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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알보
온세아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구형민이 그녀의 두 눈에 스친 실망감을 보고도 차갑게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결벽증이 있다고.”

온세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

지금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하려면 남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냥 날 좀 도와준다고 생각해... 여보, 나 너무 힘들어...”

온세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애처롭게 바라봤다. 어느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정말로 원했고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고 지워지지도 않았다.

구형민이 얼굴을 찌푸렸다. 온세아가 그의 앞에서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질색했던 그가 싸늘하게 호통쳤다.

“그렇게 원하면 혼자 알아서 해결해.”

차갑고 경멸 가득한 한마디가 온세아의 마음속 가장 나약한 부분을 찔렀다.

온세아가 상처받든 말든 구형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경고했다.

“앞으로 내 앞에서 이렇게 입지 마.”

온세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씁쓸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갔다. 남편은 여전히 그녀를 탐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낮게 대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한방 쓰지 말자.”

구형민이 또다시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온세아를 쳐다봤다. 온세아가 고개를 들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나랑 각방을 쓰겠다는 말이야?’

“난 옆방에서 잘 거야.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구형민이 차갑게 경고를 날린 후 침대에서 내려와 미련 없이 침실을 나갔다.

온세아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온세아와 구형민이 결혼한 지 벌써 1년이었다. 성생활 부족과 구형민의 냉대 때문에 이런 병까지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남편 구형민은 온세아의 욕구를 채워줄 의사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별거하자고 제안했다. 온세아를 벼랑 끝으로 내몬 거나 마찬가지였다.

구형민이 나간 후 겨우 조금 온기가 돌았던 침실이 다시 지독하게 차가워졌다. 하지만 온세아 몸속의 열기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고 되레 활활 타올랐다.

구형민의 냉랭한 태도에 상처를 받은 바람에 증상이 또 도지고 말았다.

온세아는 몸이 이상할 정도로 괴로웠다. 욕구 불만이 극에 달했다.

“괴로워 미치겠어. 너무 하고 싶은데...”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머릿속에 오늘 진료실에서 봤던 그 남자 의사가 문득 떠올랐다.

‘맙소사.’

온세아가 고개를 힘껏 저었다.

‘그 남자 의사가 왜 떠오른 거지? 난 분명 결혼했고 남편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다른 남자를 생각하다니. 언제부터 이렇게 대담하고 개방적으로 변한 거야?’

구형민은 온세아를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남편이 있긴 하지만 없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온세아의 머릿속에 그 남자 의사가 또다시 떠올랐다. 특히 오늘 병원 앞에서 그녀에게 차에 타라고 했을 때 마스크 아래에 숨겨졌던 얼굴을 봤다.

‘엄청 잘생겼던데. 우리 남편보다도 더. 만약 그 남자랑 한다면...’

온세아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나쁜 생각을 멈추려고 고개를 저었다. 구형민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더라도 다른 남자를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이건 명백한 정신적 외도였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침대 옆 서랍을 열어 그것을 꺼냈다...

지난 1년 동안 구형민이 온세아를 거부할 때마다, 병이 도질 때마다 구형민을 생각하며 스스로 해결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조금 달랐다.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구형민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 남자 의사였다.

...

한참이 지난 뒤 온세아가 정신을 차렸다. 입가에 물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 듯했다.

그녀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계속 이렇게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가방을 열고 오늘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약을 꺼냈다.

침실에 따뜻한 물이 없어 물을 뜨러 아무 옷이나 걸치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구형민이 묵는 방을 지나던 그때 안에서 남자의 수상쩍은 신음이 들려왔다.

온세아는 더 이상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이런 신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둑한 불빛 속에서 구형민이 침대 옆에 앉아 사진을 보면서...

그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아정아, 내 와이프. 난 너만 원해... 너만 사랑해...”

쾅.

온세아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윙 했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정이? 새어머니의 딸? 온씨 가문의 큰딸 온아정을 말하는 거야?’

온세아의 아버지 온철환에게 아내가 두 명 있었다.

첫째 아내 심미란에게 딸 온아정이 있고 둘째 아내 성해연에게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

아들 온석원이 온씨 가문의 유일한 아들이라 태어나자마자 첫째 아내 심미란에게 양아들로 보내졌다.

오직 사랑받지 못하는 막내딸인 온세아만 성해연의 옆에서 자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 성해연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성해연은 그녀보다 아들 온석원과 첫째 아내의 딸 온아정을 더 예뻐했다. 온세아의 혼사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온철환과 심미란에게 모든 걸 맡겼다.

