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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세상을 뜬 흔적과 남겨진 자의 전쟁

ผู้เขียน: 요정리더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8-12 15:21:11

제 9화

삐이이이-.

기계의 단조로운 비명 끝에 찾아온 것은 기만적일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었다. 가민의 육체 위로 하얀 시트가 덮이는 순간, 대학병원 응급실 앞 복도는 또 다른 의미의 격정적인 전쟁터로 변모해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 애도 지금 죽어서 영안실에 누워있다고요! 그쪽 조카만 죽었어요? 왜 사람 멱살을 잡고 행패야, 행패가!”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뻔뻔하게 고개를 쳐드는 인간의 민낯은 추악했다. 

숨진 중학생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는 제 자식의 영정사진을 방패 삼아 치졸한 회피를 시전하고 있었다. 헬멧도 없이, 면허도 없는 중딩 둘이 킥보드 한 대에 엉겨 타 보도를 전속력으로 돌진했으니 누가 봐도 100% 킥보드 과실이건만,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가관이었다.

“솔직히 그쪽 조카도 살펴보지도 않고 뛰어 갔으니 1도 잘못 안 한 건 아니잖아요! 젊은 애가 앞을 잘 보고 알아서 피했으면 됐을 거 아냐! 우리가 그러라고 고사 지냈어? 왜 애지중지 키운 내 아들 살려내라고 소리쳐도 모자랄 판에 난리야! 나중에 얘기해요, 나중에!”

“뭐? 1도 잘못 안 한 게 아니라고? 진짜 사상이 또라이아냐 ? 자식둔 애미가 할소리냐

 이 미친년이 주둥이를 확 그냥 찢어발겨 버릴라!”- 가민이모

그 뻔뻔하고 적반하장인 논리에 이모 미자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피붙이를 잃은 고통은 순식간에 거대한 분노가 되어 폭발했다. 미자는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그대로 중딩 엄마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내 조카는 정당하게 제 돈 내고 세금 내며 퇴근길 인도 위를 걸어가고 있었어, 이 뇌를 어디다 두고 온 년들아! 니들이 자식 간수 못 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킥보드 태워 내보내는 바람에, 서른도 안 된 내 새끼가 길바닥에서 피를 쏟고 죽었어! 어디서 가해자가 피해자 탓을 해, 어디서! 네 자식이 죽은 건 천벌 받은 거고,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아악! 이 여자가 미쳤나 봐! 언니, 이것 좀 말려봐!”

옆에 있던 또 다른 중딩의 엄마가 삿대질을 하며 가세하려 들자, 마침 소식을 듣고 앞치마도 못 벗은 채 응급실로 들이닥친 편의점 사장(여)이 거침없이 판에 끼어들었다. 가민을 딸처럼, 귀여운 동생처럼 아끼던 사장의 눈도 이미 정상은 아니었다. 2대 2의 난타전이 응급실 한복판에서 작렬했다.

“남의 귀한 자식 길바닥에서 쳐죽여놓고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니들이 사람이냐? 짐승이지!”

미자는 면상에 대고 팩폭을 꽂아 넣음과 동시에 가만히 있던 아줌마 한 명의 머리채를 통째로 쥐어뜯어 바닥으로 사정없이 메쳤고, 사장은 가민의 탓을 하던 다른 아줌마의 턱주가리를 향해 거침없는 어퍼 컷을 꽂아 넣었다.

“악! 내 머리! 머리카락 다 뽑히네!”

“경비! 경비 불러요! 사람 잡네!”

응급실 경비원들이 혼비백산하여 달려와 뜯어말릴 때까지, 사정없이 뜯겨 나간 가해자 부모들의 머리카락 뭉치와 악다구니가 대리석 바닥을 굴렀다. 이모와 사장의 매서운 참교육 연타에 중딩 엄마들은 짓이겨진 몰골로 바닥을 기었다. 자식을 잃은 가해자 부모들의 슬픔은, 가민의 죽음을 모욕하는 순간 그저 추잡하고 이기적인 변명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그 시각,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타오르는 용광로 같았다.

