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런데, 아쳐를 대하는 주변의 반응은 묘하게 흘러갔다. 어떤 식으로 진실을 포장했는지, 학생들이 아쳐의 주변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어 찬탄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제국의 빛나는 태양이신 황태자 전하, 서쪽 카르나 지역을 방어하시다 큰 부상을 입으셨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직접 지휘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전하.”“저희가 아카데미에서 평화롭게 즐길 때도, 전하께서는 피를 흘리며 싸우고 계셨다니 감동적입니다.”설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스틸은 속으로 차가운 비소를 삼켰다. 던전에 부정한 저주를 뿌리다 얼굴이 엉망이 된 것을 저토록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다니, 아쳐야말로 위선의 극치였다.
그때 렘브란트의 동생인 레무르가 아쳐의 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염려를 건넸다.
역시 오스카와 라이엔은 인간화한 스펙터와 그 주변의 군대만 놀라 시선으로 훑었다.“대단합니다. 스틸 대공. 안 그래도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는데 참모가 또 계셨군요.”“저 수많은 군세가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는 걸 보니 지휘 능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지니는 스틸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손가락으로 먼 해안선을 가리켰다.“주인님, 저쪽이 좋겠어. 파도가 부드럽게 밀려오는 곳이니 뭔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지니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농염한 빛을 띠었다. 스틸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붉은 마력이 그의 손바닥에서 피어올랐다.화염이 공기를 가르며 타오르자 오스카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떨렸다.“오스카 대공,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내가 여기에 주변을 탐지할 빛을 발하는 마도구가 되는 건물을 선물로 주겠습니다.”스틸의 목소리엔 단호함이 묻어났다.오스카는 라이엔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바로 이해를 못 하고 계속 눈만 깜빡거렸다.“음, 그럼······.”“그게 뭔지 몰라도··· 전하께서 원하시는 건 뭘까요?”스틸은 망설임 없이 오스카와 라이엔을 향해 즉답을 건넸다.“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가능한 마도구 제조 기술과 숙련 기술자들을 한 달간 지원해 주시오.”오스카의 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의 뒤에 선 참모진 사이에서 낮은 탄식과 함께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뭔 저런 파렴치범이 있나 하는 뉘앙스였다.몇 달간 구축한 천리장성의 노력이 헛되진 않는 법.“&mid
리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자신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해 괜히 대공끼리 사이만 안 좋아지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죄인이 되는 셈이었다.“스틸 대공은 지혜로우니 잘해 나가시겠지?”이건 간절한 바람이자 스틸에 대한 신뢰였다.“게다가 조력자가 생겨 별 탈 없이 가셨을 거예요. 이번에 참모가 생기셨어요. 예법도 대단하고 마력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같았어요.”이건 금시초문이었다. 참모? 어느 귀족이 스틸에게 손을 내민 건가.“누구?”“일단 잘 모르겠지만 훤칠한 보라색 머리 남성분과 붉은 머리 아름다운 여인이었어요.”리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침대에 누워 시에라의 마사지를 받으며 한숨을 흘렸다.그때 레나가 급히 리노에게 찾아와 주변부터 두리번거렸다.“레나, 무슨 일이야?”리노의 물음에 그녀의 눈엔 긴장감이 서려 흔들리고 있었다.“소식지 기자래요. 마지션 교수님이 돌아가신 것에 관해 물어본다고 왔어요.”그때 잠시 리노는 마른침을 삼켰다.“뭐? 돌아가셨어?”그의 목소리는 잠긴 듯 낮았다. 눈동자가 어둠에 잠겨 가쁜 숨만 내쉬었다.심장이 거칠게 뛰며 귓가를 울려 자신의 맥박 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운 것만 같았다.***밤이 되었다.스틸은 지니와 식사를 마치고 오스카 대공과 그의 아내 라이엔 대공비를 따라 해안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모두는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이곳저곳에 대한 영지 설명을 전해 들었다.그리고 그들 뒤로 서로의 대공가를 호위하는 무사들도 줄을 이었다.
