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2화

Penulis: 루니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29 10:54:04

“돌쇠야.”

해원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문밖의 침묵이 한층 짙어졌다.

허담은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를 천천히 돌렸다.

안쪽 빗장에 걸린 쇠가 짧게 긁히며 멎었고,

방 안에는 돌쇠의 거친 숨과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남았다.

해원은 여전히 그의 앞섶을 쥐고 있었다.

“마님.”

“왜?”

“이제 문을 여셔야 합니다.”

“열고 싶으냐?”

돌쇠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가 다시 해원에게 돌아왔고,

그사이 적삼 아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지금 나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습니다.”

“누가 못 오게 한대?”

“이 집이 그렇습니다.”

해원은 입가를 올렸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앞섶을 잡아당기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단숨에 좁아졌다.

젖은 나무와 땀, 송진이 뒤섞인 냄새가 소복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돌쇠는 고개를 숙이지도,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

“손을 놓지 마라.”

“명하시는 겁니까?”

“허락하는 거야.”

그 말이 떨어진 뒤에야 돌쇠의 손이 움직였다.

해원의 허리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

먼저 소복 자락 끝을 가볍게 건드렸고,

이어 손등으로 옆선을 더듬듯 천천히 올라왔다.

닿을 때마다 허락을 확인하는 듯 조심스러웠기에,

해원은 오히려 숨을 더 깊이 들이켰다.

문밖에서 약갑의 잠금쇠가 작게 부딪혔다.

허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해원 마님.”

차분한 음성이었으나 끝에 얇은 날이 숨어 있었다.

해원은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돌쇠의 적삼 앞섶을 더욱 세게 쥐었다.

매듭 아래 천이 팽팽히 당겨지자 돌쇠가 짧게 숨을 토했다.

“의원 나리가 화가 난 모양이구나.”

“저분보다 제가 여기 있는 게 더 큰일입니다.”

“후회하느냐?”

“아직은 아닙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해원의 등 뒤로 아직 닫히지 않은 옷고름이 살짝 벌어졌다.

돌쇠의 시선은 그 틈에 머물지 않으려 애썼으나, 피할수록 더 선명하게 돌아왔다.

직접 닿는 손길보다 그 절제를 지켜보는 일이 더 달았다.

해원은 문밖까지 들리도록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내일도 올 것이냐?”

돌쇠의 시선이 흔들렸다.

“잊히면 안 오겠습니다.”

“잊힐 것 같으냐?”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그 대신 돌쇠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빗장을 올리기 전,

해원의 손이 여전히 제 앞섶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님.”

“왜 또.”

“정말 보내실 겁니까?”

“오늘은.”

짧은 한마디에 돌쇠의 눈빛이 달라졌다.

곧이어 문고리가 다시 돌아갔다. 허담이 바깥에서 한 번 더 힘을 준 모양이었다.

“복례.”

“예, 의원 나리.”

“안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지?”

복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해원의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들킬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선명해져서였다.

마침내 돌쇠가 빗장을 올렸다.

문이 열리자 약향이 먼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허담은 반듯한 도포 차림으로 서 있었다.

흐트러진 곳은 없었으나,

시선은 해원의 느슨한 옷고름과 돌쇠의 구겨진 앞섶을 차례로 훑었다.

“진맥하러 왔습니다.”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그건 제가 판단하지요.”

허담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돌쇠는 한 걸음 물러났다.

두 사람의 어깨가 스쳤지만, 어느 쪽도 먼저 사과하지 않았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돌쇠가 문턱을 넘으려 하자 해원이 불렀다.

“돌쇠야.”

그가 돌아보았다.

“내일 밤 누가 올지는 내가 정해.”

돌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번 더 해원을 바라본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담은 약갑을 내려놓고 해원 앞에 앉았다.

“손목을 주십시오.”

해원이 팔을 내밀자 그는 흰 천을 덮고 맥을 살폈다.

