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마누라가 몇 놈까지 품는지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해원은 백도윤을 똑바로 보다가 웃었다.
“죽은 새끼가 끝까지 재수 없네.”
“마님.”
“왜. 죽은 남편 욕하면 열녀문이 무너지냐?”
해원은 도윤 손에 들린 명단을 낚아챘다.
만복, 칠복, 태경, 무진, 진필, 돌쇠, 허담.
그 아래에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내들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이 새끼가 살아 있을 때부터 날 감시했어?”
“질투가 심했습니다.”
“내 손 한 번 제대로 못 잡던 인간이?”
“그러니 더 미쳤겠지요.”
해원은 종이를 반으로 찢었다.
“좋아. 이제부터는 저 병신이 모르는 놈만 만날 거야.”
허담이 얼굴을 굳혔다.
“해원, 그만하십시오.”
“네가 뭔데?”
“이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큰일?”
해원이 허담 앞까지 다가갔다.
“남편 죽고 숨도 쉬지 말라는 게 큰일이지. 내가 누구랑 자든 네 알 바 아니야.”
“아무 사내나 품겠다는 겁니까?”
“아무나 아니고.”
해원이 객주 밖을 가리켰다.
“내가 고른 놈.”
그날 밤 해원은 정말 처음 보는 사내를 골랐다.
장터 끝에서 소금을 팔던 박철웅이었다.
낮에 해원의 장옷 끈이 풀렸을 때 말없이 매듭을 묶어주고도 얼굴 한 번 들지 않았던 사내.
해원이 그의 숙소 문을 두드리자 철웅은 귀신을 본 얼굴이 됐다.
“열녀댁?”
“그렇게 부르면 돌아간다.”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해원.”
철웅이 한참 그녀를 봤다.
“왜 왔소?”
“너랑 자려고.”
철웅이 헛기침을 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싫으면 문 닫아.”
해원이 돌아서려는 순간 철웅이 문을 더 열었다.
“들어오시오.”
“나중에 겁먹고 울지 마.”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것 같은데.”
해원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녘, 복례가 뒷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님, 정말 밤새 계셨어요?”
“응.”
“미치겠네.”
“왜 네가 미쳐?”
“동네에 소문 다 났습니다. 열녀댁이 밤마다 사내 갈아치운다고.”
해원은 장옷을 여미며 웃었다.
“갈아치운 적은 없어.”
“예?”
“한 번 만난 놈 또 만난 적 없잖아.”
복례가 이마를 짚었다.
“그게 더 미친 소리예요.”
이틀 뒤에는 한량 장세륜이었다.
세륜은 해원을 보자마자 능글맞게 웃었다.
“소문 듣고 기다렸습니다.”
“무슨 소문?”
“낮에는 열녀, 밤에는 색녀.”
해원의 웃음이 사라졌다.
“입 조심해.”
“틀렸습니까?”
“틀렸지.”
“뭐가요?”
“색녀는 아무 놈이나 품잖아.”
해원이 세륜의 턱을 잡았다.
“난 골라.”
세륜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럼 오늘은 제가 고른 겁니까?”
“아직.”
“뭘 더 봅니까?”
“겁먹고 도망칠 놈인지.”
세륜이 방문을 닫았다.
“그건 밤새 확인하시죠.”
사흘 뒤에는 역참의 서강이었다.
그는 해원을 보자마자 문부터 닫으려 했다.
“안 됩니다.”
해원이 발을 문틈에 끼웠다.
“왜?”
“최씨 부인이 사람 풀었습니다.”
“뭐?”
“마님과 밤을 보낸 사내를 찾으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답니다.”
해원은 기가 막혀 웃었다.
“그 망할 년이 이제 내 치맛속까지 관리해?”
“웃을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넌 싫어?”
서강이 입을 다물었다.
“싫으면 닫아.”
해원이 발을 뺐다.
문이 닫혔다.
