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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그대가 다칠까 두려워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09:24:18

양석이 예령을 만나겠다고 했다는 말에 무겸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예령은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양재를 붙잡아 둔 채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협상이라기보다 인질을 앞세운 요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양석이 처음부터 이런 방법을 택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가 만나 보겠습니다.”

“양석은 이미 부인과 약조한 일이 있소.”

“그 약조를 지킬 수 없는 사정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무겸은 탁자 위에 놓인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예령이 양석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야 다음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시겠다면 막지는 않겠소. 다만 나도 함께 가겠소.”

“장군께서 동행하시면 양석 상단주가 입을 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인 혼자 보내지는 못하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마지막 말에는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예령은 더 설득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젯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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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61화. 놓지 못한 손

    방문을 열고 나오자 곽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양재가 서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포박당한 사내 둘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양재는 얼굴이 창백했으나 다행히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무겸은 먼저 양재를 돌아보았다.“군에 이름을 올린 자가 허락 없이 영문을 나간 까닭부터 말해라.”양재가 고개를 숙였다.“아버지께서 급히 부르셨습니다. 누이 일로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그 말을 믿었느냐?”“아버지께서 직접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아까는 어찌하여 부인께 문서를 보지 말라고 했느냐?”양재는 잠시 포박당한 사내들을 바라보았다.“저자들이 아버지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서씨 상단주께 문서를 건네는 순간 빼앗겠다고 했습니다.”“그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별장에 갇혀 있는 동안 들었습니다. 문서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양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부인께서 문서를 펼치시면 저자들이 달려들 것 같았습니다. 너무 급하여 그리 외쳤습니다.”무겸은 잠시 양재를 바라보다가 곽진에게 눈짓했다.“저자들을 앞으로 데려와라.”곽진이 포박당한 사내들을 끌어왔다. 그중 하나는 아까 무겸에게 팔이 꺾인 탓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누구의 명으로 이곳에 왔느냐?”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곽진이 그중 하나의 품에서 꺼낸 나무패를 내밀었다. 자사부의 창고를 드나드는 자들에게 지급되는 출입패였다.“신분을 확인했습니다. 자사부에서 부리는 자들입니다.”무겸은 사내들을 내려다보았다.“문서를 빼앗으라는 명을 받았느냐?”“장군께서는 관아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관아의 일이라면 내 군사를 감금하고 내 부인에게 칼을 겨누어도 된다는 것이냐?”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사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문서를 회수하라는 명만 받았습니다. 부인을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칼을 뽑고도 그런 말을 하는군.”사내는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무겸은 곽진에게 두 사람을 군영으로 압송해 조사하라고 명했다. 자사부의 출입패와 빼앗으려 했던 문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60화. 그대가 다칠까 두려워

    양석이 예령을 만나겠다고 했다는 말에 무겸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예령은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양재를 붙잡아 둔 채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협상이라기보다 인질을 앞세운 요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양석이 처음부터 이런 방법을 택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제가 만나 보겠습니다.”“양석은 이미 부인과 약조한 일이 있소.”“그 약조를 지킬 수 없는 사정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무겸은 탁자 위에 놓인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예령이 양석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야 다음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이었다.“가시겠다면 막지는 않겠소. 다만 나도 함께 가겠소.”“장군께서 동행하시면 양석 상단주가 입을 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렇다고 부인 혼자 보내지는 못하오.”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마지막 말에는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예령은 더 설득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젯밤 자신에게 겉옷을 여며 주던 손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럼 함께 가시지요.”무겸의 굳었던 표정이 비로소 누그러졌다.양씨 별장은 성 밖 소나무 숲을 지나야 나왔다. 마차가 눈 덮인 길로 접어들자 바퀴가 얼어붙은 돌에 걸려 크게 흔들렸다. 예령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무겸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다치지 않았소?”“괜찮습니다.”그는 곧바로 손을 거두지 않았다. 예령이 자세를 바로잡고 나서야 천천히 놓았지만, 허리께에는 손바닥의 온기가 오래 남았다.“장군께서는 늘 이렇게 빠르십니까?”“무엇이 말이오?”“제가 넘어지기도 전에 붙잡으시니 말입니다.”무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부인이 넘어질 것 같으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소.”예령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실은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차가운 풍경을 보고 있는데도 뺨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별장에 도착하자 양석이 직접 문밖으로 나왔다. 며칠 사이 얼굴이 수척해진 그는 무겸에게 예를 올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9화. 마음이 머무는 곳