손길은 의원답게 단정했으나, 손끝이 머무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맥은 빠른데 열은 없군요.”

“그럼 무슨 병인가요?”

허담의 시선이 닫힌 문으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열병 환자의 맥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까이 둔 사람의 맥입니다.”

해원은 웃었다.

“그런 병도 고칠 수 있어요?”

“원인을 멀리하면 가라앉겠지요.”

“사람을 멀리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허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해원의 손목을 조금 돌려 소매 안쪽을 살폈다.

하얀 천 위에 작은 송진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의 엄지가 그 흔적 위에 잠시 머물렀다.

“저 사내가 어디까지 손을 댔습니까?”

해원은 대답 대신 입가만 올렸다.

허담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소매 끝으로,

다시 닫힌 문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대답하십시오.”

해원은 문밖을 바라보았다.

“내일 다시 오면 그때 물어보세요.”

“누가 다시 온다는 말입니까?”

해원이 손목을 거두려 하자 허담이 소매 끝을 놓지 않았다.

“그건 내일 정한다고 했잖아요.”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그러다 허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오겠습니다.”

“언제요?”

“돌쇠보다 먼저.”

해원의 웃음이 아주 천천히 깊어졌다.

“의원 나리도 차례를 기다릴 줄 아시네요.”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열녀문 아래 색귀   20화

    해원은 다음 날 아침 돌쇠를 불렀고,별당 문은 열어 두었으나 그는 문턱 밖에서 더 들어오지 않았다.마당 건너편에는 허담이 약갑을 내려놓고 있었는데,전날 해원이 약만 두고 가라고 했던 탓에 계단 아래에서 발을 멈춘 채였다.거울 앞에 앉은 해원은 옥비녀를 머리에 꽂은 채 돌쇠를 바라봤다.“들어와.”돌쇠는 문턱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들어가도 됩니까?”“불렀으니까.”그제야 한 발 안으로 들어왔지만,시선은 해원의 얼굴보다 비녀에 먼저 닿았다.어제 제 품에서 떨어졌던 물건이라 눈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빼고 싶어?”“예.”“오늘은 안 돼.”돌쇠의 손가락이 옷자락 곁에서 접혔고,해원은 거울로 그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으며,비녀를 한 번 더 본 뒤 스스로 문턱 쪽으로 물러났다.“왜 가?”“안 된다고 하셨으니까요.”“갖고 싶은데도?”돌쇠는 비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숨을 삼켰다.“더 보고 있으면 또 손이 먼저 갈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해원의 손이 옥비녀 끝에서 멈췄다.어제는 욕심이 먼저였으나 오늘은 물러날 자리를 골랐고,해원은 잠시 그를 본 뒤 손짓했다.“이제 와.”돌쇠가 고개를 들었다.“비녀만 빼.”“허락하시는 겁니까?”“이번에는.”그가 천천히 다가오자 해원은 등을 보였고,거울 속에서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거친 손이 옥비녀 가까이 올라왔으나 곧장 닿지는 않았다.“머리카락에는 닿아도 됩니까?”“필요한 만큼만.”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돌쇠의 손가락이 매끈한 옥을 감쌌다.이윽고 비녀가 검은 머리 사이에서 빠져나오자 풀린 머리카락이 해원의 등 위로 흘러내렸고,가까워진 돌쇠의 숨도 함께 흐트러졌다.다만 그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지 않았으며, 옥비녀만 받쳐 들었다.해원이 손바닥을 내밀자 돌쇠는 곧바로 비녀를 올려놓지 못했다.엄지가 옥 표면을 한 번 쓸었고,해원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비녀가 손바닥 위로 옮겨졌다.“아직 놓기 싫지?”“예.”“그런데 놓았