온세아가 구형민과 결혼하기 전에 직접 알아본 적이 있었다. 구형민이 온씨 가문의 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결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형민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건 온세아의 착각이었다.

구형민이 마음속에 품었던 사람은 사실 온세아의 언니 온아정이었다. 구형민이 혼외자라는 이유 때문에 온아정과 함께할 수 없어 차선책으로 온세아를 택한 것이었다.

결혼 후 구형민은 심각한 결벽증을 이유로 온세아와의 스킨십을 거부했다. 어리석게도 온세아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이 너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구형민은 스스로 해결할지언정 온세아를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언니 온아정을 위해 순결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온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온아정을 좋아했다. 온철환은 그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물처럼 여겼고 심미란과 성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온세아만이 온씨 가문에서 가장 불필요한 존재였다.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친어머니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구형민이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언니 온아정이었다.

온세아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편이 온아정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 같았다.

문득 결혼 전 구형민이 온씨 가문에 몇 번이고 찾아왔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다정하고 인내심이 있는 젠틀한 신사였다. 온씨 가문에 올 때마다 온세아에게 선물을 챙겨주곤 했다. 하여 구형민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온씨 가문에 온 이유가 온세아가 아니라 언니 온아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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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8화

    “으악.”온세아가 미처 방어할 틈도 없었다.반사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찻잔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날카로운 파편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이게 오냐오냐해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라?”온철환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온세아가 베인 왼쪽 볼을 감싸 쥐었다. 눈빛이 전에 없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세아야!”성해연이 다급하게 뛰어왔다.“무슨 일이야, 이게?”“아빠가 홧김에 찻잔을 던지셨어요.”성해연이 참지 못하고 그녀를 타박했다.“아빠가 모처럼 오셨는데 왜 또 심기를 거스른 거니?”그녀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성해연을 빤히 쳐다보았다.갑자기 달려온 이유가 다친 딸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온철환의 미움을 샀을까 봐 걱정돼서였다.애초에 성해연에게 티끌만 한 기대라도 품는 게 아니었다.“전 그저 여사님이랑 이혼하고 엄마랑 결혼하라고 했을 뿐인데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온세아의 설명에 성해연이 흠칫했다. 관리를 잘 받아 매끈한 얼굴에 순식간에 복잡한 감정이 나타났다.온세아가 그녀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 나섰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작 배 아파 낳은 친딸 온아정은 성해연이 친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러니 온철환에게 그런 말을 꺼낼 리 만무했다.성해연이 어렸을 적부터 키운 온세아는 본성이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해연의 친딸이 아니라 심미란의 친딸이었다.그녀의 출생의 비밀을 떠올릴 때마다 도무지 정을 줄 수가 없었다.“네 아빠가 아무 이유 없이 펄펄 뛰실 분이 아니야. 틀림없이 네가 또 거슬리는 소리를 했겠지.”성해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온세아는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어릴 적부터 늘 이런 식이었다. 성해연을 도우려고 할 때마다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되레 온세아가 잘못했다고 꾸짖었다.성해연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겪는 실망도 아니었기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전 그냥 온주 그룹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어요.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7화

    그런데 입을 열자마자 가시 돋친 말일 줄은 몰랐다. 순간 역겨움이 밀려왔다.온철환이 헛기침을 크게 하더니 불만스러운 듯 주의를 주었다.“어른한테 말하는 태도 좀 조심해. 엄마가 예의도 안 가르쳐줬어?”“예의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한테나 차리는 거라고 배웠는데요.”아버지는 그녀가 존중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다분히 담긴 말이었다.“너!”온철환이 노발대발했다.하지만 막내딸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이제 그도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지난번에 네가 아정이 엄마를 구해준 걸 봐서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겠다.”그가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며 말했다.그러자 온세아가 차가운 얼굴로 쏘아붙였다.“감사 인사는 안 할게요.”온철환이 또다시 뒷목을 잡을 뻔했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네 엄마한테 네가 온주 그룹에 들어오도록 설득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왔어. 마침 네가 왔으니 직접 얘기할게.”온세아의 태도가 여전히 심드렁했다.“그 문제라면 예전에 이미 거절했던 것 같은데요.”온주 그룹 따위 그녀에게는 진작에 미련 없는 곳이었다.온철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솔직히 말할게. 지금 온주 그룹의 상황이 좋지 않아. 네 언니는 이혼한 뒤로 툭하면 잠적 아니면 미쳐 날뛰고 있고 네 오빠는 쥐뿔도 쓸모가 없으니...”온세아가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처음에 온철환이 온세아를 온주 그룹에 들여보내 주었더라면 주저 없이 발 벗고 나섰을 것이다.하지만 그때 그는 심미란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그녀가 온아정과 온석원에게 걸림돌이 될까 봐 온주 그룹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온갖 수를 써서 막았다.이제 온주 그룹에 위기가 닥치고 자기 사람이 필요해지자 그제야 온세아를 떠올린 것이었다.하지만 이미 온씨 가문에 실망한 온세아는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온철환이 미간을 찌푸렸다.“네 성이 온 씨라는 걸 잊지 마. 네 몸속에 우리 온씨 가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6화

