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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재단 미술관 지하 2층, 항온·항습 설비가 일정한 백색 소음을 내뿜는 수장고 복원실. 수석 학예연구원 한은재는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방금 세관 특수 통관을 거쳐 도착한 오동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겉면에 붉은 비단 끈으로 봉인된 유물의 정식 명칭은 '합벽인(合璧印)'. 동양 고대 황실의 가장 은밀한 규방 비의(秘儀)에 쓰였다고 전해지는 한 쌍의 백옥 인장(玉印)이었다. 하지만 학계의 음지에서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기이한 보물이었다.
남녀의 음양 교합과 최음 신경계를 극대화해 황실의 밤을 지배했다는 전설의 방중술 유물.
"검수 아직 안 끝났습니까?"
적막한 복원실에 울린 목소리에 은재의 미간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이 오만하고 서늘한 발걸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해강그룹의 유력한 후계자이자 재단 총괄이사, 강태혁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칼같이 각이 잡힌 차콜 그레이 쓰리피스 맞춤 수트. 베일 듯 날카로운 턱선과 타인을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그가 긴 보폭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사님, 밀반입 의혹 경로 추적과 고고학적 진위 판정에는 최소 사흘은 필요해요. 정밀 감정을 해야 한다고 여러 번 보고드렸잖아요."
은재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차갑게 대꾸했다.
"다음 주 재단 30주년 VIP 갈라쇼 메인 테이블에 올려야 할 핵심 소장품입니다. 사흘씩이나 한가하게 붓질하고 먼지 털 시간이 없어요."
"진위도 확인하지 못한 유물을 파티에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학예실이 설명해야 해요. 그 원칙은 못 바꿉니다." "내 결재와 권한 안에서 승인된 전시입니다. 한 큐레이터는 일개 연구원으로서 유물 표면의 흠집이나 가려내면 됩니다. 쓸데없는 훈계질 말고."태혁은 작업대 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은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만날 때마다 언제나 이런 식의 팽팽하고 살벌한 불꽃이 튀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자 총괄이사와, 규정과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철두철미한 워커홀릭 수석 큐레이터. 입사 첫날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갤러리 운영 방침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해강재단의 공인된 앙숙이었다.
태혁은 은재가 오동나무 상자에서 막 꺼내 든 유물 케이스를 향해 불쑥 긴 손가락을 뻗었다.
"원통형 아크릴 케이스부터 직접 확인하지. 비켜요."
"만지지 마세요! 표면 산화 방지 처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케이스를 지키려는 은재의 손과 빼앗으려는 태혁의 거친 손이 허공에서 사납게 뒤엉켰다. 그 반동으로 덮개가 벌어지며, 안에 맞물려 있던 한 쌍의 옥인이 손아귀를 벗어나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추락했다.
"쯧!"
"안 돼!"두 사람의 몸이 반사적으로 유물을 향해 동시에 덮쳐들었다.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 태혁의 단단하고 넓은 손바닥이 유물 하단을 겨우 받쳐 들었고, 은재의 손가락이 그 위를 감싸 안았다.
챙-!
아슬아슬하게 받아 든 옥인이 손안에서 기울었다. 유물 상단에 조각된 두 마리 교룡(蛟龍)의 날카로운 뿔 장식이 두 사람의 손가락에 걸렸다.
"윽……!"
"아……!"동시에 터져 나온 두 사람의 억눌린 짧은 비명. 뿔 끝이 은재의 장갑을 찢고 지나갔다. 태혁의 오른손 검지와 은재의 왼손 검지 안쪽이 깊게 베이며 붉은 핏방울이 솟구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로 맞닿은 두 사람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반투명한 백옥 재질의 합벽인 음양 문양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치 갈증에 허덕이던 고대의 맹수가 피를 탐하듯, 유물 표면이 붉은 핏물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웅-
공기를 진동시키는 아주 미약한 저주파 파동과 함께, 손끝 상처를 통해 찌릿한 고전압 전류 같은 미열이 두 사람의 심장으로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태혁이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은재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은재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얼하게 타오르는 손가락을 가슴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손끝에서 시작된 기묘한 온기는 순식간에 척추를 타고 내려가 아랫배 깊은 곳을 끈적하게 간질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유물 낙하 사고로 인한 극도의 아드레날린 분비 탓이라 치부했다.
