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소정이 소지품 신고란에 펜을 댔다.
“맡긴 물건도 가지고 계신 거죠?”
“예.”
“가방 안에 있습니까?”
“따로 넣어 뒀습니다.”
책상 위의 노트를 가리켰다. 유소정은 노트가 나왔던 자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품목은 어떻게 적으면 될까요?”
“보따리입니다. 1개.”
“내용물은요?”
“못 봤습니다. 집에 가서 열라고 했습니다.”
펜 끝이 잠깐 멈췄다.
“누가 맡겼는지는 기억하십니까?”
“같이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유소정은 그 말까지 적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풀어 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가방은 내가 열었다. 컵과 여벌 옷, 남은 끈을 책상에 꺼냈다. 문 옆 남자가 컵 안쪽과 옷 사이를 확인했다. 끈은 풀린 길이만 보고 다시 돌려줬다.
내가 끈을 감는 동안 유소정이 서류를 정리했다.
“뒤편 임시 보호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신체 검사부터 받으셔야 합니다.”
“검사 끝나면 집에 갑니까?”
“신원 확인도 함께 진행합니다. 오늘 바로 끝나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가방 안에 컵을 눕혔다. 옷으로 감싸고 끈을 얹었다. 며칠 묵을 거면 컵은 위에 두는 게 나았다.
◉
초소 뒤에는 컨테이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문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고, 창문 아래에는 실외기가 돌아갔다. 바닥에 깔린 철판을 밟자 신발 밑에서 빈 소리가 났다.
유소정이 문 하나를 열었다.
침대와 작은 책상, 옷장이 있었다. 침대 끝에는 수건과 회색 옷이 접혀 있었다.
“검사 받으실 때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지금 입으신 옷은 세탁해 드릴 수 있고요.”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 전에 침대 밑을 봤다. 바닥이 말라 있었다. 책상 옆에도 물이 샌 자국은 없었다.
가방은 책상 아래에 세웠다.
“식사는 가운데 건물에서 드시면 됩니다. 검사 때문에 아침은 잠깐 기다려 주세요. 채혈하고 나면 드실 수 있습니다.”
“돈을 냅니까?”
“보호 기간에는 받지 않습니다.”
“세탁도요?”
“네.”
노트를 펼쳤다. 적을 비용이 없어서 빈칸을 그대로 뒀다.
유소정이 문 옆의 호출 버튼을 짚었다.
“불편한 곳이 생기면 누르세요. 밤에도 담당자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물건을 꺼내실 때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고요. 아직 능력 검사를 받기 전이라서요.”
나는 책상 위를 비운 뒤 손을 댔다. 잠시 후 기계식 손목시계를 꺼냈다.
유소정이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도 움직입니까?”
“태엽을 감으면요.”
시계는 저쪽에서 맞춘 시간 그대로였다. 초소 벽시계와 맞지 않았다.
“시간은 복도 시계에 맞추시면 됩니다.”
유소정이 나간 뒤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를 돌려 보고 다시 풀었다. 안에서 여는 데는 열쇠가 필요하지 않았다.
가방을 초소에서 여기까지 옮긴 기록을 남겼다.
『품목: 가방 1개 / 출발: 초소 / 도착: 임시 보호소 숙소 / 운임: 없음』
그 밑에 검사라는 말을 적었다.
왼쪽에는 끝난 일을 표시할 칸을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기다려야 하는지 알면 덜 서성일 수 있었다.
◉
첫 검사는 피를 뽑는 일이었다.
회색 옷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가 팔을 걷어 올리고 고무줄을 둘렀다.
“주먹 가볍게 쥐어 주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팔 안쪽을 문지르던 손이 멈췄다.
“평소에 드시는 약 있으세요?”
“없습니다.”
“최근에 드신 건요? 약초나 가루 따위도 말씀해 주세요.”
나는 마지막으로 먹었던 것을 순서대로 말했다. 삶은 곡식, 말린 고기, 물. 이름을 모르는 잎을 끓여 먹은 적도 있었지만 최근 일은 아니었다.
간호사는 모르는 음식 이름을 다시 물었다. 나는 생김새와 먹는 방법을 말했다.
주사기가 들어갔다. 눈을 돌리지 않고 기다렸다.
“어지러우면 바로 말씀하세요.”
“예.”