해원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런데 세 걸음도 못 가서 다시 문이 열렸다.
“잠깐.”
해원이 돌아봤다.
서강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사람 없는지 보고 들어오시오.”
“겁쟁이.”
“겁쟁이가 마님을 들이겠습니까?”
그날도 해원은 새벽에 돌아왔다.
그런데 별당 문 앞에 최씨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돌쇠, 허담, 태경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해원이 걸음을 멈췄다.
“이게 무슨 지랄이야?”
최씨 부인이 장부를 바닥에 내던졌다.
“오늘까지 여덟이다.”
“세기도 잘하네.”
“창피한 줄도 모르느냐!”
해원이 피식 웃었다.
“어머님은 며느리 밤일 세는 게 안 창피하세요?”
“이년이!”
최씨 부인의 손이 올라갔다.
해원이 그 손목을 잡았다.
“이번엔 맞기 싫은데.”
“놔!”
“싫어요.”
그때 대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복례가 새파랗게 질려 뛰어왔다.
“마님.”
“왜.”
“큰일 났습니다.”
“뭔데?”
복례가 대문 밖을 가리켰다.
“마님이 밤을 보냈다는 사내들이 전부 왔습니다.”
해원의 눈썹이 올라갔다.
“전부?”
대문이 열렸다.
만복, 칠복, 태경, 무진, 진필, 철웅, 세륜, 서강.
사내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맨 앞에 처음 보는 양반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그가 해원을 위아래로 훑더니 웃었다.
“윤해원 마님?”
“누군데.”
사내가 품에서 붉은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오늘 밤을 사러 왔습니다.”
마당이 얼어붙었다.
사내는 주머니를 바닥에 던졌다.
금전이 쏟아졌다.
“한 냥, 두 냥짜리 머슴들 말고.”
그가 해원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은 제값 받고 자보시지요.”
해원이 천천히 웃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꺼져.”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해원이 한 걸음 다가갔다.
“내가 사내를 고르지.”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가슴을 밀었다.
“어떤 개새끼도 나를 사는 건 아니야.”
그러자 뒤에서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 마음에 드는군.”
해원이 돌아섰다.
대문 밖 어둠 속에서 갓을 눌러쓴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최씨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련님……?”
해원이 눈을 좁혔다.
“누구야?”
최씨 부인이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죽은 네 남편의…….”
사내가 직접 갓을 벗었다.
“형입니다.”
해원의 눈이 커졌다.
남편에게 형이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사내가 웃었다.
“그리고 네가 다음에 잘 사내이기도 하지.”
“왕실이 아니라 네가 먼저 죽어.”해원은 해린이 든 칼을 바라봤다.“내가 왜?”해린의 손끝이 떨렸다.“그 아이 때문이야.”“아이 이름을 말하면 내가 죽는다고?”“그래.”“누가 죽이는데?”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현수가 천천히 해원 앞으로 섰다.“해린아. 칼 내려놔.”“당신이야말로 입 다물어.”“해원은 아무것도 몰라.”“그래서 지금까지 네가 마음대로 했잖아!”해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기억도 빼앗고, 아이도 빼앗고, 이름까지 빼앗았잖아!”해원이 그녀를 바라봤다.“해린.”“왜!”“내 아이 이름.”해린의 얼굴이 굳었다.“말해.”“안 돼.”“내가 죽더라도 알아야겠어.”“안 된다고!”해린이 소리쳤다.그 순간 현수가 해원의 손을 잡았다.“그만하자.”해원이 손을 뿌리쳤다.“너도 알고 있지?”“…….”“내 아이 이름.”현수는 침묵했다.해원이 차갑게 웃었다.“역시 알고 있었네.”“해원아.”“이번에는 나한테 선택권 줘.”현수가 눈을 들었다.“뭘?”“내가 누구를 믿을지.”해원의 시선이 현수에서 해린으로 옮겨갔다.“너희 둘 다 내 인생을 망쳤어.”두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니까 이제 내가 결정할 거야.”해원이 해린에게 다가갔다.“칼 내려.”“가까이 오지 마.”“내가 무서워?”“아니.”“그럼 내려.”해린의 손이 조금씩 내려갔다.그 순간 뒤에서 최씨 부인이 말했다.“해원아, 그 아이 이름은 윤서하야.”모두가 얼어붙었다.해원이 천천히 돌아봤다.“……뭐?”최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네 아이 이름.”현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해린은 칼을 떨어뜨렸다.쨍그랑.“안 돼…….”해원이 최씨에게 다가갔다.“서하?”“그래.”“살아 있어?”최씨가 고개를 끄덕였다.“살아 있어.”해원의 입술이 떨렸다.“어디 있어?”최씨는 대답하지 못했다.해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어디 있냐고!”최씨가 눈을 감았다.“네가 가장 믿었던 곳.”“어디?”“네가 매일 지나던 곳.
