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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다
일곱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다
Author: 아리리

제1화

Author: 아리리
마지막 날 밤, 두 사람은 똑같은 ‘웨딩드레스 카드'를 뽑았다.

룰에 따라 두 사람은 즉석에서 약식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임유미는 내가 챙겨온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윤경찬은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약혼반지를 빼내 그녀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주변에 몰려든 친구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외쳤다.

“키스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윤경찬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취해 환호하는 사이, 나는 카드가 담겨 있던 랜덤 상자를 열어보았다.

내 상자에 든 건 전부 빈 카드인 반면 윤경찬과 임유미의 상자에는 똑같은 달과 장미, 웨딩드레스가 넘쳐나도록 들어차 있었다.

내 운이 나빴던 게 아니었다.

이 잔인한 게임 자체가 애초에 두 사람만을 위해 짜인 판이었던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모바일 청첩장을 미련 없이 전부 삭제했다.

고작 여섯 명의 여행에서조차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그들을 위해 자리를 내여줄 필요는 없었다.

청첩장을 삭제하는 순간에도 야속하게 등 뒤에서는 다시금 거대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환호 속에서 윤경찬은 임유미와 나눈 입맞춤을 끝내고 허리를 감싸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새빨갛게 상기된 임유미는 여전히 그의 어깨를 쥔 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아쉬움에 겨워 크게 소리쳤다.

“한 번 더!”

윤경찬은 피식 웃으며 툭 내뱉었다.

“꺼져.”

하지만 말과 달리 그녀를 선뜻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러다 나를 발견한 임유미는 그제야 불현듯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고개를 숙여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다인아, 반지가 꽉 끼어서 안 빠지네.”

그녀는 천진한 말투로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 딱 하룻밤만 끼고 있으면 안 될까?”

그 약혼반지는 내 생일날 윤경찬이 건넸던 선물이었다.

분명 내 손가락 둘레에 맞춰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 했었는데, 지금 임유미의 손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들어맞아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이토록 순순히 승낙할 줄은 몰랐다는 듯, 윤경찬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천천히 미간을 찌푸렸다.

“서다인, 억울하다는 표정 좀 짓지 마. 다들 우리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서 온 여행인데, 고작 게임 하나로 분위기 망치지 말고.”

나는 그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나 분위기 안 망쳤어.”

“그럼 표정 좀 풀어.”

어느새 진승현이 휴대폰을 치켜들고 있었다.

“자, 일일 신랑 신부 여기 보세요!”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윤경찬과 임유미 곁으로 몰려들었다.

다섯 명이 나란히 서니 제법 보기 좋은 구도가 완성되었다.

그러자 진승현이 당연하다는 듯 내게 휴대폰을 쓱 건넸다.

“서다인, 네가 사진 제일 잘 찍으니까 여러 장 찍어 줘.”

나는 묵묵히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들은 다정하게 바싹 붙어 섰다.

정중앙에 자리한 윤경찬의 곁에서, 내 웨딩드레스를 입은 임유미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남은 세 사람이 그 둘을 에워싼 모습은 영락없는 진짜 결혼식 단체 사진 같았다.

“서다인.”

윤경찬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를 재촉했다.

“멍하니 서서 뭐 해?”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한 장, 두 장, 십여 장을 찍는 동안, 그 수많은 사진 속에 내 모습은 단 한 컷도 존재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두 시였다.

애초에 나는 더블 스위트룸 세 개를 예약해 두었었다.

나머지 네 명이 두 방을 나눠 쓰고, 나와 윤경찬이 남은 한 방을 함께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룸 키를 나눠 가질 때 주우빈이 갑자기 실실 웃으며 선언했다.

“커플 교환 시간이 아직 12시간 남았어. 룰에 따라서 오늘 밤 경찬이는 유미랑 한방을 써야 해.”

룸 키를 쥔 내 손이 차갑게 굳었다.

“같은 방을 쓰는 것도 룰이라고?”

임유미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명했다.

“단순히 한방에서 자는 것뿐이잖아. 스위트룸이라 침대도 두 개고. 우리가 딴짓을 할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윤경찬 역시 정색하며 거들었다.

“다들 있는 데서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고 그래?”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나는 어디서 자?”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이내 진승현이 복도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찬이랑 유미가 배정받은 곳이 패밀리 스위트룸이잖아. 거실에 소파 베드가 마련되어 있으니까 넌 거기서 눈을 붙이면 되겠네.”

다시 말해, 내 약혼자와 내 절친이 들어간 방문 밖에서 내가 잠을 청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이놈의 빌어먹을 24시간짜리 게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방을 따로 하나 잡을게.”

