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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반가운 목소리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03.11.2026 14:56:20

회의가 시작하고 마치기까지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종이나 옷만 아니라, 시간도 접을 수 있다면 딱 각을 잡았을 거라며 그들은 혀를 찼다.

두 시간이면 될 거라더니, 딱 두 시간을 쓰더라고.

“이쯤 되면,”

회의에서 썼던 서류를 들고 그의 뒤를 쫓으며,

“시계 인간이라고 욕들 할 겁니다.”

정비서가 한 소리를 했다.

“내 1분이 소중한 만큼 남의 1분도 소중히 여긴 것뿐인데, 왜?”

앞만 보고 걸으며 재헌은 말했다.

유순한 목소리나 저변에 납이 깔린 듯 묵직했다.

“융통성 있게 10분 일찍 끝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10시 정각에 시작하시던가요.”

여전히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융통성없는 그에게 그리 야단칠 수 있는 사람 중 한국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정비서일 터였다.

재헌은 픽 웃었다.

“12시에, ‘모노스톤’의 김은영 대표와 점심 미팅 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그가 스케쥴을 상기시켰다.

“아...”

정비서의 목소리에서 심하게 당황한 기운을 느낀 그가 돌아보았다.

“왜?”

“그게, 오늘 일정을 확인하려고 연락을 했는데, 출장을 갔다네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정비서는 말했다.

멈춰 서서 그런 그를 바라보던 재헌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뭐?”

“...아무래도,”

정비서는 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쪽과의 미팅을 잊은 것 같습니다.”

“이 날, 점심 미팅을 주선한 건 그 쪽이었잖아.”

재헌은 헛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다시,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거액이 왔다갔다 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이미 투자를 약속하고 일부 투자금을 투입한 거래처와의 약속을 이런 식으로 어길 수는 없었다.

못마땅했지만, 재헌은 말없이 끄덕였다.

‘이런 경우가...’

자신의 시간이 소중하듯 남의 시간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게 그의 집안 가훈이자 회사의 신조였다.

시간을 잘 관리하고 운용하는 사람이 사회적 성공에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거라고.

재헌은 생각했다.

안목을 믿었으나, 아무래도 김은영은 채 거르지 못한 파트너일지도 모른다고,

‘겉모양 보고 속는 건 그만해야 하는데.’

재헌은 스스로를 탓했다.

----

오전 작업을 끝내고 하나 둘씩 휴게실로 들어왔다.

“아이고 대다!”

콘크리트 건물에 공간은 넓었다.

“치워도 치워도 할 것이 있구만.”

당연한 소리를 불평처럼 한다.

그 큰 건물에 그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뭐 맛난 거 싸왔는감?”

점심시간에 다같이 모여 도시락을 펼칠 때가 꽤나 기분전환이 되었다.

“좀 있다 김장 아녀. 묵은지 해치울라고 목살 넣고 김치찜 혔지.”

“오메 오메, 맛나겄네잉.”

작은 버너가 등장했다.

몰래몰래 쓰던 휴대용 버너를 들키자 은수가 자진해서 전기 버너를 사왔었다.

다같이 모여 따끈한 밥을 챙겨먹는 게 일하며 즐기는 낙일 텐데, 대체할 수 있는 거면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화기를 쓰는 게 아니라서 다행히 관리주임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자, 자. 어여, 어여 모이라고.”

큰 들통 하나에 푸짐히도 끓여 놓은 지라, 다함께 먹는 그 음식이 꼭 잔치 음식 같았다.

너나없이 챙겨주는 그릇에 은수도 하나 받고 몇 술을 떴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몇 모금의 뜨끈한 국물이 정말로 반가웠다.

비이이입- 비이이입-.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울리자 은수는 얼른 일어났다.

“응? 왜?”

밥을 먹던 영실과 다른 그녀들이 은수를 올려다보았다.

“아, 전화가 와서요.”

기다리던 전화였다.

“저 잠시만 나갔다 올께요.”

