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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0

Author: KRYS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05:47:19

반사조건처럼.

류 요스케, 그 남자의 잔상이 뇌리를 사정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제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이 바늘로 후벼 파이듯 잔인하게 아려왔다.

머릿 속에서 잔인하게 울리는 이명 속에서.

자신의 앞에 서서 절박하게 매달리는 에구치의 목소리는…… 서서히 아득해지며 차가운 공기 중으로 흐릿하게 흩어졌다.

“그때 난 너무 한심했으니까… 그래도 내게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좀 부려주지. 그랬다면 난 널 지켰을 거야. 널 너무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너에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네가 날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까 봐. 날 필요로 하지 않을 까봐. 마치 깨버린 퀘스트처럼, 내가 그때 얼마나 두려웠는데…… 조금만 내게 내가 쓸모 있는 놈이라는 거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사내의 절박함이 섞인 뒤늦은 원망을 들으며, 유진은 이미 영혼이 통째로 빠져나가 버린 텅 빈 황금빛 눈동자로 그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쓸모……

또다시 에구치가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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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42

    바이퍼 클럽의 핏빛 아수라장을 헤치고 유진이 이송된 병원으로 달려왔다.류의 온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초조하게 흘러나온 의료진의 입술은 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환자분, 현재 심각한 약물 중독과 두부 타박상으로 인해…… 코마(coma·혼수) 상태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코마…!그 날카로운 단어가 류의 세계를 단숨에 송두리째 무너뜨렸다.당장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극심한 절망이 그의 가슴 깊숙한 곳을 무참히 난도질했다.그는 하얗게 질린 채 굳게 닫힌 중환자실 문을 바라보며 시뻘건 피눈물을 삼켰다.[유진, 네가 잘못되면 난………]류는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톱이 살점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그리고 그는 그녀의 병실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도저히 만신창이로 부서진 유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결국 그는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대신 인천 부두 창고로 달려가 그녀의 복수를 끝내는 비겁한 선택을 했다.[미안해. 널 이렇게 만든 놈들부터 처리한 뒤에 난 지옥에 떨어질게. 이제는 더 이상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나 지옥에서도 널 놓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까 버텨 줘. 내가 대신 저 세상에 갈 테니까. 내가 널 더 이상 붙잡지 않게 넌 이 곳에서 살아 줘.]비가 쏟아지는 인천 부두.피의 처형이 끝나고, 김비서가 서류 봉투 하나를 그에게 무겁게 건넸다.유진이 그날 밤 어떻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오게 되었는지.그녀의 행적이 시간대별로 샅샅이 담긴 서류.그 서류의 첫 장.최초 신고자이자 구조자의 인적 사항 란에서 류의 시선이 거칠게 흔들렸다.한남대병원 심장외과 과장, 에구치 요스케.순간 류의 머릿속에 암전이 일어났다.이성이 난도질당해 하얗게 바스라지는 감각에 숨이 가쁘게 턱밑까지 차 올랐다.[그 클럽 룸에서 약물에 취해 정신이 들자마자…… 네가 가장 먼저 떠올리고 애타게 찾은 게 기어이 이 남자였니?! 그래서 이 새끼에게 직접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41