피를 뽑은 뒤 솜을 눌렀다. 충분히 누르라는 말을 듣고 시계를 봤다.
그다음은 몸무게였다.
저울에 올라서자 간호사가 숫자를 적었다. 내려오라는 말을 듣기 전에 가방을 안 들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저울 위에서는 늘 짐부터 계산하게 됐다.
키를 재고, 눈을 보고, 귀를 봤다. 의사는 청진기를 등에 대고 숨을 크게 쉬라고 했다.
나는 노트의 칸을 하나씩 채웠다.
오전 마지막에는 치과 의자에 누웠다.
불빛이 얼굴 위로 내려왔다. 작은 거울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어금니를 살피고 잇몸을 눌렀다.
“딱딱한 걸 오래 씹으셨네요.”
말을 할 수 없어서 고개만 조금 움직였다.
“이를 가는 습관도 있으신가요?”
거울이 빠진 뒤 답했다.
“잘 때는 모르겠습니다.”
“치아 상태만 보면 47세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나이를 정할 수는 없어요. 먹는 음식이나 습관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입가를 닦았다.
27세에 갔다. 저쪽에서 20년을 보냈다. 치아 쪽 계산은 맞았다.
서류에 적힌 30세를 의사가 한 번 더 확인했다.
“찬물 드실 때 시린 곳은 없습니까?”
“왼쪽 아래가 조금 그렇습니다.”
의사는 그 자리를 다시 보고 나중에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당장 뽑을 이는 없다고 했다.
남은 이를 혀로 하나씩 짚어 봤다.
일단 전부 가지고 돌아왔다.
◉
식당 문 앞에 붙은 종이에는 아침 배식이 끝났다고 적혀 있었다.
안쪽에서 식판을 닦던 아주머니가 나를 봤다.
“검사 받고 오셨어요?”
“예. 피를 뽑아서 늦었습니다.”
“앉아 계세요. 따로 놔뒀어요.”
아주머니는 덮어 둔 식판을 가져왔다. 밥과 국, 김치가 있었다. 작은 접시에는 계란도 놓여 있었다.
나는 식판을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
밥에서 김이 올라왔다.
숟가락으로 가운데를 조금 눌렀다. 아래쪽도 희고 부드러웠다. 껍질이 섞이지 않았고, 돌을 골라낼 필요도 없었다.
한 숟가락을 먹었다.
입안에서 몇 번 씹고 삼켰다. 다음 숟가락도 그만큼 떴다.
국을 먹는 것을 잊어서 반쯤 남은 밥에 국을 한 번 떠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밥만 먹었다.
빈 그릇을 내려놓자 아주머니가 밥솥 뚜껑을 열었다.
“더 드릴까요?”
“조금 더 먹어도 됩니까?”
“그럼요.”
두 번째 밥은 첫 번째보다 많았다. 숟가락을 꽂지 않고 옆에 내려놓았다. 그릇을 양손으로 받아 자리로 가져왔다.
마른 빵은 물에 적셔야 목으로 넘어갔다. 삶은 곡식도 오래 식으면 덩어리가 졌다. 저쪽에서 아침으로 먹던 것은 대개 둘 중 하나였다.
이 밥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넘어갔다.
두 번째 그릇까지 비우고 식판을 들었다. 아주머니가 내 손에 든 그릇을 보더니 새 그릇을 꺼냈다.
“한 그릇 더 드세요.”
“이제 됐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밥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주머니가 세 번째 밥을 담았다. 이번에는 내 앞에 놓지 않고 배식대 위에 뒀다.
나는 식판을 내려놓았다.
더 먹으면 되는지,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 몸이 알려 주지 않았다. 배가 찬 것은 알았다. 그런데 빈 그릇을 가져가는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었다.
“귀환자분들 다 그래요.”
나는 아주머니를 봤다.
“꼭 밥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빵을 찾는 분도 있고, 국수만 드시는 분도 있고요. 급하게 안 드셔도 됩니다.”
국을 조금 더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세 번째 밥그릇 앞에서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번에는 국부터 먹었다. 따뜻한 물이 내려가고 나서야 등을 의자에 붙일 수 있었다.
“남겨도 됩니까?”
“억지로 드시지는 마세요.”
밥은 반쯤 남겼다. 식판을 반납하면서 남은 밥이 흐트러지지 않게 그릇을 바로 세웠다.
