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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숨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6 11:59:34

그 밤 육정은 술을 마시지 않고 왔다.

문을 닫고 잠깐 서 있다가, 서 있으라는 사람도 없는데 서 있는 것이 우스웠던지 스스로 앉았다.

앉은 자리가 여느 밤보다 반 자 가까웠다.

한경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풀고 있었다.

은비녀를 뽑아 경대에 놓고, 쪽을 지탱하던 것들을 하나씩 빼내는 참이었다.

뒤통수 안쪽의 것이 잘 잡히지 않아 손이 두 번 헛돌았다.

"…내가 하겠소."

한경이 손을 내렸다.

그가 뒤로 돌아 앉았다.

무릎이 등에 닿을 만큼 가까웠고, 손이 올라와 머리를 더듬었다.

비녀를 찾는 손이 서툴러서 목덜미를 두 번 스쳤다.

스칠 때마다 잔머리가 살에 눌렸다.

마지막 하나가 빠지자 머리가 한꺼번에 흘러내렸다.

등을 덮고, 허리께에서 멎었다.

그 무게가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한경이 목을 한 번 뒤로 젖혔다.

젖힌 목 아래로 등불이 들었다.

뒤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 *

그의 손이 머리에 얹혀 있었다.

빼낼 것이 더 없는데도 내려가지 않았다.

손가락이 머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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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72화 손 이야기

    발인이 끝나고 성으로 돌아온 날, 궁에서 사람이 왔다.옥패를 받은 자는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육정이 말한 대로였다.이번에는 날짜도 시각도 적혀 있었고, 들 곳이 태의원이라고 적혀 있었다.어공에 딸린 약재를 감별하는 자리에 안주인이 입회한다는 명분이었다.상중에 궁에 드는 것이 법도에 맞느냐고 총관이 물었다.답할 사람이 없었다.* * *태의원 마당에 시렁이 늘어서 있었다.한경은 흰 상복 위에 겉옷만 덧입고 들었다.머리는 흰 끈으로 묶은 그대로였고, 비녀도 노리개도 없었다.궁의 여자들이 그 차림을 흘끔거렸다.궤짝이 열리고 강목이 품목을 짚어 갔다.한경이 그 곁에 서서 뿌리를 몇 개 집어 꺾어 보고, 냄새를 맡고, 도로 놓았다.세 번째 궤짝에서 마당의 소리가 한꺼번에 죽었다.시렁 사이로 사람들이 물러나 벽에 붙었다.관원이 무릎을 꿇었고, 서리들이 엎드렸다.강목이 붓을 놓고 무릎을 꿇으면서 한경의 소매를 아래로 당겼다.한경이 고개를 숙였다.숙인 눈에 들어온 것은 마당의 흙과, 그 위를 지나가는 검은 옷자락이었다.금실이 가늘게 지나갔고, 걸음마다 빛을 물었다 놓았다.걸음이 컸다. 보폭이 일정했고, 흙 위에 찍히는 발자국이 깊었다.앞을 지나갈 때 침향이 왔다.* * *"약을 보는 자가 여럿이구나."낮은 목소리였다. 크지 않은데 마당 끝까지 갔다.강목이 아뢰었다. 어공에 딸린 물목을 맞추는 중이라 하였다."저 여인은.""…육가의 안주인이옵니다."발소리가 멎었다.한경은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숙인 시야 안에 검은 신코가 들어왔다.신코가 깨끗했고, 그 신이 흙 위에 서 있었다."상중이라 들었다."한경이 대답할 자리인지 아닌지 몰라 잠깐 있었다.아무도 대신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대답했다."예.""…상중에 부른 것은 짐의 잘못이다."마당의 공기가 한 번 굳었다.관원이 이마를 흙에 더 붙였다.한경이 고개를 조금 들려다 말았다.강목의 손이 소매를 다시 당겼기 때문이었다."…아니옵니다.""들었다가 물러가라.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71화 개천가

