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연미혜는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 김태훈에게 보냈다.김태훈은 연미혜가 보낸 재료를 읽고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맞아, 이거야. 훌륭해, 훌륭해, 훌륭해!”연미혜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먼저 낮잠을 자고 나중에 얘기할게요.”“그래.”연미혜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잠을 잤다.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방의 카펫 위에서 스도쿠 게임을 하는 경다솜을 보았다.엄마가 깨어난 것을 본 경다솜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엄마 깨어났어요?”“응.”“목마르세요? 물
경다솜이 연미혜에게 전화하자마자, 경민준이 보낸 픽업차가 곧바로 도착했다.결국 경다솜은 연미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차에 올라타 떠났다.방에 도착하자 경다솜은 경민준과 임지유의 품에 뛰어들며 외쳤다.“아빠, 지유 이모! 다솜이 왔어요!”경민준은 임지유가 백팩을 옆으로 치우는 것을 도와주는 동안 웃으며 머리를 문질렀다.룸에 들어서자, 하승태와 정범규, 그리고 손아림 모두 함께 있었다.경다솜이 경민준과 임지유를 보고 반가워하자, 정범규가 웃으며 말했다.“민준아, 내가 너희들보고 다솜을 데리고 해외여행 하라고 했잖
식사 도중 정범규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임지유를 향해 말을 건넸다.“참, 요즘 넥스 그룹에서 인재 충원 중이라던데... 혹시 다시 한번 지원해 볼 생각은 없어?”며칠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 머물렀던 임지유는 그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고,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부터 꽤 솔깃했다.넥스 그룹의 기술력은 확실했기에, 다시 지원해서 합격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커리어에 훨씬 더 유리했다.‘하지만 ’임지유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정범규는 짐작하고 있었다.‘지유가 망설이는 건 연미혜 때문이겠지.’정범규는 그런 임지유의 속내를 들
퇴근 후, 연미혜와 김태훈이 유명욱의 자택에 도착했을 때, 그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이어가던 유명욱은 두 사람이 들어서는 걸 보고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이번 연구 내용은 꽤 인상 깊었어. 너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 이번 기회에 소개해 줄게.”연미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이번 연구는 국가 연구 과제로 정식 채택되었고, 이후의 행정적 절차나 관련 사항도 그 자리에서 간단히 조율되었다. 두 사람은 유명욱에게 남은 질문들을 이어가며 늦게까지 머
간담회가 끝난 뒤, 정부 측에서 참석한 기업 대표들에게 준비한 오찬 자리가 이어졌다.연미혜는 조용히 짐을 챙겨 일어났고, 경민준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뒤따라 나왔다.회의실을 나서던 중, 염성민은 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지철호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지씨 가문과 염씨 가문은 원래부터 교류가 있는 편이었고, 염성민과 지철호 역시 자주 마주치는 사이였다.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연미혜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 지철호에게 고개를 숙였다.“장관님, 안녕하세요.”지철호는 눈가에 미소를
염성민은 오늘 있었던 일을 지현승에게 간단히 전했다.곧 지현승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지랑 할아버지는 미혜 씨하고 미혜 씨 외할머님에 대해 인상이 꽤 좋으셨어. 아마 그래서일 거야.]지현승의 말대로라면 지철호가 연미혜를 신경 쓰는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지만 염성민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았다.‘아무리 좋은 첫인상이었다 해도, 겨우 한두 번 본 사이에 그 정도로 각별할 수 있을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현승에게 더 따져 묻는 건 의미 없었다.날씨 예보에 따르면 오늘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 했
연미혜는 얼굴빛이 살짝 굳었다.“이러지 말고... 나 좀 내려놔.”그러나 경민준은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우산 단단히 잡아.”그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연미혜를 그대로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마디 남겼다.“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따로 뵙죠.”경민준과 안면이 있는 몇몇 기업 대표들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모두가 알다시피, 연미혜와 김태훈의 관계는 넥스 그룹 안팎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이였다.게다가 오늘처럼 정부 주최 간담회에 김태훈 대신 연미혜가 공식 대표로 참
연미혜는 차에서 내린 후 차 문을 닫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경민준의 손에 들린 우산을 가져가며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경민준은 시선을 내리더니 그녀의 발을 훑어보며 조용히 물었다.“발은 괜찮아?”‘좀 아프지만 걸을 수는 있어.’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고, 오늘 경민준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그저 우산을 펼치며 담담히 말했다.“이혼 절차는 어떻게 되어가? 정리되면 그때 연락해.”그 말은 곧 이혼에 관련된 일 외엔 연락하지 말라는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