아주머니는 왜 남겼느냐고 묻지 않았다.
◉
3월 10일(화), 면담실에는 의자가 2개 놓여 있었다.
담당자는 책상 옆에 앉았다. 내 정면을 막지 않는 자리였다. 책상에는 어제 작성한 종이가 올라와 있었다.
“저쪽에서 보내신 기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얼마나 계셨습니까?”
“20년입니다.”
담당자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시간을 어떻게 확인하셨나요?”
“날짜를 적었습니다.”
노트를 펼쳤다. 앞쪽에는 짐을 받은 날짜와 내려놓은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내 글씨가 좁은 칸마다 들어가 있었다.
담당자는 내가 짚은 곳을 읽었다.
“이 노트를 처음부터 쓰신 건가요?”
“아닙니다. 앞의 것은 못 가져왔습니다. 옮겨 적은 것도 있습니다.”
“그쪽의 1년이 여기와 길이가 맞습니까?”
나는 잠깐 연필을 굴렸다.
비가 오는 철이 돌아왔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해마다 그 날을 셌다. 그것으로 해를 구분했다. 하루 길이를 여기와 맞춰 잰 적은 없었다.
그대로 말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에 적었다.
『체류 기간: 주관적 체감 20년』
나는 글씨를 끝까지 읽었다.
“체감이 아니고 지낸 기간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별도로 적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확인할 수 없는 기간은 우선 이렇게 분류합니다.”
담당자는 아래에 내가 날짜를 기록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펜을 빼앗아 고칠 일은 아니었다. 노트는 내 쪽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짐을 날랐습니다.”
“누구의 짐이었나요?”
“용사 일행입니다. 4명하고 다녔습니다.”
“전투에도 참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셨고요?”
“뒤로 빠졌습니다. 물하고 약을 꺼내 놓고 기다렸습니다.”
담당자는 앞의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무기를 다루거나 특별한 기술을 익히신 적은요?”
“짐 묶는 건 배웠습니다.”
“싸우는 기술 말입니다.”
“못 합니다.”
담당자는 내 어깨와 팔을 잠깐 봤다.
“짐을 오래 나르셨는데 체력은 좋으신 편인가요?”
“오래 걷습니다. 들고 싸우는 건 다릅니다.”
나는 펜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질문을 하나씩 받으니 대답도 하나씩 할 수 있었다. 20년을 처음부터 설명하라는 말보다 나았다.
담당자가 아공간에 대해 물었다.
나는 물건을 보관하고 다시 꺼낼 수 있다고 답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안 된다고 했다.
“본인도 들어가실 수 없고요?”
“들어간 적 없습니다.”
“그럼 물건을 보관하는 능력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용량은 내일 측정실에서 확인할 겁니다.”
나는 내일이라는 말을 노트에 적었다.
검사가 하나 남았다.
◉
3월 11일(수), 아침을 먹고 관리청 동부 사무소로 갔다.
건물 2층 복도 끝에 측정실이 있었다. 문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안에서 바퀴 달린 장비를 옮기는 소리가 났다.
측정관이 문을 열었다.
“신우재 씨, 들어오십시오.”
방 가운데에는 낮은 받침대가 있었다. 위쪽에 손바닥을 올리는 판이 붙어 있었고, 옆에는 숫자가 표시되는 화면이 있었다.
벽에는 추가 검사용 줄자와 저울이 놓여 있었다. 구석의 철제 선반에는 크기가 고른 상자가 쌓여 있었다.
측정관이 내 노트를 봤다.
“기록하셔도 됩니다. 다만 측정 중에는 손을 떼지 마세요.”
“여기 올리면 됩니까?”
“네. 물건을 넣거나 꺼내지는 마시고, 능력을 사용하실 때처럼 연결만 해 주세요.”
받침대 앞에 섰다. 손바닥을 판 위에 올렸다.
차가웠다.
물건을 찾을 때처럼 안쪽을 짚었다. 손 밑에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화면의 숫자가 올라갔다.
측정관은 처음에는 옆의 기록지를 보고 있었다. 곧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금이 중간을 지나 위쪽 끝에 닿았다.
짧은 소리가 났다.
300이라는 숫자 옆에 표시가 깜박였다.
“잠깐 손 떼 주세요.”
손을 들었다. 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측정관이 화면 아래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사라지고 처음 표시로 돌아갔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셨습니까?”