    곡소리가 담을 넘어 개천까지 왔다. 초상 사흘째였다.조문객이 끊기는 낮 참에 한경은 뒷문으로 나왔다.삼베 상복 소매가 넓어 손을 내리면 손끝이 보이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곡소리보다 가까이서 났다.개천가에 앉아 있으려던 것은 아니었다.물가에 미나리가 있어서, 잎을 두어 줌 뜯어 소매에 넣었다.목이 마르다는 사람이 방에 셋이나 있었다.물이 얕고 맑았다.바닥의 돌이 다 보였고, 돌 사이에 붉은 것이 얕게 끼어 있었다. 물이끼였다.일어서다 사람을 봤다.* * *개천 건너편 버드나무 아래에 남자가 하나 서 있었다.미복이었다. 무명 두루마기에 갓끈이 짧았고, 신은 좋은 것이었는데 흙이 묻어 있었다.걷지 않는 사람의 신에 흙이 묻으면 그렇게 묻는다.해가 그 뒤에 있었다.버드나무 그늘과 역광이 겹쳐 얼굴이 반쯤 지워졌고, 보이는 것은 윤곽뿐이었다.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서 있는 자세에 흐트러진 데가 없어서, 물가에 아무렇게나 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낯빛이 흰 것은 알 수 있었다.눈 밑에 그늘이 짙은 것도.한경이 물을 건너지 않고 그 자리에 섰다.상가 근처에서 사람이 서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남자가 먼저 물었다.저 집이 초상이냐고."예. 우리 아버지요."남자가 고개를 숙였다.조의를 표하는 자세였는데, 숙인 각도가 어정쩡했다.누구에게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의 각도였다.한경이 그것을 보고 말았다.버드나무 잎이 물 위로 늘어져 있었다.바람이 한 번 지나가자 잎 끝이 물에 닿아 동그라미가 여럿 생겼다가 흘러갔다.남자가 그 물을 보고 있었다.보면서 손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넣는 동작이 빨랐다.* * *한경의 눈이 그 소매에 갔다.갔다가 떨어지지 않았다."그거 오래되셨어요?"남자가 고개를 들었다.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무엇이.""손이요. 지금 소매에 넣으신 거."물소리만 났다. 남자가 대답하지 않았고, 한경이 개천 이쪽에서 두 걸음 아래로 내려갔다.물이 좁아지는 데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70화 나가겠다

    아버지의 숨이 바뀌어 있었다.들이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내쉬는 것이 짧았다.방에 사람이 여럿 들어와 있었고, 총관이 촛대를 옮기다 촛농을 손등에 떨어뜨리고도 몰랐다.한경이 자리에 앉아 손목을 짚었다.맥이 아까보다 더 자주 걸렀다.아버지의 눈이 떠졌다.이번에는 딸을 바로 알아봤다.말을 하려고 입이 움직였다.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한경이 몸을 숙여 귀를 입 가까이 댔다.머리가 흘러 아버지의 어깨를 덮었다.숨 섞인 소리가 왔다.「…네 얼굴을,」그다음이 나오지 않았다.한경이 손을 잡았다.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가 빠졌다.「…네 얼굴을 본 사람이,」숨이 한 번 길게 들어갔다.들어간 것이 나오지 않았다.* * *총관이 곡을 시작하기 전에 한경이 손을 들었다.아직이라고 했다. 아직 아니라고, 흰 등도 아직이라고 했다.목소리가 낮았고 방 안의 누구도 그 말을 거스르지 않았다.아버지의 손을 가슴 위에 모아 놓고, 눈꺼풀을 내려 주었다.내려 주고 나서 그 위에 손바닥을 잠깐 얹었다.돌아서서 방을 나왔다.회랑에 육정이 서 있었다.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옷에 밤이 앉아 있었다.한경이 지나가는데 그가 팔을 잡았다.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놔요."놓지 않았다.한경이 그 자리에 섰다.서서, 이마를 그의 어깨에 댔다. 대고 있었다.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고, 어깨가 움직이지도 않았다.그의 손이 등으로 올라와 한 번 눌렀다.그것이 전부였다.* * *새벽에 흰 등이 걸렸다.총관이 사람을 시켜 대문 양옆에 하나씩 달았다.심가 담이 길어서 등 두 개로는 어림도 없었는데, 더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한경이 상복을 받아 입었다.거친 삼베가 살에 닿는 자리마다 서걱거렸고, 소매가 넓어 손을 내리면 손끝이 보이지 않았다.머리를 풀어 흰 끈으로 한 번 묶었다.은비녀도 노리개도 다 벗어 두었다.벗어 둔 것들 옆에 옥패가 놓여 있었다.그것만 소매에 넣었다.마당에 나오니 종들이 곡을 시작하고 있었다.곡소리가 담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69화 붉은 줄