  • 열녀문 아래 색귀   19화

    “못 봤다고 했지?”흰 옥비녀가 마루 위에서 멈췄다.돌쇠도 허담도 허리를 굽히지 못했다.해원은 비녀보다 두 남자의 손을 먼저 봤다.한쪽은 대패 자국으로 거칠었고, 다른 한쪽은 약재 물이 배었지만 반듯했다.허담의 손이 비녀를 향해 움직였다.돌쇠도 뒤늦게 손을 내밀었다.해원이 옥비녀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둘 다 손대지 마.”두 손이 동시에 멎었다.해원은 직접 비녀를 집었다.차갑던 옥 표면에는 돌쇠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비녀 끝에 붙은 대팻밥 한 조각을 손톱으로 떼어 냈다.밤새 얼마나 오래 품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갖고 싶다고 했지.”돌쇠의 시선이 비녀에 붙었다.“예.”“가져도 된다고는 안 했어.”“알고 있습니다.”“알면서 가져갔고, 물었을 때는 못 봤다고 했네.”돌쇠는 변명하지 못했다.허담이 약갑을 내려놓았다.“거짓말까지 한 사람을 다시 곁에 두실 겁니까?”해원이 고개를 돌렸다.“그 말을 할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해요?”허담의 입술이 닫혔다.“훔치지 않았으니 돌쇠보다 낫다고 생각했죠?”“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지금도요?”허담은 대답하지 못했다.해원은 그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대답 못 하는 걸 보니 아직도 그러네.”허담의 맥이 손끝 아래에서 빠르게 뛰었다.“다시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누가요?”대답이 늦어졌다.“의원 나리가?”“마님께서 원하신다면.”“그 말을 끝까지 하면 의원 나리도 오늘은 돌아가야 해요.”해원이 손을 놓자 허담은 더 말하지 못했다.돌쇠가 마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제가 잘못했습니다.”“무엇을?”“허락 없이 가져갔습니다.”“또.”“못 봤다고 거짓말했습니다.”“또.”돌쇠는 비녀를 바라보다 입술을 다물었다.해원이 옥비녀 끝으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내가 찾아오길 바랐어?”돌쇠의 손이 천천히 접혔다.“갖고 있고 싶었습니다.”“그게 전부야?”“그 말까지 하면 더 비겁해질 것 같습니다.”

  • 열녀문 아래 색귀   18화

    돌쇠는 해원의 비녀를 훔칠 생각이 없었다.적어도 별당 마루의 대팻밥을 쓸어 담을 때까지는 그랬다.새벽빛이 담장 위로 번지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아직 등잔불이 남아 있었다.돌쇠는 닫힌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기다리는 것과 부름받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전날 밤 배웠다.바구니를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해원은 풀어진 머리를 한쪽 어깨로 넘긴 채 서 있었다.손목에는 허담의 갓끈이 그대로 감겨 있었다.“아직도 안 갔어?”“치울 게 남았습니다.”“나무 조각보다 네가 더 오래 남아 있네.”돌쇠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만 갓끈에서 해원의 머리로 옮겨 갔다.검은 머리 사이에 꽂힌 옥비녀가 등잔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해원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봐?”“아무것도 아닙니다.”“아무것도 아닌 얼굴은 아닌데.”그녀가 비녀를 뽑았다.머리카락이 어깨와 등 위로 한꺼번에 흘러내렸다.돌쇠의 손이 바구니 가장자리를 눌렀다.해원은 비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갖고 싶어?”돌쇠의 대답은 늦었다.“예.”“왜?”“마님이 늘 몸에 지니는 것이니까요.”“그걸 가지면 나도 네 쪽에 남는 것 같아?”돌쇠는 부정하지 못했다.“갖고 싶다고 다 가져도 되는 건 아니라는 말, 들었지?”“들었습니다.”“그럼 돌아가.”회랑 끝에서 복례가 해원을 불렀다.“마님, 안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해원이 고개를 돌렸다.최씨 부인이 보낸 사람이 무슨 말을 가져왔는지 묻는 짧은 사이였다.돌쇠의 손이 문턱을 넘었다가 멈췄다.해원이 돌아보면 바로 들킬 거리였다.그 순간 손목에 감긴 허담의 갓끈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돌쇠는 옥비녀를 움켜쥐어 소매 안에 숨겼다.해원이 돌아봤을 때 그는 이미 바구니를 들고 마루 아래에 서 있었다.“왜 아직 있어?”“이제 갑니다.”돌쇠는 별당을 떠나면서도 소매 안 비녀를 놓지 못했다.차갑던 옥은 손바닥의 열을 먹고 빠르게 미지근해졌다.몇 걸음 지나지 않아 비녀 끝이 손바닥을 찔렀다.해원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 열녀문 아래 색귀   17화