"……유물 본체에 외관상 파손은 없습니다."
은재가 파들거리는 호흡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작업대 서랍에서 소독용 거즈를 꺼내 상처를 지혈했다. 태혁은 주머니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제 피를 닦아내며 은재를 살벌하게 쏘아보았다.
"내일 오전 9시까지 1차 상태 감정 리포트 작성해서 집무실로 직접 가지고 올라오세요. 1분이라도 늦으면 이번 기획전 총괄에서 한 큐레이터 이름은 영구 삭제할 테니까."
태혁은 얼음장 같은 냉랭한 경고를 던진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장고 철문을 쾅 닫으며 빠져나갔다. 밀폐된 수장고에 홀로 남겨진 은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거친 숨을 고르고 작업대 위 옥인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핏자국은 유물 표면에 흔적도 없이 완전히 흡수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스커트 아래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팽팽하게 죄어드는 낯설고 뜨거운 긴장감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오후 8시, 청담동 펜트하우스. 살벌한 오피스 배틀을 치르고 돌아온 실내에는 숨이 막힐 듯한 살얼음판 긴장감이 맴돌았다. 태혁의 지독한 스쿼트 보복 탓에, 은재는 오후 내내 허벅지가 뻐근하게 조여오는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태혁 역시 은재가 퇴근 직전 서류를 스테이플러로 철할 때마다 손끝을 꼬집는 소소한 반격 탓에, 집에 돌아와서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저 먼저 씻겠습니다."은재가 게스트룸 문을 열며 쌀쌀맞게 뱉었다. 소파에 걸터앉아 태블릿으로 해외 지사 보고서를 넘기던 태혁이 차갑게 고개를 들었다."각서 제2조 잊었나? 시작 전에 서로 괜찮은지 확인부터 하기로 했잖아. 지금 당장이라는 말만 던지고 들어가려고?""하루 종일 땀 흘리고 먼지 뒤집어썼는데 샤워도 결재를 받아야 합니까? 15분 안에 끝낼 테니 신경 끄세요."은재는 태혁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욕실 문을 쾅 닫아걸었다. 낮에 당한 스쿼트의 굴욕을 생각하면 그 어떤 배려도 해주고 싶지 않았다. 은재는 땀에 젖은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어 던지고 샤워 부스로 들어섰다.따뜻한 온수가 쏟아져 내리며 뻐근했던 어깨와 허벅지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은재는 바디 스펀지에 장미 향 바디워시를 듬뿍 짜내 풍성한 거품을 냈다.그리고 하얗고 부드러운 거품을 제 목덜미와 쇄골, 가슴, 그리고 허벅지 안쪽 은밀한 살결에 미끄러지듯 문지르기 시작했다. 태혁은 거실의 통유리창 너머 야경을 등지고 앉아 태블릿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하지만 낮의 스쿼트 후폭풍으로 인해 하체는 여전히 묵직한 피로감에 젖어 있었고, 은재와의 기 싸움으로 신경은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다.'15분 안에 끝낸다고?'태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15분이라는 말을 기억해 두고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 샤워 부스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거실까지 아련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그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1시, 미술관 지하 1층 특별 기획전시실. 은재는 작업 가운을 입고 대형 유화 작품의 설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곁의 도슨트들도 전시 동선을 살피며 작업을 지켜봤다."3번 벽면 르네상스 명화, 왼쪽으로 2cm만 더 옮겨주세요. 수평도 함께 확인해 주시고요. 제가 직접 올라가서 와이어 장력 확인할게요."은재는 2m 높이의 알루미늄 사다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오전의 얼음 캔 테러 이후, 태혁이 접견실을 뛰쳐나와 탕비실을 덮쳤을 때는 이미 은재가 자리를 비운 뒤였다. 태혁의 헛기침과 함께 전해져 오던 서늘한 살기를 떠올리며 은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지가 오만한 재벌 3세면 다야? 감히 날 하녀 취급해?'은재가 사다리 꼭대기에 서서 양손을 뻗어 무거운 액자를 지탱하던 바로 그 순간.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지하 1층 VIP 전용 피트니스 센터. 전시실과의 거리는 7m 남짓.땀복 차림의 강태혁이 거대한 스쿼트 랙 앞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쇠로 된 올림픽 바벨이 얹혀 있었고, 양옆에는 거대한 원판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총중량 140kg."한은재, 네가 감히 내 바지에 홍차를 쏟게 만들어?"태혁의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어디 네 몸으로 그 대가를 뼈저리게 치러봐."태혁이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140kg의 쇳덩이를 짊어진 채 깊숙이 풀 스쿼트로 주저앉았다. 대퇴사두근과 둔근, 햄스트링 근육이 파열될 듯 팽팽하게 수축하며 하체 전체에 어마어마한 하중이 짓눌렸다.그리고 그 극심한 근육의 부담이 고스란히 은재의 몸으로 전해졌다.쿵-!"아, 앗……?!"사다리 꼭대기에서 액자를 잡고 있던 은재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 제 양 허벅지에 거대한 쇳덩이를 얹은 듯한 하중이 골반과
