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휴대전화 옆에 물음표를 적었다.
가격을 알아보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부터 정해야 했다. 방문 밖에서는 예진이 가방 지퍼를 닫는 소리가 났다.
“예진아.”
“응.”
“내일 전화 사는 데 같이 가 줄 수 있어?”
문이 조금 열렸다. 예진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안경만 그대로 쓰고 있었다.
“휴대전화?”
“응. 일을 구하려면 있어야 해서.”
예진이 책상 위 통장과 노트를 봤다.
“나 수업 끝나면. 오후에 가자.”
“얼마쯤 하는지 알아?”
“쓰던 거 있어. 기계는 그거 써도 돼. 번호는 새로 받아야 할 거야.”
나는 물음표 옆에 기계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작동하는 거면 돼.”
“전화만 되면 안 돼. 문자도 봐야 하고, 서류 보내려면 사진도 찍어야 해.”
“그것도 배우면 되고.”
예진이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아래를 봤다. 가방은 벽에 붙여 세워 둔 상태였다.
“짐은 내일 정리해. 엄마 계속 왔다 갔다 하잖아. 오빠 안 잘까 봐.”
나는 통장을 노트 사이에 끼웠다.
“잘게.”
예진이 불을 꺼 줬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배까지 덮었다. 벽 쪽으로 몸을 돌리자 등이 매트리스에 깊게 눌렸다. 반대로 돌아도 가운데가 내려갔다.
발을 내리면 바로 바닥에 닿지 않았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 뒤 바닥에 가방을 눕혔다. 누울 자리가 나왔다.
이불을 내려 반으로 접고 누웠다.
바닥은 단단했다. 문이 열리는 쪽도 보였다.
아침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
3월 14일(토),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밥은…….”
말이 중간에서 멈췄다.
나는 일어나 앉아 이불 모서리를 폈다.
“지금 먹을게요.”
“왜 거기서 자냐.”
“여기가 편해요.”
어머니가 침대를 눌러 봤다.
“꺼졌어?”
“아니요. 침대는 괜찮아요.”
어머니는 침대와 나를 번갈아 봤다. 나는 이불을 접어 침대 위에 올렸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어야 더 묻지 않을 어머니였다.
“베개라도 베지.”
“오늘은 벨게요.”
어머니가 옷장에서 베개를 하나 더 꺼냈다. 내 것보다 낮았다.
나는 받아서 침대 끝에 뒀다.
밥을 먹고 관리청에서 받은 봉투를 펼쳤다. 휴대전화를 만들 때 가져갈 수 있는 서류를 골랐다. 등록증과 귀환 확인 서류를 따로 빼고, 나머지는 다시 넣었다.
통장도 챙겼다가 책상에 뒀다. 명의가 어머니였다.
내 이름이 적힌 것은 등록증과 종이 몇 장이 다였다.
오후에 돌아온 예진은 작은 상자를 내 앞에 놓았다.
상자 안에는 휴대전화와 충전선이 있었다. 화면 구석에 흠집이 있었지만 켜지기는 했다.
“사진이랑 내 건 다 지웠어.”
“네가 써도 되는 거야?”
“새 걸로 바꿀 때 남겨 둔 거야. 팔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나는 화면을 엄지로 눌렀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옆에 버튼부터.”
버튼을 누르자 숫자와 글씨가 나왔다. 나는 화면 위에 손가락을 댄 채 기다렸다.
예진이 내 손 옆에서 손가락을 위로 밀었다.
“이렇게 넘겨.”
따라 했는데 화면이 반쯤 움직이다 돌아갔다. 엄지 끝에 힘을 빼고 다시 밀었다.
이번에는 넘어갔다.
“세게 누를 필요 없어.”
“알았어.”
물건을 놓치지 않을 만큼 누르는 버릇이 있었다. 이 기계는 그보다 약하게 만져야 했다.
예진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
“서류 가져왔어?”
나는 봉투를 들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전부.”
“전부는 안 줘도 돼. 물어보면 필요한 것만 꺼내.”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가져가는 것과 내놓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
가게 직원은 등록증을 본 뒤 귀환 확인 서류를 요청했다.
나는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직원은 화면에 이름을 입력하다 멈추고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확인하러 갔다.
예진이 옆 의자에 앉았다.
“조금 걸릴 수 있대.”
“기다리면 되지.”
직원이 돌아와 설명했다.
