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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0

Author: KRYS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06:01:31

“뭐? 진짜… 파혼 했다고?”

낮게 가라앉은 카페 안쪽 테이블.

사촌 언니 오유정은 제 귀로 흘러든 단어의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한 채.

완전히 얼이 빠진 멍한 표정으로 맞은편의 유진을 한참 동안이나 빤히 바라봤다.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을 KL 가문의 온실 속 화초처럼.

단 한 번도 반항조차 해본 적 없던 유순한 모범생 서유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올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파멸적인 선언.

“응.”

“하아……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지? 그럼 평창동에서도 그렇고 완전 난리가 나 뒤집어질 텐데… 그래, 무서워하지 말고. 일단 우리 엄마랑 다 같이 상의부터 좀 해보자. 일은 터졌으니, 일단은 KL그룹을 어떻게 지킬 지가 우선이고.”

“괜찮아. 나 KL그룹 포기할 거야.”

유진의 포기 선언에 유정의 눈동자가 다시금 경악으로 확장되었다.

“뭐? 서유진, 너 미쳤어?!”

“다 포기하면 난…… 이제 KL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럼 우리 아빠와 아빠의 다른 가족들에게 더는 위협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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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26

    유진은 다시 아이를 가졌다.하필 모든 걸 정리한 자신의 몸에 류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잔인한 운명의 신은 기어이 두 사람을 다시 묶어두었다.새로운 잉태의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신을 엄습하는 것은 지독한 두려움이었다.[내 안에 당신 아이가…… 안되는데… 어떻게 우리 아이……]유진은 무의식적으로 가늘게 떨리는 손을 아랫배 위에 가만히 얹었다.손바닥을 통해 미약하지만 분명한 생명의 기척이 전해지자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설렘이 일며 목구멍이 뻐근해졌다.그리고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는, 이성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기묘한 기쁨의 꽃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이미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전신을 감쌌다.[넌…… 누구를 닮았을까.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나 같은 엄마 안 닮은……]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의식의 흐름에 놀라, 유진은 순간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겨울에 비친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너무 형편없는 사람이라서……]그러나 그 달콤한 감정은 곧바로 날카로운 죄책감과 두려움이 되어 그녀의 목을 죄어왔다.순간 유진의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나 당신과 헤어져야 해요. 이미 약속을 해 버렸어.]유진은 불이 꺼진 어두운 병실 방 한구석에 홀로 비참하게 웅크린 채 눈물을 삼켰다.[당신 어머니께 5년 내내 당신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의 대가로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아 놓고선…… 이제 와서 아이까지 임신해 당신 곁에 있겠다고 하면, 나 당신 가족과 당신 사이마저 다 망가뜨리고 말 거예요.]그런데 자꾸만 배 속의 아이를 핑계 삼아 류의 옆에 머물고 싶다는 추악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죄책감과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욕심이 매 순간마다 격렬하게 충돌하며 유진의 정신을 갉아먹었다.결국 유진은 깊고 어두운 임신 우울증의 늪 밑바닥으로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그리고 그 지독한 우울증은 유진이 오랜 세월 애써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과거의 잔인한 죄책감마저 무덤 속에서 소환해 내고야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25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로의 살점을 도려내듯 아프고 또 아팠던 두 사람의 지독한 인연이 마침내 처참한 마침표를 찍었다.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문 CEO에게 KL그룹의 모든 전권을 일임하고,재계에서 도망치듯 서둘러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세계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 지 어느덧 3개월.유진은 매일 밤낮으로 쏟아지는 방대한 학업의 무게와 이유를 알 수 없는 극심한 만성 피로에 시달려야 했다.결국 한계에 부딪힌 그녀는 눈발이 날리는 교내 로비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정신 좀 들어?”단조롭게 울리는 낯선 의료 기계음 사이로.지독하리만치 익숙하고 묵직한 사내의 음성이 유진의 귓가를 거칠게 파고들었다.하얀 응급실 침대 위에서 간신히 눈을 뜬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지자,자신의 흐트러진 단발머리를 쓸어내리는 다정하고도 소름 끼치는 손길.자신을 여전히 아픈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지구 반대편인 보스턴으로 도망쳐 온 지 정확히 석 달이었다.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쓰러진 그녀의 곁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류였다.“나한테…… 사람 붙였어요?”유진은 핏기 없는 얼굴 위로 애써 얼음장처럼 차가운 가면을 장착한 채, 그를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우선 이 링거부터 다 맞고…… 그 다음에 얘기해.”유진의 냉대와 거절에도, 류는 화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가라앉은 그의 짙은 눈빛에는 묘한 안도감이 뒤섞여 위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다시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먹이감이 된 듯.마치 그에게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만 같았다.잠시 후.류는 응급실 침대에서 겨우 몸을 추스른 유진의 가느다란 손목을 잔뜩 움켜쥐더니 병원 본관 3층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순간 유진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이곳은 보스턴이 아니었다.워싱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류의 렉스 의료 재단이 소유한 세계 최고의 VIP 전용 사립 의료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작가의 말 한마디

