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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매화야담
어젯밤 임씨 부인은 말을 할 때마다 숨이 달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몸에 이상이 있는 듯했다. 마침 자신은 의술을 배웠으니, 병을 고쳐 준다면 저를 향한 미움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터였다.

“채의, 어머니 몸이 많이 안 좋으셔?”

채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서월 아가씨가 돌아오신 뒤로 예전 같지 않으세요. 그래도 집안일은 임서월 아가씨가 도와주시고, 바깥일은 도련님께서 맡고 계시잖아요. 나리께서 운주에 계셔도 집안에 큰일은 없었어요.”

임하연의 마음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럼 임서월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계속 건강하셨다는 거야?”

“네. 그런데 다들 아가씨께서 속을 썩여서 그러신 거래요. 그 하인들도 참 못됐어요. 하나같이 눈치만 보다가 임서월 아가씨 편으로 돌아서서는, 아가씨께서 잘해 주셨던 건 싹 잊어버리고…….”

채의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한참 더 말을 쏟아 냈다. 그러나 임하연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설은 임씨 가문과 임서월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집안 살림과 안채의 사정도 적잖이 다뤘지만, 임씨 부인의 건강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없었다.

어젯밤 나타난 뱀도 원래 줄거리에는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뒤로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나비효과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임하연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임씨 부인의 처소로 향했다. 막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임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아직도 언니 일로 마음이 쓰이세요?”

임씨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임아연이 고집스럽고 철이 없기는 해도, 본성이 악한 아이는 아니지. 몇 년이나 심청운을 좋아했는데 갑자기 너와 혼인이 정해졌으니,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게다. 당분간은 잠잠해지지 않겠지.”

임서월이 나긋하게 말했다.

“언니가 마음 아파하는 게 걱정되시면 이 혼인은 없던 일로 해요. 저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잖아요. 곁에 머물며 더 모시고 싶기도 하고요.”

임씨 부인의 목소리에 애정이 묻어났다.

“어리석은 것. 이미 혼서와 예물까지 오갔는데 어찌 마음대로 물리겠느냐. 네 오라버니와도 이야기했다. 임아연에게는 다른 혼처를 찾아 줄 생각이야.”

“그럼…… 생각해 두신 분이 있으세요?”

“아직 없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임씨 부인도 골치가 아팠다.

임아연은 날마다 심청운을 쫓아다니느라 이미 평판을 망칠 대로 망쳤다. 어지간한 집안에서 그런 아이를 며느리로 들이려 하겠는가.

임서월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유 승상의 손자분이 언니와 나이가 비슷하다고 들었어요. 언니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요.”

임씨 부인의 눈이 밝아졌다.

“그거 괜찮은 혼처로구나. 유재휘도 워낙 제멋대로니 네 언니와는 잘 어울리겠어. 네 아버지가 도성에 계실 때 유 승상께서도 그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임하연은 몸을 떨었다.

유 승상의 손자라면, 성병에 걸린 그 썩어 빠진 망나니 아닌가.

그런데 왜 임서월이 먼저 그 이름을 꺼내는 거지?

소설 속 임서월은 심청운의 일로 줄곧 임아연에게 미안해했다. 유재휘에게 시집보낸다는 말을 듣고는 임씨 부인 앞에 밤새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했다. 하지만 끝내 어른들의 뜻을 꺾지 못했고, 임아연은 시집을 가야 했다.

설마…….

끔찍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몰라도, 원래 주인과 같은 길을 갈 수는 없었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짙은 남색 관복을 입은 임태겸이 서 있었다.

묵직한 옷빛이 반듯한 눈매를 더욱 엄정해 보이게 했다. 얇은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서 있는 모습은 침착했지만, 그만큼 위압적이었다.

임하연을 발견한 임태겸이 미간을 조금 좁혔다.

“왔으면 들어가지, 왜 여기 서 있느냐?”

임하연은 곧장 연기에 몰입했다. 눈시울을 붉히더니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임태겸의 품에 안겼다.

“오라버니, 저 좀 살려 주세요. 유재휘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조금 뻔뻔한 짓이기는 했다. 그래도 성병에 걸리는 것에 비하면 남자 하나 껴안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능력도, 도와줄 시스템도 없었다. 이제는 믿었던 줄거리마저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임태겸이었다.

임씨 부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그뿐이었다.