“없습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측정관이 시작부터 화면을 봤다. 숫자는 아까와 다름없이 올라갔다. 끝에 닿고, 다시 그 소리가 났다.
측정관이 기록지 위에 펜을 놓았다.
“이 장비의 측정 한도가 300톤입니다.”
“그 이상은 안 나옵니까?”
“네. 상한을 넘으면 정확한 값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손을 뗐다. 300톤까지 재는 기계였다. 그러면 끝에서 멈추는 게 맞았다.
측정관은 장비 뒤쪽의 선을 확인했다. 연결부를 누르고 바닥의 수평 표시도 들여다봤다.
내가 말하기 전에 측정관이 의자를 가리켰다.
“장비 점검 먼저 하겠습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나는 앉았다.
측정관은 내 앞에서 작은 시험용 장치를 판에 연결했다. 화면에 정해진 수치가 나오자 기록지와 맞춰 보고 선을 뺐다.
그다음에는 서랍에서 새 종이를 꺼냈다. 장비 번호를 적고 확인란에 표시했다.
한 번 잘못 나오면 사람을 다시 부르면 됐다. 잘못 나온 값을 서류에 쓰면 서류도 다시 불러야 했다.
측정관이 손바닥 판을 닦았다.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일어나 아까 그 자리에 섰다.
손을 올렸다. 눈금이 끝까지 올라갔다.
측정관은 이번에는 바로 손을 떼라고 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고, 화면을 보고, 잠깐 더 기다렸다.
표시는 바뀌지 않았다.
“됐습니다.”
노트를 가져와 앉았다. 검사라고 적어 둔 칸에 표시했다.
측정관은 3번의 결과를 차례대로 적었다. 셋 다 정확한 용량 대신 말 한 줄이 들어갔다.
『측정 불가』
내가 쓰는 장부에는 잘 없는 항목이었다. 물건 무게를 모르면 내려놓기 전에 한 번 더 달았다. 여기에는 더 큰 저울이 없는 모양이었다.
측정관이 내게 물었다.
“물건을 보관하는 동안 몸에 무게가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안 느껴집니다.”
“꺼낼 때 통증이나 어지럼증은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는 노트 옆에 놓인 연필을 주웠다. 수치를 물으면 답할 수 있었지만, 측정관은 이미 다음 서류를 꺼내고 있었다.
결과를 적는 종이와 판정을 적는 종이는 따로였다.
측정관이 얇은 책자를 펼쳤다. 접어 둔 귀퉁이를 펴고 해당 줄을 손가락으로 확인했다. 그러고는 서류 아래에 도장을 놓았다.
잉크를 묻힌 도장이 종이에 닿았다.
측정관이 도장을 들어 올린 뒤 말했다.
“측정 불가. 규정상 S급 판정입니다.”
나는 연필을 멈췄다.
“그게 좋은 겁니까?”
(2화 끝)
“네. 제가 없으면 태근 씨가 작업을 멈출지, 계속할지 정하시면 됩니다.”방태근이 공문을 책상에 내려놓았다.“계속하라는 게 아니라 멈출 수도 있는 거네요.”“못 옮길 짐을 받으면 안 됩니다.”민해성이 작업표를 돌렸다. 내 이름으로 채워진 안쪽 운반 칸 아래에 빈 종이를 놓았다.“대표 부재 때도 평소 양을 옮긴다고 쓰면 안 됩니다. 실제로 남는 사람과 장비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적겠습니다.”소라가 자기 용량 기록을 당겼다.“저는 0.8톤까지인데, 한 번에 전부 넣지는 않겠습니다. 인수 확인할 자리가 필요해요.”“약하고 서류부터 맡아 주세요.”추영호의 이름 옆에는 게이트 밖 구간이라고 적었다. 트럭은 안에 들어가면 멈췄다. 없다고 치는 것과 밖에서 쓸 곳을 정하는 것은 달랐다.오경자가 포터 계약서를 펼쳤다.“20명한테 작업 가능한 날짜를 다시 받아야겠네요. 계약했다고 매일 여기 있는 건 아니니까.”방태근은 펜을 받아 자기 이름 아래에 현장 지휘라고 썼다.나는 그 옆에 대체 지휘 확인이라고 적었다. 내 이름이 없어도 읽히는 작업표를 만드는 데 종이가 더 들었다.◉7월 20일(월), 관리청 심사장에 들어가기 전에 방태근이 서류 봉투를 내게서 가져갔다.“형, 오늘은 제가 먼저 꺼내겠습니다.”“네.”지난번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대답했고, 자료가 필요하면 내가 찾았다. 오늘은 의자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뒀다.