“명의 확인을 더 해야 해서요. 오늘 신청은 받아 두고, 개통이 되면 동생분께 연락드릴게요.”
“이 서류는 두고 갑니까?”
“확인만 하고 돌려드립니다.”
나는 종이를 받아 원래 있던 자리에 넣었다. 직원이 내민 신청서는 끝까지 읽었다.
요금이 적힌 칸에서 손을 멈췄다.
직원이 비싼 요금제를 가리키려다 내가 쓰려는 용도를 물었다.
“주로 어떻게 쓰실까요?”
“전화 받고, 문자 보고, 사진 보내는 데 씁니다.”
“영상은요?”
“안 봅니다.”
예진이 나를 봤다.
“아직 안 보는 거지.”
“지금은 안 봅니다.”
직원은 다른 요금제를 설명했다. 나는 매달 나가는 금액과 해지할 때 내는 돈에 밑줄을 그었다. 기계값이 없는 것은 다행이었다.
서명하고 신청서 사본을 받았다.
가게 밖에 나오자 예진이 물었다.
“아까 왜 그렇게 오래 읽었어?”
“매달 내는 거잖아.”
“맞긴 하지.”
나는 봉투를 가방에 넣고 앞장서 걸었다.
골목 끝에 도착해서 뒤를 봤다.
예진은 아직 가게 앞쪽에 있었다.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는 중이었다. 나는 벽 쪽으로 비켜 섰다.
예진이 다가와 내 팔을 가볍게 쳤다.
“같이 가야지.”
“미안.”
다시 걸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예진이 뒤에 있었다.
걸음을 줄였다. 이번에는 예진 발소리를 들으면서 갔다.
그렇게 걷자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한 번 바뀌었다.
예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나도 기다렸다.
◉
옷가게에서는 예진이 먼저 옷걸이를 골랐다.
“예전 거 입어 봤어?”
“셔츠는 팔이 안 들어가.”
“허리는?”
“바지는 내려가.”
예진이 내 어깨와 허리를 보고 옷걸이를 제자리에 걸었다.
점원이 다가왔다.
“찾으시는 크기 있으세요?”
“상의는 좀 넉넉한 거요. 바지는 허리가 작은 걸로요.”
점원이 예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버님 옷이세요?”
“오빠요.”
점원이 내 얼굴을 봤다가 등록증을 넣어 둔 가방을 봤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 봐서요.”
“얼굴은 맞게 보셨습니다.”
예진이 옷걸이를 쥔 채 나를 봤다.
나는 점원이 건네는 셔츠를 받았다. 사과받을 일은 아니었다. 거울에도 비슷하게 보였다.
탈의실에서 셔츠를 입었다.
어깨는 맞았고 배 쪽은 남았다. 팔을 앞으로 뻗으니 등 부분이 조금 당겼다. 한 크기 큰 것을 입자 이번에는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밖으로 나와 팔을 들었다 내렸다.
예진이 소매 끝을 접었다.
“이걸로 해야겠다.”
“일할 때는 길면 걸려.”
“그럼 줄이면 돼.”
점원은 바지를 다른 모양으로 가져왔다. 허리만 맞추니 허벅지가 당겨서, 허리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예진은 내가 움직이는 동안 옆에서 옷이 당기는 곳을 봤다.
“허리만 재면 안 되는구나.”
“허리는 짐을 안 드니까.”
예진이 고개를 들었다.
“어깨가 다 들었어?”
“어깨랑 다리가.”
옷을 벗어 건네기 전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빈 주머니였다. 그래도 뒤집어 확인했다.
점원이 옷을 접는 동안 예진은 운동화를 봤다. 가격표에는 69,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신발도 바꾸자. 지금 건 너무 무거워 보여.”
“아직 신을 수 있어.”
“여기서 그거 신고 다니면 다 쳐다봐.”
나는 내 신발을 내려다봤다. 밑창 옆의 기운 자리가 보였다.
운동화를 신어 보고 가게 안을 걸었다. 뒤꿈치가 조금 들렸다. 끈을 다시 묶으니 괜찮았다.
예진이 내 헌 신발을 봉지에 넣으려 했다.
“버릴까?”
“가지고 갈게.”
“신을 거야?”
“아니. 밑창 확인할 게 있어.”
