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대회의실 가장 뒷자리,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구석.
임원들의 처절한 통곡과 절규가 메아리치던 그곳에서, 단정한 네이비블루 수트 차림의 한 청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뚜벅. 뚜벅.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는 규칙적이고 건조한 파열음."……."
청년이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받는 순간,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임원들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완벽하게 빗어 넘긴 흑발 너머로 번뜩이는 칠흑 같은 동공.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차갑게 얼어붙은 무자비한 이목구비.태성그룹의 황태자이자 스텔라 인베스트먼트의 차기 수장, 차도윤이었다.도윤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백발의 권 사장과 임원들을 벌레 보듯 무심히 지나쳐, 회의실 정중앙의 단상 위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본부장님, 아니…
스텔라 시티 메인 타워 최상층, 서연우의 프라이빗 집무실.지난 10년간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심장부로 군림했던 공간의 책상 위가, 오늘따라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었다."아직도 챙길 게 남았습니까, 연우야."소파에 삐딱하게 기대앉은 차태경이, 손목에 찬 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우리의 두 번째 신혼여행을 책임질 전용기가 벌써 두 시간째 격납고에서 대기 중입니다. 이 칙칙한 사무실에 미련이라도 남은 겁니까.""미련이라니요. 그냥, 내가 제국의 마지막 10년을 고스란히 쏟아부은 곳이니까 1분 정도는 감상할 시간을 달라는 거죠."연우가 텅 빈 마호가니 책상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나른하게 웃었다.과거, 강씨 가문에서 맨몸으로 쫓겨나 차태경이라는 무자비한 짐승의 손을 잡았던 날.복수와 생존을 위해 피 튀기게 싸우며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제국의 꼭대기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부로 그녀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왕관은 완벽하게 벗겨졌다."자, 이제 그만 내려가죠. 나의 여왕님."태경이 다가와 연우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그의 칠흑 같은 동공에는 오직 짐을 내려놓은 아내를 향한 맹목적인 애정과, 빨리 둘만의 세상으로 도망치고 싶어 안달 난 집착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똑똑.그때,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대표님, 회장님. 에스코트를 위해 모시러 왔습니다."단정한 수트 차림의 김민준 실장과 윤지수 팀장이 나란히 서 있었다."너희 부부도 이제 도윤이 녀석의 살벌한 시집살이를 견뎌야 할 텐데, 벌써부터 표정이 어둡군."태경이 짐승처럼 짙은 눈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새로운
간호사들의 그 차갑고도 경멸 어린 조롱.유아라의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과거 자신을 비웃던 사교계 귀부인들의 목소리로 환청처럼 변형되어 들려오고 있었다."아니야…… 아니야! 나를 비웃지 마! 내가 더 잘났어! 내가 서연우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아름답다고!"유아라가 간호사들을 피해 병실 구석으로 기어가며, 콘크리트 벽을 향해 미친 듯이 손톱을 세워 긁기 시작했다.서걱, 서걱.생살이 찢어지고 손톱이 깨져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병실 안을 채웠다."내 옥좌…… 내 다이아몬드……."유아라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하얀 벽을 흉측하게 적셨다.서연우를 향한 지독한 열등감이라는 불치병.그 병은 유아라의 뇌를 완벽하게 갉아먹었고, 그녀는 평생 이 차가운 정신병원의 벽을 다이아몬드 성벽이라 착각하며 긁어대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운명이었다."숨넘어간다! 빨리 진정제 투여해!"유아라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거품을 물었다.세상 그 누구도 그녀의 몰락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스스로 판 무덤 속에서, 찌꺼기보다 못한 악취를 풍기며 스러져가는 가장 완벽하고도 비참한 종말이었다.바닷바람이 뼛속까지 시리게 몰아치는 남해의 이름 모를 외딴섬.비린내가 진동하는 낡고 허름한 선착장 구석에서, 다리를 심하게 저는 노인 하나가 찢어진 그물을 꿰매고 있었다."어이, 강 영감! 손놀림이 왜 그렇게 굼떠! 오늘 안에 그물 다 못 기우면 저녁밥은 국물도 없을 줄 알아!"배 위에서 담배를 피우던 선장이 거칠게 호통을 쳤다."죄, 죄송합니다. 눈이 침침해서…… 금방 끝내겠습니다."노인이 굽은 등을 더욱 조아리며, 쉰 목소리로 비굴하게 대답
연우의 붉은 입술이 아주 매혹적이고도 벅찬 자부심으로 호선을 그렸다."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물려주는, 영원히 분열하지 않을 태성의 완벽한 철옹성이란다."어머니의 그 소름 돋도록 완벽한 설계와 통찰에, 세 아이는 일순간 숨을 죽인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으로 무너져 내리던 구시대 재벌들의 전철을 완벽하게 밟지 않기 위한, 가장 우아하고도 무자비한 안전장치."과연."도윤이 뿔테 안경을 매만지며 낮게 실소를 흘렸다."어머니의 그 완벽한 계산 앞에서는, 저 역시 영원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겠군요. 불만 없습니다.""저도 마찬가지예요. 오빠가 말 안 들으면 제 블랙카드로 오빠 회사 자금줄부터 얼려버릴 테니까, 아주 재밌겠어요."시아가 도도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받아쳤고, 은우 역시 드라이브를 흔들며 낄낄거렸다."그 완벽하고 견고한 삼각편대, 저희가 목숨 걸고 지켜내겠습니다. 안심하고 두 분만의 시간을 보내십시오."도윤이 부모님을 향해 아주 깊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두 동생 역시 오빠를 따라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하하하핫!"그때, 침묵을 지키던 차태경이 기어이 짐승 같은 폭소를 터뜨리며 연우의 허리를 거칠게 낚아챘다."다들 똑똑히 들었지! 이제 이 제국의 옥좌와 권력은 완벽하게 너희들의 것이다!"태경이 연우를 자신의 단단한 품에 빈틈없이 가두며, 가장 맹목적이고도 오만한 눈빛을 번뜩였다."나는 오늘부로 회장도, 폭군도 아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내 아내의 영원한 사냥개이자 남편으로만 살아갈 테니까!""아빠, 진짜 못 말려. 25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그놈의 집착증은 한 치도 늙지를 않아?"시아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태경은 딸의 비난 따위는 가
