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제74화. 피의 서막(2) "한유라. 네 그 주둥이로 감히 한채원의 죽음을 논해?" 도진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유라는 순간 소름이 돋아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난 그냥... 채원 언니가 사고 났다길래 걱정돼서..." "걱정돼서 밀항하려던 브로커한테 돈을 찔러줬나? 걱정돼서 트럭 운전사 계좌로 엄마 차명 돈을 보냈고?" 유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너희 모녀가 짠 얄팍한 대가리로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
도진의 단호한 태도에 수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성그룹을 정조준하겠다는 뜻이냐? 리스크가 클 텐데." "리스크 따윈 상관없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 두 사람을 파멸시켜야 합니다. 합의, 보석, 집행유예? 그딴 단어는 구경도 못 하게 만드세요. 영원히 차가운 감방에서 썩게 만들 겁니다." "알겠다. 네가 이 정도로 강경하게 나오니, 정명에서 최고의 검객들로 배치하지." 전화가 끊어졌다. 도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최 비서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이야. 최 비서, 한성그룹 계열
제73화. 피의 서막(1) 고요한 VIP 병실 안. 규칙적인 기계음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서도진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한채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하얀 이불 위로 드러난 그녀의 이마에는 아직 붉은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조금 전까지 채원에게 죽을 먹여주며 다정하게 웃던 남자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진의 눈빛은 밤바다보다 더 어둡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듯, 극도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도진은 침대 가로 다가가
도진이 쏘아붙이듯 질문을 퍼붓자, 나이 지긋한 주치의마저 당황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아... 서 본부장님, 진정하시죠. 환자분 바이탈은 아주 정상입니다. 갈비뼈 금 간 것은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붙는 거라 무리한 움직임만 피하시면 됩니다. 성형외과 협진도 국내 최고 권위자분으로 이미 어레인지 해두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만에 하나라도 채원이 몸에 흉터가 남거나 조금이라도 후유증이 생기면, 이 병원 지원금 전부 끊을 줄 아십시오." 도진의 서슬 퍼런 으름장에 레지던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었다. "도진 씨!
채원이 황당해서 반박했지만,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복죽을 한 숟가락 듬뿍 퍼 올렸다. 그리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후후- 정성스럽게 부풀려 바람을 불었다. "자, 뜨거우니까 조심해. 아 해봐." 완벽하게 식힌 죽 숟가락이 채원의 코앞까지 들이밀어 졌다. 채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VIP 실이라지만, 다 큰 성인 남녀가 병실에서 이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간지러웠다. "싫어요. 내가 먹을래요. 얼른 줘요." "안 먹으면 나도 오늘부터 굶어." 도진이 아주 유치하고도 치사한 협박을 해왔다. 그의 눈
제72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과보호(2) 잠시 후,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도진은 간호사가 물을 내려놓자마자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가보세요. 필요한 건 내가 합니다." 간호사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도진은 주저 없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기업 후계자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만한 남자 중 하나인 서도진이,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도진 씨, 진짜 왜 이래요! 사람 민망하게! 나 씻겨달라고 한 적 없어요!" 채원이 당황해서 발을 빼려 버둥거
채원의 턱에 꾹 힘이 들어갔다. 도진의 지적은 뼈아픈 팩트였다. LK 파트너스가 요구하는 18% 지분의 프리미엄 인수가는 최소 800억 원. 현재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채원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이었다.채원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도진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서 묻는 겁니다. 서도진 대표님.”“…….”“제게 비공식적인 자금 지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구걸이 아니었다. 완벽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당당한 제안이었다.“저는 이 지분만 확보하면, 한성그룹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자금을 대주신
오전 8시. VIP 병동 특실.찌익-!정적을 깨고 거친 마찰음이 울렸다. 한채원은 제 손등에 꽂혀 있던 링거 바늘을 망설임 없이 뽑아냈다. 피가 울컥 솟구쳐 하얀 시트 위로 뚝뚝 떨어졌지만, 그녀는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알코올 솜으로 지혈을 했다.“뭐 하는 짓이지.”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서도진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날카롭게 내리꽂혔다.그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김 비서에게 지시를 내리던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도진은 피가 배어 나오는 채원의 손등과, 이미 환자복을 벗고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번갈
의식은 깊은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듯 돌아왔다.코끝을 스치는 옅은 소독약 냄새. 규칙적으로 허공을 가르는 산소 발생기의 백색소음.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지독한 근육통.한채원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지다 이내 선명해졌다.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이 은은하게 깔린 천장. 그저 넓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거대한 VVIP 병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채원은 마른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구멍이 사포로 긁어낸 것처럼 따가워 밭은기침을 내뱉었다.“콜록, 켁……!”그 작은 소리에, 창
상황은 불과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JS그룹 본사 120층, 대회의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내년도 핵심 전략 사업에 대한 임원진의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었다. 단상에 선 기획조정실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고, 거대한 마호가니 테이블 상석에 앉은 서도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스크린의 수치들을 해체하듯 뜯어보고 있었다.“그래서, 리스크 대비 수익률이 고작 4퍼센트라는 겁니까? 그딴 쓰레기 같은 기획안을 들고 내 시간을 뺏으러 온 용기는 가상하군.”도진의 건조한 독설이 회의실을 얼어붙게 만든 바로 그 순간이었다.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