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로라: 알렉스, 어디야? 지금 영상 통화할 수 있어? 보고 싶어.
알렉스: 나 지금 회사 밖에서 미팅 중이야, 자기야. 끝나면 내가 바로 전화하고 영상 통화할게. 오로라는 벨리아와 점심을 먹던 중 일부러 알렉스에게 보낸 짧은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는 미팅 중이라고 했지만, 오로라는 분명히 봤다. 자신의 사촌이자 알렉스의 개인 비서인 아만다 니콜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고 있던 그의 모습을. 알렉스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미팅을 하러 나간 것이 아니었다. 대신 다른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알렉스가 너랑 같이 점심 먹자는 말을 거의 안 했던 거구나. 알고 보니 이제는 점심을 함께할 새로운 상대가 생긴 거네. 아니면… 다른 일까지 함께할 상대일 수도 있겠지. 예를 들면, 잠자리 같은 거.” 병원으로 돌아와 오로라의 진료실에 들어오자 벨리아의 도발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스와 오로라가 연애를 시작한 순간부터 벨리아는 갈색 눈동자를 가진 그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특히 오로라와 교제하던 시절, 알렉스가 자주 상대를 바꾸는 남자라는 소문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었다. 벨리아는 도대체 오로라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었기에 알렉스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너무 빠져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달콤한 말에 속았거나, 바람둥이들이 가진 특유의 매력에 홀려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걸까? 벨리아가 처음부터 따져보면 알렉스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유통 회사 대표 자리 역시 오로라의 아버지가 아무 대가 없이 그에게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벨리아의 눈에 알렉스가 가진 장점이라고는 평균 이상인 외모뿐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본질적으로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알렉스는 불임 판정을 받아 오로라에게 아이조차 안겨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오로라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양가 가족들에게는 물론 알렉스 본인에게도 그 사실을 숨겨주었다. “내가 너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알렉스에게 따졌을 거야.” 벨리아가 다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 없어, 벨리아. 난 사람들 앞에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이 이런 부적절한 관계를 얼마나 오래 이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로라가 원한다면 벨리아의 말대로 당장 두 사람 앞에 나타나 따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두 가문의 명예까지 훼손될 수 있는 공개적인 스캔들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네 남편은 명백하게 바람을 피우고 있어. 이성과 다정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조차 이미 배신이야. 게다가 몇 번이나 함께 외출하는 모습까지 들켰잖아.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너는 알지도 못하고. 그래도 계속 가만히 있을 거야?” 벨리아는 여전히 화가 난 듯 물었다. 그녀는 앞으로 친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어. 먼저 조사하고 증거를 모아야 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벨리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오로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직접 목격하고도, 여전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며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믿으려 하는 모습이 답답했다.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정확한 증거를 찾은 뒤에도 네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할게. 만약 그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기꺼이 도와줄게.” 벨리아가 그렇게 말한 순간, 오로라의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간호사가 들어와 두 사람 중 한 명을 찾았다. “벨리아 선생님, 애셔 선생님께서 찾으세요. 새로 논의할 일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간호사가 나간 뒤, 그녀는 오로라의 방을 나가려 했다. “애셔에게 너와 알렉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할까?” 오로라는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벨리아가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의미였다. 오로라는 애셔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애셔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그 사람이 알렉스를 몰아붙이면 정말 알렉스가 무사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네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 알렉스가 제대로 깨닫도록.” “안 돼! 이건 내가 직접 해결할게. 넌 빨리 애셔를 만나러 가. 그리고 조심해. 절대 쓸데없는 말 하지 마.” ⸻ 저녁이 되자, 이전과 같은 밤처럼 오로라는 알렉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저녁 7시. 아랍계 혈통을 가진 남자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기 전, 평소처럼 알렉스는 먼저 오로라에게 다가왔다. 따뜻한 포옹과 부드러운 입맞춤을 건넸다. “좋은 저녁이야, 자기야. 나—”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오로라가 그의 말을 끊었다. 마치 그가 하려던 말을 이미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알렉스는 거의 매일 밤 같은 말을 반복했으니까. 