    권태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청했다.“알았어. 내가 데려다줄게.”온세아가 다급히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에요. 혼자 갈게요.”그가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급한 일이라며?”‘왜 일부러 날 피하는 것 같지?’“그게...”결국 온씨 가문 본가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권태혁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가는 길 내내 온세아는 창가에 기댄 채 권태혁을 별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머릿속에 조금 전 그가 어머니와 나누었던 통화 내용이 맴돌았다.이윽고 차가 온씨 가문 본가 앞에 도착했다.“도착했네요. 안녕히 가세요.”온세아가 안전벨트를 풀고 권태혁에게 서둘러 작별 인사를 건넸다.“같이 들어가 줄까?”권태혁이 불쑥 물었다.그 질문에 온세아가 놀란 얼굴로 권태혁을 돌아봤다.‘나랑 같이 들어가겠다고? 무슨 자격으로? 회사 대표? 아니면 잠자리 파트너?’어느 쪽이든 적절치 않았다.“아니요.”온세아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양가 어른을 만날 만큼 진지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그녀가 미련 없이 차에서 내렸다.멀어지는 온세아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권태혁의 눈빛이 복잡하고 깊게 가라앉았다.오늘 그녀에게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는 걸 단박에 눈치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오늘 갑자기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아야!”온세아가 별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온석원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오빠?”그녀가 다가오는 온석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방금 너 데려다준 사람 혹시 권 대표야?”온석원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멀리서부터 온세아가 타고 온 차가 권태혁의 개인 세단이라는 걸 알아챘다.“응.”온세아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온석원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물었다.“너랑 권 대표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그녀는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시치미를 뚝 뗐다.“무슨 진도? 그분은 내 상사고 난 부하 직원일 뿐인데.”온석원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5화

    홍지영이 노발대발했다.“다혜가 유부녀만도 못하다는 소리야?”권태혁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네, 못 합니다.”“너...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니? 다혜가 어디가 어때서? 명실상부한 재벌 집 딸에 외모, 집안, 성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밖에 걔를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줄을 섰어...”권태혁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그렇게 마음에 드시면 차라리 양딸로 삼으세요.”“양딸은 필요 없어. 며느리만 원한다고.”“조만간 며느리 보실 거예요. 하지만 그게 경다혜는 절대 아니에요.”말을 마친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홍지영에게 더 이상 설득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권태혁이 돌아서려 하자 온세아가 재빨리 도망쳤다.지금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권태혁과 그의 어머니의 통화 내용을 엿들은 후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홍지영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와 경다혜의 진전에 대해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조금 전 두 모자의 통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홍지영이 경다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분명했다.경다혜가 이미 홍지영에게 온세아와 권태혁의 일을 일러바친 상태였다.아마 지금쯤 홍지영의 마음속에 온세아는 뻔뻔한 불여우로 낙인찍혀 있을 것이다.남편이 있으면서도 기를 쓰고 자기 아들을 꼬여낸 여자, 자기 아들이 번듯한 재벌가 딸과 이어지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여자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온세아가 단숨에 위층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문을 닫고 문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마음이 복잡하기 그지없었고 코끝이 시큰거렸다.출신이 보잘것없는 혼외자인 온세아와 달리 경다혜는 최고 명문가 딸이었다. 경다혜와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였다.어쩌면 권태혁이 지금 육체적인 욕망과 쾌락에 눈이 멀어 그녀를 더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가벼운 감정이 과연 얼마나 가겠는가?신선함이 떨어지고 이성이 본능을 억누르게 되는 날이 오면 되레 그에게 꼬리 쳤다고 그녀를 원망할지도 모른다.온세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었던 비극처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4화