    [세상의…… 전부였다고……!]에구치의 처절한 고백을 들은 바로 그 순간, 유진의 뇌리 속에서 잔인한 깨달음의 섬광이 번쩍였다.과거의 자신은 왜 그토록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손쉽게 에구치와의 아이를 지워내고 포기할 수 있었던 건지.오직 자신들의 가난한 현실과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명분 하에.망설임도 없이 죽여 없앴던 그 배 속의 핏덩이가 어떤 의미였는지.유진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자신의 전부를 걸고 목숨 바쳐 사랑했다고 굳게 믿었다.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이 남자를 사실은 온전히 사랑한 게 아니었다는 서늘한 진실이 척추를 타고 온몸에 퍼져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지난 7년간, 자신의 영혼을 가짜의 속죄로 감싸고 있던 지독한 위선의 껍데기가 마침내 이제야 벗겨져 나갔다.그리고 더 이상 그를 탓할 수 없었다.이별의 책임을 더 이상 그에게 물을 수 없었다.“배신감 들었겠죠. 이해해요.”분노로 잠시 격앙됐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아니, 무능함. 내가 널 지킬 수 없겠구나 하는 그리고 두려움 네가 날 버릴 것 같은 그 상처가 날 죽일 것 같았어.”그의 고백이 어느 때보다 유진의 가슴을 칼로 난도질하며 시리게 헸다.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그와 이별하고 보내 주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그를 자신에게서 풀어 주어야 자신도 그를 정리할 테니까.“그때 난 당신을 사랑했고 난 그때 내 전부를 걸었어요. 아이까지 희생하면서까지 당신만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난 7년동안 당신과의 추억이 가끔 나를 흔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오늘 당신을 만나고 알았어요. 우리의 타이밍이 언제나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유진아…….”“당신에게 왜 기대지 않았냐고요? 아니 기대고 있었어요. 그런 날 당신이 못 본 거예요. 당신만 바라보던 날 일부러 보려하지 않은 거라고요. 그리고 내가 당신이 가장 필요했을 그때. 나의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그 날…… 내가 당신에게 달려 가던 그 날, 당신은 날 포기했어요.”카페의 공기가 냉정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40

    반사조건처럼.류 요스케, 그 남자의 잔상이 뇌리를 사정없이 스치고 지나갔다.그리고 언제나처럼, 제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이 바늘로 후벼 파이듯 잔인하게 아려왔다.머릿 속에서 잔인하게 울리는 이명 속에서.자신의 앞에 서서 절박하게 매달리는 에구치의 목소리는…… 서서히 아득해지며 차가운 공기 중으로 흐릿하게 흩어졌다.“그때 난 너무 한심했으니까… 그래도 내게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좀 부려주지. 그랬다면 난 널 지켰을 거야. 널 너무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너에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네가 날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까 봐. 날 필요로 하지 않을 까봐. 마치 깨버린 퀘스트처럼, 내가 그때 얼마나 두려웠는데…… 조금만 내게 내가 쓸모 있는 놈이라는 거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사내의 절박함이 섞인 뒤늦은 원망을 들으며, 유진은 이미 영혼이 통째로 빠져나가 버린 텅 빈 황금빛 눈동자로 그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쓸모……또다시 에구치가 무심코 뱉어낸 그 날카로운 단어 하나가,유진의 가슴 깊은 곳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진짜 상처의 핵심을 정면으로 찔렀다.하지만 비정하게도.그 곪아 터진 상처의 끝에,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 사내는 눈앞의 에구치가 아니었다.이번에도 류였다.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다.[나야 말로 얼마나 쓸모가 없는 존재였는데. 처음부터 내가 날 사달라고 당신에게 조를 때부터…… 난 당신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귀찮기만 한 존재였는데.]순간, 기억 속에 스며든 류의 서늘하고 오만한 눈동자가 그녀의 온 신경을 지배하고 흔들었다.[그 긴 12년의 세월 동안, 난 단 한 순간도 당신에게 쓸모 있던 존재가 아니였는데. 늘 그저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기대고 늘 당신을 필요로 하기만 하고. 그래서 결국 버리지 못했나요? 내가 불쌍해서…… 당신이라는 쓸모가 없으면, 난 안되니까.]유진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속으로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그럼 내가 애초에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우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39

