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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Author: 꼬마별

제1화

Author: 꼬마별
“이 사람 복근이 왜 16개야?”

폭이 넓은 새까만 침대 위에서 잔뜩 취한 한영채가 남자의 허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영채는 남자의 가운 끈을 풀었다. 눈앞의 복근이 잘 익은 옥수수 알처럼 도톰하게 줄지어 있었다.

“하나, 둘...”

절반쯤 세던 영채는 금세 싫증을 냈다.

“됐어. 가슴이나 보자.”

영채는 손에 걸린 검은 실크 가운을 아예 활짝 젖혔다.

“미쳤나 봐, 가슴이 나보다 더 크잖아!”

괜히 심술이 난 영채가 남자의 뺨을 철썩 때렸다.

잠에서 확 깬 남자가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위험한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영채는 양손으로 단단한 가슴을 짚더니 대놓고 주물렀다.

남자의 몸이 굳어지면서 반듯하던 표정에도 금이 갔다.

“더러운 손 치워. 안 그러면 손목을 부러뜨려...”

짝!

저렇게 차갑게 생긴 얼굴로 아직도 말대꾸를 하자, 영채는 한 번 더 뺨을 갈겼다.

“얌전히 누워 있어! 오늘 밤 내가 돈 주고 고른 남자잖아. 날 제대로 모셔야지, 알겠어?”

...

“아가씨, 영채 아가씨!”

꿈속에서 미남과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던 영채는 집안일을 오래 맡아 온 박순희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이모님, 우리 집 규칙 몰라요? 좋은 꿈 깨우면 벌금 백만 원! 돈 내기 싫으면 복근 멋진 남자 사진이라도 한 장 내놔요.”

박순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아가씨, 지금 남자 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아가씨 집안의 회사가 파산하게 생겼다고요!”

영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박순희를 바라봤다.

“뭐라고요? 아빠가 출산한다고요?”

박순희는 숨이 턱 막혔다.

“영채 아가씨.”

박순희가 영채의 귀에 가까이 대고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투자한 사업이 실패해서 자금이 전부 묶였어요.”

그제야 영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는요?”

“옥상에 계세요. 얼른 가보세요!”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옥상으로 달려갔다.

옥상 난간 끝에 절망에 빠진 한재성이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아래로 몸을 던질 기세였다.

“아빠, 잠깐만!”

영채가 문을 밀어젖히며 소리쳤다.

한재성은 화들짝 놀라면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몸을 떨면서 돌아본 한재성의 눈에 화려한 슬립 원피스 차림으로 달려오는 딸이 들어왔다. 놀란 나비가 날아드는 것처럼 다급한 모습이었다.

“영채야, 오지 마!”

영채는 급히 멈추다가 발가락을 바닥에 세게 찧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다.

“아빠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내가 죽어야 이 빚을 정리하고, 너랑 엄마라도 편하게 살 수 있어.”

한재성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앞으로 아빠가 곁에 없어도 둘이 씩씩하게 살아. 서로 잘 지키고, 가끔은 아빠 생각도 해 주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에 영채가 결국 끼어들었다.

“아빠,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냥 보험 들어 두셨나 물어보려고 온 건데...”

한재성은 말문이 막혔다.

영채가 고개를 돌리면서 박순희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 얼마 나와요?”

기가 막힌 한재성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나 아직 안 죽었다. 조금만 더 크게 말하지 그러냐?’

박순희가 조심스럽게 알려 줬다.

“아가씨, 회장님이 스스로 뛰어내리시면 보험금이 안 나올 가능성이 커요.”

“아...”

영채는 실망을 숨지지 못했다.

화가 치민 한재성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정말로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영채는 아빠가 뛰어내리려는 줄 알고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아빠, 아직 뛰지 마요!”

핸드폰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저 돈 있어요. 회사의 구멍은 제가 메울 수 있어요!”

평소에는 아빠에게 받은 가족카드를 썼지만, 영채에게도 따로 모아 둔 비상금이 있었다.

영채는 핸드폰으로 계좌 잔액을 확인했다.

50원.

