐었다."그럼 저희 나리는 이제 누구한테 여쭙니까.""묻지 마라. 물으면 네가 고른 것이 된다."마당 한쪽에 궤짝 둘이 나와 있었다.아침에 누가 내놓고 그대로 두어서 뚜껑에 먼지가 앉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앞에서 걸음이 한 번 느려졌다가 그냥 갔다.한경은 마당 건너 걸상에 아침부터 앉아 있었다.부른 사람은 안에 있고 아직 나오지 않았다.볕이 마당을 반쯤 건너가는 동안 무릎 아래가 뻣뻣해져서 발을 바꿔 디뎠는데, 바꿔 디디고 나서도 종아리가 제자리로 안 돌아왔다.* * *회랑 쪽에서 강목이 문서 상자를 안고 왔다.상자가 새것이었고 모서리 네 군데에 두른 대나무 테가 아직 성했다.마당 끝에서 한 번 내려놓았다가, 못 쓰는 왼손으로 밑을 받치고 성한 손으로 안아 다시 들었다."부인. 오래 계셨습니까.""아침부터요. 나리 상자 바꾸셨네요.""…예. 예. 터진 것은 버렸습니다."강목이 걸상 옆에 상자를 내려놓고 성한 손으로 소맷자락을 여몄다."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나리는 들으셨겠네요.""소신이 아침에 태의원에서 들은 것뿐입니다.어제까지 봉함 인을 받으러 가던 방이 셋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닫은 방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저 궤짝도 그래서 저기 나와 있고요.""…예. 아침부터 저러합니다.가져가라는 말이
밤에 서하당에 등이 하나만 켜져 있었고, 그 아래 상 위에 무명 보퉁이가 펴져 있었는데 안에 여자 옷 한 벌과 살이 성근 얼레빗이 들어 있었다.행랑 끝 방에 오늘부터 사람이 하나 늘었다.분이어멈이 이부자리를 가져다 놓고 나오면서 마루 끝을 한 번 쓸었고, 쓸고 나서 회색 손톱을 앞치마 안으로 넣었다.그 방 문틈으로 등이 켜져 있었는데, 낮에 대문을 들어선 사람이 아직 아무것도 안 풀어 놓고 벽 쪽에 앉아 있는 것이 창호에 그림자로 비쳤다.오어멈이 그 방으로 밥상을 하나 더 내면서 국그릇에 손끝을 담갔다가 뺐고, 간이 맞는지 한 번 더 보고서야 소반을 마루에 내려놓았다.소하가 부엌 쪽에서 세 번 왔다 갔다.세 번째에는 서하당 문 앞까지 와서 섰다."부인.""응.""저 그 방에 오늘 들어가도 돼요, 내일 들어가도 돼요.""오늘도 되고 내일도 되고. 네가 정해."소하가 마루 아래에서 한참 서 있다가 부엌 쪽으로 도로 갔는데, 가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느려서 마당을 건너는 데 두 배는 걸렸다.한경이 옷을 개어 보퉁이를 도로 쌌다.매듭을 두 번 고쳐 맸다.* * *마당에서 발소리가 왔다가 문지방 앞에서 멎었다.멎은 자리에서 한참 있었다.한경이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들어오세요. 거기 서 계시면 발 시려요."문이 열리고 육정이 들어와 문지방을 넘었다.넘고 나서 문을 닫는 데 손이 한 번 걸렸다.밖에 오래 있었는지 관복 어깨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고, 방으로 들어오자 그 자리가 녹으면서 빛깔이 짙어졌다."…그."육정이 왼 어깨를 뒤로 돌렸다가 도로 놓았다.한경이 상 귀퉁이의 등잔을 그의 쪽으로 밀었다.육정이 그 빛 안으로 들어와 앉으면서 관복 소매의 젖은 데를 무릎에 눌러 폈다."저. 부인.""예.""전례를 보면 이런 때에 가주가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것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하면 되는데, 오늘 하루 종일 찾다가 못 찾았소.이런 전례가 없소."한경이 붓대를 놓았다."부인. 나는 무엇을 하면 되겠소."방에서
심가 대문 문설주에 못 자국이 둘 남아 있었고 그 위로 새 칠이 덮여 있었는데, 한경이 문지방을 넘어서자 마당에 종들이 여럿 나와 서서 사당 쪽을 보고 있었다.사당 문이 열려 있었다.안에서 향내가 아니라 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심경이 사당 앞 섬돌에서 소매를 걷고 있었다.걷은 팔이 볕에 그을려 있었고, 한경을 보자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조카님. 오늘 오실 줄 알았습니다.""아저씨. 관에서 뭐가 왔다면서요."심경이 서재로 들어가 문갑에서 종이를 꺼내 왔는데, 꺼내 오는 동안에도 얼굴은 웃고 있었고 웃는 그 얼굴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한 줄 났다."육가에 내린 것은 봉작입니다.이 집에 내린 것은 봉작이 아닙니다.""그럼 뭔데요. 아니, 봉작이 아니면 뭔데요.""이 집은 이제 죄가 없습니다."* * *한경이 섬돌에 올라서다가 한 번 헛디뎠다.심경이 팔을 내밀었고, 한경은 그 팔을 잡지 않고 기둥을 짚었다."열 해 전에 형님 신주를 아랫줄로 내렸습니다.문중에서 그리하라 하였고 저는 그때 배를 부리고 있었으니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오늘 아침에 도로 올렸습니다.이제 이 집에 드는 사람은 형님께 절을 하고 갑니다."사당 안쪽에서 찬 것이 흘러나와 한경의 등에 오한이 지나갔다.위패에 먹을 새로 먹인 지 얼마 안 되어 글자에서 아직 냄새가 났다.한경이 소매 안쪽을 손등으로 눌렀다.아직 안 뜯은 봉투가 그 안에 있었다."저는 오늘 절 안 할게요.""…조카님.""안 할 거예요. 그 함자 아래에서 절하면 내가 아는 걸 모르는 사람이 되거든요.""그럼 아십니까.""…""형님이 무엇을 파셨는지 조카님이 아십니까.저는 오늘까지도 모릅니다.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고, 물어보지 않았으니 저는 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 사람입니다."* * *"그거 도로 내리세요.""…""내리시라고요. 오늘 아침에 올린 거면 오늘 저녁에 내릴 수도 있잖아요."심경이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넣고 나서 손을 마당 쪽으로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