[OO 킥보드 참변, 보도 통행 미성년자 단속 및 소년법 강화하라.]

[아무 죄 없는 20대 여성의 죽음, 한국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안래도 위험하게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며 갑툭튀하던 초중딩들의 킥보드 무법천지에 쌓여있던 시민들의 분노가 가민의 사고를 기점으로 대폭발한 것이다. ‘나도 저 골목에서 중딩 킥보드 때문에 골로 갈 뻔했는데 사과도 안한다’는 어른들의 증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미성년자 PM(개인형 이동장치) 무면허 운전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과 규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쳤다. 

가민이 생전 작가 지망생으로 연재 준비를 하던 플랫폼의 자유게시판과 SNS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디지털 국화꽃과 애도의 글귀들이 끝없이 올라와 타임라인을 채웠다.

그러나 정작 이 거대한 사회적 파장 속에서도, 가민이 어릴 적 그녀를 가방 하나 달랑 들려 내쫓았던 친부모는 끝내 연락 두절이었다. 돈 몇 푼 생기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빨대를 꽂으려 눈을 불을 켜던 인간들이, 자식의 사망 소식과 복잡한 민사 소송관련해서 기미가 보이자마자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다며 귀신같이 번호를 바꾸고 잠적해 버린 것이다. 

참으로 무정하고 차가운, 그러나 가민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전생의 씁쓸한 마지막 단면이었다.

달그락, 쾅-.

지방의 한 중소기업, 거대한 기계 설비가 거칠고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공장 휴게실.

이제 막 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조장을 달았던 가민의 10년 차 남사친, 정우는 잠시 얻은 쉬는 시간에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시며 무심히 벽걸이 TV 뉴스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흐르는 실시간 자막과 인터넷 기사 속 사고 피해자의 상세한 나이, 위치를 확인한 순간, 그 자리에 돌처럼 얼어붙었다.

툭-.

정우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반쯤 남은 캔커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은 액체가 작업화 위로 울컥 쏟아져 내렸지만 정우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민이라고? 최가민이 왜…… 네가..거기.. 뉴스에 왜 나와?”

정우의 머릿속으로 불과 몇 달 전,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자신에게 수줍게 마음을 고백하던 가민의 젖은 얼굴이 주마등처럼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제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감정을 나누고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던 유일한 여자 친구. 사실 가민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친구 관계를 깨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치열하고 팍팍했던 자신의 20대 시절과 가민의 처지가 너무도 닮아 있어 차마 서로를 짊어지고 잘해줄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관계의 변화가 싫다며 빙빙 돌려가며 거절의 말을 비겁하게 건넜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가민은 정우의 연락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톡 어플의 대화창을 켜자, 가민의 프로필은 멀쩡할 때 찍어둔 애니 남자주인공 캐릭터 사진 그대로였지만 정우가 보낸 수많은 메시지들은 여전히 ‘1’이 지워지지 않은 채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야, 최가민…… 안읽씹하지 말고 답장 좀 해봐. 너 ..글 쓰다 막혀서 나 골탕 먹이려고 잠수 타는 거지……? 장난이지……?”

정우는 사들여 쥔 스마트폰 화면을 문지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상처 주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거절이 결국 가민과의 영원한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정우는 기계 소음이 가득한 휴게실 한구석에서 뒤늦은 자책과 후회로 주먹을 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났고,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같은 시간, 차원 너머 청연국 연가 본가.

“하아…… 날씨 좋고, 이불 푹신하고. 최고네.”

연월린—아니, 이제는 완전히 이 세계의 주인이자 영혼으로 안착한 가민은 침상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대한민국 OO의 진짜 육체가 사망하고 차원의 문이 영원히 닫힌 이후, 기적처럼 가민의 가슴을 사정없이 짓누르던 원인 모를 통증과 각혈, 호흡 곤란은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숨이 막히지도, 피를 토하지도 않았다. 완전히 이 세계의 고유한 육체와 영혼이 100% 싱크로율로 결합한 덕분이었다.

