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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놀란 고월영이 다급히 그를 밀쳤다.

강현준은 싸늘한 얼굴을 하고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몸은 폐하와 황후마마께 거의 얼굴을 비출 일이 없어. 하지만 태후마마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지.”

그 말을 들은 고월영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며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왕 전하는 어디 가셨나요?”

“벌써 황가의 내부사정에 관여하고 싶은 것이냐?”

강현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월영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니옵니다!”

그녀는 그저 언제 강현우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다.

강현우가 돌아오면 이 난감한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현왕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느낌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태후는 일찍부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월영은 오래도록 태후와 담소를 나누었다.

현왕은 대화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영안궁에 온 뒤로 평소보다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끔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미소라기에는 어딘가 싸늘한 미소였지만 냉기 풀풀 흘리던 모습과 비교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

매번 현왕이 웃을 때면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들이 얼굴을 붉히며 이상 반응을 보였다. 보고 있는 고월영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차갑고 인간미 없는 남자이지만 매력은 충만했다.

걸어 다니는 조각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태후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때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태후는 쉬러 갈 시간이 되었다.

고월영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안심하던 순간, 태후가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 묵고 가려무나. 내일 아침에 왕비와 같이 태화전에 가서 조상님들께 문안을 드리고 돌아가는 게 좋겠어. 하루빨리 좋은 소식 있게 굽어살펴달라고 기도를 올려야지.”

고월영은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

“태후마마, 왕부는 궐과 그리 멀지도 않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아침 일찍 입궐하는 게 좋을 것 같사옵니다.”

강현준과 같은 방에 들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녀는 내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태후가 서운한 기색으로 말했다.

“내 오늘 저녁에 국사를 불러 기도를 올리고 두 사람에게 기력 보강에 좋은 약을 달여 보내주려 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탕약을 왕부까지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

“마마….”

“우리 왕비는 이곳이 누추해서 하룻밤 묵기도 싫은 모양이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태후의 표정에서 책망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해서 그러느냐? 저녁은 여왕과 둘이 산책이나 좀 다녀와. 하지만 오늘밤은….”

태후는 근엄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거라.”

고월영은 강현준이 황후마마를 거절했을 때처럼 단칼에 거절하기를 바라며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강현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난 후, 고월영은 강현준과 산책을 나왔다.

잘 다듬어진 정원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지만 고월영은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여왕 전하는 대체 언제쯤 돌아오실까?

정말 현왕 전하와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신분만 위장하기로 한 거짓말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앞에서 가던 현왕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뒤에서 고개만 숙이고 걷던 고월영은 그대로 그의 품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가 음침한 표정으로 노려보았고 고월영은 놀라서 연신 뒤로 뒷걸음질쳤다.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품으로 끌어당겼다.

“현왕 전하….”

고개를 들자 온기 한점 없는 싸늘한 그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현왕의 눈가에 있어야 할 눈물점이 사라졌다.

습도가 높은 정원을 거닐다 보니 밤이슬 때문에 지워진 게 분명했다.

이러면 모두가 현왕이라는 걸 알아볼 텐데 단둘이 이러고 있는 장면을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고월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다급히 입을 열었다.

“현왕 전하, 눈가에….”

그런데 강현준이 음침한 얼굴로 그녀를 압박해 왔다.

“이 몸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아까 경고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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