오호, 오스카는 직진으로 그리 물으면서 기브엔 테이크 주고받고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한 말을 건넸다.스틸은 지니와 눈을 마주하고 환히 웃었다.‘드디어, 협상 시작이군.’스틸은 오스카가 직설적인 사람이라 오히려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아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이 자를 위해 뭘 해주면, 그 역시 캔도르를 위해 뭔가를 내어 줄 건 같았다.옆을 보니 스펙터도 흥미롭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네가 제일 잘하는 담벼락 좀 쌓아 주지 그래?”담벼락이라.스틸은 피식 웃으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어쨌든 공간 지배 스킬을 쓰니 벤시를 비롯하여 듀라한도 그렇고 플로럴스피릿까지 모두를 잘 거느릴 수도 있어 현재는 든든했다.그러나 자신이 떠나고 난 다음 오스카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해안가 이기는 한데.”그때 지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여기 담을 쌓으면 좀 이상할 것 같은데. 배는 못 들어오기는 하겠다.”그때 스펙터가 껄껄거리는 웃는 소리를 내더니 한마디 툭 하고 내뱉었다.“그러니 필요하지. 높은 곳에서 공격을 감행하면 모래밭에서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그런가. 하긴 방파제 같은 것을 쌓으면 나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전직 군인의 조언은 적재적소에서 쓰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들 상상이 되지 않는지 의아한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션, 의견 좀 줘 봐.”그러자 마지션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 전하의 영상 구현화 스킬을 발현된 상황을 확인하였
오스카는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우리가 너무 정보에 어두웠군. 바르트 경!”그때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기사 하나가 오스카 곁으로 다가왔다.위아래로 검은색 밀착복을 입었고 자객처럼 매우 날렵하게 순식간에 오스카 뒤에 자리를 잡았다.이동하는 순간에도 인기척조차 일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존재감을 공기처럼 투명하게 조절하는 자였다.“네. 전하.”“황성에 도는 소식지를 다 쓸어와. 그리고 스틸 대공에 대한 정보도 좀 구해오고.”“알겠습니다.”오스카가 제 최측근 호위 기사 바르트에게 명을 내리는 순간.라이엔의 탄식이 크게 흘러나왔다.“어머, 전하! 마법사 군대도 너무 대단하네요. 아직 끝이 아닌가 봐요.”그때 스틸이 아닌 지니의 인벤토리 안에서도 얼굴을 가릴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쓴 불사조 문양의 망토를 휘날리는 마법사들이 허공을 떠서 줄을 맞추어 나오고 있었다.세시르 영지에서 그 모습을 보던 오스카와 그의 군대를 비롯한 가신들은 다시 탄식만 뱉어내었다.***어이없는 힘자랑이 이어지고 나서야 레투카 제국의 대공이 만나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맞이했다.20대 후반의 미남 오스카 헤세 본 루카스크는 그의 21살 사랑스러운 아내 라이엔과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고자 만전을 기했다.“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멀리서 온 손님께 무례했네요.”이제는 의젓하게 옆에서 마지션이 참모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스틸과 지니도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를 즐겼다.“주인님, 해산
스틸이 여유롭게 웃으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제 감각을 키워 사람들과 벤시들, 그리고 오스카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뭐 군사력은 보여주면 되지.”“주인님, 그러게. 하데스 님의 호의는 다 이유가 있었네.”아쳐가 중간에 농간을 피워서 일이 꼬이다니.하긴 반년 전이면 스틸은 그런 대접을 받을 수준이기는 했다.하지만 이리 떵떵거리면서 위세를 떨칠 정도라면 뭐 어려운 가문에 나라를 지킨 스틸에게 밥 한번 줄 수 있는 것 아닌가?그때 옆에 있던 마지션은 한숨을 흘리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대공 전하가 얼마나 위상이 높아졌는지 이 지역 소식지는 별로 안 다뤘나 봅니다.”“아쳐가 만든 소문만 믿는다면 앞으로 곤란할 거라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마지리안의 말도 옳았다.오스카 대공과 저 대공비는 눈 막고 귀 닫고 살았나.하지만 레투카는 대지가 넓었고, 이곳 사람들에게 황성의 일은 관심 밖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소문이 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환경이기도 하니 말이다.지니는 저 멀리 스틸의 첫사랑과 닮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라이엔이라고 했던가. 저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스틸을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그때 라이엔은 오스카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자, 오스카는 쐐기를 박듯 스틸을 향해 더 소리를 쳤다.“우리 영지는 제국을 수호하느라 바쁘니 이만 가시오! 어제 오전에 국지전이 있었소!”그리 오스카가 호통을 치듯 말하자 갑자기 이곳의 수천 기사들은 여기저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우린 제국을 지키느라 바쁜데, 스틸 대공이 여기에 놀러 온 거야?
해변가에 대공가 마차를 이끌고 오스카 대공이 있는 곳으로 가던 그 순간..갑자기 마차는 멈추게 되었다.“······이런!”“윽! 전하······?”그런데, 역시.스틸 제 인생이 그렇지.강철신 인생에서도 뭐 놀랄 일도 아니고.“······주 주인님! 이게 뭐야?”그런데 조금 전까지 밝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이 땅을 밟았지만, 현재는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세상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스틸도 자조하듯 그리 웃음을 흘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세시르 영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부산처럼 대규모 항구도시다.바다 내음이 한껏 나는 거대한 해안가에 자리 잡은 발전된 영지라 배도 상당하고 사람들 역시 곳곳에 활력도 넘쳤다.그런데, 이런 풍경 따위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갑작스러운 시커먼 수 천의 군사들이 스틸을 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게 아니던가.분명 식사를 하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자는 분위기가 아닌 건가?리노가 배신했나? 아니면 무슨 덫에 걸렸나? 잠시 만나자고 했더니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한 거 아니었나?-스틸, 뒤통수를 맞았군.스펙터도 덤덤하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케르베로스도 아주 살판났다고 들떠 있었다.-인간들의 검은 속내는 알 수가 없군. 허허. 흥미진진해.-이런 볼만하겠어. 우리도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주인님은 무슨. 불이 난 연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스틸은 우선 잠시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3초 잠깐 고민한 그였다. 누가 봤나? 참 CCTV는 없는 세상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천하의 파일럿 강철신이 이런 목걸이 하나의 움찔하다니.게다가 망한 영지기는 해도 고위 귀족 대공 인생에 뭘 주워서 넙죽- 꿀꺽할 수 없는 법.일단 이 화재부터 진압하고 주인이나 찾아줘야겠다 싶어 주변을 훑었다.강철신은 일단 구유통이 아닌 우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불길에 쫓겨 물을 찾던 그의 눈에 목걸이가 들어
한 달 전, 20XX년 4월 1일 오전. 인생 2번째라 공군 소령 강철신은 오늘이 당연히 올 줄 알았다. 그리고 당연히 적국기 등장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다. 전생의 기억이 혈관 속을 맴돌았다. 오늘, 그는 죽을 각오로 전투기에 올라가야 하는 날이다. 분명 적국의 전투기에는 망할 아쳐가 타고 있을 터.정밀유도폭탄(SDB)까지 무장하고 스텔스 전투기로 출격 30분 만에, 지금 그는 사선을 넘나들게 되었다.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영공을 휘저어 놓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을 터트릴 요량으로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