오전 11시, 해강재단 미술관 2층 VIP 접견실. 총괄이사 강태혁은 주요 후원 기업 대표 및 해외 파트너스 임원 4명과 함께 갈라쇼 스폰서십 조율 미팅을 주재하고 있었다."이번 재단 30주년 특별전은 아시아 미술계에서 유례없는 메가 이벤트가 될 것입니다. 후원사 브랜딩 역시 최고 등급의 예우로……."태혁은 유려한 화술과 서늘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스위스계 프라이빗 뱅크 한국 지사장은 태혁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과연 해강의 차기 수장답습니다. 강 이사님의 탁월한 심미안과 공격적인 기획력이라면 이번 갈라쇼는 성공을 확신해도 되겠군요." "과찬이십니다, 지사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동서양 고대 예술품의 정수를 사교계에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태혁은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입가의 미소와 달리 어깨에는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은재와 주고받은 말들이 회의 중에도 불쑥 떠올랐다.테이블 위에는 영국 왕실 조달 브랜드의 고급 도자기 찻잔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얼그레이 홍차가 놓여 있었다.***그 시각, 접견실 바로 아래층. 한 층 아래 학예실 탕비실. 은재는 싱크대 앞에 선 채 천장을 매섭게 올려다보고 있었다.아침부터 1분 단위로 잔소리를 퍼붓고, 마치 죄인을 감시하듯 오만하게 굴던 태혁의 태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자기가 무슨 왕이야. 준비도 5분 안에 하래, 숨도 조심해서 쉬래. 사람을 뭘로 아는 거야."은재는 이를 바득 갈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냉동 칸 구석에 놓인 알루미늄 캔 커피 하나에 꽂혔다. 표면에 살얼음이 낀 차가운 캔.순간 은재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번뜩이는 악마 같은 영감이 스쳤다.'사전 승인 없는 자극 금지라고
자정을 넘긴 청담동 펜트하우스. 도심의 소음이 차단된 실내에는 오직 한강변을 때리는 서늘한 밤바람 소리만이 맴돌았다. 복층 계단 아래, 마스터룸과 게스트룸 사이의 직선거리는 약 6m.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안전거리 안쪽이었지만, 은재는 침대에 누운 채 좀처럼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하…… 정말 미치겠네."은재는 면 잠옷을 목 끝까지 여민 채 뒤척였다. 앞선 해제 시도의 역류 반동으로 한층 예민해진 몸은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6m 너머 벽 안쪽에서 전해져 오는 태혁의 은근한 체온과 호흡의 파동이었다.그가 침대 위에서 긴 다리를 뻗으며 시트를 스칠 때마다, 얇은 면 잠옷 바지가 은재의 허벅지 안쪽 살갗을 거칠게 긁어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스륵, 사각-"흣……."은재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 찰나였다.쿵, 쿵-!두 방을 가르는 콘크리트 벽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한 큐레이터."벽을 타고 건너온 태혁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뒤척이지 말고 얌전히 누워 있어. 네가 다리 비틀 때마다 내 허벅지 안쪽에 불이 붙는 것 같으니까."은재는 기가 차서 벌떡 일어나 벽을 향해 쏘아붙였다."제가 잠버릇까지 이사님 허락을 받고 자야 합니까? 저 지금 숨도 조심해서 쉬고 있거든요?!""나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 잠깐만 참아. 내일까지 넘겨야 할 감사 기획안이 남았어.""그놈의 결벽증 진짜……."은재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서로의 신경망이 하나로 묶인 탓에, 분노와 긴장감마저 혈관을 타고 실시간으로 교환되고 있었다. 침대 매트리스의 푹신함조차 낯설고 불편