    경악한 주현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구형민이 온세아를 감싸고 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너...”두 사람이 이혼 도장을 찍었다는 걸 몰랐다면 구형민이 온세아에게 마음이 있다고 오해할 뻔했다.“어찌 됐든 넌 이제 구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야. 가문의 대를 이어야지. 이혼 사실을 내가 한두 번은 숨겨줄 수 있어도 평생은 못 숨겨. 네 아버지도 재혼을 밀어붙이실 거고. 그리고 다음에 결혼할 여자가 적어도 재벌 집 딸일 거야.”주현희가 아들에게 진지하게 말했다.아들의 신분이 달라졌으니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달라진 건 당연했다.그가 재혼을 원하든 원치 않든 후계자 자리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벌 집 딸과 결혼하여 하루빨리 아이를 낳아야 했다....온세아가 잠에서 깼을 때 창밖이 이미 환했다.간밤 그녀는 권태혁의 침실에서 잤다. 권태혁이 약속대로 한밤중에 불쑥 들어오지 않았다.그렇게 넓은 침대에서 홀로 아주 편안하게 숙면을 취했다.온세아가 침대에서 내려와 세수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안에 핑크색 수건, 핑크색 칫솔, 핑크색 양치 컵 등 곳곳에 새로운 여성용품들이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누가 봐도 온세아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다. 이 물건들이 하룻밤 사이에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는 만무했다.머릿속에 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치밀한 계획이야, 이거.’권태혁이 어젯밤 온세아를 집으로 납치해 오다시피 한 데다 이런 물건들까지 싹 구비해 놓았다.이건 대놓고 동거하자고 꼬드기는 게 아닌가?어젯밤 단호하게 거절했는데도 권태혁은 아직 단념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모양이었다.온세아가 간단히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권태혁이 주방에 있을 줄 알았건만 뜻밖에도 텅 비어 있었다.‘어디 갔지? 벌써 출근했나?’그녀가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바깥 잔디밭에 서 있는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권태혁이 등을 돌린 채 통화하고 있었다.트레이닝복 차림에 러닝화를 신고 있는 걸 보면 조깅을 막 마치고 돌아온

  •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제453화

    권태혁이 이 말을 남기고 욕실을 나갔다.온세아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단히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의 침실을 온세아에게 내어주며 오늘 밤 자고 가라고 했다....구씨 가문 본가.“어머니, 무슨 일로 이리 급하게 부르셨어요?”구형민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현희에게 따져 묻자 주현희가 눈을 부릅떴다.“무슨 일이긴! 당연히 너랑 세아가 이혼한 일이지. 어떻게 이렇게 큰일을 숨길 수가 있어?”구형민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어머니가 신경 쓰실까 봐 그랬죠.”그녀의 두 눈에 기쁨이 가득했다.“신경은 무슨. 너랑 세아가 갈라섰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데.”구형민은 지금 주현희의 저 환한 미소가 너무나 거슬렸다. 이제야 온세아와의 이혼을 내심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아들의 이런 속내를 알 턱이 없었던 주현희는 그저 신이 나서 제 할 말을 이어갔다.“내가 살면서 제일 후회했던 게 너랑 세아의 결혼을 허락한 거였어. 네가 좋아하는 애가 아정이라는 걸...”“저 아정이 안 좋아해요.”주현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형민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그녀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놀란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뭐라고?”구형민이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온아정 안 좋아한다고요.”주현희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이제 구씨 가문의 후계자가 됐는데 옛날하고 같을 리가 없지. 아정이가 성에 안 차는 것도 당연해.”과거의 구형민은 가문 내에서 입지도 없는 혼외자에 불과했다. 그때라면 온아정 정도만 얻어도 감지덕지였다.하지만 지금의 구형민은 단숨에 구씨 가문의 후계자로 뛰어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녀인 온아정과 결혼하는 건 무조건 밑지는 장사였다.‘우리 형민이 역시 똑똑하다니까. 이젠 아정이가 급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아네.’구형민은 주현희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용건만 일렀다.“세아랑 이혼한 거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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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세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날 비서로 승진시켰어? 날 높이 띄워준 뒤에 떨어뜨리려는 속셈은 아니겠지?’“대표님, 저 비서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요...”온세아가 본능적으로 거절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온통 권태혁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인데 비서가 되어 매일 그를 마주한다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권태혁이 깊은 눈으로 온세아를 쳐다봤다.“승진하기 싫어?”온세아가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제 생각에는...”권태혁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이 회사의 대표가 나야, 세아 씨야?”그녀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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