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놀이

오빠의 다섯 살 된 아들 선우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바로 6개월 된 배를 움켜잡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식 검사를 했다.

오늘 아침, 오빠는 차를 몰고 나를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 결과를 받기로 했다. 만약 이식이 가능하면 나는 바로 병원에 입원해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선우에게 제대혈을 기증할 예정이다.

“서아야, 선우가 아프고 난 뒤로 네 형수와 나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선우는 걔한테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야. 만약 선우가 없으면 네 형수님은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정말 어쩔 수 없어. 이제 너의 배 속 아이가 선우의 유일한 희망이야.”

오빠의 지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그를 위로하며 바로 안아줬다.

“걱정 마, 나는 선우의 고모야. 이식은 꼭 성공할 거야.”

오빠는 나를 고맙게 바라보며 나를 자리에 앉히고 혼자서 검사 결과를 받으러 갔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가 와서 상황을 물었다. 우리는 그저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눴다.

“응, 나와 아이는 다 괜찮아.”

“자기야, 보고 싶어.”

“아기가 태어날 때 꼭 내 옆에 있어야 해...”

그때, 갑자기 한 여자가 몇 명의 여자들과 함께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는 내 머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두피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기를 다치게 할까 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힘에 그대로 끌려가면서 급하게 배를 보호했다.

그녀는 나를 화장실 칸막이에 던져 넣었다. 내 등은 벽에 부딪히며 차가운 공기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녀는 내게 흉악한 눈빛을 던졌다.

“이년! 내 아이가 병원에 누워있는데, 네가 내 남편이랑 아이를 낳으려고?”

“너 같이 남의 남자를 꼬시는 추잡한 년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뭐라고? 누굴 유혹한다고? 남자는 또 뭐고?’

나는 임신 중이라 한국에 돌아온 후, 그저 혈액형 검사하러 갔을 때만 밖에 나갔고, 그 외에는 호텔에만 있었다. 남자랑은 단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었다.

“분명 사람 잘못 본 거야, 난 너를 모른다고.”

“잘못 봤다고? 내가 내 남편이 너를 병원에 데려다 준 걸 똑똑히 봤어. 너희 둘이 염치도 없이 내 앞에서 서로 안고 있는 걸! 일부러 이 병원에 온 거지? 자랑하려고 온 거잖아!”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는데 유시우의 아내는 나 임명희야!”

“누구도 내 가정을 깨뜨릴 수 없어!”

나는 깜짝 놀랐다. 유시우는 내 오빠이니까 이 여자는 내 형수였다.

오빠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었을 때, 우리가 친근하게 행동한 게 형수에게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여자가 내가 전화할 때 오해를 했을 거다. 내가 오빠와 통화한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임명희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말을 떠들어 댔다.

“명희 언니, 이년 절대 용서하지 마요! 내연녀는 죽어야 마땅해요!”

“난 내연녀가 아니고 유서아라고 해, 나는... 읍”

내가 변호하려고 하는데 말도 채 끝내지 않고 누군가 내 무릎 뒤쪽을 세게 차서 내 무릎이 바닥에 부딪쳤다. 한 여자는 내 머리를 잡고, 내 얼굴을 변기 속에 처박았다.

나는 물에 빠져 눈이 빨개지고, 머리가 텅 비었다. 숨을 쉴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왔지만 나는 아이가 위험해질까 봐 몸을 크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배 속 아이의 제대혈은 선우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들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 물에서 끌어냈다. 차가운 변기 물과 함께 그 악취가 나를 휘감았고, 내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차갑고 강한 손이 내 뺨을 때렸다. 귀에서 윙 소리가 들렸고, 입술이 부러져 피가 입안에 퍼졌다.

임신 후로 나는 이 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모든 걸 조심하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배를 감쌌다. 그런데 갑자기 임명희가 내 손을 잡고 변기에 놓으며, 무자비하게 한 번 더 내리쳤다.

“아!”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임명희는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프지? 아프면 됐어. 내연녀가 된 대가를 꼭 기억해!”

그녀는 어디선가 커터칼을 꺼내 내 턱을 잡았다.

“곧 더 아픈 일이 있을 거야!”

나는 절망적으로 그 칼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름을 말했을 때, 임명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유서아라는 이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임명희는 커터칼을 들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내연녀랑 내연녀 아이는 다 죽어야 마땅해!”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아야, 거기 있니?”

“오빠!”

나는 힘껏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