    “이미 마님이 제 문 안에 계시니까요.”허담의 말이 끝나자 의원방 안이 조용해졌다.해원은 손가락에 감긴 갓끈을 놓지 않았다.팽팽해진 끈 아래로 그의 숨이 빠르게 오갔다.“다시는 문밖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다리겠다고 했죠.”“그렇습니다.”“둘 중 어느 쪽이 진심이에요?”“둘 다입니다.”해원은 매듭을 한 번 당겼다.허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그럼 오늘은 기다리는 쪽만 보여 줘요.”“무엇을 기다리면 됩니까?”“내가 이걸 풀 때까지.”허담은 손을 올리지 않았다.해원은 매듭부터 풀지 않고 갓 아래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끈이 그의 뺨을 스치며 느슨해졌다.그 순간 허담의 손이 해원의 허리를 끌어당기려다 옷감 위에서 멎었다.“또 참네요.”“풀라고 하신 것은 갓끈뿐입니다.”“내가 허락한 만큼만 가지려고요?”“그러지 않으면 전부 원하게 될 테니까요.”해원은 마지막 매듭을 풀었다.갓이 기울어 책상 위 약서로 떨어졌다.먹 받침이 밀리고 붓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허담은 줍지 않았다.해원은 풀린 갓끈을 그의 목에 느슨하게 둘렀다.“이제 의원인 척 못 하겠네요.”“마님이 벗기셨으니까요.”“갓 하나 풀었다고 남자가 돼요?”허담의 손이 허리에서 등으로 올라갔다.이번에는 해원이 막지 않았다.“어젯밤부터 남자였습니다.”“그런데 오늘까지 의원방에 숨었네.”“여기로 오시면 덜 흔들릴 줄 알았습니다.”“틀렸어요?”허담은 바닥에 떨어진 약서를 보지 않았다.“마님이 들어오신 뒤로 이 방의 모든 것이 달라 보입니다.”“무엇부터요?”“제가 앉던 자리부터.”그의 시선이 해원이 밀어낸 약서와 비뚤어진 먹 받침을 지나 그녀에게 멈췄다.“그리고 문을 열어 두는 일까지.”해원은 갓끈을 목 뒤로 당겨 그의 얼굴을 가까이 끌었다.“내가 벗긴 건 갓이지 예법이 아니에요.”허담의 눈길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예법까지 벗기고 싶으십니까?”“의원 나리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고.”허담의 손이 옷고름 가까이에서 멎었다.“제