    인적 드문 바닷가 전경의 작은 카페.사방을 에워싼 파도 소리만이 서늘한 정적을 채우는 가운데.유진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은 에구치 요스케를 가만히 응시했다.무려 7년 만에 제대로 마주 앉은 첫사랑의 남자.그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로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유진은 짜증만 났다.그리고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음성이 툭 흘러나왔다.“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지만…… 마음 털고 편해지고 싶은 거라면 하고 싶은 말 하세요.”자신을 향한 유진의 지독하리만치 서늘한 태도.에구치는 심장이 칼날에 짓겨 가루가 되는 것 같은 참혹한 통증을 느꼈다.“그 전에…… 내 과거를 내게 먼저 말하고 싶어. 네가 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주기를 바라니까.”“알았어요. 뭐든…… 들을게요.”에구치는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마른침을 삼켰다.“널 만나기 전, 난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어. 그리고 버려졌지. 그래서 다시는 남들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사랑하지 않겠다고 아니, 사랑을 믿지 않았어. 그 딴 건 없다고 그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게 사람 관계라고.”이미 알고 있는 그의 과거.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그를 이해하려 애를 썼었다.그가 돌려주지 않는 사랑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다.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사정했는데.과거 에구치가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를 상기하던 유진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에구치를 향했던 그 절실했던 사랑이 너무도 잔인하게 익숙했다.“그런데 내가 너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네가 얼마나 힘든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걱정이 뭔지 난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두려웠어. 너에게까지 버림 받게 된다면 난 끝이었으니까. 그 상처가 두려워서 내가 먼저 도망쳤어. 미안해.”처절할 정도로 솔직한 자백이었다.사내는 평생을 숨겨온 자신의 가장 나약하고 추악했던 열등감을 그녀에게 온전히 발가벗겨 내보였다.유진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38

    유진은 침대 위에서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쥔 채, 깊은 망설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나처럼 너도 지옥에서 살기를 바랄 뿐이야’사고 이후, 자신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 류의 마지막 목소리.그리고 화면 위에는 류가 보낸,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동영상 링크가 시린 블루라이트를 내뿜으며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이번에는 이 남자가 또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을 아프게 할지 무서웠다.[지옥……]유진은 뼈마디가 저려올 만큼 두려웠다.[내가…… 결국 당신을 지옥에 쳐박은 건가요?]그러나 그를 향한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벼락처럼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는 그를 향한 걱정과 지독한 그리움이었다.자신과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가 유진의 가쁜 숨통을 사정없이 조여왔다.[당신이 날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거 알아요. 내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거니까.]유진은 화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근데 나도 당신을 증오하기를 바랬던 건가요? 그래야만 지옥 같은 우리가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추악한 납치와 약물 범죄까지 벌일 사람은 아니라는 거, 나 누구보다 잘 아는데…]세상 모든 사람이 류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냉혈한이라 손가락질해도 자신에게만큼은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은 류가 가진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자 순애였다.그래서 자신이 먼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가며 그를 잔인하게 끊어냈다.[왜 이런 일까지… 아니야. 난 당신을 알아. 분명 지금 당신 제정신 아니야. 당신, 정말로 날 믿어요? 아니. 당신은 나 안 믿잖아.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그 모진 말을 당신이 정말로 믿었다면. 당신은 이 끔찍한 동영상을 나한테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유진은 이제 류가 쏟아내는 지독한 단어들의 해독 코드를 알았다.그래서 그의 가시돋히고 저주 섞인 말들이 더 이상 그녀를 찌르지 않았다.그러나 동영상 안에 담긴 진실.언제나 자신의 삶에 버팀목이자 구원이었던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37

