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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아리리
침대 머리맡에 서 있던 내 손끝이 서서히 차갑게 식어 갔다.

오직 나만 쏙 빠져 있는, 그들만의 단체 채팅방이었다.

화면을 터치해 대화 내역을 가장 위로 끌어올리자, 3개월 전 작성된 첫 기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유미가 올린 ‘커플 체인지 게임’ 캡처 사진이었다.

[서다인은 항상 우리 무리에 어울릴 수 있다고 장담하잖아?]

[그럼 과연 몇 라운드까지 견디나 테스트나 해보자.]

바로 밑에는 주우빈이 보낸 답장이 이어져 있었다.

[다인이 카드는 전부 꽝으로 채워놓자.]

뒤이어 진승현도 신이 난 듯 거들었다.

[경찬이랑 유미 카드는 똑같이 맞추고.]

[손잡기, 안아주기부터 키스까지 가버리면 아주 자극적이겠는데.]

대화 내역을 차례로 내려 읽는 동안, 윤경찬은 초반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한참 뒤에야 짧은 메시지 하나를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너무 선 넘진 마.]

나는 화면 속 그 글자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적어도 그가 이 잔인한 장난을 말리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대를 잠시 품었다.

하지만 윤경찬의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다인 걔, 쓸데없이 진지하잖아.]

[당장 결혼식 준비도 걔가 다 해야 하는데 진짜로 빈정 상해서 떠나게 만들진 말고.]

진승현이 빵 터진 이모티콘을 보냈다.

[걱정 마, 걔 너 절대 못 떠나.]

[하긴.]

윤경찬의 그 짧은 대답 하나에, 마치 뺨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충격이 덮쳐왔다.

그 역시 이 모든 판이 나 한 사람을 철저히 바보로 만들기 위한 연극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상자 속 카드가 모조리 빈 카드였다는 사실도, 일행 모두가 코너에 몰린 나를 구경하려고 기다렸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미련스러울 정도로 이 모든 걸 참아낼 것이라는 사실까지 싹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한 유일한 걱정은, 친구들이 너무 선을 넘는 바람에 내가 삐쳐서 제 결혼식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봐, 오직 그뿐이었다.

대화 내역을 계속 아래로 내려 보자, 그 뒤로 이어진 건 이번 여행 일정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정성껏 짜서 공유한 스케줄 표에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더니, 이 다섯 명만 모인 단톡방은 마치 잔칫집이라도 된 양 시끌벅적했다.

[다인이 짠 다이빙 코스 진짜 노잼이다.]

[유미 물 무서워하잖아, 요트 파티로 바꾸자.]

그때 윤경찬이 말했다.

[다인한테 미리 말해줄 필요 없어. 현장에서 바꿔도 걔는 꼼짝없이 따를 테니까.]

심지어 그들은 호텔 방 배정까지 이미 자기들끼리 완벽하게 작당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경찬이랑 유미는 패밀리 스위트룸 쓰게 하자.]

[서다인은?]

[소파 베드에서 재우면 되지.]

[걔가 안 눕겠다고 버티면 어쩌지?]

윤경찬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내가 살짝 달래면 다 들을 거야.]

임유미의 방 안에 홀로 선 채, 나는 순간 턱 끝이 턱 막혀 오는 듯한 호흡 곤란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내가 그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이 무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그들에게 잘해 주려 애썼다.

각자의 취향을 하나하나 외우고, 선을 넘는 짓궂은 장난도 꾹 참으며 웃어넘겼고, 피곤하고 궂은 뒤치다꺼리는 모조리 자처해서 떠안았다.

하지만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부족해서 낄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저들은 처음부터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문 안쪽에 단단히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문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을 구경하며 멍청해서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킥킥거리면서 말이다.

그때, 잠잠하던 단톡방에 불쑥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우빈이 물었다.

[서다인 지금 어디 있냐?]

진승현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답장을 보내왔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찔찔 짜고 있겠지. 뭐.]

[다음 라운드 진도 마저 뺄까?]

그러자 임유미가 곧바로 음성 메시지 하나를 전송해 왔다.

“이제 그만하자. 다인이 진짜 화난 것 같아.”

그러자 윤경찬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화났으면 혼자서 삭히라고 해. 매번 누군가 기분 맞춰줘야 하는 것도 골치 아파.”

귓가를 때리는 그의 무심한 목소리에,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차갑게 식어 내렸다.

태블릿 화면을 꺼 버리려던 바로 그 찰나, 채팅방에 새로운 동영상 하나가 툭 떠올랐다.

진승현이 몰래 촬영한 영상이었다.

화면 속 테라스에는 윤경찬과 임유미 단둘만 남아 있었는데 술에 취한 임유미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나지막이 묻고 있었다.

“경찬아, 만약에 그때 내가 너한테 거절 안 했다면 말이야. 너, 그래도 다인이랑 사귀었을까?”

내 손가락이 액정 위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밤바람이 귓가를 찢을 듯 매섭게 불어왔고 영상 속의 윤경찬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낮게 깔린 목소리로 툭 뱉어냈다.

“아니.”

임유미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눈가에서는 눈물 한줄기가 툭 떨어졌다.

“그럼 너 지금 후회 안 해?”

윤경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을 뻗어, 임유미의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이미 수많은 것을 대답해 주고 있었다.

몰래 찍힌 영상은 거기서 뚝 끊겼다.

대화방엔 몇 초간 짧은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진승현이 메시지 하나를 툭 던졌다.

[내가 뭐랬어, 너희 둘이 진짜 짝이라니까.]

주우빈도 덩달아 거들었다.

[서다인 걔가 원래 중간에 끼어든 거잖아.]

[유미 자리를 그렇게 오래 차지했으면 이제 돌려줄 때도 됐지.]

순간, 귓속이 이명이라도 들리는 것처럼 먹먹하게 웅웅거렸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윤경찬과 무려 7년을 사귀고 결혼까지 약속한 내가 오히려 두 사람 사이를 뻔뻔하게 비집고 들어온 제3자였던 것이다.

나는 태블릿을 끄고 충전기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았다.

하지만 굳이 따져 묻지도 않았고, 당장 테라스로 뛰쳐나가지도 않았다.

내가 확인해야 할 대답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분명했으니까.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예약해 둔 항공권을 당일 밤 마지막 비행기로 앞당겨 변경했다.

아직 두 시간이 남았으니 내가 떠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애초에 이 여섯 명의 여행 속에 나 하나 온전히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거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두 번 다시 저들을 위한 자리는 남겨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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