그녀는 부리나케 방을 나가다시피 했다.

“은수씨, 밥은?”

밥 먹자고 다 벌려놓고는,

“뭐여, 애인인겨?”

그녀가 그대로 내빼는 모습에 영실이 배시시 웃었다.

“좋을 때지.”

밥을 먹던 다른 이들도 허허 웃으며 한 마디씩 보탰다.

“애인? 그런 말은 못 들었는디?”

누군가 의문스런 점을 이야기해도,

“아이고, 젊은 사람들이야 금새 있다가도 없고 하는 거지 뭐.”

이내 그런 쪽으로 묻히고 말았다.

그녀가 없는 사이 그런 말이 오가는 줄은 생각도 않은 채,

“하이.”

은수는 휴대폰을 받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헬로, 샤인.]

액정 너머로 외국인 부부가 함께 보였다.

[일하고 있는 거지요?]

“네. 근데, 지금은 점심 시간이에요.”

물어오는 그들에게 은수는 말했다.

휴게실에서 옥상까지는 3층 높이를 꼬박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중간에 통신이 끊기는 걸 바라지 않아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안쓰러운 말이 넘어왔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웃을 뿐이었다.

“거기는 다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샤인은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죠.”

옥상문을 열며 그녀는 더더욱 활짝 웃어 보였다.

배경이 바뀌는 걸 보고 액정 속 그들도 표정이 환했다.

인도에서 그녀를 조력했던 봉사팀 리더인 스티븐스 부부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를 걸어주었다.

한국인이지만, 다시 한국에서 적응해서 사는 일이 버거웠던 그녀에게 그들은 이렇게 영상통화나 이메일로 격려해 주었다.

“제이미랑 셸리는요?”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도 묻자, 그들이 은수를 많이 그리워한다고 했다.

작은 조각을 접어 연결해서 공룡을 접는 걸 보고 아이들은 그녀에게 푹 빠졌었다.

미세스 스티븐스는, 제이미가 그 방법을 응용해 계시록에 나온 사자 닮은 괴물을 만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유쾌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빈자리가 두드러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샤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성경어구에서 따온 영어 이름이었다.

[우리는 당신이 하루 빨리 인도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그 이름을 친근히 부르며 조심스레 전한 마음 한 마디.

[한국에서의 문제가 잘 해결되어 가고 있으면 좋겠네요.]

“해결은 되고 있습니다.”

미세스 스티븐스의 염려를 담은 말에 은수는 미소를 지었다.

“단지, 건강을 자신할 수 없어서요.”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샤인, 은수가 인도를 나와야 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장례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얼른 추스르고, 빨리 갈께요.”

스티븐스 부부는 은수가 생전 처음, 자신이 꼭 필요하다며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만들어준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기다린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것 같아, 늘 대화 말미에는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기도하고 있을께요. 사랑해요.]

그녀가 처음 만난 부모 같은 어른들이기도 했다.

“저도 사랑해요.”

통화를 마치고 난 후, 은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옥상에서도 꽤 그늘진 구석은 아무도 찾아오는 법이 없어 통화 때마다 자주 갔다.

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도 않는 법이니 특별히 드러나는 것도 아닐 터였다.

그래도 소리죽여 울었다.

보고 싶고 그리워서 그랬다.

아무도 모르고, 못 보고, 못 들을 거라고 믿었다.

장례 마지막 날, 아버지의 발인을 지켜보지 못하게 한 계모에게 화낼 때 빼고는 눈물을 보인 적 없었던 은수였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우는 사람은 싫어할 테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면, 그다음에는 못 먹은 밥이 생각났다.

점심 후에 하게 될 일도 떠올랐다. 사뭇 가벼워진 마음으로 옥상에서 내려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매일, 매사가 그랬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이 없었다.

아니, 없을 거라 믿었다.

‘...미화원인가?’

재헌이 측면 벽에 기대 서서 어쩌다 엿들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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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히, 필연   11화- 반가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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