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화요일 오전 7시 35분.차도현은 평소보다 10분 일찍 식탁에 앉았다.서윤은 주방에서 토스트를 접시에 옮기고 있었다.“서윤.”“응?”“어제 말씀하신 물건 말입니다.”서윤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웃었다.“무슨 물건?”“제가 우산을 돌려드리면서 함께 드렸다는 것 말입니다.”“아아, 그거?”“기억나게 해 주십시오.”서윤은 토스트 접시를 내려놓았다.“당신 어제부터 계속 궁금했구나?”“그렇습니다.”“잠은 잘 잤어?”“잘 잤습니다.”“그럼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네.”도현은 그녀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아내가 일부러 놀리시는군요.”“응.”서윤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근데 그거 보려면 오늘 퇴근하고 나서 기다려야 해.”“왜요?”“어디 뒀는지 찾아야 하거든.”“아직 가지고 계십니까?”서윤은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당연하지.”도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제가 드린 걸 그렇게 오래 보관하셨습니까?”서윤은 어깨를 으쓱했다.“당신만 영수증 보관하는 줄 알았어?”오후 6시 50분.도현이 집에 돌아왔을 때 서윤은 침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옆에는 작은 보관함이 열려 있었다.“찾으셨습니까?”서윤은 고개를 들었다.“응. 그런데 당신 생각보다 일찍 왔네?”“궁금해서 서둘렀습니다.”“회의는?”“예정대로 마쳤습니다.”서윤은 웃으며 보관함을 가리켰다.“그럼 여기 앉아.”도현은 그녀 옆에 앉았다.서윤은 보관함 안에서 연한 하늘색 봉투 하나를 꺼냈다.봉투는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조금 닳아 있었다.“자.”도현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이겁니까?”“응. 열어 봐.”봉투 안에는 작은 카드 한 장과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도현은 먼저 카드를 펼쳤다.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우산 덕분에 비를 피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커피를 사겠습니다.그 아래에는 차도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도현은 잠시 카드를 바라봤다.“……이걸 아직 가지고 계셨군요.”서윤은 웃었다.“기억나?”“네. 이제 기억납니다.”“당신
월요일 오후 7시 15분.“차도현 씨, 잠깐만요.”서윤의 목소리에 서재에서 책을 정리하던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입니까?”서윤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우리 가족 기록집 만들려면 자료부터 모아야 하잖아.”“그렇죠.”“사진은 내가 정리할게. 당신은 예전 기록 좀 찾아봐.”도현이 의자를 빼 주었다.“어떤 기록을 말씀하십니까?”“구름이랑 호두 처음 데려온 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우리 둘 이야기도 조금 넣고.”서윤은 노트북을 책상에 내려놓았다.“그런데 사진만 넣으면 심심하니까 짧은 글도 쓰자.”“좋은 생각입니다.”“예를 들면 호두가 당신 시계 물고 도망갔던 날.”도현이 웃었다.“그 사건도 기록해야 합니까?”“당연하지. 역사적인 사건인데.”“제 시계 입장에서는 재난이었습니다.”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제목은 ‘호두와 사라진 시계’.”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기록하겠습니다.”오후 8시.두 사람은 서재 바닥에 나란히 앉아 오래된 사진과 메모를 정리하고 있었다.서윤은 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기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이것 봐.”화면에는 호두가 처음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작은 몸으로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소파 밑으로 들어가던 순간이었다.도현이 미소를 지었다.“저때는 정말 작았군요.”“지금은 소파 위를 날아다니잖아.”“구름이는 처음부터 조용했고요.”서윤은 다음 사진을 보여 줬다.구름이가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이 사진도 넣자.”“좋습니다.”도현은 옆에 놓인 작은 상자에서 예전 물건들을 꺼냈다.사진 봉투.오래된 수첩.그리고 얇은 갈색 서류봉투 하나.서윤은 그 봉투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그건 뭐야?”도현의 손이 잠시 멈췄다.“아.”“왜?”그는 봉투를 내려다봤다.“아주 오래전에 보관해 둔 겁니다.”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또 나한테 비밀이야?”“비밀이라기보다는…… 잊고 있었습니다.”“열어 봐도 돼?”도현은 잠시 망설이다 봉투를 건넸다.“네