예전의 오로라는 알렉스가 그리움을 표현할 때마다 행복했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에 설렜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 이후,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아무 감흥 없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 말들은 알렉스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던 커다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뿐일지도 몰랐다. “나도 보고 싶었어.” 오로라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심을 크게 담지 않았다. “오늘 뭐 했어?” 그녀는 남편이 아까 오후처럼 또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별거 없었어, 자기야. 저녁까지 밖에서 미팅했어. 고객들도 만났고. 일이 끝나자마자 당신을 보려고 바로 집에 온 거야.” “그럼 하루 종일 정말 바빴던 거야? 쉴 시간도 없었어? 점심은? 먹을 시간은 있었어?” 오로라는 일부러 물었다. 그저 남편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싶었다. 옷을 벗으며 알렉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점심 먹을 시간은 있었어.” “어디서 먹었어? 고객들이랑?” 알렉스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기야. 첫 번째 미팅 끝나고 고객들과 식당에서 먹었어. 걱정하지 마. 물론 당신을 잊을 리 없잖아.” “다행이다.” 오로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가 분명 거짓된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겠다.” 알렉스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얼굴로 그는 계속해서 아내 앞에서 연기를 이어갔다. “응, 피곤하지.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일 때문에 피곤한 게 낫지 않아?” 이번에는 오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풀어놓은 옷을 정리해주던 그녀는 알렉스에게 씻고 오라고 말했다. “얼른 샤워하고 와. 나중에 자기 전에 내가 마사지해줄게. 그러면 피곤한 것도 좀 나아질 거야.” “응, 자기야. 정말 고마워. 이렇게 배려심 많고 이해심 깊은 아내가 있어서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런 달콤한 말 하지 마.” 오로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서 씻어. 너무 늦겠다.” 알렉스는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한편 오로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남편이 벗어놓은 옷을 정리한 뒤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알렉스의 업무 가방도 정돈했다.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던 순간, 오로라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옆쪽 지퍼 안쪽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알렉스와 결혼한 이후, 오로라는 단 한 번도 남편의 개인 물건을 뒤져본 적이 없었다.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로라는 호기심을 느꼈다. 알렉스가 욕실에서 나오는 데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녀는 남편의 업무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가방을 열자, 그녀는 보석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벨벳 상자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자 오로라는 놀랐다. 안에는 목걸이와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 바로 어제 자신이 알렉스에게 보여주며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했던 세트였다. “알렉스가 착각한 건가? 이걸 나한테 주려고 산 거야?” 오로라는 혼잣말했다. “하지만 나한테 줄 거라면 너무 이른데? 내 생일은 아직 한참 남았잖아.” 그 순간 오로라는 깨달았다. 알렉스가 곧 샤워를 마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서둘러 보석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누구의 것인지 직접 묻는 대신,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어쩌면 알렉스가 자신을 놀라게 해주려고 미리 준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나 이제 출근해야 해, 자기야. 서둘러야 해. 터키 쪽 고객과 아침 미팅이 있어.” 알렉스는 출근하기 전 오로라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의 행동을 보면 정말 급해 보였다. “오늘은 평소처럼 나 데려다주지 않을 거야?” 오로라는 일부러 서운한 척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알렉스는 매번 오로라가 혼자 출근하도록 두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매일 그녀를 데려다주고 퇴근 후에는 데리러 오곤 했다. “다음에 해줄게, 알겠지? 오늘은 정말 급해서 그래. 부탁할게.” 애원하는 듯한 알렉스의 표정을 본 오로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항의해봤자 소용없었다. 알렉스는 결국 자신에게 혼자 가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알겠어. 내가 갈게. 출근길 조심해.” 알렉스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몇 분 뒤, 오로라도 집을 나섰다. 하지만 병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렉스를 따라 그의 회사로 향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아침 오로라는 남편에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렉스의 회사에 도착한 오로라는 잠시 용기를 내야 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과 현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결심을 굳힌 뒤, 그녀는 차에서 내려 회사 건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몇몇 직원들은 그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몇몇은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알렉스 대표님은 사무실에 계십니다, 사모님.” 