    새벽녘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침이 되어서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예령은 창가에 앉아 밤새 품에 넣어 두었던 서신을 펼쳤다. 단정하면서도 힘이 실린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고작 두 줄에 불과한 글이었으나,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읽었는지 알 수 없었다.‘밤을 지새우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오. 부인은 아무 걱정 말고 편히 쉬시오.’그는 자신이 잠들지 못할 것을 미리 짐작했던 모양이었다.예령은 서신의 마지막 글자 위에 손끝을 얹었다. 무겸은 밤새 양재를 찾느라 군영을 오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잠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여 손난로까지 보냈다.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그녀는 서신을 접어 작은 함에 넣었다. 그 안에는 무겸이 혼례 전 보내왔던 서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계약에 필요한 문서라 여겨 보관했으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굳이 간직할 이유가 없는 글까지 남아 있었다.“마님, 장군께서 아침상을 함께하시겠답니다.”연화의 말에 예령은 황급히 함을 닫았다.“장군께서 돌아오셨느냐?”“예. 조금 전에요. 밤새 군영에 계셨다는데, 어찌 그리 멀쩡하신지 모르겠습니다.”예령은 거울 앞에 앉았다가 문득 손을 멈추었다.평소라면 연화가 빗어 주는 대로 머리를 틀어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신경이 쓰였다.“연화야. 저 비녀 말고 옥비녀를 가져오너라.”연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마님께서 그 비녀를 찾으시는 건 처음입니다.”“그냥 오늘은 그걸 하고 싶구나.”예령은 태연한 척 대답했으나, 거울 속 자신의 귀 끝이 붉어진 것을 보고는 공연히 찻잔을 집어 들었다.무겸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그는 예령이 들어서자 읽고 있던 서신을 내려놓았다. 무심히 고개를 들었던 시선이 그녀의 머리께에서 잠시 멈추었다.“오늘은 평소와 다르군.”예령은 걸음을 멈추었다.“무엇이 말입니까?”“비녀 말이오.”그가 알아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저 다른 것을 꽂아 보았습니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8화. 아직 끝나지 않은 밤