일요일 오전 8시 20분.한서윤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좋아. 오늘은 반드시 성공한다.”차도현은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다 고개를 돌렸다.“무엇을 그렇게 비장하게 말씀하십니까?”“우리 가족사진.”“사진 한 장 찍는 일인데요.”서윤은 고개를 저었다.“차도현 씨, 우리 집에 호두가 있다는 걸 잊었어?”마침 호두가 작은 공을 물고 거실을 가로질렀다.도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웃었다.“쉽지는 않겠군요.”“그래서 준비했지.”서윤은 식탁 위에 올려 둔 물건들을 가리켰다.휴대전화 삼각대, 리모컨, 고양이 장난감, 작은 간식 통.도현은 하나씩 살펴봤다.“촬영 장비가 제법 많군요.”“오늘은 사진관 안 가고 집에서 찍을 거니까.”“좋습니다.”서윤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그리고 오늘 사진의 주인공은 우리 4명이야. 누구 하나 빠지면 안 돼.”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때 구름이가 삼각대 앞으로 다가왔다.서윤은 반갑게 웃었다.“구름이는 벌써 준비됐네.”하지만 구름이는 삼각대 다리 냄새만 맡더니 그대로 지나갔다.도현이 조용히 말했다.“준비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그러네.”오전 9시 15분.두 사람은 흰색 셔츠와 청바지로 옷을 맞춰 입었다.서윤은 거울 앞에서 도현의 셔츠 깃을 정리해 주었다.“가만히 있어 봐.”“네.”“여기 접혔어.”서윤이 깃을 펴 주자 도현은 그녀를 내려다봤다.“아내도 오늘 예쁩니다.”“오늘만?”“매일 예쁩니다.”“그럼 오늘은 특별히?”도현은 잠시 생각했다.“평소보다 조금 더 설레게 합니다.”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진 찍기도 전에 왜 이래?”“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서윤은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오늘은 그런 말 많이 하지 마.”“왜요?”“웃다가 사진 못 찍으니까.”도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오전 10시.첫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서윤은 구름이를 안고 소파 왼쪽에 앉았다.도현은 호두를 안고 오른쪽에 앉았다.삼각대에
월요일 오전 8시 15분.한서윤은 출근 준비를 하던 차도현의 옷장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검은색 가방이었다.평소 도현이 사용하는 서류 가방과는 모양부터 달랐다.길쭉하고 납작한 데다 어깨끈까지 달려 있었다.“도현 씨.”넥타이를 매던 도현이 돌아봤다.“네?”“이 가방 뭐야?”도현은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을 보자 잠시 멈췄다.“그건…….”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왜 말을 멈춰?”“다음 주 데이트에 사용할 물건입니다.”“뭔데 이렇게 길어?”“아직은 비밀입니다.”서윤은 가방을 흔들어 보려다가 멈췄다.“열어 봐도 돼?”도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안 됩니다.”“차도현, 수상해.”“아내에게 보여 드리려고 준비한 겁니다.”“그러니까 지금 보여 주면 되잖아.”도현은 그녀에게 다가와 가방을 받아 들었다.“기다리는 재미도 있지 않습니까?”서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난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데.”“알고 있습니다.”도현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수요일 오후 6시 20분.서윤은 도현의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았다.도현: 오늘은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8시쯤 귀가하겠습니다.서윤: 무슨 일정?도현: 금요일에 알려 드리겠습니다.서윤: 또 데이트 준비야?도현: 네.서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대체 뭘 준비하는 거야?”그때 호두가 소파 위로 뛰어올랐다.서윤은 호두를 안아 올렸다.“호두야, 아빠가 요즘 비밀이 많아.”호두는 대답 대신 서윤의 소매를 앞발로 붙잡았다.“너도 모르지?”“냐옹.”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너도 모르는구나.”금요일 오후 6시 50분.서윤은 도현이 알려 준 장소에 도착했다.도심 외곽에 있는 작은 문화센터였다.입구에는 여러 강좌를 안내하는 게시판이 붙어 있었다.서윤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도현: 2층으로 올라오세요. 왼쪽 끝 연습실입니다.서윤은 계단을 올라갔다.복도 끝에 도착하자 문 너머에서 희미한