오래 걸어도 발이 젖지 않던 신발이었다. 어떤 곳이 먼저 닳았는지는 봐 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헌 신발을 봉지 아래에 넣고 옷을 위에 올렸다. 신발 바닥이 옷에 닿지 않게 봉지를 한 번 접었다.
예진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들게.”
“가벼워.”
“나도 알아.”
나는 잠깐 손잡이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같이 들면 걷기 불편해.”
예진은 손을 내리고 먼저 문을 열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봉지를 방에 바로 넣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고 노트를 폈다.
『품목: 옷과 신발 1봉지 / 출발: 달내동 옷가게 / 도착: 달내동 집 / 운임: 없음』
예진이 옆에서 읽었다.
“이런 것도 적어?”
“섞이면 뭘 가져왔는지 잊어.”
“집까지 오는 동안?”
나는 노트를 덮었다.
“여기서는 안 잊겠네.”
◉
3월 15일(일), 예진과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어머니는 오전부터 일을 나갔다. 냉장고 문에는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예진이 그 종이를 보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랑 밖에서 먹을게.”
나는 옆에서 신발끈을 정리했다. 새 운동화는 발등을 누르는 자리가 달랐다.
가게에 들어가 벽의 가격표를 봤다.
짜장면 8,000원.
의자를 빼다가 멈췄다.
“이게 보통이야?”
“이 근처는.”
“6,500원이었는데.”
예진은 내 앞에 물컵을 놓았다.
“오빠 없을 때 올랐어.”
나는 다시 가격표를 봤다.
내 기억 속 가격은 20년 전 값이었고, 가게 쪽에서는 3년 전 값이었다. 어느 쪽으로 계산해도 지금 낼 돈은 변하지 않았다.
짜장면을 두 그릇 시켰다.
“내가 낼게.”
예진이 젓가락 종이를 벗기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전화 줬잖아.”
“남는 거였다니까.”
“남아도 쓸 수 있는 거였고.”
예진은 종이를 작게 접어 테이블 끝에 놓았다.
음식이 나왔다. 나는 면을 섞고 젓가락으로 조금 들었다. 뜨거워서 바로 먹지 않고 내려놨다.
예진은 반쯤 먹은 뒤 물을 마셨다.
“나 결혼해.”
나는 젓가락을 그릇 위에 걸쳤다.
“언제?”
“10월 17일. 토요일.”
“이번 가을?”
“응.”
예진이 휴대전화 화면을 켜서 사진을 보여 줬다. 셔츠를 입은 남자가 예진 옆에 서 있었다.
“장석호. 31세고, 회사 다녀.”
나는 화면이 꺼지기 전에 남자 얼굴을 한 번 더 봤다.
“잘해 줘?”
“응.”
“그럼 됐네.”
예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않았다. 사진을 닫고 화면 모서리만 만졌다.
“오빠 얘기도 했어. 돌아왔다고.”
“응.”
“석호 씨가 만나고 싶대.”
“시간 맞추면 만나자.”
“상견례도 다시 날짜 잡을 거야. 원래는…….”
예진이 말을 멈췄다. 나는 면을 더 섞었다. 그릇 바닥에 소스가 남아 있었다.
“내가 없을 때 잡았던 거야?”
“응. 미룬 건 아니고. 아직 확정은 안 했어.”
“나 때문에 급하게 바꾸지는 마.”
“그런 거 아니야.”
예진은 물컵을 당겼다.
“그날은 뭘 하는지 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석호 씨 부모님이 오빠 돌아온 건 아시거든.”
나는 예진이 빼놓은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일은 구할 거야.”
“지금 쉬어도 돼. 그 말 하려던 거 아니야.”
“알아. 내가 해야 해서.”
예진은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가 면을 집지 않았다.
“그냥 오빠라고 하면 되는데.”
“짐 나르는 사람이라고 해.”
예진이 나를 봤다.
“그 일 다시 할 거야?”
“내가 할 줄 아는 거니까.”
나는 물을 마시고 남은 면을 먹었다. 그릇을 비운 뒤 계산대로 갔다.
16,000원.
돈을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접지 않고 노트 사이에 넣었다.
예진이 문밖에서 기다렸다.
이번에는 나란히 걸었다. 앞서 가면 기다려야 했다. 같이 가는 데 두 번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
그날 밤에는 낮은 베개를 바닥에 놓았다.
침대에 누웠다가 내려오는 순서는 생략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바닥을 봤다.
“계속 거기서 잘 거냐.”
“며칠만요.”