“해원의 인생이었어.”현수의 말에 해린의 표정이 굳었다.해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무슨 뜻이야?”해린이 먼저 웃었다.“현수가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나 보네.”“닥쳐.”“왜? 네가 제일 잘 알잖아.”해린이 해원을 바라봤다.“내가 네 인생을 훔친 게 아니야.”“그럼?”“네가 직접 줬어.”해원의 눈빛이 흔들렸다.“내가?”“그래.”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를 살리는 대신 네 인생을 포기하겠다고 네가 선택했어.”현수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그건 네가 강요한 거잖아.”“아니.”해린이 차갑게 웃었다.“내가 아니라 네가 제안했어.”현수가 굳었다.해원이 천천히 현수에게 다가갔다.“뭘 제안했어?”“해원아.”“대답해.”“……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무슨 방법?”현수가 입술을 깨물었다.해린이 대신 말했다.“네가 왕실의 신분을 포기하면 아이를 살려주겠다고 했어.”해원의 얼굴이 굳었다.“그리고?”“네 이름도.”“또?”“네 가족도.”해린이 잠시 멈췄다.“그리고 네가 사랑했던 사람까지.”해원이 현수를 바라봤다.“사랑했던 사람?”현수의 눈빛이 흔들렸다.해린이 웃었다.“바로 나.”해원이 숨을 삼켰다.“뭐?”“그때 현수는 나와 결혼하기로 했어.”현수가 소리쳤다.“그건 계약이었어!”“그래.”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해원은 그걸 몰랐지.”해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나 몰래 결혼까지 했어?”“정확히는 네가 기억을 잃기 전에.”현수가 고개를 숙였다.해원이 그에게 다가갔다.“그럼 내가 왜 너랑 다시 만났어?”“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니까.”“그래서 다시 사랑한 거야?”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해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너 정말 잔인하다.”그 순간 태율이 말했다.“아니.”모두가 태율을 바라봤다.태율은 해린을 가리켰다.“저 여자가 하나 빼먹었어.”해린의 표정이 굳었다.“뭘?”“해원이 왕실을 포기한 이유.”해원이 태율을 바라봤다.“뭔데?”태
“그날 네 옆에 있던 사람이야.”해원은 여자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자신과 너무 닮았다.눈매도, 코도, 입술도.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누구야?”여자가 웃었다.“정말 기억이 안 나는구나.”“대답해.”“내 이름은 윤해린.”해원의 눈이 흔들렸다.“해린?”뒤에서 최씨 부인이 숨을 삼켰다.“안 돼…….”해원이 돌아봤다.“당신도 알아?”최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해린이 대신 말했다.“당연히 알지.”그녀가 최씨를 향해 웃었다.“이 여자가 나를 만든 사람이니까.”“뭐?”해원이 굳었다.최씨가 다급하게 말했다.“해원아, 저 여자의 말 듣지 마.”“왜?”“거짓말이야.”해린이 피식 웃었다.“거짓말?”그녀는 품에서 낡은 사진을 꺼냈다.사진에는 어린 해원과 해린이 나란히 서 있었다.해원의 얼굴이 굳었다.“우리…… 자매야?”“아니.”해린이 말했다.“나는 네 자매가 아니야.”해원이 사진을 뺏어 들었다.“그럼 어떻게 이렇게 닮았어?”“네 얼굴을 본떠 만들었으니까.”허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사람을 얼굴까지 만들어?”해린이 그를 바라봤다.“가능해.”“누가?”해린은 아무 말 없이 현수를 바라봤다.현수의 얼굴이 굳었다.해원이 천천히 현수를 돌아봤다.“너야?”“아니.”“그럼 왜 저 여자가 널 봐?”현수는 대답하지 못했다.해린이 말했다.“강현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 얼굴을 결정했어.”해원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뜻이야?”“네가 사라졌을 때 왕실이 널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거든.”해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그래서 나를 데려왔어.”“내 대역으로?”“그래.”해린이 웃었다.“십 년 동안 나는 네 이름으로 살았어.”해원이 숨을 삼켰다.“그럼 왕실에 있던 건…….”“나야.”현수가 갑자기 말했다.“그만.”해린이 그를 노려봤다.“왜? 이제 와서 숨기게?”현수가 다가갔다.“해원에게 말하지 마.”“이미 늦었어.”해린이 차갑게 웃었다.“네가 해원에게