돌아갈 길이 완전히 끊겼다는 사실에 밀려온 아주 작은 미련은, 전생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따스하게 대해주었던 두 사람뿐이었다. 글을 쓰다 실수를 하거나 마감이 늦어져도 인자하게 웃으며 폐기 임박 삼각김밥을 챙겨주던 편의점 사장님과, 퉁명스럽게 츤츤대면서도 언제나 제 밥줄과 건강을 걱정해 주던 이모 미자.

‘이모, 사장님…… 나 여기서 진짜 눈물 나게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살게.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고 너무 울지 마.’

마지막 마음의 부채를 유쾌하게 털어낸 월린의 몸은 이제 날아갈 듯 멀쩡했다. 당장이라도 마당으로 나가 가문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재확인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씨!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직 뇌수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해 언제 다시 열증이 도질지 모릅니다!”-채담 시녀

“맥박은 정갈하나 기혈이 크게 쇠하셨으니, 향후 보름간은 침상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시면 절대 아니 되옵니다!”- 지은 의사

시녀 채담과 전담 의원 지은의 눈물겨운 과잉보호 덕분이었다. 한 번 죽다 살아난 주인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듯, 그들은 24시간 교대로 처소를 지키며 월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덕분에 월린은 본의 아니게 화려한 비단 이불이 깔린 거대한 침대와 강제 연애를 하는 중이었다. 최고급 전복죽이 마르기도 전에 사방에서 보약과 귀한 서역산 과일이 쟁반째로 대령했다.

“에휴, 심심해 죽겠네. 저기요, 밖에 두 무사님? 거기 서서 칼만 쳐다보지마시고 이리 좀 들어와 봐요.”

월린이 참다못해 처소 문밖을 지키고 서 있던 유현과 연호 두 미남 호위무사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문이 열리고 개미 한 마리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기세로 삼엄하게 버티고 있던 두 사내가 늠름한 자태로 들어섰다.

방구석 작가 가민의 안목으로 보건대, 이 둘의 비주얼 합은 그야말로 안구 정화 그 자체였다.

왼편에 선 유현은 은은한 달빛이 도는 듯한 짙은 남색 머리칼에 깊은 바다를 담은 것 같은 짙은 남색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연호에 비해 유난히 하얗고 고운 피부 덕에 차갑고 정갈한 서생 같아 보였지만, 얇은 무복 너머로 비치는 실루엣은 잔근육이 촘촘히 잡힌 슬림 탄탄의 정석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서늘한 ‘냉미남’의 오라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반면 오른편의 연호는 그야말로 야성(野性) 그 자체였다. 빛을 모두 흡수해 버린 듯한 칠흑 같은 흑발과 매서운 흑안, 그리고 선이 굵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사내다운 매력을 물씬 풍겼다. 

특히 유현보다 한 뼘은 더 두터운 흑색 무복 상단 위로, 존재감을 과시하듯 묵직하게 자리 잡은 가슴근육은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게 만들 정도였다.

두 명의 탑티어 미남이 침상 양옆에 시립하자, 다소 어둡던 처소 안이 확 화사해지는 기분이었다.

‘둘 다 서브남친……? 어우, 이런 보배로운 비주얼들이 진짜루..나중에.. 내 첩이 된다면 사양할 이유가 전혀 없지. 눈이 다 개안하는 기분이네.’

월린은 입꼬리가 자꾸만 승천하려는 것을 간신히 누르며, 남편 태원이 보내준 서역산 달콤한 과자를 두 사내에게 슥 내밀었다.

“자, 이거 먹으면서 해요. 그리고 나 심심하니까 말동무나 좀 해주셈.”