    서란이 고개를 돌렸다.등잔을 켜지 않고 창으로 드는 달빛만으로 종이를 넘기던 참이라, 얼굴 반이 어두웠다.무릎 위에 명부가 펼쳐져 있었고, 상자에서 꺼낸 장들이 옆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순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꺼낸 손이었다."등을 켤까요."한경이 문을 닫았다.닫고 등잔에 불을 붙였다.심지가 살아나면서 방 안의 것들이 순서대로 나타났다.책장, 상자, 무릎 위의 종이, 그리고 서란의 손.손등에 흉이 있었다.열에 덴 자국이 오래된 것이었다."이 집을 잘 아네.""열두 해 전에 여기서 두 달을 살았습니다."한경이 아버지 자리에 앉지 않고 문 쪽 자리에 앉았다."말해 봐."서란이 무릎 위의 장을 들어 이쪽으로 돌려 놓았다.이름과 나이. 먹인 날. 먹인 것.그 아래 「무탈」 두 자, 더러는 빈칸.빈칸 옆에 붉은 먹으로 그어진 줄.붉은 줄이 그어진 이름 하나에 서란의 손가락이 얹혔다.열두 살, 여아, 이름 한 자."…소인입니다."* * *등잔 심지가 한 번 타면서 소리를 냈다.그해 여름에 팔려 왔다는 말이 나왔다.시약장 평상에 열이레를 앉았고, 열이레 째에 사람이 셋 죽어 나갔으며, 그중 하나로 적혔다는 말이었다."죽은 걸로 적혀야 값이 정리되거든요.산 사람은 도로 데려가야 하는데, 데려갈 데가 없는 아이는 죽은 걸로 적는 편이 서로 편합니다."말투에 원망이 없었다.원망이 없어서 듣기가 더 나빴다.한경이 물었다. 그다음엔 어디로 갔느냐고."이 집으로요. 대인께서 데려다 두 달을 먹이셨습니다.""…우리 아버지가?""예.""그리고?""두 달 뒤에 다른 데로 보내셨고, 그 다른 데가 궁이었습니다."한경이 등잔을 조금 당겼다.불이 서란의 얼굴 쪽으로 갔다.얼굴이 밝아지자 눈 밑에 오래된 그늘이 보였다."그래서 우리 집에 온 거야? 십 년 만에?""…소인은 시키는 대로 왔습니다. 처음에는요.""지금은."서란이 대답하지 않았다.대답 대신 옆에 쌓아 둔 장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었다.집는 손이 아까보다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68화 서재