    안녕하십니까, 작가 KRYSE 입니다. 먼저, 제 작품을 여기까지 즐겨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은 중반부를 거쳐 클라이막스 부분에 도착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두 요스케와 유진에게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이미 과거에 행복과 사랑을 쟁취할 기회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류에게는 두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토킹 사건 후, 겨울 폭풍우가 내리던 스위스 레만 호수 카페(75회) 그리고 상견례 후, 도쿄의 밤(52회) 에구치에게도 두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날 밤(61회) 그리고 이별(103회) 문제는 유진에게는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의 타이밍입니다. 유진이 남주들에게 감정을 쏟았을 때는 남주들이 그녀를 피했습니다. 남주들의 사랑이 쏟아질 때는 유진이 마음이 식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주들에게는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껏 유진의 사랑은 줄곧 짝사랑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남주들에게 보상을 받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그들만 쳐다 봤죠. 유진은 감정만 있을 뿐, 행동도 없었습니다. 도망치기 바쁜 우리 불쌍한 여주. 딱 상처 받은 유기 동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남주들 중 하나가 타이밍만 잘 맞추었더라면 유진은 그와 행복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하나의 기회가 유진에게 올 겁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난관은, 즉 주변 시선과 소문 그리고 애정결핍에 따른 낮은 자존감은 아무 것도 아닌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세 사람의 이야기는 클라이막스 피폐의 끝을 달리게 될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피폐의 수위가 높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피폐 혐관물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전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당연히 두 사람의 감정도 양방향이어야겠지요. 그래서 사랑은 힘든가봐요. 서로의 감정 ‘타이밍’이 일치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하니. 그럼 세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24

    류와의 관계가 오랜 시간 동안 진전없이 지지부진하자.유진과 류, 그들을 둘러싼 많은 소문들과 억측이 돌았다.둘의 관계가 그저 잠자리 파트너일 뿐이라는 찌라시.그러자마자 수많은 여자들과 재벌집안들에게서 다시 그에게 구혼 제안을 해 오기 시작했다.그리고 그의 집안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결국 유진은 그의 손을 놓았다.자신이 놓지 않으면 그가 먼저 놓을 리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5년 전, 그와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매순간 결심해왔던 결론이었음에도.지독하게 가슴이 시렸다.그렇게 류에게 처절한 파멸의 이별을 선언한 직후.유진은 폭발할 것 같은 머리를 쥐어짜며 서울의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고 또 헤맸다.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한참 동안 올림픽대로를 질주했다.그녀의 차량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에 새겨진 익숙한 이정표를 따라 움직였다.그리고 예전 자신이 살던 그 동네로 향했다.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유진은 컴컴하고 빛바랜 아파트 단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공간. 그리고 가장 처절하게 짓밟혔던 비참한 순간이 공존하는 잔인한 장소.여전히 가슴 깊은 곳을 무겁게 짓누르는 불편함과 저릿한 통증에 유진은 잠시 넋을 잃고 아파트 외벽을 바라보았다.[미쳤구나, 서유진……. 도대체 여기를 왜 와?]그녀는 제 안의 통제되지 않는 한심한 나약함을 탓하며, 서둘러 이 위험한 과거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급한 걸음으로 차량을 향해 등을 돌렸다.바로 그때였다.오래된 아파트 입구의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로.누군가 눈에 익은 특유의 묵직하고 서늘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어둠을 뚫고 정면으로 걸어오는 사내의 거대하고 강렬한 실루엣.[말도…… 안 돼…….]순간 유진의 심장이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며 가라앉았다.전신이 무거운 콘크리트에 짓눌려 얼어붙은 것처럼,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눈앞에 마주한 사내의 존재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혹시라도 극심한 과로와 이별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뇌가 미쳐버려 헛것을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23

    밤 10시.유럽에서의 숨 막히는 일정이 끝나자마자, 류는 본국인 일본이 아닌 유진이 있는 서울로 날아왔다.그리고 공항을 빠져나와 그녀에게로 곧장 달려갔다.매 순간순간마다 그녀에게로 당장 달려오고 싶어 온몸의 피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안달이 났다.그리고 이제야 그녀를 자신의 앞에 두었다.그제서야 거칠게 막혀있던 숨이 허파 깊숙이 제대로 쉬어졌다.밤새 바늘로 찌르듯 아팠던 심장이 제 주인을 찾은 듯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싱글 위스키를 잔에 따르며 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우리 어머니 만났어?”“네.”유진은 피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어머니가 뭐라고 했을 지 알아. 괜한 데 신경 쓰지마.”“당신……”유진이 천천히 그의 손을 밀어내며 얼음처럼 차가운 문장을 뱉었다.“결혼이 필요한 거면…… 나 상관 말고 해요.”순간 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쨍그랑!그는 들고 있던 묵직한 위스키 잔을 유진의 바로 옆 콘크리트 벽면을 향해 그대로 던져버렸다.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함께 독한 알코올 액체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유진의 그레이 드레스 자락을 적셨다.거친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쾅ㅡ!!육중한 문이 닫히며 굉음이 울렸다.유진도 알았다.그가 지치기 시작했다는 것을.10년이었다.그 10년동안 그는 자신을 향해 전력 질주 중이었다.그렇기에 이제 그가 지쳐 쓰러진다고 해도,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난다고 해도 너무나 이해가 됐다.*유진은 아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위스키 잔 파편들을 묵묵히 치우기 시작했다.‘쾅!’바로 그때, 도어록이 거칠게 풀렸다.밖으로 완전히 가버린 줄 알았던 류가 핏발 선 숨을 몰아쉬며 다시 집안으로 거칠게 들이닥쳤다.그의 짙은 눈동자는 이미 일말의 이성조차 남아있지 않은 미치광이처럼 번뜩이고 있었다.그는 위스키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122