처참한 실패의 대가는 가혹했다.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진 신경망 탓에, 은재와 태혁은 옷자락이 스치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겨우 옷매무새를 수습한 은재는 합벽인과 두루마리를 상자에 챙겼다. 두 사람은 그 상자를 들고 미술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태혁의 전용 블랙 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철컥-문이 닫히고, 기사는 묵묵히 차를 출발시켰다. 뒷좌석 양쪽 끝에 바짝 붙어 앉은 두 사람의 거리는 2m가 채 되지 않았다. 안전거리 안쪽이었지만 차체가 방지턱을 넘거나 코너를 돌 때마다 시트의 미세한 진동이 두 사람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끈적하게 자극했다."흣……."은재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가죽 시트에 허벅지가 쓸릴 때마다, 방금 전 사정의 여운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태혁의 남성이 팽창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그녀의 질을 찔러댔다.태혁 역시 창틀을 꽉 쥐며 턱을 바들바들 떨았다. 은재의 가쁜 숨결 하나하나가 그의 귓가에 뜨겁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각자 해결하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두 사람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살을 맞대고 호흡을 섞은 채, 한쪽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을 만큼 같은 순간에 절정에 도달해야 한다는 끔찍한 진실을. 세단의 차창 밖으로 화려한 강남의 네온사인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차 안의 공기는 마치 진공관 속에 갇힌 것처럼 무겁고 숨 막혔다. 은재는 제 손가락 끝을 쥐어뜯으며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방금 전 수장고 탈의실에서 겪었던 그 농밀하고 낯 뜨거운 신음 소리의 잔상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태혁이 사정하던 순간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던 짐승 같은 거친 탄식. 그 탄식과 동시에 제 몸으로 밀려들던 폭발적인 쾌락도 잊히지 않았다.비록 타이밍이 어긋나 실패로 끝났지만, 그 찰나의 전율은 은재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깊게 새겨져 있었다.'미쳤어…… 내가 정말 미쳤어.'은재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속으로 절규했다
"이사님, 제정신입니까?! 각자 자위로 타이밍을 맞추자고요?!"은재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태혁은 웃지 않았다. 두루마리의 같은 대목에 손가락을 짚고 은재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그럼 진짜로 나랑 살을 섞고 몸을 맞대고 싶나, 한 큐레이터?""절대 아닙니다!""그렇다면 선택지는 이것뿐이야. 신경망이 이렇게까지 동기화되어 있다면, 각자 자신의 몸을 자극하더라도 타이밍만 맞물리면 뇌는 같은 절정으로 인식할 거다."태혁은 지체 없이 복원실 안쪽에 딸린 남녀 탈의실을 가리켰다.은재는 두 탈의실의 문을 번갈아 봤다. 벽이 있다고 신호까지 막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방법이 정말 없는지 되묻고 싶었지만, 눈앞의 비문에서는 같은 조건만 읽혔다.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채 한동안 손에 힘을 주었다. 얇은 가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탈의실의 거리는 약 3m. 10m 안전 반경 안쪽이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다."각자 칸으로 들어가지.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켜놓고, 타이머 소리를 같이 듣는다. 3분 안에 사정과 절정 카운트를 맞춘다.""하…… 정말 미치겠네."은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자 탈의실로 들어섰다. 철컥, 문이 잠기자 좁은 공간 안에 팽팽한 적막과 함께 지독한 수치심이 차올랐다. 벽 너머에서 태혁이 바지 벨트를 푸는 묵직한 가죽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려왔다.찰칵-!- 스톱워치 작동했다. 3분 카운트다운 시작해.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태혁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 은재는 떨리는 손으로 정장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축축하게 젖어 있는 실크 팬티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하아…… 읏……!"자신의 손가락이 가장 민감한 클리토리스에 닿는 순간, 벽 너머 태혁의 입에서도 거친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큭…… 한은재, 손가락 놀림이 너무 거칠어…… 천천히 해……!"이사님이야말로…… 으응! 손에 힘 좀 빼세요……!"감각의 완전한 동기화. 은재가 제 여린 살점을 애무하는 감각은 태혁의 손바닥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