내가 몸을 돌리자, 주우빈이 다급히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에이, 깐깐하게 그러지 마. 여기 하룻밤에 수십만 원이나 하는데 뭐 하러 아깝게 돈을 낭비해? 어차피 우리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아는 사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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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다   제7화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뒤, 윤경찬은 자기 집이 아닌 내 오피스텔로 곧장 차를 몰았다.그러나 도어록 비밀번호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굳게 닫힌 문을 그가 한참이나 두드려대자, 아래층에서 집주인이 올라왔다.“서다인 씨 찾아요? 그 아가씨 어제부로 계약 해지하고 방 뺐는데.”윤경찬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세요?”“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집주인은 들고 있던 종이 상자 하나를 그에게 툭 내밀었다.“어떤 남자분이 찾아오면 이거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윤경찬은 다급히 상자를 받아들었다.그러나 상자는 놀라울 정도로 텅 빈 듯 가벼웠다.그 안에는 그가 수년 동안 내게 선물했던 온갖 물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미 단종된 낡은 손목시계와 책 몇 권, 오래된 스웨터 한 벌, 그리고 그 시절 그가 내게 건네주었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우리가 사귄 지 딱 2년째 되던 날, 맞춘 카메라였다.“너 사진 잘 찍잖아. 앞으로 우리 다섯 명 추억은 전부 너한테 맡길게.”그때는 그 말 속에 숨겨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분명 무리에 속한 사람은 총 여섯 명인데, 어째서 그의 입에서는 ‘우리 다섯 명’이라는 말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지 말이다.나중에야 이상함을 느낀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그럼 나는?”그 물음에 그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능청스레 웃어넘겼다.“너는 우리 전속 사진사잖아. 사진사는 당연히 앵글 밖에 있어야지.”나는 그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그래서 지난 몇 년간, 나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수만 장이나 찍어 남겼다.윤경찬과 임유미가 티격태격 장난치는 모습, 그들 다섯 명이 모여서 생일파티를 벌이는 순간,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일출을 바라보는 뒷모습까지.하지만 그 수많은 기록 속에 정작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라했다.종이 상자의 맨 밑바닥에는 외장 하드 하나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윤경찬이 떨

  • 일곱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다   제6화

    윤경찬이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거실의 소파 베드는 텅 비어 있었고 내 캐리어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그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차 키를 집어 들었다.그러나 임유미가 그의 등 뒤로 바짝 다가와 품에 안겼다.“경찬아, 어디 가려고? 다인이는 그냥 네가 붙잡아주길 바라서 그러는 거야. 네가 진짜 찾아가면 걔는 앞으로 화날 때마다 떠난다고 협박할걸.”윤경찬의 손놀림이 뚝 멈췄다.예전에는 내가 눈물만 보여도 임유미는 꼴사납게 엄살 부리지 말라며 타박했다.내가 화라도 내면 그녀는 윤경찬에게 절대 저런 버릇을 길들여주면 안 된다고 득달같이 일러바치곤 했다.그래서 둘이 다툴 때면 언제나 내가 먼저 꼬리를 내리고 사과해야만 했다.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참이었다.그는 방 문 앞에 한참을 서성이다가 결국 자동차 키를 내려놓았다.“맞아, 혼자서 머리나 식히라고 해. 내일 아침이면 제 발로 기어들어 올 테니까.”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그제야 흔적도 없이 삭제된 모바일 청첩장을 확인한 그는, 사색이 되어 마침내 웨딩 플래너에게 전화를 걸었다.“모바일 청첩장 서다인한테 다시 발송해 주세요.”상대방은 수화기 너머로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경찬 씨, 서다인 씨는 어젯밤 부로 결혼식을 공식적으로 취소하셨습니다. 모든 하객분께도 이미 안내가 완료되었고요.”윤경찬의 미간이 단번에 흉하게 일그러졌다.“누가 마음대로 취소를 해요?”“계약서상 명의자가 서다인 씨이고 예식 비용 역시 전액 개인 카드로 결제되었으니 서다인 씨에게는 당연히 취소할 권리가 있습니다.”그제야 윤경찬은 예식장 예약부터 하객 답례품까지 그 모든 준비가 온전히 내 몫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정작 그는 마지막에 예산서나 슥 훑어보며 내가 너무 일을 유난스럽게 벌인다고 타박했을 뿐이었다.“결혼식이란 게 그냥 형식만 채우면 되는 건데, 대충 적당히 하지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하지만 나는 그 ‘적당히'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홀로 발품을 팔

  • 일곱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다   제5화

    내가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빠져나올 때까지도 테라스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윤경찬은 아마 내가 지난 수많은 날들이 그랬듯, 또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신이 달래주러 오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듯했다.휴대폰이 진동했다.그가 보낸 메시지였다.[투정 그만 부리고 들어와.]몇 분 뒤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유미가 취했어.][네가 산 숙취해소제 어디 있어?]나는 액정 위에 뜬 그 두 줄의 문장을 한참 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결국 휴대폰 전원을 아예 꺼 버렸다.내가 이미 그곳을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사라진 약혼녀의 행방이 아니라 제 곁에 있는 임유미에게 먹일 숙취해소제의 행방이었다.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 이륙까지는 4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나는 탑승 수속을 밟고 마지막 캐리어까지 말끔히 위탁 수하물로 부쳤다.지난 7년 동안, 나는 윤경찬과의 결혼식을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려 보곤 했다.웨딩드레스는 어떤 디자인으로 고를지, 청첩장에는 어떤 말을 적을지, 하객 테이블을 장식할 꽃은 무슨 색으로 맞출지까지.심지어 일 년 전부터 하객들의 자리 배치마저 꼼꼼하게 다 짜두었을 정도였다.그의 가족들, 그의 친구들, 그리고 임유미의 자리까지도.나는 그녀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정해 두었었다.그동안 그녀를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이윽고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나는 탑승하기 전, 민자 반지를 공항 유실물 센터에 맡겼다.이름을 적을 때 직원이 물었다.“귀중품은 아니죠?”나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아니요.”진정으로 소중했던 것들은, 그가 직접 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임유미의 손에 끼워주던 그 순간에 이미 전부 바스러져 사라져 버렸으니까.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윤경찬은 마침내 호텔 방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임유미는 술에 몹시 취해 그의 어깨에 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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