영채가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요, 아빠. 어젯밤에 크루즈 요트 한 척 빌리느라 다 써 버렸네요.”

한재성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저 돈만 잡아먹는 딸 같으니!’

영채가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어제 기분이 엉망이었잖아.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까지 떴으니...”

바람 소리에 묻혀 한재성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깊고 처량한 한숨만 내쉬었다.

철없는 딸에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회사는 이제 2천억 원 가까운 빚까지 생겼다.

생각할수록 그냥 뛰어내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한재성이 절망한 채 다시 난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안 돼요! 아빠, 방법이 하나 더 있어요!”

영채는 잠옷 주머니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서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저 문정호 아이를 가졌어요. 지금 문정호를 찾아가서 우리 화해그룹을 살려 달라고 할게요!”

한재성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입술까지 떨렸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문정호 찾아간다고요.”

“아니, 그 전 말.”

“문정호 아이 가졌다고요.”

“누... 누구 아이?”

“문, 정, 호!”

한재성은 심장을 움켜쥔 채 뒤로 꼿꼿하게 넘어갔다.

박순희가 급히 사람들을 불러서 한재성을 받아 냈다. 얼른 뺨을 두드리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회장님, 회장님!”

영채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몸을 돌려서 달려갔다.

“아빠, 아직 죽으면 안 돼요! 제가 문정호 데려와서 살려 놓을게요!”

분노 덕분인지 한재성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떨리는 손으로 딸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빨리... 잡아!”

“못 잡아요, 회장님! 아가씨는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빨라요!”

한재성이 간신히 아래를 내려다보자, 하얀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대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한재성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끝났다.

이번엔 정말 끝장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저렇게 남자에게 넘어갔다니, 대체 누구에게 따져야 하나?

상대는 하필 문정호였다.

문씨 집안에서 손꼽히는 가장 잔혹한 후계자.

겉모습은 신사처럼 단정하고 아름다웠지만, 속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어릴 때에는 친아버지와 아버지의 내연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말이 돌았다.

병약한 맏형 문승일만 남긴 채, 7명이나 되는 형들을 하나씩 무너뜨려서 결국 할아버지에게 경영권까지 넘겨받았다.

야심도 대단했다. 태양그룹을 맡은 지 2년 만에 금융권을 뒤흔들며, 작은 기업들을 흔적도 없이 삼켜 버렸다.

한 재력가가 딸을 정호에게 붙인 뒤 아이를 앞세워 문씨 집안에 들어가려 했다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경원시 재계에서 온 가족이 몽땅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도 있었다.

‘친아버지와 형들까지 가차 없이 쳐낸 남자가 고작 아이 하나 때문에 화해그룹을 살려줄 리가 있나?’

한재성은 눈을 감았다. 절망만 짙어졌다.

‘문정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은 게 천운이었는데, 우리 영채는 제 발로 죽으러 가고 있잖아!’

...

영채는 스포츠카를 태양그룹 본사 앞에 거칠게 세웠다.

같은 때, 한정판 롤스로이스 한 대가 천천히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뒷좌석의 고급 가죽 시트에는 맞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차갑게 빚어 놓은 조각처럼 고귀하고 빈틈없는 모습이었다.

손끝으로 묵주를 굴리던 정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감정을 지운 목소리였다.

“진 부장,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화상회의 화면의 빛을 받은 반듯하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차갑고 하얗게 빛났다.

화면 너머의 진준은 겁에 질려서 무릎까지 꿇었다.

[대표님, 제가 그 물량을 바꿔치기하면 안 됐습니다. 제가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정호는 묵주를 천천히 굴리면서 눈을 떴다. 불쌍하게 여기는 듯이 진준을 바라봤지만 목소리는 뼛속까지 차갑기만 했다.

“나는 두 번 기회는 안 줘. 진 부장 앞에 먼저 죽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모를까...”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쿵!

차가 회사 앞에 도착하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손에서 빠진 염주가 발치로 떨어졌다.

정호가 싸늘하게 눈을 들었다.

