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데이터상으로 보면 실험이 실패하면 사실상 되돌릴 방법은 없어.”지강의 말이 끝나자, 심윤영이 통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민효연의 최면 치료가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 해결은 아니었어. 그건 위준하의 뇌에 일종의 코드를 입력하는 것과 같았고, 그 코드는 주기적으로 유지 관리가 필요했지. 그런데 민효연이 죽은 후로는 관리할 사람이 없었어. 기억이 돌아온 건 우연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필연이야. 그리고 그 기억 회복은 위준하에게 굉장히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지강은 이어서 말했다.“위준하의 병은 태아 때부터 시
송해인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너 진짜... 그렇게 큰 비밀을 알고도 몇 년 동안 아무 말도 안 했어?”“소민의 출생과 관련된 일이니까 함부로 말할 수 없었어요. 지금처럼 지내는 게 더 좋기도 하고요.”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래도 그 이후로 지강 삼촌이 궁금해서 옛 마을에 갔을 때 몰래 알아봤어요. 연세 있는 주민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지강 삼촌은 한때 아주 유명한 의사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고요. 이후에는 병원이 진씨 할아버지에게 넘어갔지만 그분도 지강 삼촌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어요.”
궁씨 가문 쪽에서도 이상함을 눈치챘다.궁서월은 궁신아라는 동생에게 큰 애정은 없었지만, 혈연과 가문의 이익 때문에 직접 F국으로 날아왔다.공항을 막 나선 순간, 멀리서 변영준이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변영준은 이틀 전 이미 F국에 도착해 있었다.변승현은 궁씨 가문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그를 보내 상황을 지키게 한 것이다.심윤영과 위준하 사이에는 두 아이가 있고, 두 집안의 오랜 인연도 있었기에 변영준은 내심 매우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오게 되었다.그는 비서 차성현과 개인 경호
“계속 살려야 해요.”심윤영은 냉정하게 말했다.“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숨만 붙어 있어도 살려야 해요. 궁씨 가문은 그렇게 공들여 키운 말을 잃었으니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전우빈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인제야 깨달은 듯 물었다.“사모님... 혹시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어요?”“처음부터는 아니었어요.”심윤영은 담담하게 말했다.“처음엔 의심만 있었고, 증거가 없어서 어머니에게 조사를 부탁했죠.”위준하가 이혼을 요구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송해인에게 전화를 받았다.위준하가 스탠스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듣고, 심
“지금 와서 알아차리기엔 좀 늦었지.”위준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촛불로 불을 붙였다.입에 물고 몇 모금 천천히 피운 뒤, 긴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어 자신이 방금 마셨던 와인잔에 재를 털었다.희미한 연기 속에서 그의 잘생긴 얼굴은 음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엄유미, 9년 전엔 내가 한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네가 나를 물어뜯을 기회를 줬지. 같은 실수를 두 번은 안 해.”“9년 전엔 네가 권력으로 나를 쫓아낸 거야! 너야말로 비열하고 음험해! 그때 내가 운이 좋지 않았다면, 넌 이미 나를 죽인 장본인이었어! 지금도
전우빈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전 비서님.”심윤영이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전 비서님이 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위준하랑 궁신아가 여기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말하는 거예요.”전우빈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더니 깊게 한숨을 쉬었다.“말하겠습니다...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이야기는 위준하가 궁신아를 데리고 출국한 날부터 시작됐다.위준하는 궁신아를 F국으로 데려가 치료하겠다는 계획을 미리 궁씨 가문 쪽과 상의했었다.궁신아의 아버지는 궁신아가 그렇게 위준하를 따라가는 게 못내 아쉬
송해인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송해인 씨, 저예요.”전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 번밖에 들은 적 없었지만, 송해인은 단번에 표유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송해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사모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시죠?”“송해인 씨에 대해 좀 알아봤어요. 온씨 가문에는 아직 숨기고 계신 것 같더군요.”송해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래서요? 협박이라도 하시려고요?”“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표유진이 말을 이었다.“며칠 더 북성에 머물 예정인데 시간
“해인 씨, 취했어요. 안아서 침대로 데려다줄게요.”“안 취했어요.”송해인은 손을 뻗어 유리창 너머 밤하늘에 뜬 밝은 달을 손가락으로 그렸다.“온주원 씨,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온주원은 그녀의 장단을 맞춰주었다.“네, 말해봐요. 듣고 있을게요.”“선녀는 사실 토끼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달에는 토끼밖에 없었거든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토끼를 구워 먹어버린 거예요.”온주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있잖아요, 선녀는 참 나쁜 사람이죠?”온주원은 미간을 찌푸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유리창에는 수많은 손자국이 남았다.노을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였고 그 붉은 빛이 송해인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의 얼굴은 더더욱 붉게 달아올랐다.딸을 낳겠다는 온주원의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신혼집이라 피임 도구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못 이기는 척 그의 뜻을 따랐다.모든 것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거실의 가죽 소파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고 몸에는 서로의 체온과 숨결이 여전히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어둠이 내려앉고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였다.거실 소파에 누워 통창 너머를 바라보니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에 높이
류서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류다영의 성격은 드세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과거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을 때, 그녀는 공개적으로 상간녀를 몰아세웠고 이혼 과정을 온 세상이 알도록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결국 상간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했고 전남편은 의학계에서 제명되었다.류다영의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는 있었을지언정, 절대 손해를 보고 살 인물은 아니었다.그런 그녀가 오늘 송해인과 온주원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그녀는 이 원한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류다영의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