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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08:00:17

바이올렛은 평소보다 더 적은 양만을 겨우 삼키고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열흘 동안 제대로 먹지 않아서인지 음식량이 더 줄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열락의 밤을 치르기 얼마 전에 맞춘 드레스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꽉 끼어 답답함에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다 먹었으면 먼저 일어납시다.”

황태자 역시 음식을 반도 먹지 않고는 식기를 내려놓은 후 다른 이들에게 천천히 식사를 하라고 당부하고는 바이올렛의 손을 잡고 식당을 나왔다. 그 뒤를 아인스가 조용히 따랐다.

바이런이 그들을 질시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녹스턴은 혀를 끌끌 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궁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걸음을 옮긴 카론은 정원 끝에 있는 온실로 바이올렛을 이끌었다. 그리고 온실의 문을 닫기 전 아인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명하고는 바이올렛만을 온실 안으로 들이고 난 후 문을 닫았다.

온실 밖에 있다고 해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니기에 아인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손으로 입술을 문지르고 불안함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자신이 바이올렛을 범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결처럼 느껴졌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슬쩍 다리 사이를 쓸어 올리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놀라서 퍼뜩 몸을 세웠다.

“오늘 그대와 초야를 보내고 싶소.”

들끓어 오르는 분노에 힘이 들어간 아인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열락의 밤 갑자기 들이닥쳤던 황태자를 떠올려보면 예상 못 할 일이 아니건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빠득’

이가 절로 갈렸다. 저놈만 찢어 죽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지로 씹어 삼켰다. 어찌 되었든 바이올렛을 생각해야 한다. 만일 바이올렛이 거절하는데 억지로 취하려고 한다면, 놈을 죽여서라도 멈추게 할 것이다.

하지만 바이올렛이 허락한다면……죽기보다 싫을지언정 그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온전한 지금 그대로의 바이올렛이었다. 그리고 아인스는 바이올렛이 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잠시 멍하게 카론을 바라보던, 바이올렛이 애써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

“……전하, 오늘 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소. 지금 당장 그대를 안길 원하오. 이미 신방을 준비해 두었소. 허락해 주겠소?”

바이올렛은 초야를 위해 신방을 준비해 두었다며, 허락을 구하는 말을 날씨에 대한 대화를 하듯 여상한 태도로 말하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말이 허락이지 황태자의 말은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연회의 파트너로 참석하면서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친절을 베풀면서 자신에게 닿아왔던 터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두를 줄은 몰랐다. 혼인도 하기 전에 초야라니.

아직도 아인스의 음경이 박혀 들었던 깊은 안쪽의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겉보기엔 크게 변하지 않은 자신이지만, 열락의 밤을 보내면서 스스로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몰랐을 땐 모르지만 알고 난 후엔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몸에 새겨진 열기조차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남아 있는 그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당장 아인스와 다시 관계를 다시 가지려는 생각은 없었다. 열락의 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매달 한 번씩 찾아오게 되어 있고, 그녀가 아인스를 먼저 찾지 않더라도 열락의 밤 동안은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렛은 열락의 밤을 보낸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뿌옇게 안개가 낀 듯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았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쾌감으로 몸부림쳤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그의 앞에 드러내 보인 참이라 부끄럽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아니 좋았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도 좋았고 세세하게 핥아오는 혀의 움직임도 좋았다. 안쪽 깊은 곳을 거칠게 헤집어대는 뜨거운 감각은 약간의 고통을 동반하기는 했었지만, 그것 역시 좋았다.

그러나 황태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혼인을 약속하지 않은 상태라 해도 몸을 요구해 온다면 그의 밤 시중을 들어야 할 텐데 이미 혼인을 하겠노라 약속했고 그저 좀 더 빨리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싶다고 요구해 오는 그에게 그럴 수 없다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다음 보위를 이어나갈 바렌 제국의 유일무이한 황태자였다.

“기쁘게 받들겠습니다.”

무릎을 살짝 굽혀 복종의 예를 취하자 흐뭇한 미소를 띤 황태자가 바이올렛의 손을 잡아끌고는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이올렛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온실을 나와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아인스가 급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죽여 버릴 듯이 살벌했다.

오죽하면, 그를 몰래 살피던 줄리아가 곧바로 흡혈을 위한 사냥감을 준비하겠다는 수신호를 그에게 보내왔을까?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줄리아의 수신호에 절대 불가라는 답을 보내었다.

황태자는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바이올렛을 안아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시녀와 시종들은 황태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시선을 내리깔아 그 모습을 못 본 체했지만, 못내 부끄러운 바이올렛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전하……내려 주세요. 제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러니 그대로 있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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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렛이 이 종족의 혼혈임이 밝혀져 황궁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그것이 황제의 뜻은 아니었다. 심지어 혼인하지 않은 바이올렛의 열락의 밤에 찾아오기까지 했었던 황제였기에, 아인스는 황제인 카론의 곁에 첩자를 심어두어 그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그동안은 황제의 위에 올라 자리를 정비하고 전대 황제의 죽음을 핑계로 바렌 제국 내의 반역 무리들을 소탕하느라 바빴고, 동시에 황비의 수태와 발렌틴 공작가의 일이 맞물려 바이올렛의 행방에 크게 관심을 쏟지 못했다.하지만 얼마 전 귀족 영애 여덟을 한꺼번에 후궁으로 맞아들이면서 바렌 제국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상태였다.사실 전부터도 계속 바이올렛을 찾으려는 기미가 보였지만 그때에는 크라케 산 중에 있는 저택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았었다. 발렌틴 공작가에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곳의 위치가 노출되어버렸고 조만간 장소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바이올렛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바이런에게서 구해오자마자 곧바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었는데 생각 외로 심약해진 바이올렛의 안정을 위해 한동안 이곳에 머물기로 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황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이젠 정말 떠나야만 할 시간이 되었다.하지만 바이올렛에게는 황제를 피해 도망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인스는 바이올렛이 황제인 카론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물론 황제에게 안기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 외에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조차 싫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사실일 것이다.황제와 대면하게 되면 발렌틴가의 공녀로 인정된 바이올렛은 황제의 명을 거역할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이 종족의 혼혈이라 황궁에서 내침을 당했더라도 말이다.그래서 아인스는 바이올렛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고 크라케 산을 떠나 황제의 추적을 따돌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피해야 할 이가 비단 황제만인 것은 아니었다.바렌 제국의 귀족 영애의 삶이란 다 거기서 거기였다. 혼인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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