스텔라 시티 메인 타워 지하 50층. 그 어떤 외부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는,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방화벽으로 둘러싸인 스텔라 인베스트먼트의 메인 서버실.푸른 홀로그램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거대한 원형의 공간 한가운데, 서연우와 차태경이 고요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태성그룹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첫째 차도윤과,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둘째 차시아,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막내 차은우 삼 남매가 나란히 서 있었다."도윤이가 태성그룹의 회장직을 완벽하게 승계받았으니."연우가 서버실의 중앙 콘솔 위로 아주 우아하고도 단정한 손을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이 제국의 가장 깊숙한 심장도 너희들에게 온전히 넘겨줄 차례구나."위잉-. 연우의 지문과 홍채가 인식되자,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콘솔의 중앙이 열리며 검은색 무광의 티타늄 케이스 하나가 솟아올랐다. 태경이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는 두 개의 작고도 압도적인 물건이 고고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하나는 한도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전 세계 글로벌 금융망을 프리패스로 움직일 수 있는 스텔라의 마스터 블랙카드. 다른 하나는 스텔라의 모든 인공지능과 전 세계의 데이터베이스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담긴 마스터 소스 코드 드라이브였다."엄마. 설마 그 전설의 물건들을 오늘 꺼내시는 거예요?"시아가 붉은 입술을 매혹적으로 비틀어 올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래. 이제 엄마와 아빠는 이 모든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고 완벽한 자유를 누릴 테니까."연우가 나른한 눈웃음을 지으며, 케이스 안에서 칠흑처럼 까만 블랙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19세의 나이로 이미 유럽 사교계를 발밑에 꿇린 오만한 여왕, 시아를 향했다.
대회의실 가장 뒷자리,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구석.임원들의 처절한 통곡과 절규가 메아리치던 그곳에서, 단정한 네이비블루 수트 차림의 한 청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뚜벅. 뚜벅.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는 규칙적이고 건조한 파열음."……."청년이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받는 순간,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임원들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완벽하게 빗어 넘긴 흑발 너머로 번뜩이는 칠흑 같은 동공.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차갑게 얼어붙은 무자비한 이목구비.태성그룹의 황태자이자 스텔라 인베스트먼트의 차기 수장, 차도윤이었다.도윤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백발의 권 사장과 임원들을 벌레 보듯 무심히 지나쳐, 회의실 정중앙의 단상 위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본부장님, 아니…… 도윤 도련님?"스텔라의 재무 담당 부사장이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미래전략실 본부장의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도윤이 보여준 그 천재적인 해킹 실력과 자비 없는 기업 사냥의 성과는 임원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고작 이십 대 중반의 새파란 청년이, 수백조 원의 자본이 얽힌 이 거대한 제국의 옥좌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자는 없었다.도윤이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섰다."방금 권 사장님께서, 외부의 하이에나들이 권력의 공백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라 우려하셨죠."도윤의 목소리는 너무도 고요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을 만큼 기괴한 위압감을 뿜어냈다.그의 투명한 눈동자가 안경 너머로 대회의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저 역시 그 점을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탁.도윤이 손에 쥐고 있던 얇은 태블릿 하나를 단상
"방, 방금…… 은퇴라고 하셨습니까?"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태성전자의 권 사장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귀가 먹었나. 우리 부부가 그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고, 영원한 휴식을 취하겠다는 뜻이다."태경이 짐승처럼 서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확인 사살을 날렸다.쨍그랑-!어느 임원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그 파열음을 신호탄으로, 쥐죽은 듯 고요하던 대회의실은 일순간 걷잡을 수 없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버렸다."안 됩니다! 회장님! 대, 대표님! 은퇴라니요! 그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까!""두 분이 떠나시면 태성그룹은 어쩌란 말입니까!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반토막이 나고, 글로벌 경제가 붕괴할 겁니다!"백발이 성성한 그룹의 최고위 임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절규하기 시작했다."회장님 부부는 저희에게 단순한 경영자가 아닙니다! 태성의 종교이자, 신 그 자체이십니다! 어찌 신께서 신도들을 버리고 떠나신단 말입니까!"스텔라 재무 담당 부사장이 기어이 무릎을 꿇고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수조 원의 딜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냉혈한들이,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처럼 엉엉 울며 매달리는 꼴이었다."이것들이 미쳤나. 신성한 이사회장에서 어디 눈물 콧물을 짜내고 지랄이야!"태경이 미간을 팍 구기며 호통을 쳤지만, 임원들의 절규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동안 저희가 부족하셨다면 목숨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은퇴 선언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정 힘드시면 결재는 저희가 다 할 테니,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해서 얼굴만 비춰주셔도 됩니다!"권 사장이 엉금엉금 기어 와 태경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을 기세로 매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