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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미아

Author: 몽베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3 11:06:47

화내지 않았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강박적으로 용서하려 했다.

남이라고 여겨도 피 한 방울 섞인 게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그저, 아는 사람 정도라도...

인사 정도만 하고 살아도 그게 어디냐고...

“남한테도... 이렇게는 안 하잖아요.”

눈두덩이 불타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여자였다.

그러니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어왔다.

때때로 가슴이 따끔거릴 만큼 아픈 말을 들었고 가끔 손찌검을 당해도 가족이니 그러려니 했다.

“꼴 보기 싫어서 그랬다 왜!”

그녀의 언성이 조금 더 높았다.

“내가 왜 딴 년이 낳은 년을 내 집에 들여야 하는데? 그게 억울해서 더 그랬다고!”

가감 없는 속마음.

“그러면 못 데리고 있겠다, 같이 살기 싫다고 그러지 그랬어요?”

울컥울컥 울음이 넘어왔지만, 뒤이은 말에 기가 턱 막혀서 꿀꺽 삼켜버렸다.

“노인네들이 너 안 데려가면 땅도 집도 안 줄 거라잖아. 네 애비가 너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하라고, 그래야 집도 땅도 받는다고 했어.”

“...허.”

미안하다고 했다.

간간이 생존을 알리러 전화할 때면, 자신에게 무심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고도 했다.

짧게나마 부녀지간 같은 담소가 오갔건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끝끝내 비겁했다.

“3년 전에 네가 집 나간 거야.”

삿대질하며 그녀는 말했다.

“어차피 네 애비 죽고, 집이든 뭐든 다 나한테 상속되었으니까 너도 이제 필요 없어.”

기가 막히니 귀가 먹먹해야 하는데, 왜 마음이 울렁이는지.

은수는 꿀렁꿀렁 넘어오려는 설움을 눌러 참았다.

“하 참 나, 어디서 더러운 게. 싫으면 말지.”

재촉하는 친척들을 따라 버스 타러 가면서도, 그녀는 제게 던진 구겨진 돈뭉치를 집어 들었다.

연달아 내뱉는 욕지거리 뒤에 칵, 침을 뱉고 돌아서서 가버리는 그녀를, 은수는 멍하니 보았다. 못 박힌 듯 서서.

버스가 눈앞에서 떠날 때까지.

“...김은수.”

꼭 장승이나 마네킹처럼, 그렇게 넋 놓고 선 그녀 곁에 은영이 다가왔다.

“은수야. 이제 그만...”

은영은 곁에 가까이 와서야 은수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왜 울어?”

계모의 독한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덤덤히 넘어가는 은수가 무디다고, 많이 무뎌서 어떨 때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하, 할아버지...”

자신을 바라보는 은영을 보고,

“유산, 때문에... 그랬던 거래.”

은수는 띄엄띄엄 우는 이유를 말했다.

은영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조건의 유산 상속을 집행한 사람이, 바로 법무사인 아버지여서.

“..버려, 진 게 아니었어.”

숨을 몰아쉬어 가며, 그녀는 소리도 죽여 가며 울었다.

“처음부터 나는... 갈 곳이, 없었던 거였어.”

아버지의 발인에도 가지 못한 채 검은 상복을 입고 우는 그녀를, 은영은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처음부터 누구든 알렸어야 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촌이 구박해도 부모라고 이렇게 겪고 있을 줄 몰랐다. 친부 사후에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줄도.

아무리 그래도 친자식인데 최소한 어떤 상황인지 말은 했을 거라 믿었던 자신들의 무지를 반성했다.

그녀는 인정해야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은수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일부러 감춘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어깨를 도닥여줄 수도, 안 됐다고 안아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가해자의 위로’가 위로가 될 리 없었으니까.

-----

장례식장을 나와 차로 이동 중이었다.

“차 한 잔 마실까? 아니다. 차라리 밥을 먹을까?”

은영이 물었다.

장례 첫날 왔을 때도 자리를 지키던 은수였다. 그녀와 식사를 하던 그때가 어쩌면 은수가 유일하게 한 식사였을지도 몰랐다. 장례 일정 내내 은수가 제대로 물 마시는 모습도 못 봤으니까.

작은아버지의 여자란 사람이 어떤지는 이미 전해 들었다. 은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도 했다. 외국에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이 외려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한국 왔으니까 한국 음식 먹어야지?”

가는 길에 보이는 한옥을 보고 은영이 말했다. 은수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차는 한옥의 주차장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다행이네. 아는 집이 근처라서.”

안전띠를 풀며, 은영은 혼잣말하듯 하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어리둥절했지만 은수는 곧 그녀를 따라 나갔다.

‘향원각.’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한정식집이었다.

“와.”

외양조차 아름다워 주위를 둘러보다 감탄이 쏟아졌다.

“마음에 들어?”

은영이 묻자,

“예.”

은수는 금세 답했다.

“그래? 다행이네.”

은영은 그녀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은영 대표님?”

“어, 실장님.”

생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단아한 여인이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생경한 호칭으로 불린 은영이, 은수는 좀 낯설었다. 갑작스러운 은영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한 거라서.

“예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실장은 은영과 악수를 하며 물었다.

“제 친척 동생인데요, 동생 아버님이자, 제 작은 아버님 장례식이 오늘 끝났거든요.”

은수를 가리키며 그녀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어이구, 저런.”

실장의 얼굴이 단번에 숙연해졌다.

“힘내라고 할 겸 제가 밥 한 끼 사주고 싶어서, 예약도 없이 실례를 무릅썼네요.”

은영의 말에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오셨어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이쪽으로 오세요.”

실장은 그녀들을 안쪽의 작은 별실로 안내했다.

“진(眞) 정식 둘이요.”

막 메뉴를 펼쳤던 은수와 달리, 은영은 거침없이 주문을 넣었다.

“네.”

메뉴 책을 도로 걷어가는 손길에 뻘쭘해진 표정으로 은수는 자신이 든 메뉴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드디어 두 사람만 남았다.

“공항에서 바로 왔던 거야?”

은수를 쭈욱 훑어보던 은영의 표정이 슬쩍 굳었다. 은수는 그냥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물어보나 마나 한 말이었다. 이미 대화 중 오갔던 얘기였으니까.

상복 입었을 때는 몰랐는데,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짐도 못 놓고 올 정도로 문전박대를 당한 게 틀림없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랬대? 진짜 인정머리 없다.”

역정을 내듯 하며 은영은 말끝에 혀를 찼다.

콕 집어, 그녀의 계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은수를 탓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그 먼지와 피로를 무릅쓰고 찾아온 아이를 그 여자가 얼마나 괄시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은수는 말이 없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였다.

사실 아닌 부분이 있으면 해명이라도 해보겠지만, 문전박대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손절을 당한 건 사실이라 들켰다는 생각에 좀, 쪽팔렸다.

“너도 참, 너다. 맞서서 싸워보기라도 하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은영의 그 말에는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 은수를 보는 내내 나오느니 한숨이었다.

그녀로서는 ‘당한 사람이 잘못’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 대로부터 차근차근 넘어온 유산이 엉뚱하게도 계모의 손에 들어갔다. 작은아버지의 유일한 자식인 그녀는 한 푼도 혜택을 받은 게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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