주인의 뜬금없는 과자 하사와 빤한 시선에, 유현은 하얀 피부 위로 귀 끝을 붉게 물들이며 남색 눈동자를 거칠게 흔들었다. 반면 연호는 묵묵히 제 커다란 손으로 과자를 받아들며, 묵직하고 굵은 목소리를 깔았다.

“아씨의 안위가 최우선입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명하십시오.”

무뚝뚝하면서도 주인을 향한 은근한 충성과 집착이 서린 눈빛들. 기싸움 따윈 필요 없었다. 

그저 이 완벽한 하렘의 호사를 누리기만 하면 장땡이었다. 구질구질하고 전전긍긍했던 29살 방구석 작가의 삶은 완벽하게 종말을 고했다. 가민의 영혼을 품은 청연국 최고의 재벌가 안주인, 연월린의 화려하고 안락한 진짜 제2의 인생이 이제 막 흥미진진하게 닻을 올리고 있었다.

요정리더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은 물론 슬프고 아프겠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과실은 학생들이 더 컸는데 유일한 보호자인 고모 한 사람에게 쏟아붓는 모습은 너무한 내로남불 같아서 답답하셨죠 ㅠㅠ?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군중심리에 업혀 어떻게든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이기고 보려는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꼭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행히 뒤늦게 병원을 찾아와 가민이의 든든한 편이 되어 싸워준 편의점 사장님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현실의 답답한 싸움과 대조적으로, 청연국 쪽은 한시름 놓게 된 월린이의 상황! 과연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다음 화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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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2화 [연호 과거]버려진 자식의 기억바람을 가르는 칼날은 연무장의 적막을 찢어 놓았다. 연호의 상체는 쉼 없이 흐르는 땀으로 젖어, 햇빛을 받아 구릿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결이 살아있는 탄탄한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남성적인 매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했다. 연가의 모든 무사들이 그를 보며 감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에게 연호는 정점에 선 대장이자, 완벽한 신체의 소유자였으니까.하지만 그 화려한 근육 속에 깃든 깊은 골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매일의 루틴은 단련이 아닌 생존이었고 맹목적인 인정 욕구의 결과물이었다.연호의 과거 기억 속에서 친 어머니 이은교는 ‘가문의 서열'을 먼저 쥐고 있었다.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의 차녀였던 은교는 대대로 정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박복한 집안'의 징크스를 안고 있었다. 그녀 역시 가문의 명맥을 잇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귀족과 혼인했으나 자식 하나 없이 남편마저 병으로 일찍 여의고 말았다. 가문이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하자, 급박하게 남첩을 들였다. 그가 바로 침선가(針線家)를 운영하던 중소 상인, 연호의 아버지 재우였다.어머니에게 이 결혼은 애정이 아닌 수단이었다. 그녀는 재우의 손재주를 이용해 침선가를 일으켰다. 재우가 밤낮으로 옷을 짓고 기물을 수선하면, 은교는 그 옷감을 들고 귀족가를 돌며 영업을 했다."너는 귀족인 아들이다. .. 네가 정녕 평생 옷감이나 깁다가 죽을 셈이냐?"어머니의 히스테리는 매일 밤 집안을 울렸다. 귀족의 혈통을 가졌음에도 '상인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귀족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 은교는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귀족가의 품위’를 갉는다며집안 등급에 막혀 큰 상단이 되지 못한다는 열등감은 고스란히 연호에게 투사되었다. 맛있는 간식이 생기면 은교는 한 살 위 누나인 수빈의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연호는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는 아버지 재우를 도와 수선하는 기물을 만들며 상인으로서의 기술을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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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1화. 청연(淸延)의 위계 그리고 연가(連家)의 무인들청연국(淸延國)은 철저히 계급과 직업이 명시된 나라였다. 이 땅에서 사내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궤적은 대개 그들이 발붙인 땅의 비옥함과 가문의 뿌리, 그리고 타고난 기량에 의해 결정되었다. 기생으로 화려한 막을 올리거나, 시종으로 평생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거나 상단에 몸을 실어 부를 쫓거나, 혹은 무인으로서 칼을 쥐는 것.그중에서도 무인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힘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았다.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해서 전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태를 파악하는 지적 능력, 전술적 전투 센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구의 칼이 되어줄 것인가’라는 가문빨이 뒤섞인 복합적인 체계였다.월린은 책상 위에 펼쳐진 두꺼운 서적들을 정리하며 청연국의 사회를 분석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계급도는 명확했다. 황실 전속 무사가 정점에 있고, 그 아래로 귀족 가문의 호위무사들이 있었다. 중소 상인 그 이하 집안에서 올라온 이들은 흔히 ‘문지기’라 일컬어지는 하급 무사의 범주에 묶였다.하지만 연가는 달랐다. 본래 무사양성기관에서 하급 무사로 키워졌으나 연호와 유현은 월린의 어머니, 즉 전대 가주에게 무인대회에서 발탁되어 간택받았다. 그들은 연가 라는 가문의 울타리 안에서 뼈를 깎는 훈련을 견뎌냈고,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아 무사들의 우두머리, ‘대장’의 위치에 올랐다.‘이세계는 설정이 되게 복잡하네…. 강한 무사들이 왜 그토록 귀족이나 부유층의 첩으로 간택당하길 바라는지 이해가 돼.’가민은 망원경으로 멀리 시장을 살폈다. 황실의 전속 무사가 되어 쳇바퀴 돌듯 궁을 지키는 것보다, 세력 있는 귀족 가문의 남첩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른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무사라는 계급은 첩으로서 간택당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재료였다. 튼튼한 체구와 단련된 정신, 그리고 복종이라는 가치를 체득한 이들이니까. 연호와 유현은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귀족 호위무사라는 정점에 도달한 산증인들이었다

