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약혼을 한 뒤, 우리 여섯 명은 마지막이라는 명목으로 프리웨딩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절친 임유미가 ‘24시간 커플 체인지’ 게임을 제안했다. 같은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뽑은 사람끼리 하루 동안 연인처럼 지내는 게임이었다. 반대로 빈 카드를 뽑은 이는 잡일을 전담하며 모두의 찍사이자 짐꾼이 되어야 했다. 첫 번째 라운드, 내가 집어 든 것은 서늘한 빈 카드였다. 약혼자 윤경찬과 임유미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달 모양 카드를 뽑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일출을 보러 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세 사람 몫의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짊어졌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도 내가 뽑은 건 또 빈 카드였다. 이번에 두 사람이 뽑은 것은 장미 카드였고 거기에 걸린 미션은 1분간 포옹하기였다. 모두가 두 사람을 둘러싸고 환호와 야유를 보내는 동안, 나는 그 곁에 서서 무덤덤하게 스톱워치의 시간을 재고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라운드... 그렇게 무려 일곱 번이나 나는 매번 그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군더더기 같은 사람이었다.
View More과거의 나는 이 말을 그토록 오래 기다려왔다.그가 조금만 일찍 말해주었더라면... 내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버려졌을 때...처음으로 그들 다섯 명의 단체 사진을 바라보며 소외감을 느꼈을 때...내 생일보다 임유미의 눈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을 때...그때 그가 이 말을 해주었더라면, 나는 분명 돌아갔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차분하게 말했다.“고칠 필요 없어. 앞으로 누구를 사랑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누구와 함께하든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니까.”윤경찬은 대답 대신 반지를 손에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그 단단한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마치 예전에, 그 반지가 내 손을 무참히 아프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정말... 나를 이제 사랑하지 않는 거야?”나는 잠시 침묵했다.“사랑했었어.”순간 그의 눈빛에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그러나 나는 곧바로 나지막이 덧붙였다.“하지만 그 일곱 장의 빈 카드 속에서 내 사랑은 닳고 닳아 마침내 흩어져 버렸어.”윤경찬은 바로 떠나지 않고 작은 도시에 보름이나 더 머물렀다.그는 매일 촬영장에 나타나 제작진의 장비를 옮겨주고, 물을 챙기고, 차량을 점검하면서 예전의 나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단 한마디도 더 건네지 않았다.마침내 그 작은 도시를 떠나기 전날, 윤경찬이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다.그는 하드디스크 하나를 테이블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그 안에는 그들 다섯 명이 함께 나눈 단체 채팅 기록이 전부 들어 있었다.그리고, 그가 직접 쓴 사과 편지도 함께였다.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 사람들이랑은 진작 관계 끊었어. 승현이도, 다른 애들도 다 자기들이 틀렸다는 거 알아.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 해.”“그럴 필요 없어.”나는 고개를 저었다.“그 애들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젠 상관없어. 나를 그 자리에 묶어뒀던 건 처음부터 너였고, 결국 내가 떠나게 만든 것도 너였으니까.”윤경찬은 고개를
석 달 뒤, 윤경찬은 마침내 내 소식을 알아냈다.나는 북쪽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도시에 머물면서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합류해 외딴 지역의 여성 장인들을 촬영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그는 밤새 달려와 낡은 부두 근처에서 나를 찾아냈다.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흩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바람막이 재킷 차림으로 그물을 짜는 노인을 촬영하고 있었다.윤경찬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았다.늘 그들 다섯 사람만을 담아내던 내 카메라가, 처음으로 그들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나는 웃고 있었다.누군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도, ‘분위기 깨지 마’라는 요구에 억지로 맞춰 낸 웃음도 아니었다.그토록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그는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촬영이 끝나고 몸을 돌리다 그를 발견한 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거두어졌다.“여긴 왜 왔어?”윤경찬은 목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는 내내 준비했던 말들이 죄다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뗐다.“나랑 돌아가자.”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여기가 내 일터야.”“그만두면 되잖아.”대답은 너무도 빨랐다. 예전부터 늘 그래왔듯, 그는 또다시 내 삶을 제 맘대로 결정짓고 있었다.“결혼식은 내가 다시 준비할게. 단톡방에서도 이미 나왔어. 임유미도 더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을 거고. 앞으로는 오직 우리 둘뿐이야.”나는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윤경찬, 넌 아직도 모르는구나.”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내가 떠난 건 네가 단톡방에서 나오길 바라서가 아니야. 임유미와 연을 끊으라고 강요하려던 건 더더욱 아니고.”“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뭔데?”“네가 싫어졌어.”바닷바람이 우리 사이를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윤경찬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갔다.“고작 게임 하나 때문에?”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넌 정말 그게 단순한 게임이었다고 생각해?
