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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مؤلف: 백소연
온서린의 움직임엔 일절 멈춤이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사무실로 돌아온 온서린은 문에 등을 기댄 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서류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흐릿한 상태로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무엇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이 불확실한 상황이 더 두려웠다.

잠시 후, 온서린은 책상 앞에 앉아 내선 전화를 들었다.

“언니, 리바이탈 과립제 개량 및 서방 기술 적용 프로젝트 자료를 전부 제 메일로 보내 주세요. 오후 세 시 회의에서 중요하게 발표할 사항이 있어요.”

전화를 끊고 컴퓨터를 켠 그녀는 곧장 파일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는 심강후의 할머니, 성미경이 직접 연결해 준 일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동서가 함께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었고 성공만 한다면 가문 내에서도, 대외적으로도 훈훈한 미담으로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마무리를 앞둔 지금, 신청 자료를 들여다보니 핵심 해결 방안과 성과에는 모두 육채원의 제제 공정 혁신팀 이름이 적혀 있었고 온서린의 이름은 약리 지원 인력 목록 한쪽에만 덧붙듯 적혀 있었다.

“역시, 또 이런 식이군.”

온서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오후 세 시, 넓은 회의실 상석에는 심강후가 앉아 있었다.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책상 위 문서를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쉽게 읽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있었다.

오늘 회의의 주제는 리바이탈 과립제 프로젝트의 단계별 정리였다. 연구개발부는 물론 관련 부서의 핵심 인력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발언 차례가 되자 온서린은 두툼한 자료를 펼쳐 들고 단상 앞으로 나섰다. 프로젝터에 띄워진 문서는 그녀가 직접 수정해 가져온 것이었다.

“프로젝트 신청 자료와 원본 기록 사이에 일부 차이가 확인됐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이 자리에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이미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자료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는 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강후는 아무 말 없이 온서린을 바라봤다.

온서린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준비해 온 자료를 하나씩 제시했다.

자신의 표기와 날짜가 남아 있는 원본 실험 노트, 초기 샘플 테스트 데이터 그리고 육채원과 주고받은 업무 메일까지 차례로 화면에 띄웠다.

심강후의 시선이 화면 위에 고정됐다. 잘 다듬어진 얼굴에 묵직한 긴장이 스쳐 지나갔다.

모든 증거는 한 가지 사실로 모였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과 주요 파라미터는 온서린이 주도해 완성한 것이었다.

회의실 안은 잠시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고요해졌다.

곧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억눌린 수군거림이 서서히 번졌다.

“온 박사님.”

육채원 팀의 조수 이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담겨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승인 단계까지 다 들어간 상황인데 지금 이걸 문제 삼으시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최종 승인 신청을 앞둔 막바지 단계에서 책임자를 바꿨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면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어 다른 연구원도 거들었다.

“협업 프로젝트는 원래 공을 딱 잘라 나누기 어렵습니다. 육 박사님이 전체를 총괄하고 조율해 온 공도 분명 큽니다. 온 박사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조금 지나친 것 아닙니까?”

“맞아요. 육 박사님은 지금 남편을 잃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기잖아요. 조금 양보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회의실 안에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 모두가 온서린이 이 시점에 공을 가져가려 한다고 생각했고 속 좁고 배려 없는 사람이라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무엇보다 주도자가 공을 독차지하고 묵묵히 헌신한 자는 물러서 있어야 한다는 온서린의 태도는 지금까지 유지했던 회사의 규칙을 깨뜨렸다.

사람들은 그녀가 위세를 부리며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심강후의 아내라는 점을 이용해 세력을 잃은 육채원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속셈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온서린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우려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개발은 어디까지나 객관적 사실과 원천성의 원칙에 근거해 기술의 진위를 규명해야 합니다. 개인의 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기초 실험 기록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추후 기술적인 결함이나 지식재산권 분쟁이라도 터진다면 우리 회사가 모든 손실과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옮겨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 확인된 기술 기여도를 기준으로 보면 제가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 통합과 이후 생산 연계 기술 지원까지 맡는 것이 해당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입니다.”

상석에 앉은 심강후의 안색은 깊은 물 속처럼 가라앉아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프로젝터 앞에 선 여자를 묵묵히 응시할 뿐이었다.

온서린은 더 말하지 않고 자리에 돌아왔다.

“온 박사님은 지금 뭐 하자는 거죠? 공을 가로채겠다는 건가요?”

“온 박사님이 이런 분인 줄은 몰랐네요.”

“심 대표님이 이걸 받아들이실까요?”

“두 사람 관계도 좋았잖아요. 육 박사님 처지에서는 정말 배신감 클 텐데요.”

“조용히 하세요.”

침묵을 깨고 울려 퍼진 묵직하고 힘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장내의 비난 섞인 소동을 단번에 잠재웠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정리하고 나가세요.”

심강후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사람들을 먼저 내보냈다.

“온서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온서린이 자료를 챙겨 막 회의실을 나서려던 찰나, 묵직한 음성이 그녀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와 박혔다.

“꼭 채원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겠어?”

온서린은 서류를 안은 채 그를 바라봤다.

“연구개발부와 경영진에 정식으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내가 거부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심강후는 직접 회의실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채원이는 형수님이기 전에 우리 가족이야. 온서린, 도전 상대를 잘못 골랐어.”

“전 그저 회사와 프로젝트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을 내세웠을 뿐이에요.”

온서린은 그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익?”

