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초리를 거둔 뒤에도 서령은 일어날 수 없었다.중전이 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최 상궁은 그녀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게 하고 허리를 똑바로 세우라 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닦을 천조차 주지 않았다.서령은 손가락을 조금씩 오므렸다 폈다. 피가 말라붙으며 피부가 당겼고, 무릎 아래로는 차가운 기운이 파고들었다.처음에는 돌바닥의 냉기가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뜨거운 통증이 시작되었다. 무릎뼈가 거친 돌에 눌리고 다리가 저려 왔으며, 허리를 곧게 세우려고 힘을 줄 때마다 종아리가 떨렸다.해가 높아졌다.중궁전의 궁인들은 평소처럼 물을 나르고 마루를 닦았다. 누군가는 서령의 곁을 지나면서 시선을 피했고, 누군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상궁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중전은 안으로 들어가 아침 수라를 들었으나, 서령은 뜰 한가운데 남겨졌다.어느새 무릎의 감각이 둔해졌다.그녀가 몸을 조금 움직이려 하자 곁을 지키던 상궁이 어깨를 눌렀다.“누가 자세를 바꾸라 하였느냐?”“다리에 감각이 없어 잠시…….”“마마께서 일어나라 하시지 않았다.”서령은 이를 악물고 다시 허리를 세웠다.그때 회랑 아래에서 물동이를 들고 지나던 어린 나인 하나가 멈춰 섰다. 아이는 서령의 마른 입술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살폈고, 상궁이 다른 쪽을 보는 사이 작은 바가지에 물을 떠 다가왔다.“나인님, 조금이라도…….”서령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무엇을 하는 것이냐!”아이는 놀라 바가지를 떨어뜨렸고, 물이 돌바닥 위로 흘렀다.최 상궁이 달려와 아이의 뺨을 때리자 어린 나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마마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감히 물을 주려 하느냐?”아이는 울음을 삼키며 엎드렸다.“소인이 잘못하였사옵니다. 너무 목말라 보이셔서…….”서령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상궁마마, 저 아이는 제게 물을 주지 않았사옵니다. 제가 마시지도 않았으니 부디 꾸짖지 말아 주시옵소서.”최 상궁이 서령을 돌
“네 주변에는 어찌 그리 죄에 연루된 사람이 많으냐. 연화도, 옥분도, 모두 너와 가까운 아이들이 아니더냐.”“두 사람의 잘못이 밝혀진 것은 아니옵니다.”“네가 조사관이더냐?”정난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감히 중전 앞에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려 드느냐?”서령은 고개를 숙였다.“소인은 다만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두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 말아 주십사 청한 것이옵니다.”중전은 차갑게 웃었다.“그 말이 바로 네 오만함이다.”그녀가 최 상궁을 돌아보며 손짓하자 상궁은 계단 아래에 놓인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서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마마, 소인이 무례하였다면 꾸짖어 주시옵소서. 그러나 연화와 옥분의 일은…….”“아직도 그 아이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구나.”정난희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렸다.“손을 내밀어라.”서령은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최 상궁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자 서령은 천천히 손을 폈다.전날 밤 도겸이 기름을 발라 주었던 손이었다.왕은 두레박 줄에 쓸린 작은 상처를 보면서도 얼굴을 찌푸렸고, 앞으로는 물 긷는 일을 다른 궁인에게 맡기라고 당부했다.그 손바닥 위로 회초리가 떨어졌다.서령은 숨을 삼켰다.손끝까지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두 번째 매가 내려오자 손바닥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고, 세 번째에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렸다.최 상궁이 손목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움직이지 마라.”서령은 입술을 깨물었다.정난희는 계단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전하께서는 네 손을 그리도 귀하게 여기신다지. 향을 만드는 손이라며 아끼신다 들었다. 그리 귀한 손이니 오늘 배운 법도도 오래 기억하겠구나.”다시 회초리가 떨어지자 서령의 어깨가 움찔했다.손바닥에 피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중전은 그 붉은 흔적을 보고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찻잔을 내려놓고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어찌 울지 않느냐?”서령은 고개를 숙였다.“전하께서는 네 눈물에 약하시다던데, 내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중전은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그런데 네가 어찌 아직도 서 있느냐?”