그 후 일주일 동안, 윤경찬은 내가 갈 만한 곳을 전부 샅샅이 뒤졌다.하지만 그 누구도 내 행방을 알지 못했다.끊임없이 날아오는 그의 메시지는 처음에 던지던 강요에서, 점차 구차한 변명과 애원으로 바뀌어 갔다.[서다인, 제발 돌아와.][그때 그 장난은 내가 사과할게.][결혼식은 다시 올리면 되잖아.][그 반지, 진짜 임유미 준 거 아니야.][걔한테 당장 돌려주라고 했어.][네가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앞으로 모든 모임에는 무조건 너도 끼워 줄게.]그 마지막 문장을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헛웃음을 터뜨렸다.나는 분명 늘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이제 내가 떠나고 나니, 생색을 내며 자리를 내어주겠노라 나서는 꼴이라니.그가 보낸 모든 메시지는 바다에 던진 돌멩이처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여드레째 되는 날, 임유미가 찾아왔다. 그녀는 반지를 탁자 위에 툭 내려놓고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경찬아,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우리 둘 아니야?”“다인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너 분명 나 몇 년이나 좋아했었잖아.”윤경찬은 그 반지를 말없이 응시하기만 했다.“그래서? 다인이는 이미 떠났어.”임유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우리 다시 시작하면 돼. 우리 다섯이서 예전처럼 다시 뭉치면 되잖아.”예전, 내가 없던 그 시절에 그들 다섯은 물샐틈없이 끈끈했었다.누군가 질투할까 봐 눈치 볼 필요도 없었고 무리에 겉도는 이방인을 챙겨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모습 아니었던가?하지만 윤경찬의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식당 구석에 홀로 앉아 있던 나의 그림자였고 카메라 렌즈 바깥에서 홀로 서 있던 그림자,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쓸쓸히 떠나던 나의 그림자였다.그는 그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나는 그들 다섯의 울타리를 깨부수러 들어온 이방인이 아니라, 그가 직접 손을 잡고 데려와 평생 지켜주겠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뒤, 윤경찬은 자기 집이 아닌 내 오피스텔로 곧장 차를 몰았다.그러나 도어록 비밀번호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굳게 닫힌 문을 그가 한참이나 두드려대자, 아래층에서 집주인이 올라왔다.“서다인 씨 찾아요? 그 아가씨 어제부로 계약 해지하고 방 뺐는데.”윤경찬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세요?”“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집주인은 들고 있던 종이 상자 하나를 그에게 툭 내밀었다.“어떤 남자분이 찾아오면 이거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윤경찬은 다급히 상자를 받아들었다.그러나 상자는 놀라울 정도로 텅 빈 듯 가벼웠다.그 안에는 그가 수년 동안 내게 선물했던 온갖 물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미 단종된 낡은 손목시계와 책 몇 권, 오래된 스웨터 한 벌, 그리고 그 시절 그가 내게 건네주었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우리가 사귄 지 딱 2년째 되던 날, 맞춘 카메라였다.“너 사진 잘 찍잖아. 앞으로 우리 다섯 명 추억은 전부 너한테 맡길게.”그때는 그 말 속에 숨겨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분명 무리에 속한 사람은 총 여섯 명인데, 어째서 그의 입에서는 ‘우리 다섯 명’이라는 말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지 말이다.나중에야 이상함을 느낀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그럼 나는?”그 물음에 그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능청스레 웃어넘겼다.“너는 우리 전속 사진사잖아. 사진사는 당연히 앵글 밖에 있어야지.”나는 그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그래서 지난 몇 년간, 나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수만 장이나 찍어 남겼다.윤경찬과 임유미가 티격태격 장난치는 모습, 그들 다섯 명이 모여서 생일파티를 벌이는 순간,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일출을 바라보는 뒷모습까지.하지만 그 수많은 기록 속에 정작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라했다.종이 상자의 맨 밑바닥에는 외장 하드 하나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윤경찬이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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