  • 유부녀지만 남첩을 더 들일거야   제 30화 분홍 서찰과 띠에 새겨진 주인(主人)

    제 30화. 연가(連家)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가주실로 들어선 월린의 손에 들린 서찰 한 통이 그 적막을 유쾌하게 깨뜨렸다. 멀리 떠나 있는 정실 남편 연 태원에게서 온 것이었다.월린은 봉투를 보자마자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분홍빛 종이의 서찰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서둘러 봉인을 뜯자 태원 특유의 정갈하면서도 어딘가 들뜬 필체가 드러났다.[내 사랑하는 아내 월린에게.]첫 문장부터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태원은 타지에서의 고된 무역 일상과 소소한 풍경들을 상세히 적어 내려갔다. 월린은 답장을 쓰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녀는 벼루에 먹을 갈며 창밖을 잠시 내다보았다. 태원이 떠난 뒤로 연가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왠지 모를 빈자리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월린은 붓 끝에 먹을 충분히 묻혔다. 종이 위로 스며드는 검은 먹물은 마치 그녀의 평온한 일상에 떨어지는 작은 점 같았다.‘태원 씨, 당신이 떠난 뒤로 여기는 별일 없어요.’붓을 놀리는 손끝이 조금 망설였다. 그건 그리움이라기보다 태원이 없는 빈자리가 주는 낯선 적막함이었다. ‘연월린’의 육체에 깊게 새겨진 잔상인지 과거 태원이 처음 정실로 들어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던 그날의 풍경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이 서찰 한 장에 온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월린은 서찰 귀퉁이에 하트와 별 모양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귀족들이 가주의 위엄을 논할 때 월린은 그저 투박한 하트 하나에 제 마음을 다 담았다. 다꾸용 스티커나 알록달록한 색볼펜이 없는 세상이라니 그녀는 잠시 입술을 삐죽이며 붓 끝을 더 정교하게 놀렸다.‘연호랑 유현이도 잘 지내요. 당신이 보낸 안부 덕분에 다들 기운 차렸어요.’그녀에게 태원은 그저 자기 사람이었고 이 서찰은 연가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나누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였으니까. 서찰을 다 쓰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연무장 한쪽, 태원이 보낸 소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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