최 상궁이 서령의 어깨를 눌렀다.“무릎을 꿇어라.”서령은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밤새 차가워진 돌바닥이 치맛자락 아래로 닿았다. 아직 햇볕이 들지 않은 자리에는 습기가 남아 있었고, 거친 돌의 이음새가 무릎뼈를 눌렀다.정난희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이제야 네 자리를 아는구나.”서령은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린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께서 부르신 까닭을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중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느냐?”“소인이 모르는 허물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옵소서.”“가르쳐 달라 하였느냐.”정난희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그렇다면 오늘 제대로 배워야겠구나.”중전이 최 상궁에게 눈짓하자 상궁은 서령의 뒤로 돌아가 허리를 똑바로 세우게 했다.“마마께서 허락하시기 전에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마라.”서령은 허리를 곧게 폈다.정난희는 궁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향방의 나인이 밤마다 전하의 침전에 든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이냐?”서령은 숨을 골랐다.“전하의 부르심을 받들었사옵니다.”“전하께서 부르시면 네가 가고, 전하께서 원하시면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더냐?”뜰에 모인 궁인들 사이로 작은 동요가 일었다.서령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왕과 자신 사이의 일을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웠으나, 중전은 바로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소인은 전하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신분이옵니다.”“그렇다면 네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는 말이냐?”서령이 고개를 들자 정난희가 미소를 지었다.“어찌 대답하지 못하느냐. 전하께서 너를 원하셨을 뿐, 너는 전하를 은애하지 않는다는 뜻이더냐?”그 말은 함정이었다.은애한다고 답하면 왕의 총애를 믿고 분수를 잊었다고 꾸짖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왕의 마음을 농락한 죄를 물을 터였다.서령은
서령이 중궁전의 부름을 받은 것은 전날 밤 도겸이 발라 준 기름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던 아침이었다.향방의 문을 열자 밤새 식은 향재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소매를 걷고 향갑을 정리하던 서령은 손바닥에 남은 작은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두레박 줄에 쓸렸던 자리가 여전히 붉었으나, 왕이 손수 기름을 발라 준 덕분인지 전날보다 통증은 한결 덜했다.그 손을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던 도겸의 얼굴이 떠올랐다.전날 밤 두 사람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재가 연화의 안위를 알아봐 준 일 때문에 도겸은 질투했고, 서령은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까지 두려움에 떨게 하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왕은 결국 죄 없는 사람을 서령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벌하지 않겠다고 약조했다.그러나 독향 사건의 장부와 정 숙원, 북쪽 별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서령은 그 침묵을 잊을 수 없었다.왕의 품에서 잠들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서령 나인.”향방 문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서령이 돌아보자 중궁전의 최 상궁이 문턱에 서 있었다. 뒤에는 나인 둘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향방 안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중전마마께서 부르신다.”향재를 빻던 궁인들의 손이 일제히 멈췄다.서령은 절구 옆에 놓아둔 작은 향갑을 덮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로 찾으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최 상궁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중전마마께서 부르시면 가는 것이지, 향방 나인이 감히 까닭부터 따지는 것이냐?”“하던 일을 다른 궁인에게 맡기고 따르려 하였사옵니다.”“네가 자리를 비우면 향방의 일이 모두 멈추기라도 한다는 것이냐.”상궁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어린 나인 하나가 놀라 절굿공이를 내려놓았다. 서령은 그 아이가 불필요한 꾸지람을 듣지 않도록 향갑을 건네주었다.“이것만 잘 덮어 두거라. 습기가 들면 향이 변한다.”