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사진 부스를 나온 뒤에도 서윤은 몇 번이나 지갑을 열었다.방금 넣은 네 컷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첫 장은 둘 다 카메라를 보고 있었고.두 번째는 서윤이 도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세 번째는 도현이 서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순간.마지막은—“또 봅니까?”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서윤이 얼른 지갑을 닫았다.“아니.”“봤잖습니까.”“내 지갑인데 내가 보든 말든.”“그건 맞습니다.”도현이 웃었다.서윤은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물었다.“도현 씨 것도 줘봐.”“왜요?”“잘 넣었나 보게.”“똑같은 사진입니다.”“그래도.”도현이 지갑을 꺼내 보여줬다.사진은 카드 사이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서윤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거기서 빼면 안 돼요.”“언제까지요?”“계속.”“새 사진이 생겨도?”서윤이 잠시 생각했다.“그건 그때 생각하고.”“기준이 없네요.”“내 마음이 기준이야.”“가장 어려운 기준인데.”“싫어요?”“아니요.”도현은 지갑을 다시 넣었다.“따르겠습니다.”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 뒤로도 한참을 걸었다.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관광지를 찾아가지도 않았고 유명한 곳을 검색하지도 않았다.작은 가게를 구경하고,편의점에서 음료를 하나 사고,벤치가 보이면 잠깐 앉았다.그러다 어느 순간 서윤이 걸음을 멈췄다.“나 다리 아파.”도현이 바로 주변을 둘러봤다.“숙소 갈까요?”“응.”“택시 부르죠.”“얼마나 걸리는데?”도현이 지도를 확인했다.“걸으면 삼십 분 정도.”“택시는?”“금방입니다.”서윤이 잠깐 고민하다가 그의 팔에 매달렸다.“택시.”“걷는 건 끝?”“오늘 충분히 했어.”“파도랑 뛰기까지 했으니까요.”“그건 운동으로 치면 안 돼.”“왜요?”“재밌었으니까.”도현이 웃었다.“재미있는 운동도 있습니다.”“오늘은 없어.”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서윤은 침대에 엎어졌다.“못 움직이겠다.”도현이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씻고 누우십시오.”“조금만 있다가.”“
“진짜 하나도 힌트 안 줄 거예요?”“네.”도현의 대답은 여전히 단호했다.서윤은 결국 그의 손을 놓았다.“됐어. 나도 이제 관심 없어.”“정말입니까?”“응.”“그럼 다행이고요.”서윤이 바로 다시 그의 팔을 잡았다.“근데 이미 찍은 건 맞아요?”도현이 웃음을 터뜨렸다.“서윤.”“왜.”“관심 없다면서요.”“그건 방금 전의 나고.”“십 초도 안 됐습니다.”“사람 마음은 변하는 거야.”도현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서윤의 손을 떼어내지는 않았다.둘은 그렇게 골목 끝까지 걸었다.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던 길이었다.그러다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었다.서윤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아, 잠깐.”도현이 웃었다.“오늘도 머리가 난리네요.”“강릉이 나한테 왜 이래.”“바닷가니까요.”“도현 씨는 멀쩡하잖아.”“짧으니까 그렇죠.”서윤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그때 멀리 작은 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큰길에서 옆으로 빠지는 좁은 길이었다.“저기로 갈래요?”“저기요?”“응.”“뭐 있는지 압니까?”“몰라.”서윤이 먼저 방향을 틀었다.“그래서 가보는 거야.”도현도 따라왔다.“오늘 여행 방식에 완전히 적응했네요.”“그러게.”좁은 길을 따라 몇 분쯤 걸었을 때였다.먼저 들린 건 소리였다.파도.서윤이 걸음을 멈췄다.“또 바다야?”길 끝으로 내려가자 작은 해변이 나타났다.아까 지나온 곳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다.서윤은 눈을 크게 떴다.“여기 좋다.”이번에도 검색해서 찾은 곳은 아니었다.그냥 길이 보여서 들어왔고,그 끝에 바다가 있었다.“오늘은 바다가 자꾸 나오네.”서윤이 말했다.“우리가 바다 쪽으로 계속 걷고 있으니까요.”“그렇게 현실적으로 말하지 마.”도현이 웃었다.둘은 모래 위로 내려갔다.서윤은 이번에는 파도 가까이까지 갔다.물이 밀려오자 뒤로 물러났다.다시 다가가고.또 피했다.도현은 조금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도현 씨도 와요.”“신발 젖습니다.”