각 층의 안내 데스크를 담당하는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니콜 비서님과 중요한 미팅 중이신 것 같습니다. 아까 대표님께서 손님이나 방문자가 오면 모두 돌려보내거나 약속을 다시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프로젝트 목표 달성을 위한 업무 마감 일정을 논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러니까 내 남편이 지금 비서와 같은 방에 있다는 거야?”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모님.” “알겠어. 괜찮아. 내가 바로 갈게.” 직원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말리고 싶어도 그녀는 회사 주주의 딸이자 대표의 아내였다. 그녀를 막는 것은 너무 무례한 행동처럼 보였다. 오로라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알렉스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남편 방 바로 앞에 있는 비서 자리와 그곳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장 알렉스의 방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바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멈춰 섰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오로라는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진짜야? 이 고급 목걸이와 팔찌?” 놀란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니콜이었다. 알렉스의 개인 비서였다. “응, 자기야. 그 목걸이와 팔찌는 너를 위한 거야. 네 생일 선물로 특별히 준비했어. 생일 축하해. 네 모든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 그리고… 물론 네가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니콜은 기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알렉스를 끌어안았고, 망설임 없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정말 고마워, 자기야. 나 이 선물 정말 마음에 들어. 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게. 기념으로 이번 주말에 지난번처럼 호텔에 같이 있을래?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알렉스는 니콜의 제안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간은 내가 정할게. 네가 가고 싶은 호텔을 골라. 내가 예약해서 우리 둘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할게.” “고마워, 자기야. 나 정말 정말 당신을 사랑해.” 한편, 자신의 사촌과 나누는 알렉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오로라는 입을 꽉 다문 채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플래시백오로라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집 거실 TV 앞 소파에 앉아 싱가포르에서 돌아올 알렉스를 기다리던 그녀는 전날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애써 떠올렸다.왠지 모르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그녀를 감쌌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알든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시 나타나 오로라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아직도 날 기억하지?”병원에서 재회하자마자 알든이 가장 먼저 던진 말이었다.하지만 과거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남자를 오로라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알든은 오로라의 첫사랑이었다.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이자,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의 이별은 결국 오로라가 저지른 커다란 실수 때문이었다.“잠깐만 기다려 줘. 심혈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너에게 청혼하고 결혼할게.”미국으로 심혈관 전문의 과정을 공부하러 떠나기 직전, 알든이 했던 약속을 오로라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게다가 두 사람은 오랫동안 연인으로 지내 왔다.오로라의 거의 모든 일상에는 언제나 알든이 함께했다.그래서 앞으로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수많은 불안감이 그녀를 괴롭히며 마음을 편히 두지 않았다.하지만 그 당시 알든은 오로라를 안심시키려 애썼다.그는 자신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즉시 오로라에게 청혼하고 결혼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처음 몇 년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순조로웠다.전화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고, 알든은 오로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두 번이나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깜짝 선물을 안겨 주기도 했다.하지만 3년째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알든은 점점 더 바빠졌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오로라는 자신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고 느꼈다.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여러 가지를 혼자 상상하고, 온갖 의심을 하게 마련이었다.결