어머니는 더 묻지 않고 이불 한 장을 가져왔다. 내가 깔아 둔 이불 아래에 넣으려 해서 먼저 일어났다.
모서리를 맞추고 눌렀다.
“됐어요.”
“춥지는 않고?”
“안 추워요.”
어머니가 방을 나간 뒤 노트를 펼쳤다.
전화. 옷. 신발.
신청한 것과 산 것에 표시했다. 그 아래에 일을 적었다.
빈칸이 더 많았다.
귀환자라는 서류는 있었고, 각성자라는 등록증도 있었다. 어느 쪽에도 다음 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예진에게 받은 휴대전화를 충전선에 연결했다.
아직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화면을 넘기는 연습을 했다. 엄지를 밀었다가 떼고,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밀었다.
세게 누르지 않아도 움직였다.
◉
3월 16일(월), 예진의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개통이 됐다는 말이었다.
예진이 내 전화를 가져와 번호를 확인했다. 어머니 번호를 저장하고 자기 번호도 넣었다.
나는 화면에 적힌 이름을 눌렀다.
예진의 전화가 울렸다.
“받아 봐.”
예진이 내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바로 앞과 기계 안에서 목소리가 같이 나왔다.
“들리냐.”
“응. 잘 들려.”
나는 전화를 끊는 표시를 눌렀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잠깐 귀에 대고 있다가 내렸다.
예진은 종이에 새 번호를 적어 냉장고에 붙였다.
내 이름 아래 숫자가 생겼다.
문자를 확인하는 법과 사진을 보내는 법도 배웠다. 노트를 찍었는데 손이 움직여 글씨가 흐렸다. 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다시 찍었다.
“이 정도면 읽혀?”
“응. 보내면 돼.”
나는 예진에게 사진을 보냈다. 잠시 뒤 예진 화면에 내 글씨가 떴다.
이제 연락받을 곳은 있었다.
노트의 일을 적은 줄은 그대로였다.
오후에는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현관으로 갔다가 내려놨다. 초인종에는 그 기계가 필요 없었다.
문밖에는 봉투를 든 배달 직원이 서 있었다.
받는 사람 이름을 확인하고 서명했다. 봉투 왼쪽 위에 각성자 관리청 동부 사무소가 적혀 있었다.
식탁에서 봉투 끝을 손톱으로 벌렸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안쪽을 밀고 내용물을 꺼냈다.
예진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관리청에서 온 거야?”
“응.”
먼저 담당자 이름을 봤다. 유소정이었다.
등록 이후 해야 할 일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연락처가 바뀌면 신고하라는 항목 옆에 새 전화번호를 적어 뒀다.
그 아래에서 손이 멈췄다.
『S급 각성자는 등록 뒤 30일 안에 소속(길드 또는 개인 사업)을 신고하십시오.』
예진이 종이를 돌려 읽으려 해서 가운데로 밀어 줬다.
“길드 들어가야 한대?”
“다른 것도 돼.”
“어떤 거?”
나는 개인 사업이라는 네 글자에 손가락을 댔다.
(5화 끝)
“네. 제가 없으면 태근 씨가 작업을 멈출지, 계속할지 정하시면 됩니다.”방태근이 공문을 책상에 내려놓았다.“계속하라는 게 아니라 멈출 수도 있는 거네요.”“못 옮길 짐을 받으면 안 됩니다.”민해성이 작업표를 돌렸다. 내 이름으로 채워진 안쪽 운반 칸 아래에 빈 종이를 놓았다.“대표 부재 때도 평소 양을 옮긴다고 쓰면 안 됩니다. 실제로 남는 사람과 장비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적겠습니다.”소라가 자기 용량 기록을 당겼다.“저는 0.8톤까지인데, 한 번에 전부 넣지는 않겠습니다. 인수 확인할 자리가 필요해요.”“약하고 서류부터 맡아 주세요.”추영호의 이름 옆에는 게이트 밖 구간이라고 적었다. 트럭은 안에 들어가면 멈췄다. 없다고 치는 것과 밖에서 쓸 곳을 정하는 것은 달랐다.오경자가 포터 계약서를 펼쳤다.“20명한테 작업 가능한 날짜를 다시 받아야겠네요. 계약했다고 매일 여기 있는 건 아니니까.”방태근은 펜을 받아 자기 이름 아래에 현장 지휘라고 썼다.나는 그 옆에 대체 지휘 확인이라고 적었다. 내 이름이 없어도 읽히는 작업표를 만드는 데 종이가 더 들었다.