심강후의 눈동자 속에서 분노가 거세게 일렁였으나 그는 간신히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온서린, 넌 지금 채원이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남편을 잃었고 곧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 이 시점에 프로젝트까지 가져오겠다고 나서고 원본 자료까지 전부 공개하면서 공개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잖아. 정말 회사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 맞아?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넌 사람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생각 안 해? 형수님 처지가 예전만 못하니까, 온서린이 이때다 싶어 뒤통수치고 공을 가로채서 자리 하나 꿰차려고 한다고 떠들 텐데? 동정심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에 하는 짓 하나하나가 천박하다고 말이야.”

심강후는 진심으로 화가 치밀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온서린이 이런 식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걸음 다가온 그는 익숙한 손길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귓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온서린, 그냥 하나의 프로젝트일 뿐이야.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큰돈이 될 것도 아니고. 그런데 겨우 그깟 일로 명성을 더럽히면서 채원이를 밟고 올라갈 필요가 없잖아.”

온서린은 시선을 떨군 채 어깨에 얹은 그의 손을 조용히 밀어내고 말했다.

“저는 윗사람들의 결정과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제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할게요.”

그녀는 말을 마친 뒤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심강후, 이제 와서 당신이 내게 처지나 체면을 말할 자격은 없어. 육채원과 함께 건강한 아이를 가져 그녀의 자리를 굳히려 했던 그 순간, 그 체면은 이미 무너졌으니까.’

회의가 끝난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이지우는 육채원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전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검은색 벤틀리가 청하원 6동 별장 앞에 멈춰 섰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심강후의 손가락 사이에는 아직 타지 않은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차가 멈추자 그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구두 끝으로 천천히 눌러 껐다.

“도련님 오셨어요.”

김지숙이 급히 다가와 그의 외투를 받아서 들었다.

“채원이 뭐 좀 먹었어요?”

심강후의 물음에 김지숙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금 드시긴 했는데 많이는 못 드셨어요.”

그때, 계단 위에서 육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얇은 실크 잠옷에 느슨한 카디건 하나만 걸친 채였다. 늦가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화장기 하나 없었고 눈가는 붉게 부어 있었다.

늘 단정하고 완벽했던 심씨 가문 장손 며느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막다른 길에 내몰려 더는 달아날 곳 없는, 겁에 질린 가냘픈 새 같았다.

“강후 씨...”

갈라진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 섞인 신음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참아왔던 눈물이 툭 끊어진 구슬처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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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30화

    “그러니까 심씨 가문의 자원을 총동원해 육채원 씨의 앞길을 닦아 주고 명분까지 세워주는 걸로도 모자라, 경영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심씨 가문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인가요?”온서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서늘해져 있었다.“그래.”심강후의 대답에는 티끌만큼 망설임도 없었다.“좋아요.”온서린은 형수님을 향한 그의 유별난 배려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심강후는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자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지분 보상 외에 추가로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온서린은 운전대를 단단히 쥐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좋아, 말해봐.”심강후는 의외라는 듯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온서린은 언제나 다투거나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성정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었다.그러니 그녀가 내놓는 요구 또한 자신을 크게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심강후는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온서린이 조건을 내놓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아린은 홀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얇은 외투를 걸친 채 손에 쥔 마술봉의 불빛을 연신 켰다 껐다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의 얼굴이 차 소리를 듣는 순간 환하게 피어났다.차를 세우고 온서린이 막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심강후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차에서 내렸다.심아린이 환한 얼굴로 심강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아빠! 왜 엄마 차 타고 왔어요?”“아빠가 술을 좀 마셨거든.”아이를 품에 안은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아빠, 이제 술 마시면 안 돼요.”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얼굴이 사뭇 엄숙했다.“제 말 잘 들어야 해요, 알겠죠?”심강후는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음부턴 조금만 마시마.”그 광경을 바라보는 온서린의 가슴 한복판이 뜨겁게 타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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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윤은 전송된 파일 몇 장을 천천히 넘겨본 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칭찬과 호감이 묻어났다.“서린아, 네가 수정한 부분 아주 좋아. 회의에서 논의해 보고 결과 정리해서 다시 알려줄게.”“오빠는 이번 협력 가능성을 어떻게 보세요?”온서린의 목소리에는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사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강도윤은 금테 안경을 가볍게 고쳐 썼다. 단정한 얼굴 위로 이성적인 판단이 깊게 내려앉았다.“초안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안이야. 다만 예산이 예상보다 커질 거야. 특히 네가 제안한 정밀 바이오마커 분석이랑 장기 추적과 조사 부분은 한주 쪽에서도 자원이 많이 들어가거든. 선택지는 두 가지야. 일부 항목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단계적으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외부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온서린은 그 말의 핵심을 즉각 이해했다.“알겠어요. 회사 쪽에 정식으로 신청하고 예산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볼게요.”강도윤은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정말 한생 그룹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온서린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제 몫의 배당금은 챙겨야 하니까요. 돈 문제에 있어서는 꽤 확실하게 챙기는 편이거든요.”강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알기로 너를 데려가려는 곳은 사방에 널렸어. 네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돈일까, 아니면 사람일까?”그의 말에 온서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굳게 닫혔던 기억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이익 때문에 심강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는 심강후라는 이름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몇 년 전, 바이오 업계 정상회의에서 지도교수의 갑작스러운 병가로 대신 무대에 올랐던 온서린은 한약재 단일 성분 분리 연구 자료를 발표하고 있었다.손에 쥔 마이크는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끝내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런데 앞줄에 앉아 있던, 짙은 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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