#플래시백알렉스의 행동과 몸짓, 그리고 오로라를 향한 모든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가 진심으로 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처음에는 알렉스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오로라에게 외면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끊임없이 관심과 배려, 다정한 행동을 보여 주며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녹이려 애썼다.맹세코 알렉스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약속까지 했다. 또한 오로라가 어렵게 내어준 소중한 기회를 절대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도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약속은 결국 약속일 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께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어느 날 오후, 알렉스가 레스토랑에서 거래처와의 미팅을 막 마친 순간이었다. 뜻밖에도 니콜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여러 번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고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섹시한 그녀는 대담하게 그를 따라와 기회가 생기자 곧바로 다가왔다.“우리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해, 알렉스.”니콜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길을 막았다. 그녀는 알렉스가 자신을 두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더 하자는 거야?”알렉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엇보다도 오늘 저녁 니콜과 우연히 만난 사실이 오로라에게 들켜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지난 몇 달 동안 알렉스는 아내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왔다. 그리고 이제야 오로라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만큼, 그는 다시는 그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어.”“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일방적으로 떠나면 안 돼. 어쨌든 우리 둘은 진지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니콜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좋아. 말해 봐. 무슨 이야기든 들어 줄게.”니콜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끌어와 알렉스의 정면에 앉았다.“날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어. 원하는 걸 다 얻고 나서 그냥 떠나
“당신은 알렉스와 아이도 없는데, 그런 독한 남자에게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잖아, 오로라.”벨리아는 거의 매일같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오로라가 내린 어리석고도 순진한 선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만해, 벨리아. 이건 내 가정사야. 그리고 넌 이 관계의 당사자가 아니니까 쉽게 이혼하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세상에는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이혼을 마지막 선택으로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여자들도 많아.”“나도 알아.” 벨리아는 곧바로 받아쳤다. “아이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남편의 배신과 폭력을 참고 체념하며 사는 여자들이 많다는 거. 하지만 넌 경우가 다르잖아. 아이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해 있어. 제발 정신 좀 차려, 오로라. 난 언젠가 알렉스가 또 같은 짓을 할까 봐 걱정된단 말이야.”“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직접 그를 지옥으로 보내 버릴 거야.”오로라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어떤 결과가 찾아오든, 그 대가는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결심했다.시어머니가 뭐라고 하든, 벨리아가 잔소리를 퍼붓든 상관없었다. 이건 자신의 결혼이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여보, 미안. 내가 좀 늦었지?”세 달 동안 끝없는 갈등을 겪으며 마음을 다잡은 끝에, 오로라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렉스가 보여 주는 진심 어린 노력도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했다.예를 들어 오늘도 그랬다. 퇴근 후 오로라는 일부러 알렉스가 병원으로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이런 일은 최근 들어 처음이 아니었다. 관계가 조금씩 회복된 뒤부터 지난 일주일 동안 알렉스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 오로라를 출퇴근시켜 주려 애썼다.회사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점심을 함께 먹자고 먼저 연락했고, 오로라가 바쁘면 직접 음식을 사 들고 병원으로 찾아와 그녀의 진료실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한마디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알렉스가 운전하는 검은색 아우디가 메디카 병원 앞마당으로 천천히 들어섰다.로비 앞에 서 있는 오로라를 발견한 그는 차를 세운 뒤 재빨리 내렸다.곧장 조수석 문을 열어 아내가 타도록 배려한 후, 부모님의 별장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오늘 밤은 와일드블러드 가문의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어떤 행사든 알렉스와 오로라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솔직히 말하면 오로라는 시어머니가 주최하는 대가족 모임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단지 모임에만 가면 언제나 그렇듯 화제가 되고, 뒷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이다.“불편하거나 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차 돌릴게.”운전하던 중 오로라의 굳은 표정을 눈치챈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쥔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마음을 풀어 보려 했다.“요즘 들어 당신이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오로라는 창밖 도로만 바라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딱히 그런 건 아니야. 