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진이 쏘아붙이듯 질문을 퍼붓자, 나이 지긋한 주치의마저 당황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아... 서 본부장님, 진정하시죠. 환자분 바이탈은 아주 정상입니다. 갈비뼈 금 간 것은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붙는 거라 무리한 움직임만 피하시면 됩니다. 성형외과 협진도 국내 최고 권위자분으로 이미 어레인지 해두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만에 하나라도 채원이 몸에 흉터가 남거나 조금이라도 후유증이 생기면, 이 병원 지원금 전부 끊을 줄 아십시오." 도진의 서슬 퍼런 으름장에 레지던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었다. "도진 씨!
채원이 황당해서 반박했지만,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복죽을 한 숟가락 듬뿍 퍼 올렸다. 그리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후후- 정성스럽게 부풀려 바람을 불었다. "자, 뜨거우니까 조심해. 아 해봐." 완벽하게 식힌 죽 숟가락이 채원의 코앞까지 들이밀어 졌다. 채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VIP 실이라지만, 다 큰 성인 남녀가 병실에서 이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간지러웠다. "싫어요. 내가 먹을래요. 얼른 줘요." "안 먹으면 나도 오늘부터 굶어." 도진이 아주 유치하고도 치사한 협박을 해왔다. 그의 눈
제72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과보호(2) 잠시 후,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도진은 간호사가 물을 내려놓자마자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가보세요. 필요한 건 내가 합니다." 간호사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도진은 주저 없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기업 후계자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만한 남자 중 하나인 서도진이,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도진 씨, 진짜 왜 이래요! 사람 민망하게! 나 씻겨달라고 한 적 없어요!" 채원이 당황해서 발을 빼려 버둥거
적어도 이 남자의 눈물만큼은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나를 잃을까 봐 미쳐버릴 것 같다고 울부짖던 그 목소리만큼은 온전한 진심이었으니까. 얼마 후, 물소리가 멈추고 욕실 문이 열렸다. 도진은 최 비서가 급히 대령한 편안한 니트와 슬랙스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는 대충 털어 말려 조금 부스스했지만, 아까의 피투성이 몰골보다는 훨씬 깔끔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문을 나서자마자 곧장 채원에게로 향했다. 채원이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였다. "불편한 곳은 없어? 의사 다
제71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과보호(1) 병원 창밖으로 완전히 해가 떠올랐다. 새하얀 아침 햇살이 VIP 병실 안을 가득 채웠지만, 서도진의 세계는 여전히 한채원 하나만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도진은 밤새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가 완전히 저려왔음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채원의 손을 꼭 쥔 채, 그녀의 숨소리 하나, 눈동자의 움직임 하나를 집요하게 쫓을 뿐이었다. "도진 씨." 채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응, 채원아. 왜? 어디 아파? 통증이 다시 심해진 거야? 의사 부를
제70화. 미치도록 후회해. 내가 다 잘못했어(2) 도진이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병실 밖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을 본 채원은 다시 한번 흠칫 놀랐다. 항상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던 머리는 새집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최고급 맞춤 정장과 셔츠는 온통 붉은 피로 떡이 져 있었다. 무엇보다 도진의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새빨갰고,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 남자가, 서도진이... 나 때문에 이렇게 울었다고? "도진 씨... 왜 이래요. 나... 당신 집에서 쫓겨났잖아요..." 채원이 씁쓸하고 텅 빈 목소리로
다음 날 아침. 간밤의 폭풍 같았던 텐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다시 서늘하고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한채원은 완벽하게 세팅된 블랙 수트 차림으로 1층 거실로 내려왔다. 다이닝 테이블에는 서도진이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젯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남자의 흔적은 단 1퍼센트도 남아있지 않았다.“나갑니까.”채원이 무심하게 묻자, 도진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오전 10시에 JS 본사에서 임원 회의가 있어. 당신은?”“한성건설 재무팀장이었던 박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한강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최고급 펜트하우스의 현관문이 열렸다.“들어와.”서도진의 짧은 축객령 같은 허락에, 한채원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수백 평에 달하는 실내는 주인의 성정을 닮아 차갑고 건조했다. 무채색 위주의 최고급 가구들, 먼지 한 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대리석 바닥, 그리고 생활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공기까지.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갤러리나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가까웠다.도진은 재킷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는
평창동을 오르는 산길. 양옆으로 늘어선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기괴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좌석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어제는 꽤 볼만했어.”침묵을 깬 것은 서도진이었다. 그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신라호텔을 발칵 뒤집어놓고도 넌 아주 평온하게 잠들더군. 벼락 맞은 강민호와 한유라의 표정이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말이야.”“쓰레기들을 분리수거장에 처넣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흥분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저 당연한 수순이었을
서울 도심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라호텔 영빈관 다이너스티 홀. 대한민국 재계를 주름잡는 VVIP들과 유력 언론사 기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이곳에서는, 오늘 한성그룹의 경사가 열리고 있었다.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최고급 샴페인 잔이 쉴 새 없이 부딪치는 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호호, 감사합니다. 우리 유라가 워낙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걱정했는데, 강 서방 같은 훌륭한 짝을 만나 어미로서 시름을 덜었지 뭡니까.”한성그룹 회장의 후처이자 현재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배정아가 특유의 우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