◉7월 20일(월), 관리청 심사장에 들어가기 전에 방태근이 서류 봉투를 내게서 가져갔다.“형, 오늘은 제가 먼저 꺼내겠습니다.”“네.”지난번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대답했고, 자료가 필요하면 내가 찾았다. 오늘은 의자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뒀다.심사관이 첫 장을 넘겼다. 예전에 받은 보류 사유도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듣고 있습니다. 회사는 안 팝니다.”나는 노트에 적은 20억 원 아래로 선을 그었다. 직원 이름에는 펜을 대지 않았다.“가격을 더 들어 보지도 않고?”“가격 때문에 안 파는 건 아닙니다.”“신 대표 혼자 옮기는 회사잖아요. 직원들은 우리가 고용하면 되고.”“그건 직원들한테 물으셔야 합니다.”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다음 달 작업표를 당겼다. 안쪽 운반 일정은 찼는데 묶음 작업 인원 칸은 비어 있는 날이 있었다.“대신 맡길 일이 있습니다.”“누가 누구한테?”“저희가 만금 물류에요. 묶음 전문 하청으로 계약하면 됩니다.”공대환이 짧게 웃었다.“우리한테 짐 묶으라고요?”“그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시잖습니까.”나는 육만길이 표시해 둔 작업일을 봤다. 갑각은 모서리를 덮어야 했고, 광석은 자루 입구부터 확인해야 했다. 아공간에 넣는 시간보다 그 앞의 일이 길었다.“포터 일당은 20만 원 보장하겠습니다. 지급 조건은 계약서로 드리고요.”“단가는 우리가 정합니다.”“그러면 견적을 주십시오. 다만 포터한테 돌아가는 일당은 깎지 않는 조건입니다.”“신 대표가 우리 직원 월급까지 정하겠다는 겁니까?”“제가 맡기는 일의 조건입니다.”공대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인수 제안은 생각 바뀌면 전화해요.”
소라가 장부의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그것도 적어요?”“측정할 때 있었던 일이니까요.”오경자는 펜 뚜껑을 닫았다. 소라는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장부를 한 번 더 봤다. 0.35라는 숫자 아래에 눈물 자국은 없었다. 오경자가 종이를 옮긴 덕분이었다.나는 측정용 묶음이 모두 나왔는지 목록을 확인했다. 빈 아공간을 확인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돌아가서 오늘 기록까지 맞추겠습니다.”소라가 자기 가방을 들었다.“내일도 그 일 하면 되죠?”“네. 무거운 걸 더 넣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50킬로그램 더 들어가는데요.”“들어가는 것하고 맡아도 되는 건 다릅니다.”소라는 가방 안에서 노트를 꺼냈다. 적을 자리를 찾다가 측정 결과가 적힌 쪽을 다시 펼쳤다.나는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6월 29일(월), 창고 안 온도계는 문을 열어 놓아도 내려가지 않았다.육만길은 묶음 작업대 옆에서 끈을 감고 있었다. 운동화 끈은 묶여 있었고, 작업복 등은 젖어 있었다. 나는 선풍기를 작업대 쪽으로 돌린 뒤 벽에 붙일 종이를 가져갔다.민해성이 종이 위쪽을 잡아 줬다.『폭염 시 작업 수칙갈증이 나기 전에 물을 마십니다.젖은 끈과 풀린 매듭은 다시 확인합니다.어지러우면 짐을 내려놓고 알립니다.쉬는 시간 때문에 일당을 깎지 않습니다.』육만길이 마지막 줄을 읽고 내 쪽을 봤다.“이건 크게 써야겠는데.”나는 종이를 떼려다 멈췄다.“얼마나 크게요?&
나는 소라의 노트에 적힌 날짜를 봤다. 펜을 쥔 손이 빈칸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들고만 다녀서는 안 커집니다.”소라가 의자를 당겼다. 가방은 그대로 어깨에 걸려 있었다.“그러면 뭘 해야 해요?”“받아서 전해 줘야 합니다. 무게하고 거리도 관계가 있고요.”“넣었다 꺼내는 횟수요?”“횟수만은 아닙니다. 한자리에서 제 물건을 넣었다 꺼내 봤는데, 그걸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나는 닫았던 노트를 다시 폈다. 뒤쪽에 저쪽에서 쓰던 기록을 옮겨 둔 페이지가 있었다. 