    무겸은 잠시 말이 없었다.곽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다시 들렸다.“막사를 함께 쓰는 자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영 안을 뒤지고 있습니다.”“위량을 불러라. 내가 가겠다.”“예, 장군.”발소리가 멀어졌다. 무겸은 벽에 걸어 둔 검을 집어 들었고, 예령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 그의 방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조금 전 목덜미를 감쌌던 손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손이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차마 끝까지 생각하지 못한 물음이 가슴속을 어지럽혔다.“부인.”무겸이 검을 차며 그녀를 돌아보았다.“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시오.”“저도 가겠습니다.”“군영의 일이오.”“양재는 백운상회 사람이기도 합니다.”무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평소 같았으면 한 번 더 만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 예령을 바라보다가 문가에 걸어 둔 두터운 겉옷을 가져왔다.“그렇다면 이것부터 입으시오.”예령이 미처 손을 내밀기도 전에 겉옷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무겸은 그녀의 목 앞에서 벌어진 옷깃을 여며 주었다. 굵은 손가락이 매듭을 묶는 동안 예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장군의 옷입니다.”“알고 있소.”“장군께서는 추우실 텐데요.”“나는 부인만큼 추위를 타지 않소.”그가 마지막 매듭을 고쳐 묶었다. 손을 거두기 전, 엄지손가락이 예령의 턱 아래를 스쳤다.우연한 접촉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무겸도 그것을 느꼈는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십시다.”그가 먼저 돌아섰다.예령은 한 박자 늦게 뒤따랐다. 어깨에 걸친 옷에서는 희미한 약향과 낯익은 체취가 났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마당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군영에 도착했을 때 위량이 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겸을 보자 곧장 고개를 숙였다.“뒤쪽 담장 아래에서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입니다.”“양재의 것이냐?”“하나는 양재의 신발 자국과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싸운 흔적은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7화. 나가시오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루 앞에 아전 둘이 서 있었다. 그 뒤에 포졸이 넷이었다.“백운상회 둘째 양재를 데려가겠습니다.”무겸이 눈을 털며 섬돌에 올라섰다. 예령은 마루 끝에 섰고, 연화가 그 뒤에서 치맛자락을 쥐었다.“그 아이는 군에 이름을 올렸다.”“예. 그 문서를 자사 어른께서 보셨습니다.”아전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그 아이는 작년 봄 관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의 일이 끝나지 않은 자를 군에 올리셨으니, 그 문서가 거짓이 됩니다.”무겸은 그 종이를 받지 않았다.“그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관아 장부에 남아 있습니다.”“작년 봄에 그 아이는 하룻밤 만에 풀려났다. 문서가 갖춰졌다는 뜻이다. 문서가 갖춰진 일을 끝나지 않았다 하려면, 그 문서를 누가 만들었는지부터 적어야 할 것이다.”아전의 손이 멈췄다.“……그것은 제가 답할 일이 아닙니다.”“그러면 답할 사람을 데려와라.”아전이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포졸 넷은 마당에 들어선 뒤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장군.”“군에 이름을 올린 자를 끌어가려면 군에 글을 넣어라. 그 글은 내 손을 거친다. 오늘은 내 손을 거치지 않았으니 돌아가라.”포졸들이 서로를 보았다. 아전이 한참 만에 허리를 숙였다.“……자사 어른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그리해라.”마차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양소정이 마루 기둥 뒤에 서 있었다. 손에 쥔 치맛자락이 구겨져 있었다.“부인.”“예.”“제 오라비 때문에 장군께서 걸리시는 겁니까?”예령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예.”양소정이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아버지께 돌아가면 됩니까?”“아가씨가 돌아가도 그 문서는 그대로 있습니다.”“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일은 저쪽이 떠본 것입니다.”“……어찌 아십니까?”“포졸을 넷만 데려왔습니다. 정말로 데려갈 작정이었으면 스물은 데려왔을 겁니다.”“그러면 왜 왔습니까?”“장군께서 어디까지 막으시는지 보려고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6화. 처마 밑

    그 말을 하고 나서도 무겸은 예령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났다. 예령은 그 손 아래에서 제 맥이 뛰는 것을 느꼈고,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장군.”무겸이 손을 놓고 일어섰다.“주무시오.”문이 닫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이튿날 양소정이 아침상에서 저자가 서는 날이라고 했다. 열흘에 한 번이고, 겨울에는 그날 아니면 물건이 안 나온다고.마루 끝에 있던 무겸이 그 말을 듣고 들어왔다.“가 보시오.”“……장군께서도 가십니까?”“혼자는 못 보내오.”성안 거리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마른 생선과 짐승 가죽과 쇠붙이가 나와 있었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메우고 있었다.예령은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물건에 값을 적은 패가 없었고, 같은 가죽인데도 사는 사람에 따라 값이 달랐다. 황도에서는 본 적 없는 셈법이었다.상인들이 무겸을 알아보고 하나씩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예령에게도 눈이 따라왔다.예령이 서너 걸음 뒤처졌을 때 무겸이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손목을 잡았다.“떨어지면 못 찾소.”가죽을 파는 자리를 지나는데 멍석 끝에 토끼 가죽 토시가 걸려 있었다. 예령이 그 앞에서 걸음이 한 박자 느려졌을 뿐인데, 무겸이 값을 치르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예령에게 건네고 앞서 걸었다.예령이 그것을 끼었다. 어제 그가 쥐어 자국이 남은 자리가 덮였다.바람이 거리 끝에서부터 밀려왔다.멍석을 걷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하늘이 한순간에 낮아지더니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보라였다.“이쪽이오.”무겸이 손목을 당겼다.거리 옆 창고와 담 사이에 처마가 낮게 내려온 자리가 있었다. 사람 하나가 비를 그을 만한 폭이었다.무겸이 먼저 들어가 예령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둘이 들어가니 설 자리가 없었다.예령의 등이 담에 닿았다. 무겸은 바깥쪽에 서서 등으로 바람을 막았고, 그 사이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바깥에서 멍석을 걷던 사람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났다. 누가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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