서윤이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이 꽤 밝았다.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침대 끝까지 길게 번져 있었다.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어젯밤 뒤집어둔 휴대폰도 그대로였다.도현의 팔은 자신의 허리 위에 느슨하게 얹혀 있었다.서윤이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도현은 아직 자고 있었다.“……진짜 자네.”평소라면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있을 사람이었다.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도현을 구경했다.평소보다 흐트러진 머리.힘이 완전히 빠진 얼굴.이불 밖으로 조금 나온 손.그 순간 어제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서로 몰래 한 장씩 찍기.서윤의 시선이 협탁으로 향했다.휴대폰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어젯밤에도 몇 번이나 고민했다.바다를 보는 도현.젖은 머리로 침대에 앉아 있던 도현.밤길을 걷던 도현.그때마다 조금 더 기다렸다.그런데 지금은—서윤이 아주 천천히 휴대폰을 집었다.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켰다.화면 안에 도현이 들어왔다.잠든 얼굴만 찍으려다 조금 뒤로 물렸다.흐트러진 이불.베개.침대 옆 바닥에 나란히 놓인 두 사람의 슬리퍼.그리고 잠든 도현.서윤은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찰칵.단 한 장.곧바로 휴대폰을 뒤집었다.“됐다.”괜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도현이 눈을 뜰까 봐 가만히 있었는데—“찍었습니까?”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서윤이 굳었다.“……자고 있었잖아.”도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방금 깼습니다.”“봤어요?”“뭘요.”“내가 찍는 거.”“확실히는 못 봤습니다.”서윤이 경계하듯 휴대폰을 끌어안았다.“그럼 모르는 거야.”“알겠습니다.”“그리고 보여달라고 하면 안 돼.”“마지막 날까지.”“응.”도현이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서윤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왜 웃어요.”“당신이 드디어 한 장 쓴 것 같아서요.”“모른다니까.”“네. 모릅니다.”“진짜 얄미워.”말은 그렇게 하면서 서윤은 웃고 있었다.자신의 한 장은 끝났다.이제 남은 건 도현이었다.시간을
도현의 머리가 거의 마를 때까지 서윤은 수건을 놓지 않았다.“됐어.”수건을 치우자 헝클어진 머리가 드러났다.서윤이 손끝으로 앞머리를 정리했다.“이제 사람 같다.”“그전에는 뭐였습니까.”“물에 빠진 사람.”“바다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요.”“비유잖아.”도현이 서윤의 손목을 잡았다.“이제 당신 차례 아닙니까?”“뭐가?”“샤워.”“아.”서윤은 욕실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도현을 봤다.“나 씻고 나오면 뭐 할 거예요?”“기다려야죠.”“그냥?”“뭘 원합니까?”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건 내가 씻고 나와서 생각할래.”그녀가 손목을 빼내려 하자 도현이 바로 놓아주었다.서윤은 몇 걸음 가다가 돌아봤다.“자면 안 돼요.”“안 잡니다.”“진짜.”“기다리겠습니다.”그제야 서윤이 욕실로 들어갔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서윤은 편한 얇은 잠옷 차림이었다.머리는 아직 젖어 있었다.도현은 침대 헤드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서윤이 나오자 바로 화면을 껐다.“뭐 봤어요?”“내일 날씨.”“계획 세운 거 아니죠?”“비가 오는지만 봤습니다.”“와?”“안 옵니다.”“그럼 됐네.”서윤은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닦다가 드라이어를 찾았다.도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주세요.”“내가 할 수 있어.”“압니다.”서윤이 웃었다.“우리 오늘 이 말 몇 번 하는지 알아요?”“뭘요.”“‘할 수 있어.’ ‘압니다.’”도현도 웃었다.“그래도 주십시오.”결국 서윤은 드라이어를 넘겼다.침대 끝에 앉자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왔다.도현의 손가락이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갈랐다.서윤은 눈을 감았다.“좋아.”“뭐가요.”“여행 와서 이런 거.”“집에서도 해주는데요.”“그러니까 좋은 거야.”도현이 바람을 약하게 줄였다.“아까 제가 한 말이랑 똑같네요.”“뭐?”“낯선 데서도 똑같은 거.”서윤은 대답 대신 웃었다.머리를 다 말린 뒤에도 두 사람은 바로 눕지 않았다.서윤은 창가로 갔다.밖은 완전히 어두웠다