금요일 오후 5시 40분.차도현은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화면에는 서윤이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서윤: 오늘 오후 7시 약속 잊지 않았지?도현: 물론입니다.서윤: 정장 입고 오면 안 돼.도현: 왜요?서윤: 오늘은 의장님 출입 금지거든.도현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도현: 그럼 남편 자격으로 참석하겠습니다.서윤: 좋아. 운동화 신고 와!도현은 잠시 휴대전화를 바라봤다.운동화가 필요한 데이트라니.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오후 6시 55분.서윤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 입구에 서 있었다.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짧은 재킷을 걸친 모습이었다.도현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의 옷차림부터 살폈다.“합격.”“무슨 평가입니까?”“오늘 데이트 복장 평가.”도현은 자신의 검은색 니트와 청바지를 내려다봤다.“다행이군요.”“신발도 운동화네?”“아내 지시대로 했습니다.”서윤은 그의 손을 잡았다.“좋아. 그럼 출발!”“어디로 갑니까?”“당신이 한 번도 안 가 봤을 것 같은 곳.”도현은 주변을 둘러봤다.영화관, 식당, 카페가 늘어선 거리였다.그런데 서윤이 멈춘 곳은 예상 밖이었다.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오락실.도현은 입구를 올려다봤다.“……여깁니까?”서윤이 활짝 웃었다.“응!”“오락실이요?”“당신 와 본 적 있어?”도현은 잠시 생각했다.“학생 때 친구들과 잠깐 들어간 적은 있습니다.”서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아, 완전 처음은 아니네.”“하지만 직접 게임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그제야 서윤이 만족스럽게 웃었다.“그럼 오늘 제대로 놀아 보자.”오후 7시 10분.서윤은 지폐를 게임용 동전으로 바꾸었다.작은 바구니에 동전이 쏟아졌다.도현은 그것을 바라보다 물었다.“이걸 전부 사용하는 겁니까?”“응. 오늘 우리 예산.”“더 필요하면 바꾸면 되지 않습니까?”서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왜요?”“오늘은 정해진 돈으로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가
일요일 오전 7시 40분.서윤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떴다.숲속 숙소의 아침은 집에서 맞이하는 아침과 달랐다.자동차 소리 대신 새소리가 들렸고, 창밖에는 햇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이고 있었다.서윤은 옆자리를 더듬었다.비어 있었다.“도현 씨?”대답 대신 테라스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나셨습니까?”도현은 머그잔 2개를 들고 들어왔다.서윤은 이불을 끌어안은 채 그를 바라봤다.“언제 일어났어?”“20분쯤 됐습니다.”“나 깨우지 그랬어.”“잘 주무시고 계셔서요.”도현은 침대 옆 탁자에 따뜻한 차를 내려놓았다.서윤은 잔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잘 주무셨습니까?”“응. 엄청.”서윤은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아, 맞다!”도현이 웃었다.“무엇이요?”“당신 마지막 부탁.”“기억하고 계셨군요.”“당연하지. 어제 아침에 말해 준다고 했잖아.”“지금은 아침입니다.”“그러니까 빨리 말해.”도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아내는 요즘 하루 중 언제가 가장 좋습니까?”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서윤은 잠시 생각했다.“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왜요?”“구름이랑 호두도 있고, 당신도 있으니까.”도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저도 그렇습니다.”“근데 그걸 왜 물어?”도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제 마지막 부탁은 그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겁니다.”서윤은 눈을 깜빡였다.“어떻게?”“우리 둘만의 시간을 매주 하루는 꼭 확보했으면 합니다.”“데이트하자는 거야?”“그것도 좋고, 집에서 쉬어도 좋습니다.”도현은 잠시 말을 골랐다.“다만 그날만큼은 회사에서의 직책보다 서로의 남편과 아내로 지내고 싶습니다.”서윤은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당신이 그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어.”“저도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왜 갑자기?”도현은 창밖을 바라봤다.“어제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