기사는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대, 대표님... 막 주차하려던 참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갑자기 뛰어들면서 차를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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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제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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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제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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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제6화

    “거래?”정호가 소리 없이 웃었다. “아무나 나랑 거래할 수 있는 줄 알아?”지금까지 정호에게 대놓고 조건을 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영채의 웃음이 잠시 멎으면서 정호를 가볍게 바라봤다. “내가 안 되면, 당신 생각엔 누가 되는데요?”정호는 입술을 다문 채 생각했다. 정작 영채보다 적당한 사람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괜히 버티지 마요. 문 대표한테는 내가 제일 잘 맞아요.”저 자신만만한 태도가 못마땅해서 정호는 냉소했다. “그 자신감은 누가 준 거지?”“당신이 줬죠.”영채는 정호가 두 달 전 일을 아직도 불쾌해한다는 걸 깨달았다. 천천히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날 일 아직도 따지고 싶은 거면 내가 사과할게요.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뭐... 원하면 한 번 더 해 줄 수도 있고.”앞자리 기사와 권민의 귀가 동시에 뜨거워졌다.‘저 여자는 정말 못 하는 말이 없네.’“혼자 똑똑한 척하네.”정호는 무릎 위의 손을 치워 버렸다. 목소리는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이랑 거래 안 해.”영채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요? 아까는 분명 내가 똑똑하다고...”“조용히 있게 하려고 한 말이야. 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정호는 무심하게 시선을 돌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차갑게 굳은 옆모습을 보면서 영채는 문득 알 것 같았다.정호에게 영채가 필요 없는 게 아니었다.다만 영채 뜻대로 흘러가는 게 싫었고, 자기가 흔들렸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은 거였다.‘속 좁고 고집만 센 인간...!!’영채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정호의 겹쳐 놓은 손을 봤다.왼손이 오른손 위에 얹혀 있었고 손끝은 손목의 묵주 팔찌를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영채는 정호가 묵주를 만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저게 그렇게 소중해?’영채가 갑자기 손을 뻗어 묵주를 확 빼냈다.정호가 당황해 바로 손을 뻗었다.영채는 재빠르게 피했다. 마침 차가 집 앞에 멈추자, 곧바로 문을 열고 뛰어내린 뒤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집

  • 우리 계약 관계잖아요   제5화

    문태국은 눈에 띄게 멈칫한 뒤 정호를 돌아봤다. “저 말이 사실이냐?”정호는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설명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문태국이 찻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이놈이! 아무 여자나 집 안에 끌고 들어와?”영채는 눈썹을 움찔했다. 뭐라고 받아칠지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할아버지도 그러시잖습니까?”정호는 문태국 옆의 세림을 바라봤다.세림은 움츠리면서 문태국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문태국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영채가 얼른 달랬다. “회장님, 화내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회장님 손자를 먼저 덮쳤거든요.”문태국의 눈이 커졌고 정호도 차갑게 영채를 힐끗 쳐다봤다.영채가 제 입을 가볍게 두드리며 순진한 척했다. “죄송해요. 말이 잘못 나왔네요.”저 표정을 보면 잘못 나온 말이라기보다 일부러 긁은 말에 가까웠다.영채는 헛기침을 하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사실 정호 씨랑 만난 지 거의 반년 정도 됐어요. 그동안 회장님께 말씀을 못 드렸고요.”“그 정도는 큰일도 아니다.” 문태국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젊을 때야 분별없이 만날 수도 있지. 오늘 내 앞에서 정리하면 그만이다.”문태국은 정호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앞으로 저 버릇없는 아가씨와 만나지 않겠다고 여기서 약속해.”입만 열면 ‘버릇없는 아가씨’라고 하니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알 만했다.영채는 별로 화도 내지 않고 웃었다. “회장님, 저희 요즘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정호 씨가 오늘 절 데려온 것도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려는 거고, 저희가 결혼한다고 알려 드리려는 거예요.”문태국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나?”“들었어요, 회장님.” 영채는 곱게 웃었다. “증손주 보고 싶지 않으세요?”문태국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뜻이지?”“저 임신했어요.”문태국의 눈이 눈에 띄게 커졌다. “뭐라고? 아이가 생겼어?”“검사 결과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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