서윤이 다시 눈을 뜬 건 창밖의 빛이 조금 어두워진 뒤였다.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낯선 천장.낯선 침대.그리고 베개 대신 머리 아래에 놓인 익숙한 팔.서윤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도현 씨.”“깼습니까?”바로 대답이 돌아왔다.서윤은 고개만 조금 들었다.“안 잤어요?”“잠깐 졸았습니다.”“나 얼마나 잤어?”“시간 안 봤습니다.”“진짜?”“네.”서윤은 협탁 위 휴대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헐.”“몇 시입니까.”“일곱 시 넘었어.”그제야 배에서 작게 소리가 났다.서윤이 그대로 멈췄다.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들었습니다.”“못 들은 척해.”“꽤 크게 났는데요.”“그러니까 못 들은 척하라고.”서윤은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배고파.”“나갈까요?”“응.”그러면서도 일어나지는 않았다.도현이 물었다.“지금?”“오 분 뒤.”“아까도 십 분 더 잔다고 하고 꽤 오래 잤습니다.”“여행 왔으니까 괜찮아.”“그건 맞습니다.”서윤이 슬쩍 웃었다.“도현 씨.”“네.”“팔 안 저려요?”“조금.”서윤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왜 말 안 했어?”“잘 자길래.”“그래도 빼지.”“당신이 잡고 있었습니다.”서윤은 그제야 자신의 손을 봤다.도현의 셔츠 자락이 손안에 잡혀 있었다.“내가?”“네.”“기억 안 나.”“자는 사람이 어떻게 기억합니까.”서윤은 구겨진 셔츠 부분을 손바닥으로 펴줬다.“미안.”“괜찮습니다.”“이것도 찍었어?”도현이 웃었다.“아니요.”“진짜?”“후보로는 생각했습니다.”서윤의 눈이 커졌다.“후보?”“한 장만 찍기로 했으니까.”“아.”서윤은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했다.“그러면 안 찍은 게 다행인가.”“왜요.”“나 자고 있었잖아.”“평소 모습 찍자면서요.”“그건 맞는데…….”서윤이 잠깐 고민했다.“다음에는 그냥 찍어요.”“자는 모습도?”“응.”“나중에 취소하기 없습니다.”“대신 진짜 이상하게 나오면 공개만 하지
강릉에 가까워질수록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서윤은 아까보다 자주 창문 밖을 내다봤다.그러다 멀리 푸른빛이 보이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도현 씨.”“네.”“저거 바다 아니야?”도현도 앞을 보며 대답했다.“맞는 것 같습니다.”“진짜?”서윤이 창문 가까이 붙었다.건물 사이로 잠깐 보였다 사라지는 푸른색.그것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졌다.“숙소 가지 말고 진짜 바로 가요.”“그러기로 했잖습니까.”“혹시 피곤해서 마음 바뀔까 봐.”“안 바뀌었습니다.”“그럼 가까운 데 아무 데나.”“검색 안 하고?”서윤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바다만 나오면 돼.”도현은 길을 따라 그대로 차를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멈췄다.서윤은 문을 열자마자 바람에 머리카락부터 흐트러졌다.“추워.”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차에 타지는 않았다.도현이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을 꺼냈다.“입어요.”“도현 씨는?”“저는 괜찮습니다.”“또 그러지.”서윤은 옷을 받아 입었다.“같이 추워요.”“그건 이상한 요구인데요.”“그럼 나중에 춥다고 하지 마.”“알겠습니다.”두 사람은 나란히 바다 쪽으로 걸었다.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서윤의 걸음도 빨라졌다.모래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한 순간 그녀가 멈췄다.“와.”그 말 하나뿐이었다.도현은 옆에서 서윤을 바라봤다.서윤은 한동안 바다만 봤다.사진부터 찍지도 않았다.휴대폰도 꺼내지 않았다.그냥 눈앞에 펼쳐진 물결을 보고 있었다.“좋다.”도현이 물었다.“많이요?”“응.”서윤이 그제야 옆을 돌아봤다.“강릉 고르길 잘했다.”“둘이 골랐죠.”“동시에.”“네.”“그것도 신기해.”서윤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은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만 가까이 걸었다.서윤은 파도가 밀려왔다 빠지는 모습을 보다가 도현에게 말했다.“밤에 여기 다시 올까?”“벌써 밤 산책 장소 정하는 겁니까?”“아.”서윤이 입을 다물었다.“그러네.”“계획 없이 걷기로 했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