품에 파고든 임하연에게서 은은한 향이 풍겼다. 임태겸은 까닭 없이 목이 타는 듯했다. 곧바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낮게 꾸짖었다.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해라. 아무도 너를 시집보내려 하지 않는다.”

임하연은 아픔을 참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제가 지어낸 게 아니에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씨 부인이 방에서 나왔다.

마침 햇살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콧등에는 푸른 기운이 돌았고, 입가에는 보랏빛이 비쳤다.

임하연은 속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병이라기보다는…… 중독 증상 같은데.

임서월도 임씨 부인을 바짝 따라 나와 부드럽게 오라버니를 불렀다.

임태겸은 짧게 응한 뒤 임씨 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씨 집안에서 청혼을 해 왔습니까?”

임씨 부인이 마른기침을 했다.

“아니다.”

임태겸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임하연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임아연, 이제 똑똑히 들었느냐?”

임하연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 안 왔다고 내일도 안 오는 건 아니잖아요. 오라버니도 유재휘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면서요. 정말 이 집에 제가 있을 자리가 없다면, 차라리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겠어요.”

임서월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언니, 오해예요. 저와 어머니는 진심으로 언니께 좋은 배필을 찾아 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유 공자는 집안도 훌륭하잖아요. 그런 분께 시집가시면 언니도 남부럽지 않게 사실 테고, 저도 덩달아 어깨를 펼 수 있고요.”

임하연이 훌쩍이며 되물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네가 시집가지 그래?”

임서월의 눈빛이 잠깐 달라졌다. 그러나 곧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화내지 마세요,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싫으시면 안 가셔도 돼요.”

친딸이 임하연에게 눌리는 모습을 보자 임씨 부인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동안 임아연은 목을 매겠다고 소란을 피우더니, 이번에는 물에 뛰어들었다. 임서월이 돌아온 뒤로 국공부에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출가하도록 내몰 수도 없었다. 밖에 알려졌다가는 국공부에서 그녀를 쫓아냈다고 여길 테니.

임씨 부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동생 말이 맞다. 말 한마디 들었다고 지레 호들갑 떨지 말거라. 이 집에서 자란 아이가 어쩌면 그리 경솔하니. 지금 네 꼴을 보아라. 명문가 규수답기는 하냐?”

임하연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어머니, 저도 잘못한 거 알아요. 다시는 심청운을 만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유씨 집안으로 시집보내지만 말아 주세요.”

슬프고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저 약하고 가련하고, 의지할 곳조차 없는 아이처럼 보이면 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임태겸의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이내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어머니께서는 몸도 편찮으시니 요양에 힘쓰십시오. 임아연의 일은 제가 알아서 생각하겠습니다. 서월도 안채를 맡았으면 집안일부터 제대로 익혀라. 이런 일까지 신경 쓸 것 없다.”

임서월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임태겸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공손했다.

“네, 알겠어요. 말씀 명심할게요, 오라버니.”

임하연은 조금 안도했다.

역시 남자들은 다 비슷한가 보다. 임태겸에게도 이 수법이 먹히기는 하네.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 눈앞의 위기부터 넘겨야 했다.

반면 임씨 부인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태겸아, 어찌 그리 모질게 말하느냐. 네 동생이 놀랐잖니. 서월도 임아연을 생각해서 한 말이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임하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앞서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임씨 부인은 소설에 쓰인 것보다 더 고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소설에는 임씨 부인이 중독되었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자신의 빙의 때문에 줄거리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걸까?

원래는 맥이라도 짚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말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임태겸은 젊은 나이에 구경의 반열에 오른 고위 관료였다. 태의 하나 부르는 것이 어려울 리 없으니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얼른 은전을 마련해, 사람 잡아먹는 이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제가 너무 앞서 생각했나 봐요. 어머니, 철없는 말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어젯밤 많이 놀라셨을까 봐 걱정돼서 왔는데, 괜찮으시다니 이만 돌아갈게요.”

임하연은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힘없이 걸어 나갔다.

“어머니, 제가 언니를 데려다줄게요.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임서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임하연을 뒤따랐다.

두 사람은 내내 말없이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공부 동쪽의 대나무 숲에 이르렀다.

그때 임서월이 문득 발을 멈췄다. 임하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언니, 전이랑 많이 달라졌네요. 제법 연기도 할 줄 알고.”

임하연도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그러는 너는? 정말 임서월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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