결혼 초에는 불편한 일도 없었으니까.”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다만 결혼 2년 차부터는 당신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견딜 만해.”“정말 괜찮아?”오로라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시어머니랑 친척들한테 독한 말 듣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그녀는 차갑게 웃었다.“내 눈앞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랑 바람피우는 것까지도 견뎌낸 사람인데.”말을 마친 오로라는 손목을 알렉스의 손에서 빼냈다.알렉스는 침을 삼키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니콜과의 배신을 오로라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계속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녀의 입장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미안해, 오로라.”알렉스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정말… 당신 마음에 그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게.”오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여보, 퇴근하면 내가 병원으로 데리러 갈까?”“괜찮아. 내 차를 가져왔어.”전화기 너머에서 오로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럼 오늘 저녁 같이 외식할래? 우리 둘이 로맨틱한 저녁을 먹으러 나간 지도 꽤 됐잖아.”“미안해.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 방금 아기를 출산한 산모가 있는데, 신생아 상태가 위독해서 계속 경과를 지켜봐야 하거든. 그래서 담당 전문의랑 내가 병원에 대기해야 해. 오늘은 집에 좀 늦게 들어갈 것 같아. 다음에 가자.”“알겠어. 대신 조심해서 들어와. 끝나면 꼭 연락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아내와의 통화를 마친 알렉스는 깊은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차갑게 변해버린 오로라의 태도를 마주하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다른 여자를 자신들의 침대에 들이다 들킨 이후로, 오로라는 완전히 달라졌다.그를 용서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긴 했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손을 잡거나 가볍게 스치는 것마저 피하려 했다.알렉스도 이해하고 있었다.오로라가 깊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고, 자신이 저지른 배신 때문에 이제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그는 오로라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오로라는 계속 거리를 두었고, 자세히 보면 그녀의 태도는 전보다 훨씬 차갑고 무심해져 있었다.예전처럼 따뜻하게 웃으며 그를 맞아주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알렉스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애썼다.자신의 잘못이 오로라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바람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정말 한 번도.오로라는 거의 완벽한 여자였다.성공한 전문의였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으며, 아름답고 독립적이었다.인품도 훌륭했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준 사람이었다.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처음에는 흠잡
“나라면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뻔히 바람피우는 남자한테 다시 돌아가거나 기회를 주진 않을 거야!”이 길고도 비꼬는 말은 거의 매일같이 오로라의 귀에 들려왔다.이제는 귀가 익숙해질 정도였다.오히려 지난 한 달 동안 벨리아가 기회만 생기면 같은 말을 반복한 탓에, 오로라는 그 말을 외울 정도였다.벨리아는 짜증이 나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답답함까지 느끼고 있었다.오로라가 알렉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그가 자신과의 결혼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벨리아에게는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게다가 그녀는 바람피우는 사람이 뉘우친다는 것은 매운 음식을 먹고 후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매울 때만 잠깐 후회할 뿐, 혀끝의 얼얼함이 가시면 또다시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최근의 알렉스는 분명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럼에도 한 번 금이 간 사람은 벨리아의 눈에는 끝내 흠이 있는 사람이었다.“내기해도 좋아. 언젠가는 알렉스가 또 예전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할 거야.”벨리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자신이 지나치게 의심이 많거나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아니라는 듯 자신만만했다.“남자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받고 두 번째 기회까지 얻으면 우릴 우습게 보게 돼. ‘실수해도 괜찮아. 고개 숙이고 울면서 계속 사과하면 결국 용서받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전형적으로 믿을 수 없는 남자들이야.”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오로라는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다.벨리아의 끝없는 잔소리에 이미 익숙해진 그녀는 늘 하던 말로 대답했다.“그만해, 벨리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아니, 그럴 수는 없어. 이건 바람 문제잖아. 네가 자세한 얘기는 안 했지만, 남편이 불륜 상대랑 키스 직전까지 갔고, 심지어 너희 침대에서 그런 역겨운 짓까지 하려던 걸 직접 봤다며? 그게 제정신인 상황이야? 그런데도 기회를 준다고? 정말 믿기지가 않아. 너 천사야?”오로라는 작게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