    심가에서 기별이 온 것은 이틀 뒤 새벽이었다.대인이 위독하시다는 말이었다.기별을 가져온 자가 성문 열리기를 기다렸다 왔다고 했고, 옷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다.가마가 마당에 놓이는 동안 육정이 관복을 입었다.조정에 알리고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냥 입었다.말고삐를 쥐는 손등에 어젯밤 자국이 남아 있었다.떠나기 전에 대부인 처소에 들렀다.굳은 손이 며느리의 소매를 붙잡았다 놓았다."…서재에는.""예.""…혼자 들어가지 마라."* * *성 밖 길에 안개가 얕게 깔려 있었다.가마 곁에 붙은 말이 오늘은 앞서지 않았다.반나절 내내 한 뼘 옆에서 왔고, 주렴 너머로 그의 소매가 계속 보였다.한 번, 가마가 흔들렸을 때 주렴 밖에서 손이 들어왔다.발을 걷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발 아래 틈으로 들어온 손이었고, 그 손이 이쪽 손을 찾아 잡았다.잡고, 놓지 않은 채로 길이 얼마쯤 갔다.말 위에서 그는 앞만 보고 있었다.잡은 손만 뒤로 와 있었다.* * *심가 대문에 흰 등이 걸려 있지 않았다.아직 걸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종들이 마당에 늘어서 절을 했고, 그 가운데 지난번 그 늙은 종이 있었다.이번에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안방에 들었다.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고, 숨이 얕고 빨랐다.살이 더 빠져 광대뼈 위의 살가죽이 종잇장 같았다.한경이 손목을 짚었다.맥이 가늘고 자주 걸렀다.눈꺼풀을 열어 보고, 손톱을 눌러 보고, 입 안을 봤다.잇몸에 검푸른 선은 없었다. 다른 것이었다."…물을 얼마나 못 드셨어요."닷새라는 대답이 총관에게서 왔다.아버지의 눈이 떠졌다.딸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알아보고 나서 손을 들려다 못 들었다."…왔느냐.""예."말이 나오려는 것을 한경이 막았다.말은 나중에 하시라고, 지금 하면 더 안 나온다고 했다.물을 적신 천을 입술에 대 주고, 미음을 데워 오게 했다.아버지가 눈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서재 쪽이었다.* * *낮이 기울도록 방을 지켰다.미음을 두 술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67화 숨

    그 밤 육정은 술을 마시지 않고 왔다.문을 닫고 잠깐 서 있다가, 서 있으라는 사람도 없는데 서 있는 것이 우스웠던지 스스로 앉았다.앉은 자리가 여느 밤보다 반 자 가까웠다.한경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풀고 있었다.은비녀를 뽑아 경대에 놓고, 쪽을 지탱하던 것들을 하나씩 빼내는 참이었다.뒤통수 안쪽의 것이 잘 잡히지 않아 손이 두 번 헛돌았다."…내가 하겠소."한경이 손을 내렸다.그가 뒤로 돌아 앉았다.무릎이 등에 닿을 만큼 가까웠고, 손이 올라와 머리를 더듬었다.비녀를 찾는 손이 서툴러서 목덜미를 두 번 스쳤다.스칠 때마다 잔머리가 살에 눌렸다.마지막 하나가 빠지자 머리가 한꺼번에 흘러내렸다.등을 덮고, 허리께에서 멎었다.그 무게가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한경이 목을 한 번 뒤로 젖혔다.젖힌 목 아래로 등불이 들었다.뒤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그의 손이 머리에 얹혀 있었다.빼낼 것이 더 없는데도 내려가지 않았다.손가락이 머리 사이로 들어가 두피에 닿았고, 거기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빗질도 아니고 쓰다듬는 것도 아닌, 무엇을 확인하는 손이었다.한경이 고개를 돌렸다.돌리자 얼굴이 가까웠다.코끝이 반 치였고, 그의 숨이 뺨에 닿았다.술 냄새가 없어서 숨이 그냥 숨이었다.그가 움직이지 않았다.손도 머리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눈도 감기지 않았다.눈이 이쪽 입에 가 있었다.빗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등불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났고, 그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의 숨이 어긋났다가 맞았다가 했다.그가 고개를 반 치 기울였다.기울면서 손이 머리에서 내려와 목 뒤에 닿았다.손바닥 전체가 목덜미를 감쌌고, 엄지가 귀 아래 움푹한 자리에 놓였다.거기서 맥이 뛰고 있었으므로 그의 엄지 아래에서 그 맥이 그대로 셌다.숨이 입술 위에 닿았다.닿는 자리가 뜨거웠다가, 그가 조금 물러나면 서늘해졌다가, 다시 뜨거워졌다.목 뒤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끌어당기는 힘이었다.한경의 무릎이 방바닥에서 반 치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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