아이는 향갑을 받으면서 서령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도겸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서령을 품에 안았다.“내가 너를 지키마.”서령은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전하께서는 늘 그리 말씀하십니다.”그 말에 도겸의 팔이 굳었다.서령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하지만 먼저 그의 옷깃을 붙잡지도 않았다.도겸은 그 작은 차이를 느꼈다.“나를 믿지 못하겠느냐.”서령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믿고 싶습니다. 누구보다도 전하를 믿고 싶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그러니 제게 거짓말은 하지 마십시오. 말씀하실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안심시키려고 사실이 아닌 말씀을 하지는 마십시오.”도겸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밤이 더욱 깊어졌을 때, 도겸은 서령이 잠든 줄 알고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왔다.문밖에서 기다리던 내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전하, 윤재에 관한 보고가 도착하였사옵니다.”도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말하라.”“허락받지 않은 곳에 출입한 흔적은 없사옵니다. 격리된 궁인의 안위를 확인한 일도 정해진 절차를 벗어나지 않았사옵니다.”도겸은 잠시 침묵했다.“그것이 전부냐.”“아니옵니다. 윤재가 독향 사건의 장부를 거두어 간 시각과 인수 기록 사이에 어긋남이 있음을 발견하였사옵니다.”도겸은 문서를 받아 펼쳤다.먹으로 적힌 글자를 따라가던 그의 손가락이 한곳에서 멈췄다.한참 동안 문서를 바라보던 왕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이 사실을 누가 더 아느냐.”“현재 확인된 바로는 기록을 대조한 윤재와 담당 궁인뿐이옵니다.”도겸은 문서를 접었다.“이 일은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마라. 윤재에게도 경솔하게 움직이지 말라 전하라.”내관이 물러난 뒤에도 도겸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윤재는 서령에게 연화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서령에게 설명하지 못한 기록의 빈틈까지 발견했다.도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그 사내를 향한 질투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서령
“앞으로 물을 긷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네 손은 향을 만드는 손이지, 두레박 줄에 쓸려 피가 날 손이 아니다.”서령은 그가 손가락 하나하나를 살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향방의 나인이 물을 긷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이렇게까지 걱정하시면 다른 궁인들이 저를 더욱 피할까 두렵습니다.”도겸은 그녀의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그들이 너를 피한다면 그 까닭을 알아보겠다. 다만 네가 내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더 큰 곤경에 빠지는 일은 없도록 하마.”서령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웃었다.“전하께서 모든 일을 직접 살피시려면 정사를 보실 시간이 부족하시겠습니다.”도겸이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정사를 보는 동안에도 네 생각이 나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차라리 네가 내 곁에 앉아 있다면 덜 신경 쓰일지도 모르겠구나.”“그러다 신하들이 저를 원망할 것입니다.”“그들이 감히?”서령이 웃음을 터뜨리자 도겸도 따라 웃었다.그는 유과 하나를 집어 서령의 입가에 가져갔다.“오늘은 제대로 먹었느냐. 네가 끼니를 거른다는 말을 듣고 이것부터 준비하게 했다.”서령은 유과를 받아 먹다가 그에게도 하나를 내밀었다.“전하께서도 드십시오. 저 혼자 먹는 모습을 구경하시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도겸은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유과를 베어 물었다.“네가 먹여 주니 단것도 먹을 만하구나.”서령은 그가 일부러 자신의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전하, 이제 손을 놓으셔도 됩니다.”“싫다.”그 짧은 대답에 서령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도겸은 그 웃음이 좋아 다시 입을 맞췄다.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낮의 불안이 끼어들지 못했다.서령은 왕의 어깨에 기대어 따뜻한 차를 마셨고, 도겸은 그녀가 말하는 향재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향이 타는 속도와 잔향이 남는 시간을 설명하는 서령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도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이 여인을 이렇게 웃게 하는 일이 무엇이 그리 어렵단 말인가.왕이 가진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