물통과 밀가루 자루, 목적지와 걸린 시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소라는 글씨보다 숫자를 먼저 봤다.“무게에 거리를 곱하는 겁니까?”“네. 받은 짐을 받을 사람에게 전해 준 만큼입니다.”“확실해요?”“20년 동안 그렇게 썼습니다. 다만 소라 씨 것도 그런지는 확인해야 합니다.”소라가 가방을 벗어 의자 옆에 놓았다.나는 책상에 남아 있던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반출 창구에서 받아 온 원본이었다.“이걸 소라 씨한테 주고, 소라 씨가 경자 씨한테 가져다주면 운반입니다. 넣었다가 저한테 바로 돌려주는 건 시험부터 해 봐야 하고요.”“서류도 무게가 얼마 안 되는데요.”“그래서 무게를 재야 합니다.”소라는 노트에 쓰다가 멈췄다.“제 것도 커질 수 있다는 말씀이죠?”“그걸 알아보자는 말씀입니다.”나는 벽에 붙인 보류 통지
나는 공문을 뒤집어 마지막 장을 펼쳤다.민해성이 내려놓은 가방을 다시 열었다. 펜으로 표시한 곳은 물량과 시간이 아니라 그 아래의 제출 서류였다.“등짐 운송 이름으로 등록되는 겁니까?”“네. 대표님 개인 능력 등록과는 다릅니다.”“운반은 됩니다.”“그건 압니다. 이번에는 된다는 걸 서류로 보여 줘야 합니다.”나는 노트에 적은 1,000톤 옆에 줄을 그었다. 민해성은 회사 도장, 직원 명부, 보험 서류를 차례로 짚었다.“이건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운반 계획은 대표님이 써 주시고요.”“거리도 정해져 있습니까?”“심사 자료를 받아야 합니다.”사무실 밖에서 추영호가 접이식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공문이 바람에 넘어가지 않게 물컵을 옆으로 옮겼다.운반 계획은 많이 써 봤다. 회사 이름으로 심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6월 10일(수), 관리청 심사장에는 긴 책상이 놓여 있었다.나는 회사 서류철을 앞에 두고 앉았다. 민해성은 보험 가입 확인서를 따로 꺼냈고, 오경자는 제출한 사본과 원본의 순서를 맞췄다.방태근은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다리를 폈다. 소라는 큰 가방을 발 사이에 놓았다. 추영호는 트럭 열쇠를 책상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심사관은 직원 명부부터 읽었다.“대표 포함 전원 오셨네요.”“각자 맡는 일을 설명하려고 왔습니다.”“좋습니다. 우선 운반 능력부터 보겠습니다.”심사관이 종이로 된 지도를 펼쳤다. 입구에서 물자 집결지까지 4.5킬로미터
나는 안내문을 잡아당기려던 손을 멈췄다.민해성은 손가락을 거두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구두 옆으로 들것에서 털어 낸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어느 부분이 문제입니까?”“운송장에 적힌 짐인지도 안 따지고, 포장을 누가 했는지도 안 따집니다. 저 문구대로면 깨진 물건을 맡겨도 대표님이 값을 줘야 합니다.”“받기 전에 확인합니다.”“묶음 안쪽까지 전부요?”나는 바닥에 펼친 들것을 봤다. 접히는 부분의 모래는 털어 낼 수 있었다. 자루 안에 든 광석을 전부 꺼내 보는 일은 달랐다.오경자가 책상에서 돋보기를 벗었다.“파손 배상하러 오신 분입니까?”“아닙니다. 운송 일을 맡기는 쪽 계약을 검토하다가 이 회사 양식을 봤습니다.”민해성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우리 운송장 사본이었다. 배상 문구 아래에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이대로 계약하면 의뢰인한테도 좋지 않습니다.”“전액 받는데요.”“한 번 받고 업체가 없어지면 다음 운송은 누가 합니까?”방태근이 들것을 닦던 천을 접었다. 소라도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나는 손의 흙을 털고 책상 앞으로 갔다.“앉으십시오. 어느 것부터 고치면 됩니까?”◉민해성은 자루 대신 내 가방을 책상에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다.나는 빈 가방을 건넸다. 민해성이 지퍼를 닫고 바닥의 짧은 끈으로 둘렀다.“이렇게 묶으면 하나로 들어가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