  • 열녀문 아래 색귀   16화

    의원방의 등불은 해원이 문 앞에 서자 한 번 크게 흔들렸다.문은 닫혀 있었다.허담은 안에서 기다리면서도 먼저 열지 않았다.해원은 손목에 감은 약향 밴 천을 한 번 당겼다.“들어오십시오.”“먼저 열어 주지는 않네요.”“오실지 제가 정할 수 없으니까요.”해원은 문고리를 잡았다.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안에는 약재 서랍과 낮은 책상, 침상 하나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등불을 켜 둔다더니 정말 진맥만 하려고요?”“필요하시면.”해원은 문을 닫지 않은 채 들어갔다.약향이 별당에서 맡았을 때보다 짙었다.옷이 아니라 벽과 이불, 오래 밴 나무 서랍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여기서는 의원 나리 향을 피할 곳이 없네요.”“다만 문을 닫으면 의원 나리 방에 갇힌 모양이 되겠네.”허담이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해원은 문을 절반만 닫았다.“아직은 이것만.”허담은 남은 틈에 손대지 않았다.해원은 그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했다.약서 위에 손을 얹고 붓을 옆으로 밀자 먹 받침이 비뚤어졌다.“바로잡고 싶어요?”“평소라면 그랬을 겁니다.”“오늘은?”“마님이 무엇을 흐트러뜨리는지 보고 싶습니다.”해원은 그의 손목에 두 손가락을 올렸다.맥박이 곧 손끝을 밀어냈다.“빠르네.”“의원방에 환자가 아닌 분이 오셨으니까요.”해원이 손가락을 손목 안쪽으로 옮겼다.“어젯밤의 남자?”“그 이름으로 부르시면 오늘도 그 사람이 될 겁니다.”“여긴 의원 나리 방인데.”“그래서 더 어렵습니다.”“뭐가요?”허담의 시선이 반쯤 닫힌 문으로 향했다.“제가 정한 곳에서까지 허락을 기다리는 일입니다.”해원은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자기 방에서는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아닙니다.”“거짓말.”허담의 손이 책상 가장자리를 짚었다.정렬돼 있던 약서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는 줍지 않았다.“제가 문을 닫으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이미 그러고 싶은 얼굴인데요.”“그래서 손대지 않는 겁니다.”해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 열녀문 아래 색귀   15화

    돌쇠는 밤이 지나도록 허담의 향이 묻은 손을 씻지 않았다.우물은 몇 걸음 앞에 있었지만 그는 대패부터 집었다.나무 장식의 둥근 면이 얇게 벗겨졌다.해원은 문턱에 기대어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그러다 전부 없어지겠어.”“없어지면 다시 만들겠습니다.”“내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대패날이 나무 위에서 멎었다.돌쇠는 해원의 풀어진 머리와 새로 여민 옷고름을 차례로 살폈다.허담의 약향은 소매뿐 아니라 소복 안쪽까지 깊이 배어 있었다.“마님께 드리려고 깎는 게 아닙니다.”“그럼 왜 깎아?”“손을 멈추면 방 안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날 것 같아서요.”해원이 계단을 내려갔다.소매 끝이 돌쇠의 손등을 스쳤다.옅어졌던 약향이 다시 짙어진 듯했다.“궁금해?”“예.”“어디까지 갔는지?”돌쇠는 대패를 내려놓았다.“묻지 않으려 했습니다.”“왜?”“마님이 고른 밤이니까요.”“그런데 떠나지도 않았잖아.”그의 시선이 깊게 파인 문살에 머물렀다.“떠났으면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내 허락도 없이?”“그래서 밖에 있었습니다.”해원은 그의 바로 앞에 섰다.“의원 나리와도 끝까지 갔어.”돌쇠의 엄지가 나무 장식의 모서리를 눌렀다.한동안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화나?”“의원에게 화가 납니다.”“나한테는?”돌쇠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마님께 화낼 자격이 없다는 게 더 화납니다.”해원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내가 다른 남자를 고른 게 싫어?”“제가 받았던 걸 저 사람도 받았다는 게 싫습니다.”해원은 돌쇠의 손에서 나무 장식을 빼앗아 대패 옆에 놓았다.“내가 너한테 준 걸 의원 나리한테 나눠 준 게 아니야.”그녀가 약향 밴 소매를 들어 올렸다.“그날에는 너를 골랐고, 어젯밤에는 그 사람을 골랐어.”돌쇠의 입술이 닫혔다.“같은 밤 아니었어.”“무엇이 달랐습니까?”“그걸 왜 알고 싶은데?”“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습니다.”“누구보다?”대답이 막혔다.해원의 표정에서 남아 있던 장난기가 사라졌다.“어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