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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름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3 17:06:06

처마 끝에서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낮부터 오던 비가 저녁에 가늘어졌다가 밤에야 그친, 비 잦은 가을의 시월 초이레였다.

그 밤, 후원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명주가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시녀들이 침상으로 달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였다.

밖은 사람이 뛰는 소리, 누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명주가 조심히 회랑으로 나가자 물을 나르던 하인 몇이 명주를 지나쳐 후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부인은 들어가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녀가 명주의 팔을 잡아끌었는데, 잡아끄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부인."

명주가 팔을 흔들어 뿌리치자 시녀가 놀라 손을 놓치고 말았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명주는 맨발인 채로 후원을 향해 걸었고, 등이 지나갈 때마다 젖은 마당이 번들거리며 발가락 사이로 흙이 들어왔다.

차가운 것이 먼저 오고 미끄러운 것이 나중에 왔다.

문 앞에 선 사람들이 명주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길을 텄다.

방 안에는 의원 둘, 여자 하인 여럿이 분주했다.

더운 냄새, 비릿한 쇠 냄새.

그 냄새가 코에 닿자 명주의 숨이 반만 들어왔다.

방 안에 서란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이불 아래가 온통 붉었다.

"피… 피가…"

명주가 서란이 걱정되어 침상으로 몇 걸음 더 다가가자 서란이 눈을 번쩍 뜨며 그녀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언니."

명주가 붉은 이불 앞에 무릎을 꿇고 서란의 손을 찾았다.

땀에 젖어 머리칼이 이마에 가 붙어 있는 창백한 서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명주를 향해 물었다.

한 마디 하고 숨을 쉬고 나서 다음 마디가 왔다.

"언니가… 왜 그러셨어요."

서란의 손을 찾던 명주의 고운 손이 멈춰 섰다.

"응? 내가 무얼…"

"약을…"

명주의 소매를 움켜쥐는 서란의 손이 이제 갈라져 있지 않고 매끈한 분홍빛이 돌았다.

"제가 언니를 얼마나 믿었는데…"

방 뒤쪽에서 누군가 흐느꼈고, 흐느낌이 번지듯 옆으로 옮겨 갔다.

명주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 채로 멍하니 서란을 바라보았다.

그때 육정이 다급하게 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명주도 서란도 바라보지 않고 그저 하인에게 일을 따져 묻는 눈빛이었다.

하인이 육정에게 고개를 숙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고했다.

"약봉지, 약봉지가 여기 있습니다.

부인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종이가 육정 앞에 놓이자 서란의 시녀 매향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안태 약이 아니옵니다."

매향이 봉지를 폈다.

마른 것 몇 조각이 종이 위에 쏟아졌는데, 그중 하나를 손끝으로 밀어 따로 놓았다.

"소인이 후원에서 이 년을 달였습니다.

이건 안 들어갑니다."

"…"

"노야. 안태는 달이면 쓴 내가 납니다. 이건 답니다.

소인이 아침에 물을 올려놓고 김이 오르는데 단내가 나서, 손이 떨려서 불을 껐습니다.

껐다가 다시 켰다가, 켰다가 또 껐습니다."

육정이 조용히 하인이 내민 약봉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서란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로 멈추어 있는 명주를 가만히 일으키며 물었다.

"부인, 이것을 부인이 보내셨소?"

"예. 제가 보냈습니다."

명주의 대답에 방 안이 일순간 완벽하게 조용해졌다.

명주가 한 번 더 대답했다.

"제가 보냈습니다."

---

초하가 끌려 나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명주의 옷을 개고 머리를 빗기고 밤에 문밖에서 자던 아이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명주는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초하가 마당에 무릎을 꿇었는데, 앞치마가 젖어 몸에 붙어 있었다.

그 앞치마에 붉은 실로 잎사귀 수가 놓여 있었다.

지난봄에 명주가 제 바느질 상자에서 실을 꺼내 주었고, 초하는 그 실을 받고 사흘 밤을 앉아서 수를 놓았다.

등불이 늘었다. 하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처마 밑에 붙어 섰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명주가 그 앞으로 가려는데 누가 팔을 잡았다.

"초하야."

초하가 고개를 들지 않았고, 이마가 흙에 닿을 만큼 내려가 있었다.

"초하야, 나를 보아라."

초하는 명주를 보지 않고 땅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가 시키셨습니다."

명주가 입을 열었는데 제 목소리가 저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내가 무얼 시켰느냐."

초하의 이마가 흙바닥으로 더 내려갔고, 명주가 숨을 삼키고 다시 물었다.

"내가 너한테 무얼 시켰느냐."

마당의 어느 입도 열리지 않았다.

명주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느 얼굴 하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아무도 명주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명주가 육정을 보며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다.

한 번만 물어봐 주면 대답할 수 있었다.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물어보면 알 것 같았다.

육정은 묻지 않았다.

그가 돌아섰다. 돌아서기 전에, 오른손 엄지가 왼쪽 광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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