“강현수의 친동생이었어.”해원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수한테 동생이 있어?”현수의 얼굴이 굳었다.“없어.”태율이 비웃었다.“있어.”“없다고 했잖아.”“네가 죽었다고 처리한 동생.”현수가 태율에게 달려들었다.“입 닥쳐!”두 사람이 엉켜 넘어졌다.허담이 둘을 떼어냈다.“그만해!”해원은 움직이지 않았다.오히려 너무 조용했다.“강현수.”현수가 숨을 몰아쉬며 해원을 바라봤다.“말해.”“…….”“네 동생 이름.”현수의 입술이 굳었다.“강태문.”해원의 눈이 커졌다.“강태문?”그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 어딘가가 번쩍 흔들렸다.어린 시절.눈 오는 밤.한 남자가 자신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던 장면.그리고 웃으며 했던 말.‘해원아, 내가 대신 갈게.’해원이 관자놀이를 붙잡았다.“아…….”현수가 다가왔다.“해원아.”“오지 마!”해원이 소리쳤다.“지금 내 머릿속에 누가 보여.”현수가 멈췄다.“누구?”“태문.”현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네가 기억하고 있어?”“내가 그 사람을 알아.”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릴 때 나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어.”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그런데 왜 죽었다고 했어?”이번에는 최씨 부인이 대답했다.“죽은 게 아니니까.”해원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어디 있어?”최씨는 입을 열지 못했다.해원이 다가갔다.“이번에는 제발 제대로 말해.”최씨가 눈물을 흘렸다.“강태문은 왕실에 들어갔어.”“왜?”“널 대신해서.”해원의 표정이 굳었다.“내 대신?”“왕실은 네가 필요했어. 하지만 네가 도망쳤지.”최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태문이 네 이름을 사용했어.”허담이 욕설을 내뱉었다.“미친…….”해원이 물었다.“얼마나 오래?”“십 년.”해원의 눈이 커졌다.“십 년 동안?”“왕실은 태문을 윤해원으로 알고 있었어.”현수가 고개를 숙였다.해원이 현수를 바라봤다.“너도 알고 있었어?”“그래.”“그런데
“네가 낳은 아이는 이미 죽었어.”해원은 현수를 바라봤다.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품에 안긴 아이가 작은 손으로 해원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해원은 아이를 내려다봤다.그리고 다시 현수를 봤다.“그럼 이 아이는 누구야?”현수는 입을 다물었다.“대답해.”“…….”“또 침묵하면 이번엔 내가 알아서 판단할 거야.”현수가 낮게 말했다.“그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야.”“누구 아이인데?”“말할 수 없어.”해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지겹다.”그녀가 아이를 태율에게 내밀었다.“받아.”태율이 당황했다.“해원아.”“받으라고.”태율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해원은 현수 앞으로 걸어갔다.“너는 내가 미쳐 있다고 생각하지?”“아니.”“그럼 왜 계속 거짓말해?”“널 살리려고.”“그 말 이제 믿지 않아.”해원이 현수의 뺨을 세게 때렸다.찰싹.현수의 얼굴이 돌아갔다.