    지독한 연기처럼 뇌를 갉아먹는 환각의 후유증은 잔인했다.단 한 번의 강제 투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치사량을 넘겼던 악질적인 약물들은 이미 유진의 마른 뼈마디와 신경포를 장악해 중독 증세를 일으키고 있었다.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손끝의 떨림과 오한을 누르며 유진은 정신의학과 내에 마련된 마약 중독 전문 상담 진료실을 나섰다.차가운 병원 복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숨을 내쉰 바로 그 순간 유진의 시선 끝에 극도로 어색하고 이질적인 실루엣 하나가 걸려들었다.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복도 끝에 서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그와 시선이 정면으로 맞닿은 순간 유진의 심장이 요동쳤다.당황스러움과 함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불쾌하고 끔찍한 소름이 돋아났다.그의 등장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아니 끔찍했다.에구치 요스케.7년 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도 잔혹했던 파편을 남기고 사라진 남자.그와 이렇게 쉽게 마주칠 리 없었다.유진은 그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조차 견딜 수 없어, 황급히 고개를 돌린 채 빠른 걸음으로 그의 옆을 지나쳐갔다.“보고…… 싶었어.”그 순간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7년 만에 듣는, 꿈속에서조차 자신을 괴롭히던 목소리였다.아주 잠깐 유진의 미간에 정체 모를 어색함과 균열이 비쳤다 사라졌다.유진은 잠시 멈췄던 발길을 재촉하며 그에게서 재빨리 멀어졌다.도망치듯 속도를 높이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던 에구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성큼 걸어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거칠게 붙잡아 세웠다.예상치 못한 그의 갑작스럽고 거친 행동에, 유진은 놀라 다시 그와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얼음처럼 얼어붙었다.좁은 병원 복도 한복판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검날처럼 거칠게 부딪혔다.그리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에구치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7년을 묵혀온 지독하고도 절실한 그리움과 가눌 수 없는 부채감의 죄책감이 해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놔요.”유진은 자신을 단단히 붙잡은 그의 무례한 손을 사정없이 뿌리치고 다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7

    여전히 비몽사몽한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화면에 찍힌 숫자는 오전 7시.아침 잠이 유독 많아 유모가 흔들어 깨워도 겨우 일어나던 유진이 알람도 없이 7시에 혼자 눈을 떴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잠시 따뜻한 침대 속에서 뒤척이던 유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오전 8시 정각.유모가 조심스럽게 유진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하지만 이미 단정한 외출복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유진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혹시 어제 못 잤어요? 대학입학 첫 날이라고 긴장했나?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6

    “왜 벌써부터… 저 건물 공사를 하겠다는 거야? 아직 겨울도 안 끝났는데… 날씨 좀 풀리고 해도 되잖아”“회장님께서 아가씨 결혼을 서두르려고 그러시는 거죠.”유모의 덤덤한 대답에 유진은 짜증이 난 듯 팩 하고 고개를 돌렸다.“굳이… 뭘 그렇게까지.”“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맘 놓고 있을 때에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제일 예쁘다는 아이돌 여자애… 그 이름이 뭐더라… 암튼 그 계집애가 그렇게 류 회장님께 꼬리친다고 소문이 파다 하던데… 거기다 류 회장님 마지막으로 아가씨 만나러 제주도 오셨던 게 벌써 5개월이나 됐으니… 걱정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5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살갗을 에이는 초 봄의 이른 아침.작업 반장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에구치는 1층 창문 치수를 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그 순간 등 뒤에서 툭 들려온 맑은 목소리.고요한 공사 현장에서 들린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에,에구치는 크게 놀라 창틀에서 발을 헛디디며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그리고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위로 매캐한 공사 먼지가 훅 피어올랐다.“어… 괜찮으세요?”에구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무덤덤하게 벌떡 일어나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4

    “아빠…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KL 그룹 서회장이 스위스 기숙학교 교장실에 나타났다.10살 때부터 다닌 이 학교에 아버지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열여섯의 유진은 제 눈을 의심했다.“우리 딸 보고 싶어서 왔지. 진작에 와 봤어야 했는데… 네 엄마 죽고 회사가 엉망이어서 수습하느라 아빠가 정신이 없었잖니? 이해하지?”“네…”“아빠가 말은 안 했지만… 알아서 척척 잘해내는 우리 딸 소식 들으면서 뿌듯하고 힘이 많이 됐다. 고맙다. 우리 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가 건네는 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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