    류는 이상하게 불안했다.자신의 영혼과 가문…세간의 명예까지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주어야 한다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을 만큼,유진을 사랑했다.그리고 매 순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파국 속에서 상처 입고 조각나 버린 유진을.다시 예전의 그 눈부시게 사랑스럽고 순수했던 그녀로 되돌려 줄 수 있기를.아무것도 남지 않아 텅 비어버린 그녀의 메마른 가슴이 자신의 타오르는 온기로 다시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갈구했다.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멀고 아득했다.아무리 끝없이 사랑을 쏟아부어도 그녀는 밑 빠진 독처럼 그의 온기를 집어삼킬 뿐 그 어떤 채워짐의 기척도 보여주지 않았다.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 속에서, 세상의 포식자로 군림하던 오만한 그마저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사랑해요”유진에게 마침내 그렇게 원하고 원했던 단어를 들었지만, 이제는 그 단어조차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구원이라 믿었던 그 고백을 들은 이후로, 류의 내면은 도리어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하기 시작했다.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잔인하게 온몸의 말초신경을 불살랐다.움켜쥐려 해도 모래알처럼 잡히지 않는 그녀를 향한 집착은 광기로 변해 그의 차가운 이성을 송두리째 갉아먹었다.*‘쾅…!’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렉스 가문 본가의 묵직하고 거대한 문이 거칠게 열렸다.문이 벽에 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깼다.류의 눈동자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맹수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어머니… 유진이 왜 만나셨어요?”낮게 으르렁거리는 아들의 서슬 퍼런 음성에도.류의 어머니는 정갈하게 우려진 찻잔을 내려놓을 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가문의 정점에 선 절대자 여인답게, 오만하고 서늘한 위압감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왜? 너와 어떻게 할 지… 이제는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아서.”“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너와 어디까지 갈 건지 물었고 그 아이는 너와 아무 사이 아니라고 했다. 결혼 할 생각 같은 건 없다고.”어머니의 칼날 같은 확인 사살에 류의 가슴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8

    ‘생일 축하해’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운 화려한 선물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유진은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상자들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작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한 줄의 축하 인사.꼬박 5개월 만에 날아온 그 남자의 메시지였다.직접 찾아오는 정성과 수고를 들이기보다는,이렇게 압도적인 돈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게 훨씬 편하고 익숙한 남자.물론 그와는 태생부터 장거리 만남이었으니,그가 평소처럼 일본 본사에 머물고 있었다면 백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7

    여전히 비몽사몽한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화면에 찍힌 숫자는 오전 7시.아침 잠이 유독 많아 유모가 흔들어 깨워도 겨우 일어나던 유진이 알람도 없이 7시에 혼자 눈을 떴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잠시 따뜻한 침대 속에서 뒤척이던 유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오전 8시 정각.유모가 조심스럽게 유진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하지만 이미 단정한 외출복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유진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혹시 어제 못 잤어요? 대학입학 첫 날이라고 긴장했나?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6

    “왜 벌써부터… 저 건물 공사를 하겠다는 거야? 아직 겨울도 안 끝났는데… 날씨 좀 풀리고 해도 되잖아”“회장님께서 아가씨 결혼을 서두르려고 그러시는 거죠.”유모의 덤덤한 대답에 유진은 짜증이 난 듯 팩 하고 고개를 돌렸다.“굳이… 뭘 그렇게까지.”“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맘 놓고 있을 때에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제일 예쁘다는 아이돌 여자애… 그 이름이 뭐더라… 암튼 그 계집애가 그렇게 류 회장님께 꼬리친다고 소문이 파다 하던데… 거기다 류 회장님 마지막으로 아가씨 만나러 제주도 오셨던 게 벌써 5개월이나 됐으니… 걱정

  •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EPISODE 5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살갗을 에이는 초 봄의 이른 아침.작업 반장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에구치는 1층 창문 치수를 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그 순간 등 뒤에서 툭 들려온 맑은 목소리.고요한 공사 현장에서 들린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에,에구치는 크게 놀라 창틀에서 발을 헛디디며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그리고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위로 매캐한 공사 먼지가 훅 피어올랐다.“어… 괜찮으세요?”에구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무덤덤하게 벌떡 일어나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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