“이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날의 대가야.”해원이 다시 손을 내렸다.“그리고 이것도.”두 번째 손바닥이 현수의 얼굴을 때렸다.“이건 내 아이를 죽었다고 속인 대가.”현수는 맞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허담이 씁쓸하게 웃었다.“처음부터 말하지 그랬어.”현수가 그를 노려봤다.“너까지 끼어들지 마.”“나도 알아.”허담이 해원을 바라봤다.“그 아이가 네 친자가 아니라는 거.”해원이 멈칫했다.“너도?”“그래.”“언제부터?”“오늘.”해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거짓말.”“나도 방금 알았어.”허담은 태율에게 시선을 돌렸다.“문제는 저놈이 알고 있었다는 거야.”태율의 표정이 굳었다.해원이 태율을 바라봤다.“너는?”태율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한참 고개를 숙였다.“알고 있었어.”해원의 얼굴이 굳었다.“처음부터?”“그래.”“그런데 왜 내 아들이라고 했어?”태율이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살아갈 이유가 필요했으니까.”“그래서 남의 아이를 내 아이로 속였어?”“미안해.”“미안하다고 끝날 일이야?”태율이 고개를 숙였다.그때
“강태율……?”해원의 입에서 이름이 새어 나왔다.강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품에 안긴 아이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아이는 울음을 멈췄다.그 모습을 본 순간 해원의 눈빛이 변했다.“그 아이…….”태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네 아들이야.”해원이 그대로 굳었다.현수가 앞으로 뛰어나왔다.“아이 내려놔.”태율이 차갑게 웃었다.“왜?”“당장.”“네가 무슨 자격으로?”현수가 이를 악물었다.“그 아이는 해원의 아들이야.”“그래.”태율이 아이를 바라봤다.“그래서 내가 데리고 있었어.”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네가 찾으러 오지 못하게 하려고.”“누가 시켰어?”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해원이 한 걸음 다가갔다.“태율아.”그가 움찔했다.“나한테 말해.”태율은 한참 해원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네가 나를 죽었다고 믿게 만든 것도 나야.”해원의 얼굴이 굳었다.“무슨 말이야?”“내가 죽은 척했어.”“왜?”“최씨가 부탁했어.”최씨 부인이 고개를 숙였다.해원이 그녀를 노려봤다.“또 당신이야?”“해원아…….”“당신 때문에 몇 번을 속아야 해?”최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널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그런데 왜 태율까지 숨겼어?”최씨는 대답하지 못했다.태율이 대신 입을 열었다.“내가 네 아이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해원이 숨을 삼켰다.“그럼 현수는?”태율이 현수를 바라봤다.“저 새끼는 아이가 죽었다고 믿게 만들었지.”현수가 소리쳤다.“네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잖아!”“네가 죽였다고 속였으니까.”“그건 해원을 지키려고—”“웃기지 마.”태율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넌 해원을 지킨 게 아니라 네 곁에 묶어둔 거야.”허담이 현수에게 다가갔다.“이제 인정해.”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해원은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그리고 태율에게 물었다.“내 아이를 왜 지금 데려온 거야?”태율의 얼굴이 굳었다.“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어.”“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