심사관이 첫 장을 넘겼다. 예전에 받은 보류 사유도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듣고 있습니다. 회사는 안 팝니다.”나는 노트에 적은 20억 원 아래로 선을 그었다. 직원 이름에는 펜을 대지 않았다.“가격을 더 들어 보지도 않고?”“가격 때문에 안 파는 건 아닙니다.”“신 대표 혼자 옮기는 회사잖아요. 직원들은 우리가 고용하면 되고.”“그건 직원들한테 물으셔야 합니다.”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다음 달 작업표를 당겼다. 안쪽 운반 일정은 찼는데 묶음 작업 인원 칸은 비어 있는 날이 있었다.“대신 맡길 일이 있습니다.”“누가 누구한테?”“저희가 만금 물류에요. 묶음 전문 하청으로 계약하면 됩니다.”공대환이 짧게 웃었다.“우리한테 짐 묶으라고요?”“그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시잖습니까.”나는 육만길이 표시해 둔 작업일을 봤다. 갑각은 모서리를 덮어야 했고, 광석은 자루 입구부터 확인해야 했다. 아공간에 넣는 시간보다 그 앞의 일이 길었다.“포터 일당은 20만 원 보장하겠습니다. 지급 조건은 계약서로 드리고요.”“단가는 우리가 정합니다.”“그러면 견적을 주십시오. 다만 포터한테 돌아가는 일당은 깎지 않는 조건입니다.”“신 대표가 우리 직원 월급까지 정하겠다는 겁니까?”“제가 맡기는 일의 조건입니다.”공대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인수 제안은 생각 바뀌면 전화해요.”
소라가 장부의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그것도 적어요?”“측정할 때 있었던 일이니까요.”오경자는 펜 뚜껑을 닫았다. 소라는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장부를 한 번 더 봤다. 0.35라는 숫자 아래에 눈물 자국은 없었다. 오경자가 종이를 옮긴 덕분이었다.나는 측정용 묶음이 모두 나왔는지 목록을 확인했다. 빈 아공간을 확인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돌아가서 오늘 기록까지 맞추겠습니다.”소라가 자기 가방을 들었다.“내일도 그 일 하면 되죠?”“네. 무거운 걸 더 넣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50킬로그램 더 들어가는데요.”“들어가는 것하고 맡아도 되는 건 다릅니다.”소라는 가방 안에서 노트를 꺼냈다. 적을 자리를 찾다가 측정 결과가 적힌 쪽을 다시 펼쳤다.나는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6월 29일(월), 창고 안 온도계는 문을 열어 놓아도 내려가지 않았다.육만길은 묶음 작업대 옆에서 끈을 감고 있었다. 운동화 끈은 묶여 있었고, 작업복 등은 젖어 있었다. 나는 선풍기를 작업대 쪽으로 돌린 뒤 벽에 붙일 종이를 가져갔다.민해성이 종이 위쪽을 잡아 줬다.『폭염 시 작업 수칙갈증이 나기 전에 물을 마십니다.젖은 끈과 풀린 매듭은 다시 확인합니다.어지러우면 짐을 내려놓고 알립니다.쉬는 시간 때문에 일당을 깎지 않습니다.』육만길이 마지막 줄을 읽고 내 쪽을 봤다.“이건 크게 써야겠는데.”나는 종이를 떼려다 멈췄다.“얼마나 크게요?&
나는 소라의 노트에 적힌 날짜를 봤다. 펜을 쥔 손이 빈칸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들고만 다녀서는 안 커집니다.”소라가 의자를 당겼다. 가방은 그대로 어깨에 걸려 있었다.“그러면 뭘 해야 해요?”“받아서 전해 줘야 합니다. 무게하고 거리도 관계가 있고요.”“넣었다 꺼내는 횟수요?”“횟수만은 아닙니다. 한자리에서 제 물건을 넣었다 꺼내 봤는데, 그걸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나는 닫았던 노트를 다시 폈다. 뒤쪽에 저쪽에서 쓰던 기록을 옮겨 둔 페이지가 있었다. 물통과 밀가루 자루, 목적지와 걸린 시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소라는 글씨보다 숫자를 먼저 봤다.“무게에 거리를 곱하는 겁니까?”“네. 받은 짐을 받을 사람에게 전해 준 만큼입니다.”“확실해요?”“20년 동안 그렇게 썼습니다. 다만 소라 씨 것도 그런지는 확인해야 합니다.”소라가 가방을 벗어 의자 옆에 놓았다.나는 책상에 남아 있던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반출 창구에서 받아 온 원본이었다.“이걸 소라 씨한테 주고, 소라 씨가 경자 씨한테 가져다주면 운반입니다. 넣었다가 저한테 바로 돌려주는 건 시험부터 해 봐야 하고요.”“서류도 무게가 얼마 안 되는데요.”“그래서 무게를 재야 합니다.”소라는 노트에 쓰다가 멈췄다.“제 것도 커질 수 있다는 말씀이죠?”“그걸 알아보자는 말씀입니다.”나는 벽에 붙인 보류 통지
나는 공문을 뒤집어 마지막 장을 펼쳤다.민해성이 내려놓은 가방을 다시 열었다. 펜으로 표시한 곳은 물량과 시간이 아니라 그 아래의 제출 서류였다.“등짐 운송 이름으로 등록되는 겁니까?”“네. 대표님 개인 능력 등록과는 다릅니다.”“운반은 됩니다.”“그건 압니다. 이번에는 된다는 걸 서류로 보여 줘야 합니다.”나는 노트에 적은 1,000톤 옆에 줄을 그었다. 민해성은 회사 도장, 직원 명부, 보험 서류를 차례로 짚었다.“이건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운반 계획은 대표님이 써 주시고요.”“거리도 정해져 있습니까?”“심사 자료를 받아야 합니다.”사무실 밖에서 추영호가 접이식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공문이 바람에 넘어가지 않게 물컵을 옆으로 옮겼다.운반 계획은 많이 써 봤다. 회사 이름으로 심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6월 10일(수), 관리청 심사장에는 긴 책상이 놓여 있었다.나는 회사 서류철을 앞에 두고 앉았다. 민해성은 보험 가입 확인서를 따로 꺼냈고, 오경자는 제출한 사본과 원본의 순서를 맞췄다.방태근은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다리를 폈다. 소라는 큰 가방을 발 사이에 놓았다. 추영호는 트럭 열쇠를 책상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심사관은 직원 명부부터 읽었다.“대표 포함 전원 오셨네요.”“각자 맡는 일을 설명하려고 왔습니다.”“좋습니다. 우선 운반 능력부터 보겠습니다.”심사관이 종이로 된 지도를 펼쳤다. 입구에서 물자 집결지까지 4.5킬로미터
나는 안내문을 잡아당기려던 손을 멈췄다.민해성은 손가락을 거두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구두 옆으로 들것에서 털어 낸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어느 부분이 문제입니까?”“운송장에 적힌 짐인지도 안 따지고, 포장을 누가 했는지도 안 따집니다. 저 문구대로면 깨진 물건을 맡겨도 대표님이 값을 줘야 합니다.”“받기 전에 확인합니다.”“묶음 안쪽까지 전부요?”나는 바닥에 펼친 들것을 봤다. 접히는 부분의 모래는 털어 낼 수 있었다. 자루 안에 든 광석을 전부 꺼내 보는 일은 달랐다.오경자가 책상에서 돋보기를 벗었다.“파손 배상하러 오신 분입니까?”“아닙니다. 운송 일을 맡기는 쪽 계약을 검토하다가 이 회사 양식을 봤습니다.”민해성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우리 운송장 사본이었다. 배상 문구 아래에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이대로 계약하면 의뢰인한테도 좋지 않습니다.”“전액 받는데요.”“한 번 받고 업체가 없어지면 다음 운송은 누가 합니까?”방태근이 들것을 닦던 천을 접었다. 소라도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나는 손의 흙을 털고 책상 앞으로 갔다.“앉으십시오. 어느 것부터 고치면 됩니까?”◉민해성은 자루 대신 내 가방을 책상에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다.나는 빈 가방을 건넸다. 민해성이 지퍼를 닫고 바닥의 짧은 끈으로 둘렀다.“이렇게 묶으면 하나로 들어가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